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뒷북

행정자치부가 대대적인 주민등록번호 클린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한다. 캠페인의 이슈는 "사이버 공간에 숨어 있는 내 주민번호를 찾아라"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2001년 이후 자신의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된 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불필요하게 가입되어 있는 사이트에 대해 회원탈퇴를 할 수 있다.

 

행정자치부가 이런 행사를 하게 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주민등록법 상의 규제조치만으로는 이미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주민등록번호의 관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이 위험수준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개인정보유출피해사례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은 수도 없이 제기되어왔다. 그 때마다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번호 도용자에 대해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누기' 정도의 수준이었다.

 

행정자치부가 꾸준하게 벌칙강화 등의 대책을 내놨으나 결과는 무용지물. 매일 포털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라는 검색어를 검색창에 쳐 넣는 순간 하루에도 몇 건에서 많게는 수십건의 관련 기사와 글들이 주루룩 올라온다. 피해사례의 증가는 물론 피해액 역시 점점 늘고 있다. 이것은 주민등록번호의 효용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실로 인해 당연히 앞으로도 주민등록번호의 도용은 증가할 것이다. 검찰사칭 주민등록번호조회 전화 같은 낚시전화를 통해 유출되는 주민등록번호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요즘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행정자치부, 결국 주민등록번호 클린 행사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행정기관의 대응만으로는 주민등록번호유출 및 개인정보피해상황을 해결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라는 것은 고작 "이용자 너네들이 니들 주민번호 알아서 좀 정리해주삼" 뭐 이런 거다. 웃기는 것은 주민등록번호 이용현황확인을 위해서는 신용평가기관에 등록되어 있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왜 자신의 부처 안에 시스템을 구축해서 주민등록번호 확인을 해주지 않고 신용평가기관에서 또다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정보확인을 하도록 하나?

 

이건 행정자치부가 스스로의 역량으로는 주민등록번호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항복선언이다. 이 항복선언조차도 어찌나 뒷북인지, 이미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는 세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번 행정자치부의 행사 정도로는 언감생심 문제해결이 요원하다. 중국에서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가 마구 사용되고 있는데, 행정자치부의 역량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이제 중국에서는 아예 대놓고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를 판매한다. 외국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이 주민등록번호 매매는 장래 한국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우려마저 감지된다.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식별번호를 온라인에서 이토록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외국에서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를 불법적으로 이용한다고 해도 관련법이 없어서 처벌하거나 규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당사국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제발 그넘들 처벌 좀 해달라고 통사정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다. 사정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주민등록번호 사용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우선이다. 민간영역, 특히 온라인 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사용은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이런 조치를 취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증명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업자가 보존하는 거래기록 및 개인정보 내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고, 인터넷 사이버몰에서 필수적으로 수집하는 정보에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조치는 사실 지금까지 거래과정이나 온라인이용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될 필요가 없었음을 증명한다. 간단히 말해, "안 써도 된다"는 거다.

 

이미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는 너무 많이 유출되어 사용범위축소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안 된다. 따라서 다음단계로는 주민등록번호의 조합방법을 바꾸거나 미국의 사회보장번호와 같이 주민등록번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등의 부여방식변경이 필요하다. 지금 방식의 유지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행정자치부의 국제적 뒷북은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장난질치지 말고 주민등록번호 체계변경하고 지문날인제도철폐하는 등의 주민등록법 전면 정비가 필요하다. 맨날 뒷북이나 치다가 이젠 외국인까지도 한국사람들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져다 쓰는 세상이 되었다. 뒷북치는 행정자치부, 세금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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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3 07:10 2007/03/1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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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 행인님 이런 morning~ 부터 글이 올라오다니..;;;;

    밤 새신건가요?? 아니면, 출근하자마자 바로???

    일단 내용보다 작성시간부터 눈에 보여서 캐안습..ㅠㅠ

  2. 중국에서 한국인주번판매된다는 야그 듣고는, 드뎌 대한민국의 글로벌화가 되나 보다 생각했는데..ㅎㅎ
    중국은 물론, 수백명의 산오리가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활동하고 있으니, 애써서 외국으로 나가려 할 필요도 없을거 같고... 주번 세계에 많이 퍼뜨려야 하는거 아닌가요?

  3. 에고... 그 주민등록이라는거 아무래도 태어날 때 부터 가축들 낙인 찍듯이 발급을 받으니까, 없으면 안 되는 걸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 듯; 에효 ㅠ_ㅠ 주민등록증 다시 만든다고만 해봐라~ 지문날인 반대할테다 ㅠ.ㅠ

  4. death to 주민번호!

  5. pilory/ 일찍 출근했습니다. ^^ 사실은 어차피 당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출근이라기보다는 일찍 일어나서 일하고 있던 중이었죠. ㅎㅎ 밤을 새진 않았답니다.

    산오리/ ㅎㅎㅎ 온라인상의 복제인간인가요? 황우석이 울고 갈지도... ㅎㅎㅎ

    에밀리오/ 지문날인 철폐하랏~! 감사!!

    su/ 넵!

  6. 잘 읽었습니다. 담아갑니다.

  7. 새벽길/ 잘 지내시죠? 건강하시고 좋은 논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