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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속의 역사, 역사속의 노래 5

5.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인생> (132호)

 

96년 2월 3일,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시경 정보과에 연행되었다. 위반 사항은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즉, [희망의 노래 1, 2, 3, 4]에 북한의 사상에 동조, 혹은 찬양하는 표현의 노래들을 수록하여 판매한 혐의였다. 공소장에 언급된 노래들은 주로 <갈꺼야>, <반미 출정가>, <출정전야>,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6월의 노래> 등 '자주', '민주', '통일' 이라는 단어가 들어있거나 과거 군사독재를 '적'이라 표현한 노래들이었다.

바야흐로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대에 심의를 통과한 노래나, 이미 대학가와 진보진영에서 수 십만이 알고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이적 표현물이 되었던 것이다. 나를 구속한 검사는 내가 꽃다지 대표인 것도 잘 알고, 꽃다지가 <바위처럼>을 열린 음악회에서 부르는 것을 보면서 그런 노래를 방영하는 방송이 한심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단다. 그 검사는 80년대 대학물을 먹었다는 소위 386세대였음에도 투철한 반공의식과 철저한 편집증에 빠져있었다.

 

구속이 확정되던 날(그날은 두 번째 결혼 기념일이었다.) 면회를 온 남편은 꽃다지 식구들과 민가협 어머니들, 그리고 주변의 문화 활동가들이 매일 탑골공원 앞에서 규탄집회와 거리공연을 하기로 했다고 전해 주었다. 그리고 구치소로 날아온 수많은 편지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탑골 공원의 거리공연에 참가하면서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힘내라는, 작지만 힘이 되고 싶다는...

 

꽃다지의 거리공연은 내가 구치소에 있던 50일간 계속되었고, 그들은 돌아가면서 매일 면회를 왔다. 보석출감 후 4월 초에 열린 꽃다지 콘서트에 나는 게스트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의 사건과 구치소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지켜봐 주고, 함께 한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50일간 내 입가에서 맴돌던 노래, 그래서 눈시울도 많이 적셨지만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던 노래를.

내가 꽃다지 식구들에게 늘 해왔던 '우리, 우리가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살자'라는 말을 다시금 되뇌인다. 앞으로도 내가 지칠 때면 늘 힘이 되어 주리라 믿는 노래, 행복한 인생을.

 

- 삶은 나에게도 주어지고, 때론 햇살이 드리우고, 때론 견디기 힘든 시련을 만나 방황도 했었지만. 그런 나의 삶에 지금까지 가장 소중한 선택은 진정 사랑할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을 산다는 것. 잠시 쉬어갈 순 있지만 주저 앉지말고, 넘어질 수는 있다해도 절망하지 말고.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이순간 모든 것을 다 바쳐 오늘을 살아야지 - 조민하 <행복한 인생>, [꽃다지 발췌곡집]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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