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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진다는 것.

  • 등록일
    2004/12/22 03:25
  • 수정일
    2004/12/22 03:25

성격이 모가나도 한참 난 성질머리인지라..

누구한테 신세지는걸 무척이나 거북스러워한다.

 

생각해보면, 가정교육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침에 날 깨우러 들어오시면. 어머니는 늘 내 지갑을 검사하셨다.

그리곤 지갑에 파란색 종이가 비어있으면, 늘 채워주시곤 했다.

"남자는 주머니가 두둑해야, 어디가서 주눅들지 않고 산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났다.

 

누군가의 신세를 지지 않고는 이 알량한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성질머리로만 치면, 굶더라도 넙죽넙죽 받아먹어선 안될 일이었겠지만. 실은 그리 깡다구있는 생이 못된 것이다.

 

2년전에는 몇몇 활동가들이 '황규만 육아`시스템을 만들어 내 일상생활을 건사해준적도 있다. 워낙 나쁜 성질머리라, 내 육아를 담당했던 동지들께 고맙다는 말도 변변히 전하지도 못했다.

 

지난 일요일 새벽, 잠자리에 들기위해 회의실에 있는데 한 후배가 회의실 문을 두드리고,

주머니에 이것밖에 없다며 돈 35,000원을 쥐어주고 나갔다.

한사코 거절하다 못이기는척 받아 챙기면서도 성질에 못이겨 고맙다는 표현도 역시 제대로 못했다.

 

치과에 다니는 탓에. 집에서 몫돈을 받아챙겨선 이리저리 돈을 굴리다.

역시 마지막 잔금을 못낼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누군가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

항상 내 곁에서 격려해주고 안마를 해주는 한 선배와, 그 선배의 동거인에게 죄스럽게도 신세를 지고 말았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한다는 소리가, 등 돌리고 '형 잘 좀 주물러봐~'가 기껏이다.

 

배가 고프거나 술이 고프면 고맙단 생각도 없이. 늘 뜯어먹는 선배가 하나 있는데. 이 양반이야 말로 가장 고마운 사람이지만 고맙단 말 절대 안한다.

기 싸움에서 밀리면 절대 못 얻어 먹는 거지 근성이 몸에 밴 탓이다.

 

요샌, 내 일상 생활을 보살펴주는 강력한 옆사람이 생겼다. 돈없으면 강제로 책상에 돈을 던져놓고 도망가는 못된 사람이다. ^^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잘 사는 타입인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주변에 너무 착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새삼 돈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비참하기 보다는 날 보살펴주는 동지들과 선후배들에게 죄스러운 맘이다.

그들이 단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외에, 그들의 보살핌을 가치있는 것으로 증명시켜야 사람의 도리겠지만, 한치 앞이 불투명한 요즈음은 도무지 자신이 없다.

 

삶이란, 세상에 빛지고 살아가는 일.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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