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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르떼 사회적협동조합 설립기 1)

이글은 부산민예총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두달에 한 번 함께가는 예술인]의 요청으로 

2013년 3월부터 4회에 걸쳐 연재한 글입니다. 

자바르떼가 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좌충우돌 운영하고 있는지를 

고민을 담아 정리해봤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문화예술, 협동조합으로 길을 모색해 보다

2. 문화예술의 공공성 -사회적기업과 사회적협동조합

3. 문화예술협동조합 해외사례

4. 협동조합 전환, 그 이후 - 풀어야 할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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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협동조합으로 길을 모색해 보다.

 

1. 들어가며

90년대 초반, 당시 소비에트 해체와 동구의 몰락(?) 이후 다양한 사회이론들이 한국사회에 떠돌아다녔고, 그 언저리에서 집적거리다가 우연히 접한 몬드라곤의 이야기는 지금 기억에도 가슴을 설레게 했던 사례였다. 출처도 기억나지 않고, 내용도 확실하진 않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그 해의 생산량을 결정하고 함께 일해서 발생한 수익을 나누어 갖는다는 이야기였는데, 노동해방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인지, ‘소외되지 않는 노동’인지, 심정적으로 여전히 명확하게 답을 내지 못했던 나는, 그 때 잠시 한국사회에도 그런 모델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엔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던 열사 정국이 계속되던 시절이라 그냥 그건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90년대 중반 즈음, ‘문예에서 문화로’라는 노동문화운동진영의 관점변화에 발맞춰 일상과 가치까지 변화시키는 문화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대중접점을 창출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와 문화운동 1만 명 수용자 조직을 목표로 후원회 조직사업을 했었다. 또 음반 사전 주문예약제 등의 시도들을 보면서도 이를 운동의 주요한 흐름으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생협활동을 하는 선배들을 노동자계급지향의 부문운동이나 지역운동이 아닌 개량적인 활동으로 치부해 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2013년 초 지금 문화예술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그 동안 어떤 고민이 나를 이 자리로 흘러오게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1989년 초, 사회에 나와 노동자문화운동을 시작한 지 25년. 그것도 예울림, 꽃다지로 10년, 노문센터로 5년, 그리고 자바르떼에서 10년이라는 간단한 이력밖에 없는 나의 활동을 통해 무엇을 변화시키려고 했고, 또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말이다.

 

2. 자바르떼는 왜 문화예술생산자협동조합을 목표로 해왔나?

2004년 문화예술의 공공적인 일자리 만들기 사업으로 소외계층에게 찾아가는 문화활동을 제안받고, 반갑기보다는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운동에 도움이 되는 활동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삼성의 기금으로 진행될 예정인 이 사업이 우리의 의지대로 잘 세팅되어 추진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몇몇 선후배들과 고민을 나누면서 혼자라면 걱정이 되지만 내가 흔들릴 때 굳건히 잡아줄 몇몇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원하는 대로 성과를 내고, 또 정 안되면 놓아버려도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는 참 안이한 생각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되는 사건들이 생겨났다. 노동문화운동 단위에서는 삼성의 기금을 받아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적일자리 사업에 대한 거부감이 무척 컸고, 이는 결국 참여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변절자 혹은 가해자로 몰아갔다. 우리 스스로의 목표와 지역에 성과를 남길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을 만들어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는 해보지도 못했다. 20년 가까운 동지적 관계에서의 소통은 더는 불가능했고, 결국은 서로 등을 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신나는 문화학교>는 사실 짧은 기간만 하고 그만 둘 수 있었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벌써 10년을 계속 고민하며 가고 있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책임과 과제들이 보였고, 이를 통해 꿈꾸던 것들을 어찌 되었건 일부라도 실현하고 싶었다. 그게 문화예술생산자 협동조합이었다. 월급 받는 예술가, 문화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 예술가들이 자기 예술노동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조직되고 운영하는 책임 있는 활동조직, 그리고 지역에서 문화를 통해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는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이들이 같이 꾸는 꿈이었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고, 3년간 인건비 일부를 지원받은 후, 주변의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지원 이후 자립에 실패하거나 중단되는 일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아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에게 증명하고, 비로소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목표는 새로운 문화주체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8~90년대의 노동자문화운동의 주체는 민주노조의 조합원과 진보적인 학생, 지식인들이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운동 속에서 노동자문화는 문선(문화선동)만이 남았고, 투쟁 과정에서도 스스로 만드는 문화활동은 거의 사라졌다. 전국적으로 활발했던 노동자문화패들도 대부분 해체되었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문화를 누리고, 창조하는 집단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지역에서 새로운 노동문화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은 노조를 통하지 않고 지역의 노동자 자녀, 비정규직, 이주민들을 시민,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스스로 자기 삶의 주체로 서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대안적 가치로 살아가는 것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자바르떼가 그동안 해왔던 문화기본권과 문화복지 개념은 사람들이 단순한 문화소비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적인 문화활동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 조직화하고, 조직화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바르떼 문화예술교육의 이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문화예술조직은 그 특성상 일반기업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었고, 자본을 중심으로 운영하지 않았던 터라 굳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확실한 동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만 설문과 면담을 통해 조사한 바로는, 협동조합 전환에 동의하는 이유가 협동조합이 긍정적 이미지를 준다는 것과 현재의 사회적 기업보다는 협동조합이 협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운동으로서 더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협동조합 전환 컨설팅 과정에서 사업 모델의 혁신과 새로운 사업관계가 형성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협동조합 설립은 예술인들이 운영하는 공동체 조직을 통해 문화복지를 실현하는 공익적 활동을 하고, 결과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문화예술단체에서는 하지 못했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활동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 해결될까? 도대체 협동조합은 무엇일까?

 

3. 협동조합 기본법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문제의식

2011년 말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고, 2012년 12월 시행되는 사이에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협동조합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거 50년간 한국사회는 산업별로 농협법, 수협법, 소비자생협법 등 8개의 특별법에 근거해서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고, 지역농협은 1천 명, 소비자생협의 경우 300명이 모여야 설립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준들은 그동안 소규모 협동조합의 설립을 막는 근본적인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최소 5명만 모이면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신고를 거쳐 법적 자격을 갖출 수 있게 되었고, 또 모든 산업부문에서 설립이 가능해졌다. 또한 이해당사자의 요구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 실현을 우선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협동조합을 포함했다는 점에서 기본법 제정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일반 주식회사는 ‘1주 1표’의 의결권을 가지지만, 협동조합은 출자금이 얼마든 모든 조합원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는 조직이면서 배당금도 일정하게 제한을 두어 이윤창출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물론 협동조합기본법제정연대회의 때부터 계속 요구되었던 공제사업을 배제한 점과 노동자(직원)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 그리고 정치활동금지 등은 이후 개선해야겠지만 협동조합은 그야말로 자본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협동’과 ‘자조’의 조직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통로가 될 수 있는 대안적인 경제체제’로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 자활단체, 돌봄 노동, 대안기업, 청소, 재활용, 공동육아, 주택, 구매, 생산 등 다양한 형태의 소액, 소규모 창업이 활성화되어, 취약계층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어 서민․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양극화를 없애는데 이바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던 지난 12월 1일부터 약 한 달간 접수된 협동조합 신고ㆍ인가신청은 총 128건이었고, 하루 7건 정도 접수되었다고 한다. 이 중 일반협동조합은 115건이고 사회적협동조합이 8건인데, 이런 추세라면 5년 내에 8천 개~1만 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협동조합이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면 시민사회 영역이야 당연히 반기고 운동적 흐름을 만들어 가야 하겠지만, 정부부처와 지자체들도 앞장서서 협동조합 교육, 컨설팅과 설립 지원 등을 이야기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은 왠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된 이후 작년 11월까지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은 723개에 달했고, 지자체별, 정부부처별 예비사회적기업도 무척 많아졌다. 이 역시 5년 내 2천 개의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 아래 진행된 결과이다. 이렇게 얼마 전까지 사회적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야기되더니, 이제는 또 협동조합이다. 사회적기업은 인건비지원 때문에 시작한 곳이 많아 지원 종료 후 제대로 자립한 기업이 없으니 그 실패를 인정하고,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협동조합인 걸까? 아니면 사회적기업을 고민하다 너무 어려워 포기한 사람들이 협동조합은 좀 쉽게 할 수 있을 테니 적극 고민해 보라고 할 만한 일인 걸까? 정말 시장과 국가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나온 궁극적인 대안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사회적기업과는 달리 설립 지원 외에 다른 지원은 없어서 자주성을 상실하거나 지원이 끝난 이후를 염려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또 공동체 정신을 복원하고 관계를 재설정하여, 더욱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작은 시도들이 모이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 굳이 시비를 걸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주체들이 고민할 수 있도록 담론을 형성하고 토양을 형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실적 위주의 관 주도 행보는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고, 협동조합의 정신과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결사체인 협동조합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 필요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의지를 모아 만들어가야 한다. 또한, 협동조합 역시 단체와는 다른 사업체이니 이를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의 진지한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해결책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고, 또 조직 형식일 뿐이다.

 

4. 다양한 모색,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예술 진영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이전에는 사단법인이나 비영리민간단체의 경우에 단체로서 인정을 받았는데, 이들은 진입장벽이 높아 설립이 어려웠던 반면 협동조합은 5명만 모이면 법인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 후에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거나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면 사회적기업에 준하는 자격을 얻게 된다. 또한, 협동조합은 모두 중소기업으로 인정되어 굳이 사회적기업 지원 정책이 아니더라도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 준하는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대부분 경쟁입찰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동조합으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존재할까? 어떻게 활동을 지속할까?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 노력해야 할 때이고,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우니 모여서 문제를 해결해 가자는 것이다. 협동조합에 관해 고민하고, 이를 통해 대안을 찾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 협동조합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최근 홍대앞자립음악생산조합과 장르별 예술인들의 협동조합 준비 움직임들이 늘고 있다. 1년에 6만이 넘는 예술가 지망생을 쏟아내는 한국사회에서 이들 모두가 어떤 장르, 영역의 예술가, 문화활동가로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전업 문화예술인으로 자기 규정을 한다면 1등만 인정받는 이 사회에서 목마른 자들이 우물을 파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인들이 제 권리를 찾고자 모인 문화예술소셜유니온(준)의 경우를 보면, 이제 문화예술인의 활동이 투쟁 지원이나 연대활동을 넘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복지제도나 문화기본권 등의 정책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창조적으로 꾸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우리는 그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것 외에도 제도를 활용하여 스스로 활동할 수도 있다. 지역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서로 지지해주는 것도, 일상을 나누며 소소한 문화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를 위해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우리의 힘도 키워야 하고, 연대도 탄탄히 해야 할 것이다.

개별 창작 작업에 익숙한 예술인에게는 사회적기업만큼이나 협동조합은 사례도 별로 없고 낯선 영역이니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를 따라 배워가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문화적,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것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고, 또 늘 필요한 일이다. 협동의 방식으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가고, 우리의 활동을 사회적인 노동 즉, 공공적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일이다. 전과 달리 문화예술인, 예술조직들도 존재방식과 활동방식, 그리고 이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노력들이 모여질 수 있길 기대한다. 그 과정에 문화예술인들이 지속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과 상상력의 결과로 협동조합이 선택되면 좋겠다. 또 한국사회에서 어떤 활동으로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지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많은 다양한 사례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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