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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9] “IMF 직전 정책 헛발질 많았다” 2005-05-08


[1분 33초]  http://news.kbs.co.kr/news.php?id=725290&kind=c


⊙앵커: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압박성 경고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의 회고록에서 드러난 당시 상황 박찬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한 지 일주일 뒤인 1997년 11월 28일 금요일,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부도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이 최근 회고록에서 밝힌 당시 정황입니다.

⊙강만수(전 재정경제부 차관): 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니까 빨리 협상을 끝내고 한국이 (IMF로부터) 돈을 인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예요.

⊙기자: 이 같은 통화는 우리나라가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미국의 입김이 센 IMF로부터 돈을 빌리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 전 차관은 풀이했습니다.

정부의 무능함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외환위기가 임박했는데도 정부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 KDI 등은 오히려 큰소리만 쳤다는 점을 헛소리의 백미라고 지적했습니다.

⊙강만수(전 재정경제부 차관):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3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세계 6대국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런 말만 하고...

헛소리 헛발질이었다는 얘기예요.

⊙기자: 특히 제일은행 매각과 관련해서는 뉴브리지캐피탈이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얻도록 하는 꽃놀이패를 만들어줬다고 지적했습니다.

강 전 차관은 당시 고위 관료였던 자신의 잘못도 자성하고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고백어린 회고록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KBS뉴스 박찬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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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5] IMF, “가계 부채 조정이 경제 회복 관건” 2005-05-18

[뉴스 9] ‘모범’ 은 싫어…‘일반택시’ 전환 봇물 2005-06-20


[1분 36초]  http://news.kbs.co.kr/news.php?id=742037&kind=c

⊙앵커: 어렵게 딴 모범택시면허를 포기하고 대신 일반택시로 전환하려는 기사가 늘고 있습니다.

요즘 승객모시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합니다.

김지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택시승강장도 아닌 곳에 모범택시 수백대가 늘어져 있습니다.

순번을 기다리며 땡볕을 피하려 택시마다 그늘막까지 쳤습니다.

⊙송병석(서울 모범택시 기사): 이제 내일 나가야죠.

⊙기자: 몇 시간 기다리셔야 돼요?

⊙송병석(서울 모범택시 기사): 최소한 20시간 가까이 기다려야죠.

⊙기자: 공항 주차장에서 숙식을 하며 승객을 받기를 두세 번.

하루 수입은 5, 6만원선에 그칩니다.

⊙박치복(서울 모범택시 기사): 수입이 정말 지출 빼고 나면 100만원도 안 되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거 계속 정말 마이너스 생활을 하게 된다 이말이에요...

⊙기자: 게다가 이달 들어 서울 택시의 요금이 17% 이상으로 크게 인상되면서 모범택시 이용승객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갈수록 악화되자 모범택시 기사들은 일반 중형택시로의 전환을 집단으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전환을 요구한 택시는 IMF 때와 월드컵 뒤의 불황기보다 훨씬 많은 603대.

하지만 서울시는 단 200대만 전환을 허용했습니다.

탈락한 기사들의 불만은 높기만 합니다.

⊙한의수(서울 모범택시 기사): 행정수도 먹고 살아야 되는 거지 시의 정책만 따라가지고는 할 수 없는 거거든요.

⊙기자: 극심한 불황 속에 모범택시기사들은 10년 가량의 무사고 운전경력에 대형차까지 구입해가며 어렵게 딴 면허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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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현장보고] 안도라 소국의 생존 비결 2006-03-24


[6분 23초]  http://news.kbs.co.kr/news.php?id=855049&kind=c


<앵커 멘트>

전체 면적이 제주도의 4분의 1에 불과한 유럽의 미니 국가, ‘안도라’ 라는 나라 들어보셨는지요.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는 피레네 산맥에 자리 잡은 이 소국이 파격적인 정책으로 관광대국, 경제 부국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웰빙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안도라, 그 성공의 비결을 김철우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는 피레네 산맥 한가운데 펼쳐진 동화 속 세상. 인구 6만명..면적은 제주도의 4분의 1 크기인 조그만 나라 안도라입니다. 해발 2천미터에 이르는 곳에 있어 견고한 요새를 연상케하는 안도라는 1993년 어엿한 주권 국가로 백84번째로 유엔에 가입했습니다.

안도라 진입을 위한 국경 검문소는 말만 검문소이지 비자도 없고 여권 검사도 없습니다. 오는 관광객들은 누구나 받아들이겠다는 안도라의 생존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알버트 싼토라리아(안도라 수상): “관광객들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했습니다. 경찰 숫자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치안 활동도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벌입니다.”

수도 안도라 라벨라의 길거리에는 온통 관광객을 겨냥한 쇼핑센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습니다. 이곳의 물건 가격은 프랑스나 스페인에 비해 30% 이상 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상점은 가격을 비교해 진열해 놓기도 합니다. 험준한 피레네 산맥에 위치해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안도라는 1950년대부터 관세를 면세나 다름없이 파격적으로 낮췄습니다. 또한 국민들로부터 직접세를 걷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안토니 퓌델리버(안도라 관광장관): “안도라는 조그만 나라여서 시민들이 납부해야 할 세금이 적습니다. 이런 점이 유럽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죠.”

이렇게 관광산업이 육성되면서 안도라는 연1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작은 부자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인터뷰> 오지오스(좌), 발레리아노(우): “물건이 더 싸기 때문에 선물을 사러 왔어요.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왔습니다.”

안도라가 관광 산업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역시 스키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피레네 산맥의 특징을 이용해 5개나 되는 스키장을 건설해 12월부터 5월까지 연간 6개월이나 스키를 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터뷰> 후안텐자(스키장 관리책임자): “스키장이 해발 고도 2천 미터 고지에 있고 북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6개월 이상 눈을 보존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 조건이 좋죠.”

특히 스키 관광객들은 쾌적한 날씨와 때묻지 않는 눈 위에서 스키의 참 맛을 만끽 합니다. 이 때문에 인근 국가인 스페인과 프랑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국과 네덜란드,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스키를 즐기러 안도라를 찾습니다.

이곳 그랑발리라 스키장의 슬로프를 모두 합치면 193킬로미터에 달합니다, 피레네 산맥 안에서 가장 큰 규모로 하루 평균 2만5천명의 스키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안도라의 또 다른 관광 명소는 자연 광천수를 이용한 온천입니다. 스키를 즐기던 사람들이 꽁꽁 언 몸을 녹이는 곳입니다. 특히 온천 곳곳에 배치된 보조원들이 요가 등 각종 체육 활동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안도라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EU 즉 유럽 연합 주도로 유럽 국가 간의 관세가 대폭 인하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럽 국가와 안도라의 관세 차이가 좁혀져 유럽의 슈퍼마켓으로 불려온 안도라의 면세 정책이 타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안도라는 레저 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보다 다양한 상품을 싼 값에 파는 전략으로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의 부자 국가 대열을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유물이나 유적 하나 없이도 천혜의 자연과 과감한 면세정책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 매김한 안도라 공국.. 작지만 클 수 있는 관광 정책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프랑스 청년들의 시위 사태는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일 수 없습니다. IMF 환란 이후 최악이라는 청년 실업난의 해소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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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뉴스] “노병은 살아있다” 옛 직장서 다시 한번 2006-10-16


[ 1분 40초] http://news.kbs.co.kr/news.php?id=1236173&kind=c

<앵커 멘트>

IMF 이후 구조조정 바람으로 직장을 떠나야 했던 5,60대 가장들이 같은 직장에 재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라며 노익장을 불태우고 있는 이들을 김현경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올해 예순 살의 김진희 씨, 국책 은행 본부장까지 지냈던 그는 최근 같은 은행의 매니저로 재취업했습니다.

거래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전략을 짜는 게 그의 임뭅니다.

<녹취> "늘 스탠바이돼있습니다. 여기 무역센터점에 계시군요."

5년 전,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 30년동안 몸 담던 은행을 떠나야 했지만 계약직으로 다시 일하게 됐습니다.

자식뻘인 동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는 김씨, 요즘 하루가 너무 짧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진희(60세. 기업은행 매니저) : "만족하구요. 또....행복하죠, 뭐.하하하"

올해 53살의 안영식씨,건설 경기 침체로 20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떠났던 그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녹취> 안영식(53세. 현대건설 전기 담당) : "용접을 할 때에는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를 얼마나 잘 하느냐.."

한시적 고용에 보수도 적어졌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활성화돼있는 퇴직 직원의 재고용이 국내서도 차츰 확산되는 추셉니다.

청년 실업 못지않게 심각한 조기 퇴직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하자는 취집니다.

<녹취> 안영식(53세. 현대건설 전기 담당) : "10년 이상은 더 일할 수 있습니다."

<녹취> 김진희(60세. 기업은행 매니저) : "열의와 성의로 판단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자랑스런 아버지들이 좀 더 오래 일터를 누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할 땝니다.

KBS 뉴스 김현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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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타임] [연예수첩] ②‘시대의 거울’ 공익 광고 변천사 2006-12-15


[4분 50초]  http://news.kbs.co.kr/news.php?id=1268782&kin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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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알려면 공익 광고를 보라는 말이 있죠? 그 만큼 공익 광고는 시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데요~

80년대 추억의 공익 광고부터 최근 이미지만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공익 광고까지...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공익 광고의 모습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시대별로 준비한 공익 광고의 모든 것, 함께 보실까요?

<리포트>

그 시기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시대의 거울, 공익광고!! 주제와 표현하는 방법 은 각기 다르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해 왔는데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공익광고의 모든 것을 알아봤습니다!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첫 번째 광고!! 바로 1981년, “저축”을 주제로 한 이 광고 였죠. 이후, 80년대 공익광고는 ‘다시 뛰자’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근검절약과 경제도약의 내용을 다룬 광고가 대부분이었는데요. 경제성장을 강조하면서 국민을 격려하고자 하는 의도였죠.

80년대에 빠질 수 없는 가족계획 광고입니다. 이 당시 인구정책은 중요한 관심사였 는데요~ 지금, 2000년대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죠?

90년대 초반에는 청소년문제를 다룬 광고가 대세였습니다.

1997년 IMF가 터지자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온 공익광고 입니다.

98년, 이경실씨의 재치 있는 멘트로 화제가 됐던 광고였죠!!

모기를 잡자! 바퀴를 잡자! 1960년대의 공익광고는, “무조건 이렇게 하자~!” 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과거와 달리 최근 공익광고는 시청자들이 스스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변했습니다.

80년대에 만들어진 교통안전 광고!! 영상과 말로 위반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데 요. 하지만 최근 공익광고는 좀 다릅니다~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죠? 말보다 는 영상으로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이 광고 또한, 금연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을 먼저 보여주는데요.

이렇게 영상으로 표현하면서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 다.

이홍렬씨와 한고은씨가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요~ 다름 아닌 선거 캠페인입니다.

딱딱한 광고는 이제 그만! 이렇게 공익광고에서도 스타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 다.

깜찍한 표정의 어린 노희지양~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이재은씨, 앳된 얼굴의 김민정씨와 중견 탤런트 정한용씨!

반면에 참신한 아이디어로 호기심과 재미, 감동까지 주는 공익광고도 있는데요~ 여자의 뒤를 쫓는 남자의 발걸음.. 이건 무슨 광고일까요? 아~ 이웃사촌이라는 걸 모르고 계셨네요~ 실수로 남자의 발을 밟은 여자! 친절 캠페인 광고였군요!

이렇게 색다른 접근을 통해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공익광고들~ 새로운 아이 디어와 다양한 표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민영철(공익광고 협회 본부장) : "(공익광고의 표현기법이 달라지고 있는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익광고,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광고를 만들려는 노력이 이 표현 기법을 다르게 하고 끌어 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부터 그 시대의 사회상을 적절히 담아왔던 공익광고! 세상이 변하면서 전달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많이 변해왔는데요. 앞으로는 또 어떤 기발한 공익광고들이 생겨날 지 기대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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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이경실씨가 출연한 '똑똑한 광고'편은 당시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켰다.[사진=한국방송광고공사]
IMF 시절 온통 ‘다시 일어섭시다’
1997년 IMF가 터지자 휘청거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다독이기 위해 공익광고는 ‘현명한 소비’와 함께 ‘도전정신’을 고취시켰다. 1998년에 제작된 공익광고는 7편 가운데 ‘청소년의 독백’ 한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6편이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똑똑한 소비’ ‘외채줄이기’가 절약을 말했고 ‘IMF 졸업식’ ‘처음처럼’ ‘의자’ ‘도전’은 좌절 가운데서 온 국민이 다시 일어서자고 다독였다.

특히 ‘똑똑한 소비’에서는 코미디언 이경실씨가 나와 “이제부터 경제는 내가 살린다”며 “차비? 걸어. 전화? 쓰지 마. 약? 아파도 참어. TV? 꺼. 밥도 굶어. 물도 먹지마”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도전’편은 경비행기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한국인 이주학씨가 나와 ‘도전하는 사람만이 우리의 희망’인 것을 보여줬다.

한편 1996년에는 IMF를 겪기 전에 그 발생 징조를 찾아볼 수도 있다. 1996년 언급됐던 신소비 문화가 바로 그것. 이는 서세원과 서정희 부부가 나와 “아낀 만큼 버는 거죠”라는 말을 퍼뜨렸고, 씨름선수였던 박광덕 선수가 나와 ‘올바른 소비문화’를 역설하며 허리띠를 조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소비 문화’를 공익광고에서 연이어 언급할 만큼 경제적인 거품이 사회에 만연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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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타임] [뉴스타임 현장] 주민등록 말소…사연은? 2006-12-29


[5분 43초]  http://news.kbs.co.kr/news.php?id=1275600&kind=c


<앵커 멘트>

최근 한 여성이 숨진지 사흘만에 발견됐습니다.

지병을 앓아왔던이 여성은 제대로 된 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숨졌는데요.

주민등록이 말소된 게 컸습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 의료 혜택은 물론 국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되는데요.

최영철 기자와 주민등록 말소 실태를 알아봅니다.

최 기자! 주민등록 말소자, 어느 정도나 되나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증가해 온 말소자 수는 올해 무려 64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주민등록 말소자는 극빈층인데요.

과연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짚어봤습니다.

숨진 30대 여성이 거주하고 있던 원룸.

시신이 발견된 지 만 하루가 지났지만 옷가지와 짐, 먹다 남긴 음식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사망 소식 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반응입니다.

<인터뷰> 이웃주민 : "나는 얼굴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 갑자기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시신이 발견된 것은 지난 수요일, 숨진 지 무려 3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7년전부터 지병을 앓아온 여성은 발견 당시 32kg으로 몹시 마른 상태.

<인터뷰> 이화성(형사 / 마포 경찰서) : "폐결핵이 심했어요. 그래서 한 2년 전에도 석 달 동안 보건소에서 약 지어 드시고 그런 상태였어요."

그렇다면 사망한 여성이 심각한 병세에도 불구하고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이화성(형사 / 마포 경찰서) : "(벌금 때문에) 수배는 오래됐고요. 말소는 2003년도예요. 이사간 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겨야 될 것 아니에요. 안 옮기니까 동사무소에서 직권말소 시키죠."

벌금 90만원을 낼 형편이 못되다 보니 주소지를 등록하지 않았고, 그래서 거주지 불명으로 주민등록이 직권말소 됐던건데요.

때문에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주민등록 말소자의 경우, 기초생활 보장금과 연금,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취업이나 자녀를 취학시키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인터뷰> 동사무소 관계자 : "일단 주민등록이 말소가 되면 어느 회사든지 주민등록을 신원 파악해서 떼어 오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떼어 갈 수가 없는 거죠. 의료보험도 당연히 안되겠죠? 의무취학 아동 이행이 안되죠. 일단 주민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안 되는 거예요."

국적, 호적 따위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이른바 무적(無籍)시민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주민등록을 말소시킬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주민등록법에 의하면 신고된 주거지와 실주거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이를 조사할 수 있고, 정해진 기간 내에 사실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개인의 주민등록을 말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카드회사나 사채업자 등 채권자들이 동사무소에 채무자의 주거지 확인을 요구할 경우, 조사가 착수됩니다.

<인터뷰> 동사무소 관계자 : "소액을 대출해서 썼다든가, 아니면 상품을 사서 돈을 못 갚는다 그럴 경우에 이해관계에 있는 자가 말소 의뢰를 하거든요. 요즘 같은 경우는 신용이 불량한 분들이 많으니까 제 3금융 이런 곳에서 많이 대출해서 쓰시잖아요."

실제 이같은 경우로 주민등록이 직권 말소되는 사람은 해마다 급증해 올해는 무려 64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민 100명당 1.3명꼴이 말소자인셈입니다 IMF 이후 사업을 실패한 50대 김모씨도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6년째 주민등록을 말소당한 경우입니다.

매일 아침 시민단체 사무실에 들러 각종 신문을 뒤적이며 일자리를 알아 보고 있지만 대부분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하는 회사가 많아 구직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00(주민등록말소자) : "생산직 기술직처럼 신문에 확실한 신원을 원하는 곳은 못하는 거고...세차, 주유 뭐 이런 것 하고...(수입은 얼마 정도 됩니까?)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한시간에 한 3500원. 식사 같은 것 그런 간단한 것은 해결하고 있습니다."

빚을 갚기는 커녕, 경제적 악순환의 고리에서 영영 헤어나올 수 없게돼 버렸다는 김씨.

김씨에게 남은 것은 체념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김00(주민등록말소자) :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거주지가 불명확하니까 취업을 안 시켜주는 것도 있고 잘못 꼬인 것을 풀기 전에는 원상태로 돌아오기가 좀 힘들죠."

시민단체들은 주민등록 말소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과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주민등록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정의철(신용회복 구조대 소장)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나 국민건강보호법 등은 주민등록하고 관계없이 별도로 관리함으로서 말소자들의 인권까지 침해하지 않는 그런 범주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주민등록법 자체가 전반적으 로 사용되다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행정기관 어디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무적(無籍)시민, 주민등록 말소자 64만명은 사회와 격리된 채 부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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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9] [올해도 달립시다] IMF 10년, 한국경제 현주소 2007-01-01


[2분 16초] http://news.kbs.co.kr/news.php?id=1276825&kind=c


<앵커 멘트>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은 지도 올해로 꼭 10년이 됩니다. IMF 체제이후 한국 경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박상용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금모으기, 외환위기 극복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같은 국민운동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IMF체제로 들어간 지 1년 만인 지난 98년의 생산과 소득, 소비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부실 은행이 퇴출됐고 주요 그룹들의 해체가 잇따랐습니다.

론스타, 뉴브리지 같은 외국자본도 이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옵니다.

경제 각 분야에서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도 IMF체제 졸업은 당초 계획보다 3년 앞당겨졌습니다.

<녹취>전철환(당시 한국은행 총재, 2001년 8월 23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린 195억 달러 중에 미리 다 갚고 남은 1억4천만 달러를 갚게 됐습니다."

IMF체제를 벗어나 다시 5년 반, 50억 달러도 안 되던 외환보유액은 2천3백억 달러로 세계 5번쨉니다.

수출은 천3백억 달러에서 지난해 3천억 달러를 넘어 세계 12번째 무역국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자가 쏟아 졌고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만 편중된다는 논란은 지금 우리 사회 화둡니다.

<인터뷰>현정택(KDI 원장): "양적인 팽창은 어느 정도 돼 있지만 이제는 질적인 것, 특히 사회제도 하나하나를 아주 충실히 하는 것을 쌓아가야지 진정한 선진국 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환위기 직후 투자부적격 B등급까지 곤두박질했던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이제 A등급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빠른 회복속도지만 외환위기 전단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 그리고 도약의 발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KBS뉴스 박상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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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타임] [뉴스따라잡기] ‘생계형 절도’ 안타까운 사연 2007-03-09


 

[8분 2초]  http://news.kbs.co.kr/news.php?id=1314085&kind=c


<앵커 멘트>

얼마전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 자전거를 훔친 아버지의 사연, 뉴스를 통해 들으셨는데요.

갈수록 각박해지고, 또 궁핍해지는 삶 속에서 이같은 생계형 절도가 최근 부쩍 늘고 있습니다.

엄연한 범죄이고, 또 처벌을 받아야 하는게 마땅하지만 그 사연을 들어보면 딱합니다.

정홍규 기자, 생계형 절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사정, 어느 정도인가요?

<리포트>

네, 그렇습니다. 취재진이 만나본 생계형 절도범들은 대부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 창 먹고 싶은 게 많은 어린 아이들을 잘 먹이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한 아버지, 부인과 아들의 병수발로 정작 자신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온 60대 가장. 그들이 훔친 물건은 단돈 1, 2만 원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절도범이 된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주변의 자전거 보관대입니다. 지난 7일 새벽, 43살 강 모씨는 이곳에 주차돼 있던 자전거 석대를 훔쳤습니다.

<인터뷰> 강00: “앞바퀴 (공기가) 빠져있고, 뒷바퀴도 빠져 있어서 ‘이거는 고물가치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애들 과자라도 사 준다던가 초콜릿을 사 준다던가 이렇게 하려고...”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사기 위해 강 씨는 오가며 보았던 이곳 자전거를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쇠톱으로 묶여있는 자전거의 자물쇠 줄까지 잘랐지만, 강 씨의 눈에는 그저 주인 없이 버려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강00: “남들이 2년, 3년 방치해 둔 거라고 판단이 되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그래서 갖다가 팔면은 단돈 천 5백 원, 2천원이라도 받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이 모습을 지켜본 행인의 신고로, 강 씨는 절도범으로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엄연히 주인 있는 물건을 훔쳤기 때문인데요.

<인터뷰> 양동희(서울 장안지구대): “(자전거가) 정확히 묶여 있고, 묶여 있는 것을 쇠톱으로 잘랐고... 소유자가 보관이란 차원에서 해 놓은 건데, 그거를 끊어간 거는 고물이라고 방치해서 가져갔다고는 볼 수 없고...”

다세대 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초등생 남매를 혼자 키우며 살고 있는 강씨. 지난 2000년 뺑소니 사고를 당한 뒤, 장애5급 판정을 받은 강 씨는 그동안 일도 못하고 병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진 빚이 5천여 만 원. 아내마저 집을 나가면서 강 씨는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왔습니다.

<인터뷰> 강00: “제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굉장히 돈에 쪼들리고 그랬는데, 아이들이 아팠어요. 감기가 심하게 들어가지고, 토하고 해서 좀 돈이 많이 들고 그랬어요. 마음이 괴로웠지요. 아이들이 아프고 하니까...”

월 80만 원 정도의 정부보조금과 3만원의 장애수당으로 월세와 난방비를 내고나면, 세 가족의 식비와 생활비로 남는 돈은 겨우 30여 만 원.

몸도 성치 않아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다 보니 살림은 빠듯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림에 보태려고 시작한 폐품수집도 벌이가 시원치는 않아보였는데요.

<인터뷰> 강00: “하루 벌면, 잘 벌면 2천원, 3천원. 잠자기 전에 한 바퀴 돌고요, 아침에 새벽에 한 바퀴 돌고,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돌아요.”

한 창 먹고 싶은 게 많은 어린 자식들을 마음껏 못 먹이는 게 늘 마음에 걸렸던 강씨, 결국 팔아봤자 만원도 안 될 자전거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인터뷰> 강00: “햄, 햄 사주고 싶어서 그랬다고요. 부대찌개. 그거를 좀 맛있게 해서 주고 싶더라고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생계형범죄를 저지른 일은 또 있었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봉천동의 재개발 주택가.

이곳에서 건축폐자재를 수거하던 김 씨도 절도범으로 몰렸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 “아들하고 아버지랑 둘이서 이사 가고 빈집이라 고물인줄 알고 떼어가려고 했다 버린 건 줄 알고 떼어가다가 조합장한테 들킨 거죠.”

이른 새벽, 김 씨 부자가 담장도 없는 빈집에서 수거하려던 것은 겨우 문짝 2개. 하지만, 이 지역 조합에서 이미 전문고물상에게 돈을 받고, 고철을 떼어갈 것을 허락한 상태였던 겁니다.

<인터뷰> 이한기(서울 관악경찰서): “주인 허락 없이 (고철을) 가지고 가려 했던 거는 절도라고 봐야 되고 원칙적으로는. 그 가치가 고물상에 팔면 문짝 2개가 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으려나...”

김 씨와 함께 한 둘째 아들이 쓴 진술서입니다. 아들은 단지, 60세가 넘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려 했을 뿐 이것이 범죄가 될 줄 몰랐다고 했는데요, 경찰조사에서 이 가족의 딱한 사연이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이한기(서울 관악경찰서): “부인은 대장암 말기 수술을 해서 병중에 있고, 장남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고, 차남은 대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휴학 중인데...”

취재진이 찾은 김 씨의 집. 저녁 늦은 시간까지 김 씨는 폐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종류대로 분류하고, 모아서 버는 수입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00: “오늘 5천 5백 원 (가져다) 팔았고, 거기서 주워서 현찰로 받은 거 3천 원, 2천 원해서 한 1만 7천원 했어요.”

전에는 30년 넘게 시계장사를 하며 화목하게 살아온 가족. 하지만, 지난 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 한파에 가게는 문을 닫았고, 그 후 10년째 김 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물을 모아, 팔아왔습니다.

<인터뷰> 김00: "수입이 창피해요. 안 놀고 (하루에) 2만원. 3만원이고. (폐품) 분리하는 것을 배웠어요. 쓰레기하고, 돈 되는 거. IMF 후로 그래서 한 달에 6십만 원도 벌까말까..."

혼자서는 간단한 생활도 못하는 뇌성마비 큰아들 뒷바라지도 김 씨의 몫입니다. 4년 전 아내마저 대장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둘째 아들도 휴학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절도를 시킨 꼴이 돼버린 김씨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는데요.

<인터뷰> 김00: "세상에 도둑질하려고 자식 데리고 가서 도둑질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일이라고 가서 아빠 좀 도와주다가. 자기 명예도 그렇고.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아들한테) 참 미안하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김 씨의 누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김 씨가 한 일을 범죄라고 하는 현실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인터뷰> 김 씨 누나: “사는 것이 너무너무 안됐죠. 그 집 헐린데 가서 무엇을 주었다면서요. 그거 쓰레기라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 절도범이라고 한 사람들이 나쁘지.. 가슴이 너무 아프지요.”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겨우 몇 만원의 물건을 훔치다 범죄자로 내몰린 아버지들, 소득 2만 불 시대를 앞둔 우리사회 한쪽 그늘에서는 이같이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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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심화 속 ‘빈곤층 건강 악화’ 2007-03-18


[1분 56초]  http://news.kbs.co.kr/news.php?id=1319170&kind=c

<앵커 멘트>

우리 사회의 양극화, 그 심각성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빈곤층은 10년 새 두 배로 늘었고, 가난할 수록 질병도 더 많았습니다.

답답한 소식, 이승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7년째 백혈병에 걸린 딸을 돌보고 있는 지연순씨.

월 40만 원의 정부 생계보조금에다 후원단체의 지원 등으로 근근이 살아갑니다.

한 때는 단란한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남편이 3년 전 간암으로 사망한 데다 병원비를 대다 보니 빚만 남았습니다.

<인터뷰>지연순(백혈병환자 어머니) : "빚이 한 5- 6천 정도 돼요... 카드로 이렇게 다 막았는데 막을 힘이 안돼서 진짜 파산선고 일보 직전이예요..."

IMF 이후 가장의 실직이나 사망, 중병 등 각종 원인으로 중산층이 줄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1996년 56%였던 중간층이 지난해는 44%로 12%포인트 준 반면 빈곤층 비율은 10년 새 약 2배 늘었고 상류층도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계층 간 의료 불평등도 큰 문제입니다.

소득 상위 10%에선 56%가 건강한 반면 하위 10%에선 22%에 불과해 지난 98년에 비해도 13%P나 떨어졌습니다.

건강검진율은 상류층 63%, 빈곤층 40%로 차이가 컸고 만성질환 수는 빈곤층이 3.61개로 약 두 배, 연간 침상 와병일 수도 빈곤층이 19일로 여섯 배나 많았습니다.

<인터뷰>강은정(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 : "하위계층은 질병 예방이 어렵고 조기 발견도 쉽지 않고, 발견해도 최적의 치료를 받기 힘들어서 건강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양극화 완화를 위해서라도 질병과 가난의 악순환 고리를 끊은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KBS 뉴스 이승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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