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속의 우물

작년 겨울에 한결이네를 다녀왔다.. 사무실 식구들 총출동..

그날따라 어찌나 바람이 세차게 불던지 살만 안쪘더라면 날아갈 뻔했다;;

여튼 산 넘고 물 건너 대부도에 있는 한결양의 집에 도착..

죽 한그릇 뚝딱 해치우는 한결이의 동생보며 감탄하고..

아빠가 퇴근했다고 번쩍번쩍 뛰면서 "아빠~ 아빠~ 아빠~"를 연호하는 아이들의 낯선 풍경에

머쓱해졌다..

 

첨엔 우리들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한결이의 말에 사람들 급좌절..

한결 어미를 타박했다..

"다 네 잘못이야.. 우리를 잊지 않도록 수시로 비디오 상영시간을 가졌어야지.. 모야모야.. 엉엉엉"

10분쯤 지나 이 녀석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어찌나 섭섭하던지..

삐쳐서 급가출할 뻔했다..

 

 

<터울림 굿판 가서 꽃다지가 풍물 장단에 맞추어 댄스댄스~~>

 

한결이..

생후 8개월되던 2002년 3월 8일부터 엄마따라 우리 사무실에 출근했던 아이다..

여러가지 문제로 사람들이 수면깊이를 잴 수 없을만큼 깊이 깊이 가라앉던 그 시절..

그 엄혹한 사무실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던 아이다..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말 외에는 어떻게 그 존재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로 인해 우리 사무실이 유지되는구나'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닐 정도로

녀석으로 인해 사람들은 대화하고 서로의 눈빛이라도 나눌 수 있었던 때였다. 

 <대략 두 살 경에 모꼬지에 가서 당당한 누드쑈쑈쑈!!!>

  

말 한마디 못하던 시기를 지나.. (사무실 와서 잠 자고 좀 울다가 밥 먹는 게 전부였던 평화로운 시기.. 아 그리워)

신발 신는 것이라도 도와줄라치면 "내가 할거야. 난 이제 아기가 아니고 어린이야"라고 항변할 만큼 성장하고..

사실 이때부터 사무실 사람들의 괴로움도 커지기는 했다..

 

제 말처럼 아기 때는 우리들이 무언가를 다같이 해야할 때는..

소파 두 개 붙여 놓고 잠만 재우면 만사형통이었는데.. 말 몇마디하고 제 발로 뚜벅뚜벅 걷을 때쯤이되자

회의 시간에 우리들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내 조용히 있다가도 회의시간만 되면 할 것도 많고 보여줄 것도 많고 참견할 말도 많아져서

회의 곤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 경우에 얍삽한 어른들의 선택이란.. 안좋은 거 뻔히 알면서..

컴퓨터 앞에 앉혀 놓고서는 "30분만 인형 옷 입혀주기 하면서 놀아~"

(미안하다 한결아.. 잘못했다;;)

 

<열창하는 한결 양.. 음.. 아마도 '내 남자니까'였던 듯^^>

 

좀 더 크고 노래까지 할 정도가 되자 무대로 향할 시선을 모두 빼앗아 가곤 했었다.

제 엄마와 이모 삼촌들이 부르는 노래를 다 따라 하는 건 물론이고

무대에 선 가수들보다 더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표정과 율동까지 해보이니..

작은 공연장이나 집회장에선 한결이를 보느라 사람들이 다들 뒤돌아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세상을 바꾸자'나 '사람꽃'의 율동도 잘했지만 압권은 느리고 약간 슬픈 노래를 부를 때의

그 절망스런 표정과 절규하는 듯한 동작.. 그 누가 시선을 돌리지 않겠는가?

 

 <저 날 처음으로 뒷짐 지는 모습 보고 감동했었다..> 

 

  한결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유치원 일주일 차..>

나:한결아, 유치원이 좋아? 꽃다지가 좋아?

한결 : 꽃다지!!!

나 : 왜?(뿌듯.. 흐뭇.. 의기양양)

한결 : 애들이 너무 시끄러워..

나 : (니가 더 시끄러운 건 아니공???) .. 어.. 그래... 그런데 이모, 삼촌들이 있어서 좋은 거 아닐까?!!

한결 : ..................... 응..

 

<유치원 한달 차..>

오랜만에 유치원 땡땡이 치고 사무실에 출근한 한결

나 : 우와 디따 보고 싶었어..

한결 : 나도

나 : 내일도 또 와~~ 유치원 가지 말공..

한결 : (한참을 생각하더니) 오늘 왔잖아. 좀 더 있다가..

나 : 꽃다지가 더 좋다고 했잖아.. 매일 매일 와야지

한결 : 근데 유치원 가야지.. 유치원이 더 좋아~~

우리들 : 흑흑.. 너무해~~

<몸매자랑..ㅎㅎ 이젠 저렇게 자유로운 복장은 부끄럽다고 하겠지..>

사람이 진화 발전한다는 가설을 온몸으로 입증해 보이던 한결이가..

이제 얼마 후면 '어린이 선언'에서 '학생 선언'을 하게 되었다.

올 3월이면 초등학생이 된단다..

공부도 열심히다.. 버얼써 한글 다 떼고.. 영어도 공부하신단다..(난 초등학교 들가서 한글 배웠는뎅;;)

 

<퇴근한 아빠를 환영하는 세러모니가 대단하다.. 동생녀석도 덩달아.. 참 낯선 풍경이었다>

코흘리개 젖먹이 시절부터 거의 매일매일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녀석이 이제 초등학생이 된다니..

감격스럽기짝이 없다.. 슬쩍 콧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려 한다.

물론 엄마, 아빠의 마음을 어찌 따라갈소냐만.. 그래도.. 왠지 들뜨고 뿌듯함으로 가슴 한 쪽이 뻐근해져온다..

그나저나 가방이라도 사줘야하는뎅..

그런데 우린 너무 주책이다..

한결어멈 : 이제 3월이면 초등학교 가..

우리들 : 우와~~~ 우헬헬.. 그럼 우리 입학식날 총출동해야하는거 아냐? 며칠이냐?

한결어멈 : ...................................... 입학식엘 다 온다고요?

우리들 : ......................(뭔가 아닌 듯한 반응에 몇 초간 잔머리 굴리다) 아닌가? 초등학교 입학식엔 식구들이

다 몰려가서 축하해주는 거 아녀??? 우리 때는 그랬던 거 같은뎅..............#$%^&*&

여튼 한결 양, 학생 되는 거 축하해!!!!

 

 

 <한결이 한결 공부.. 그런데 받아쓰기 내용이 좀 거시기 하다..

조용히 공부해.. (조용하면 그게 애냐??) 

무섭게 말했다.. (애 어멈이 너무 공부만 시키는거 아냐???)

책가방이 무겁다..(벌써부터 세상 살기 힘든걸 알려주다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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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12:44 2008/01/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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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송이민들레 2008/01/25 16:53 URL EDIT REPLY
한결이닷!!!
한결이 얼굴본지 딱 1년 된것같다...
한결이네는 또 언제 다녀 오셨데요....덕수형 얼굴도 올만이네...
☆디첼라 2008/01/25 17:43 URL EDIT REPLY
민주도 열공모드겠군.. 새로운 직장은 잘 적응되는겨? 너야말로 본지 오래되었구낭.. 담에 보면 아마도 '뉘시온지???'라고 할거야
푸른살이 2008/01/27 01:38 URL EDIT REPLY
한결이....^^
한결이 누드 사진 속에서는 저의 흔적들이 남아있네요..
처음 나오는 누드 사진은 모꼬지가 아니라 선유도공원이었지요..ㅋ 제가 필카를 한참 가지고 다니던 시절, 열심히 찍어댔었구요.. 그 사진이네요..
뒤에 나오는 누드사진은 문화활동가 체육대회였지요.. 한결이 목에 두른 보라+검정 섞인 손수건은 제 손수건..ㅋ 제가 코디 해줬어요..^_^*
한결이가 제 존재도 기억하고 있을랑가요~~~? ㅎㅎ
꼭 기억해줬으면... 나중에 알려주세요..ㅋㅋㅋ;;;
☆디첼라 2008/01/28 16:47 URL EDIT REPLY
마자마자.. 선유도가 생각이 안나더라궁.. 석모도만 떠올랐어;; 5살 이전에 잘해주는 것은 말짱 헛것이라는 말을 명심해.. 5살 넘었으니 이제부터 잘해주는 게 진짜인뎅.. 넘 멀리 있네..ㅎㅎ 방학했으니 함봅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