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운동평론] 노사과연의 파쇼적 행태와 성노동운동의 지형

[운동평론] 노사과연의 파쇼적 행태와 성노동운동의 지형 2011·07·08
 

최덕효(대표겸기자)

 

운동(movement)에서 소통은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자 일하는 활동가들은 소통을 통해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 그리고 쟁점을 찾아 토론하고 논증함으로써 진보적 가치의 일치를 향해 나아간다. 때로는 지지부진한 논제도 있지만 명백한 논제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분명한 논제라 할지라도 기득권에 가로막히면 수면 아래 잠기거나 반동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기득권은 우파만이 아니라 좌파들의 세계에도 엄존한다.

7월 6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자유게시판. 한국인권뉴스(인권뉴스)가 올린 ‘[정책자료] 독일의 성매매 상황과 합법화 관련법 제정과정’ 제하의 문건이 돌연 사라졌다. 스팸이나 상품광고 외에 진보적 이슈에 대한 ‘삭제’는 좌파사이트에서는 절대 금기사항인데 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노사과연 측에 의해 최근 삭제된 본지 문건은 이 외에도 몇 건이 되지만, 평소 삭제 사유를 올리는 친절한 이들이 유독 인권뉴스에는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  


    
     ▲ 인권뉴스 자료(A)를 삭제한 자리에 노사과연 자료(B)가 올려져 있다.  


여기에는 노사과연과 아니 정확히는 이 단체의 채만수 소장과 성노동운동 진영의 악연(?)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채소장은 노사과연 사이트를 통해 「'성노동자운동'이라는 현실주의」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부제는 “성매매 찬성하는 포주들의 압잡이 '진보 허깨비'는 가라 -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 힘 편집팀, 고정갑희 교수는 틀렸다”였다. 당시 채만수는 성노동운동 단체들을 향해 감정을 드러내놓고 이렇게 질타했다.  

“포주의 '생존권'이 아니라 그들 불우한 처지로 영락한 여성들의 생존권이 문제라면,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할까?.. 진실로 '좌파' 이론가다운 '좌파' 이론가, '좌파' 활동가다운 '좌파' 활동가라면, '성노동'이니 "성인인 성노동자 자신들의 자율의지"니, "성적자율권"이니, "신체의 자유권"이니 하는 양두구육을 내걸면서 포주들의 추잡한 이익에 봉사하는 대신에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구제와 자활 정책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의 주체적 투쟁이 문제가 된다면, 바로 그러한 자활정책을 요구․쟁취하는 투쟁으로 그들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들의 행태, 저들의 몰골은 어떤가? 포주들의 어리석은 앞잡이, 바로 그것 아닌가?”
(전문 바로가기)

채소장에게 관심 있는 대상은 오직 포주들이었다. 그는 성특법이 사실상 집장촌 폐쇄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갈 곳 없는 성노동자들에게는 실효성 없는 “구제와 자활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계급성을 가장 강조하는 그가 부르주아 통치기제인 성특법을 주도한 이른바 주류여성계의 구제·자활 입장과 궤를 같이 한 것은 여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성노동운동을 펼치고 있는 필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유럽에서 미국 일본까지 기득권자들과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자행한 기층민 탄압의 한 방식이었던 도덕주의 ‘폐창운동’. 그 유럽 1백년 역사와 일본 80년 역사를 우리는 불과 1년 만에 논의 중이니 가히 놀랄만한 ‘압축 근대’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비범죄화와 합법주의는 인류가 선택한 깊은 성찰의 결과임을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타 사회구조는 유럽의 예를 본받아도 좋지만, 성(性)문화 만큼은 미국식 금지주의를 수입해야 한다고 우기는 진보라면 분명 가짜 진보다.. 오늘 한국에서와 같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하는 잘못된 여성권력계의 의지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뜻있는 인사들은 감정은 최대한 절제하고 충분한 이성으로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전문 바로가기)

뿐만 아니라, 운동진영 넷 활동가들의 반론도 이어졌다.

zerg “좌파 지식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빅토리아 왕조로 인한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타락 규정, 노동자도 민중도 아닌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기독교 그리고 정치 커넥션으로 이루어진 금지주의 등에 대한 기초 소양은 있어야 할텐데.... 채소장은 기초 소양도 없으니 저런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신칸트 “금지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획득물이 아니다. 성매매 목적의 강요와 인신매매는 앞으로도 강력한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자발적인 단순 성매매는 비범죄화 시켜 봉건적 도덕률 또는 경찰국가적 금지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채만수 소장은 성노동 문제를 토론할 기초 지식조차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 금지주의 외 성매매 기사가 금기인 기독교뉴스에도 해외정책 자료가 올려진다.  


현재까지 진행된 성노동/성매매 관련 논쟁 지형에서, 그간 금지주의 논리에 포섭된 세력은 비범죄화 및 합법화 논리를 제시한 성노동운동 진영과의 이론 투쟁에서 참담하게 패배했다. 전자가 급진적 여성주의에 기반한 성(性)분리주의와 천편일률적인 모럴 테러리즘에 머무른데 비해, 후자는 세계사적으로 그리고 사상사적으로 매춘이 대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양극화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 노사과연은 해외 정책을 소개한 본지 기사자료를 참고하거나 반론을 준비하는 것이 운동단체다운 처신이다. 그러나 노사과연은 일방적인 삭제로 나왔으며 이러한 파쇼적 행태는 좌파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일종의 열등감과 트라우마 증세와 유사하다. 진보운동은 사회변혁을 향한 모든 물음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노사과연이 일방적 삭제로 대응해 쟁점을 ‘회피’한 것은 이미 패배를 자인한 셈이 된다. 운동은 이론이나 실천에서 논리상 치열할 수밖에 없으므로, 활동가들은 쟁점에 대해 보다 성실하게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성노동운동 외연 넓히고, 금지주의·비범죄화·합법화 토론해야

사실 성노동자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성노동자들의 생계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애초 성노동자운동에 연대한 단체들 중에는 “성노동인가 성매매인가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여성들’이 고생하고 있으며 그녀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다는 것”이라며 이들을 ‘구제’ 대상으로 사고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자발적인) 매춘 종사자를 노동의 주체로서 성노동자(sex-worker)로 그리고 전문가(experts)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정도로 진보적 성담론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성특법이 자본과의 관계에서 구제 불가능한 제도라는 걸 익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7.3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6.29 성노동자의 날‘ 기념 문화제


물론 과제도 있다. 지난 시기 성노동자 운동에 혼성(混性)으로 폭넓게 연대했던 분위기가 이후 성노동운동에 동의하는 특정 여성단체의 전유물처럼 퇴행한 점이 그것이다. 운동행태가 만약 지금처럼 계속 진행된다면 성노동운동은 특히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소수 비주류 여성운동에 갇힐 수밖에 없으며 이는 운동의 외연을 대폭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비주류라 하더라도 성(性)분리주의는 운동에서 있어선 안 될 반동적 경향을 필연적으로 지니며, 이같이 운동전선을 교란시키는 부문주의에 대한 경계가 각별히 요구된다.  

지난 7월 3일 오후 1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6.29 성노동자의 날‘ 기념 문화제(주최: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G)가 열렸다. 비주류 페미니스트들로 이루어진 GG는 행사 개최에 앞선 웹자보 홍보에서 그간의 성노동운동에 동의하는 여성주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동지들과 함께 하자고 말했다. 따라서 이날 행사에는 남성 활동가들이 포함된 다양한 좌파 단위가 참여하게 됐는데 이는 수와 무관하게 현 시기 성노동운동에서 상징적인 큰 의미를 지닌다. 다만, 향후 행사에는 GG가 좌파 단위와 공동개최할 정도로 문호를 활짝 열어야 운동에 대한 기득권과 부문주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GG가 운동 기조를 ‘성노동 비범죄화’라고 선포한 것은 현 금지주의 아래서 물론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날 필자는 GG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정갑희(한신대), 김경미(이대), 임옥희(경희대) 활동가에게 제안했다. ‘비범죄화’로 고착시키기보다는, 지금 진보진영에서는 금지주의와 비범죄화 그리고 합법화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분들이 많으므로, 이 세 가지 입장에 대한 전면적인 토론을 펼쳐 운동에너지를 꾸준히 모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 2008년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에서 열린 성노동자의 날 3주년 행사


이제 국내에서도 성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단체 및 인사들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대거 발생하고 있는 매춘 현상에 대해 비범죄화 및 합법화 대책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과 더불어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2004년 9월 23일 성특법 시행 이후부터 2011년 7월 현재까지 성노동운동에 연대한 단체 및 주요 단체 소속의 개인 명단이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사회진보연대, 노힘 여성활동가모임(현 사노위), 연분홍치마,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성노동연구팀, 전국철거민연합, 한국인권뉴스, 성노동자율공동체를위한연대(성자공연), 한국양성평등연대(현 한국성평등연대), 노점노동조합연대(현 노점노동연대), 독립프로덕션 빨간눈사람, 대만성노동자조합 코스와스, 동성애자인권연대, 성노동운동번역네트워크 부유인, 노동가수 박준, 민중가수 박향미, 고려대 몸짓패 '단풍‘,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회원들, 진보신당 민철식 중앙대의원, 국민참여당 강민호 당원, 서울버스 시민대책위 한성영 사무국장,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 회원들.

[한국인권뉴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