대한민국 고등학생

몇 해 전에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었다. 정부가 교육예산을 삭감하고 교사수를 줄이겠다고 발표를 하자 고등학생들이 시위대를 조직해서 뛰어나왔던 거다. 자세한 내용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들이 들고 나왔던 구호 중에 하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과밀학급을 해소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한 학급을 18명으로 줄여달라는 거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과밀학급은 한 학급에 24명이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3부제 수업이라는 것을 했었다. 그렇게 했어도 한 학급에 100명이 후딱 넘어갔고, 행인이 있었던 반은 130명이 넘었다. 콩나물시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과밀학급"이었던 거다. 그런 과거를 지닌 입장에서 한 반에 24명은 정말 단촐한 숫자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그것도 많다고 생각했나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행인이 감동했던 것은 첫째, 자신의 문제를 명확히 지적하면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고등학생들, 둘째, 후배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며 연대투쟁을 벌인 대학생들, 셋째, 정부의 방침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학생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선생님들과 대학교수들이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애초 발표했던 예산 삭감은 커녕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항복선언을 하고 만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현재 고1학생들부터 내신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고등학생들이 집회를 벌이겠다고 나섰다. 내신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얼핏 보면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도록 유도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참 좋은 목적인 듯 싶기도 한데 왜 학생들이 반발을 할까?

 

내신을 등급제로 만들고 상대평가를 하겠단다. 내신조작 등을 못하게 하기 위해 영점단위로 성적을 나눠 학생들에게 등급을 매기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학생들 사이에서는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학생들을 '자원'으로 생각하는 교육부의 진면목이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입시의 중압감으로 인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 때, 도대체 우리 아이들을 어디까지 몰고가려고 그러나?

 

한 반에 18명 정도 학생들 놓고, 교사와 학생들이 풍부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깨우쳐나가는 학습현장. 이거 그냥 꿈일까? 대학이라는 곳이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학해서 진짜 말 그대로 교육이라는 것을 받을 만한 곳으로 발전할 수는 없는 걸까? 그저 고등학교 때 성적과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경쟁적으로 끌고가는 것만으로 학교 위상을 세우는 이런 우스운 입시현상이 사라질 수는 없는 걸까??

 

학생들이 손에 손에 들고 나간 저 작은 촛불이 이 땅의 왜곡된 교육현실을 전복시키는 불길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당장은 힘들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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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7 15:00 2005/05/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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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에 집회가 400여명이 조금 넘게 모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언론의 반응은 그 정도 모여서 다행이다. 정도랄까? 9시 뉴스 그 어디에도 고등학생 집회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언급한 곳은 없더군요... 대략 난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