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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1> 미음이 무겁다

 

열차가 바라나시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경임에도 주위는 어느새 환하게 밝아 있다. 이곳 날씨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기차 안은 이미 한낮의 더위를 방불케 한다. 역시나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철로와 사람들로 발디딜 틈도 없는 역사를 벗어나니 이번에는 릭샤들이 떼로 몰려든다. 경험 있는 일행들이 흥정을 하고 오토릭샤 두 대에 나눠 타고 여행자들이 묵는다는 고돌리아로 향한다. 릭샤를 내리자 뭐 당연한 수순처럼 가격이 원래 흥정했던 것에서 두 배로 오른다. 재밌는 건 일행의 반응인데 거의 못 들은 척 혹은 농담도 잘하네 하는 반응을 보이며 그냥 약속했던 돈만 건넨다. 그럼 또 그것만 받고 두 말은 없다. 나중에도 꽤 여러 번 이런 일을 겪게 되는데 일단 좀 더 달라고 해보는 게 거의 습관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좀만 더 줄래 뭐 아니면 말고..하는 식인 것이다.


친구가 이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이전엔 인도인 가족이 운영하던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둘째 아들이 여행 왔던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해 거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숙소를 찾아 들어가는 골목길은 여기저기에 개와 소가 널부러져 있고 온통 오물과 쓰레기투성이다. 그 쓰레기 위로 날아다니는 파리 떼며 진동하는 지린내로 숨을 쉬기도 쉽지 않다. 익히 들었던 이야기이긴 하나 직접 보니 한숨이 나온다. 밖에서 본 숙소들 상태도 말이 아니어서 여기에 어떻게 묵나 싶었는데 그나마 이 게스트하우스는 얼마 전부터 공사를 시작해 실내가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막막해진다. 가장 인도답다는 바라나시에 오긴 왔는데 대체 덥고 더럽다는 첫 인상 외에는 아무 감흥이 없다. 아니 도무지 이 도시가 좋아질 것 같지가 않다. 하긴 뭐 꼭 좋아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도시라는데 그 이유나 알았으면 좋겠다 싶다. 그저 편견없이 며칠을 지내보기로 한다.


골목길의 소, 이상하게 사진으로 보면 그래도 조금은 깨끗해 보인다


골목길의 개, 낮에는 널부러져 있던 개들이 밤이 되면 늑대^^로 변한다.


도착한 첫날 저녁 사람들을 따라 강가로 나가 본다. 힌두교도들의 성지, 갠지스강. 살아 이곳에 몸을 씻으면 모든 죄업이 사라지고 죽어 이곳에 뿌려지면 윤회의 업이 끊긴다고 하여 모든 힌두교도들이라면 한 번쯤은 오고 싶어 한다는 곳이다. 강을 따라 돌계단-가트라고 부른다-이 이어져 있고 그 주변으로는 사원이며 게스트하우스들이 늘어서 있는데 각 구획마다 가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대부분은 목욕 가트이지만 그 중 두 군데는 화장 가트이다. 화장터라야 그저 노천에 장작을 쌓아 놓고 시신을 태우는 것이 고작이다. 그 장작이 다 탈 때까지 때우다 미처 태우지 못한 시신은 그저 강가에 흘러 보낸다고 한다. 해질녁에 배를 타고 먼저 강 건너로 가 본다. 강 건너에는 부정한 땅이라고 하여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데 그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사공이 손짓하는 곳을 보니 강기슭에 시신 한 구가 보인다.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사두, 어린아이, 임산부, 코브라에 불린 사람 등등-이나 돈이 없어 화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냥 강에 버려지는데 그중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물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멀리서 보긴 했지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옥상에서 본 바라나시 전경


보트에서 바라본 가트


배를 타고 강 하류 쪽 화장가트 가려 하는 걸 친구가 말린다. 멀리서 나마 시신을 보고 난 내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일행 중엔 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져 친구에게 괜한 짜증을 부린다. 배안의 분위기는 싸해지고 친구도 맘이 상했는지 말이 없다. 강 건너에서는 하루 한번씩 강의 신에게 드린다는 제사 의식인 뿌자가 한창이고 그 옆으로는 밤낮없이 화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끊임없이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그저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자신의 소원을 담아 디아라고 하는 꽃불을 띄워 보낸다. 결국 다시 강을 건너와 뿌자 의식을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그저 다른 도시들처럼 느끼는 대로 보면 될 것을 인도에 아니 바라나시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려 해서인지 오히려 맘만 무겁고 보이는 것들이 전부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괜시리 우울한 마음이 들어 이곳에서 보낼 일이 아득해진다. 어차피 친구가 사진을 찍었던 곳이고 다시 찍고 싶어 하는 곳이라 한동안은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쩌랴.. 그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강 건너편은 마치 사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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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푸르> 기차표 사다 죽을 뻔 했다

룸비니를 떠나 소나울리 국경에 도착하자 먼저 정신이라곤 하나도 없는 국경 모습에 기가 질린다. 네팔은 거의 모든 물자를 인도에서 들여온다는데 그 물자를 수송하는 화물차가 도로를 가득 메운 사이로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육로 국경이라면 제법 넘어본 편인데도 내가 본 가장 혼잡한 국경인 태국 캄보디아 국경 저리 가라다. 일단 네팔 쪽 출입국신고소에서 출국 신고를 한 뒤 남은 네팔 루피를 인도 루피로 환전한다. 대충 맞춰서 썼기 때문에 환전 금액은 그리 크지 않다. 대신 인도에서 넘어 온 한국 사람에게 이미 인도 루피를 얼마간 환전해 두었기 때문에 ATM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대충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혼잡은 인도로 들어서자 더 심해진다. 거리도 훨씬 더 지저분한데다 이미그레이션 마저 따로 사무실이 있는 게 아니라 처마 밑에 책상 하나 두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인도 비자는 카트만두에서 이미 받아두었으니 출입국 절차라야 입국신고서 한 장 쓰고 비자에 도장하나 찍으니 끝이긴 하지만 이런 이미그레이션은 또 처음이다. 


다시 혼잡한 거리를 걸어 바라나시 가는 버스를 알아본다. 이곳 소나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버스로 대략 10시간 걸리는 거리이고 일찍 출발한 덕에 아직 오전이니 버스를 탈 수만 있으면 저녁 늦게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하지만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바라나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났으며 다음 버스는 오후에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후 버스를 타면 한밤중에 도착하게 되는데 아무리 일행이 여럿이라도 그 악명 높은 바라나시에 한밤중에 도착하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결국 가장 가까운 도시인 고락푸르로 이동해 버스를 알아보거나 아니면 한밤중에 출발해 바라나시에 새벽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거나 하기로 하고 일단 고락푸르행 버스를 탄다.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리더니 다행히 고락푸르 기차역 바로 앞에 선다. 룸비니에서 같이 떠난 일행은 모두 일곱 명, 그중 다섯 명은 바라나시 갈 예정이고 둘은 델리로 떠날 사람들이다. 고락푸르에 도착해 버스를 알아봐도 역시 저녁에 떠나는 버스뿐이다. 일단 기차표를 끊어보기로 한다.


고락푸르역은 상당히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다 누가 인도 아니랄까봐 그 혼잡한 대합실에 개가 누워 자고 있지를 않나.. 떡 하니 소가 버티고 있지를 않나.. 게다가 개와 소 사이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지를 않나.. 한마디로 무슨 난민수용소 같은 분위기다. 그 틈을 비집고 창구마다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대합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다행히 그 중 한 창구가 외국인과 여성 전용 창구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창구는 무늬만 외국인과 여성 전용 창구인지 현지 남성들까지 버젓이 줄을 서 있는데다 남녀가 유별이어서 그런지 창구는 하난데 줄은 남자줄 여자줄 해서 모두 두 줄이다. 일단 남자줄이 좀 짧아 보여 남자줄 뒤에 일행 하나가 줄은 선다. 그러나 줄은 창구 가까이 갈수록 엉망이 되는데다 중간에 새치기하는 사람, 아는 사람에게 표를 부탁하는 사람 등등 때문에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표 파는 속도는 왜 이리 느린지 한사람 표 파는데도 부지하세월이다. 


음식점 옥상에서 본 고락푸르역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죽치고 있었던 음식점 옥상, 무지 더웠다.


두 시간쯤 기다려도 도무지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일행들을 동원해 새치기 정리에 나선다. 일행 하나는 줄을 서고 나머지가 창구 옆을 지키고 있다가 슬며시 끼어들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슬쩍 팔로 막거나 그래도 안 되면 내놓고 뒤에 가서 줄을 서라고 한마디 해준다. 사람들이 아직은 순진한 건지 대부분은 멋쩍은 듯 뒤에 가서 줄을 선다. 그 와중에 매표소 직원과 표사는 남자 하나가 말다툼을 하는지 언성이 높아지더니 결국 경비원인 듯 한 사람이 와서 창구 앞에 서 있는 현지 남성들을 모두 쫓아낸다. 멀쩡하게 표 팔때는 언제고 수틀리니까 쫓아내는 것도 황당한데 모두 항의 한마디 못하고 비실비실 쫓겨난다.


여튼 덕분에 창구 앞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는데 창구 앞은 대략 아수라장이다. 그동안 현지 남성들 때문에 표 살 엄두를 못 냈던 여성들 줄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너도나도 창구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는데 아귀다툼이 따로 없다. 결국 남자 일행으로는 힘들 것 같아 그 줄에 내가 가세를 한다. 뒤에서 미는 여자들의 힘이 장난이 아닌데다 큰소리 반, 사정 반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자기가 먼저 표를 사야겠다는 것이다. 나도 두시간 이상 기다렸다니까 자기들은 세시간 넘게 기다렸단다. 사실 나도 누구 사정을 봐 줄만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 당신들 사정 봐줄 때가 아니거든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냥 무시한다. 몸싸움이라면 뭐 내가 인도 여자들 보다는 한수 위다. 다행히 주먹 하나 밀어 넣는데 성공은 했으나 그 창구에는 이미 내 것까지 주먹이 세 개이다. 다행히 내 신청서를 먼저 받아든다.


인도에서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먼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행선지, 이름, 나이 등을 명기해야 한다. 문제는 열차편을 써 넣어야 하는데 이곳 타임테이블에는 바라나시행 열차편명이 나와 있지 않아 빈칸으로 두었더니 대뜸 열차 편명을 적어 오라며 신청서를 집어 던진다. 뒤에서는 빨리 나오라고 아우성인데 여기서 나갔다간 다시 두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판이니 열이 확 뻗치기는 하지만 다시 웃으면서 사정을 해본다. 열차편명을 모르겠으니 좀 알려주면 안 되겠냐고.. 한사람을 처리하고 나선 마지못해 열차편명을 불러준다. 여전히 창구에 왼손은 집어넣은 채로 오른손으로 열차편명을 쓴다. 다시 이리저리 신청서를 살펴보던 매표원이 이번에는 주소를 쓰라며 다시 신청서를 집어 던진다. 으.. 열받어.. 하지만 어쩌랴 아쉬운 건 난데.. 다시 나는 여행자고 인도 주소가 없다고 했더니 한국 주소를 쓰란다. 참 나.. 한국주소는 알아 뭣하게.. 하면서도 다시 한손은 왼쪽 창구에 박은 채로 한국 주소를 대충 적어 준다. 그동안 뒤쪽에선 다시 몰려온 현지 남성들이 빨리 비키라고 툭툭치고 뒤에서 밀고 장난이 아니다. 다행히 일행인 남자들이 뒤에서 아직 안 끝났다, 밀지 말라며 계속 싸운다. 결국 바라나시행 2등 침대칸 표를 받아쥐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옴 몸은 땀으로 젖어 있고 거의 모든 진이 다 빠진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에고 기차표 두 번만 샀다간 탈진할 것 같다^^


늦은 점심을 먹고 기다리다 밤10시 45분발 바라나시행 열차를 타러 간다. 기차역은 여전히 사람들로 발디딜 틈 조차 없다. 결국 물어물어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 넘버를 찾아간다. -인도에서는 열차가 들어오기 얼마 전에야 그 열차가 몇 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뭐 가끔 그래놓고도 다른 곳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단다^^- 간신히 기차를 찾고보니 이번엔 칸찾기를 해야 한다. 인도 기차는 등급이 다른 경우 기차칸과 기차칸 사이를 막아 놓기 때문에 아무 칸에나 올라타면 안된다는 거다. 어떤 경우는 칠판에 백묵으로 대충 써놓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이번 기차는 플라스틱으로 된 표지를 걸어놓긴 했다. 대신 기차가 아주 길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 짐들고 죽어라 뛰지 않으려면 조금은 여유 있게 역에 도착하는 편이 좋다. 간신히 기차칸을 찾아 올라탄다. 바라나시에서 출발하는 기차라 다행히 자리는 비어있다. 3층으로 된 침대가 마주 보고 있는 모양은 중국 기차와 비슷한데 통로 쪽에 두개의 침대가 더 있다. 뭐 좀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셈이다. 인도 기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이미 들을 만큼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이 여러 명이니 조금은 맘을 놓아도 될 것 같다. 중간 칸에 배낭을 묶어 놓고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인도에서의 첫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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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공짜밥에 늘어지다

 

룸비니는 네팔과 인도 국경이 근접한 곳에 있는 불교 성지로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다. 어..부처님은 인도에서 태어나신 거 아닌가 싶은데 여튼 룸비니는 부처님 태어날 당시에야 인도땅이었는지 모르나 현재는 엄연히 네팔 땅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베틀레헴이나 메카같은 순례자들로 가득한 땅이 될 법도 한데 불교도들은 덜 극성스러운지 아님 경전에 평생에 한 번은 거길 꼭 가야 한다든지 뭐 그런 말이 없어서인지 그저 한적한 시골 동네같은 분위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다만 각국에서 그 나라 특색에 맞는 절들을 세워 놓고 부처님 태어나신 성지임을 기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 대성석가사라는 한국절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룸비니에 들르기로 한 이유는 오직 하나 한국절에서는 공짜로 재워주고 삼시 세때 먹여 준다는 말에 혹해서 이다. 게다가 삼시 세때가 전부 한국 음식이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사실 완전히 공짜라기보다는 나갈 때 모두들 적당한 기부금을 내기는 하지만 안낸다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니 여행자들에게는 쉼터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룸비니에 가기 위해 네팔과 인도국경이 있는 소나울리행 버스를 탄다. 로컬버스와 여행자버스 두종류가 있다는데 당근 여행자버스가 좀더 비싸다. 결국 마찬가지일 거란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여행자 버스를 탄다.-미리 고백한 바와 같이 이젠 가능하면 좀더 편하게 가고 싶은 맘이 더 크다^^- 그러나 로컬버스가 어떤지야 알 수 없지만 여행자 버스도 현지인으로 가득하고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정차해 사람들을 태우고 내린다. 게다가 남부로 내려갈수록 날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급기야 소나울리 조금 못 미친 사거리에서 내려 룸비니로 가는 버스를 갈아탈 즈음이 되어서는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온도가 된다. 이 온도가 인도에서는 평상시 온도려니 생각하니 그냥 인도를 건너뛰고 싶어진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들어선 한국절은 여전히 공사 중임에도 불구하고-삼년전인가 와 본적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때도 공사 중이었단다- 편안한 잠자리를 내어준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게 되어 있는 제법 큰 방인데 천장에 선풍기는 물론이고 모기장까지 달려 있다. 게다가 방마다 욕실이며 화장실까지 붙어 있다.


여전히 공사중인 대성석가사


식당, 원하는 만큼 먹고 설거지는 각자 해야 한다.


포카라에서 만났다가 먼저 떠난 사람들이 몇 명 보인다. 그저 하는 일 없이 쉬다가 밥 먹으라는 종소리가 울리면 밥 먹으로 가는 게 낙이라며 언제 시간이 가 저녁을 먹나 하는 얼굴이다. 공양 시간은 아침 6시, 오전 11시 30분 그리고 저녁 6시라는데 하긴 주위는 그저 다른 나라의 절들을 제외하곤 온통 숲들뿐이니 딱히 할일도 없겠다 싶긴 하다. 씻고 방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 종이 울린다. 식당에 가보니 스님과 보살님 세분, 한국인 칠팔 명 그리고 외국인 서너 명이 오늘의 식사 인원의 전부이다. 서양애들의 경우는 자기 나라의 절이 없으니, 일본애들은 자기 나라 절의 규율이 엄격해서 종종 한국절로 온다는 소문이다. 저녁 메뉴는 국수와 된장국이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처럼 감칠맛은 없으나 그저 어느 집 밥상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맛이 입맛을 끈다. 국수와 밥을 배터지게 먹고도 모자라 아무나 타먹어도 된다고 쓰여 있는-심지어 가지고 가도 된다고 되어 있어 한봉지 챙겨오기도 했다^^- 미숫가루까지 한사발 마시고 나서야 저녁 식사는 끝이 난다. 결국 절밥에 마음이 동해 다음날 떠나려던 일정을 연기하고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망루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다음날도 비슷한 하루가 계속된다. 종이 울리면 밥을 먹으러 가고 끼니시간 사이엔 식당에 비치되어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 중에 그나마 읽을 만한 걸 골라 책을 읽거나 숙소 옥상에 있는 망루에 올라가 주변 경관을 바라보거나 그도 저도 지치면 낮잠을 자거나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주변에 부처가 태어난 곳이며 부처가 태어나기 직전 그 어머니인 마야 데비가 목욕했다는 연못 등이 있다고는 하나 무더운 날씨 탓에 어느 한 곳도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그저 절에서는 금연이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한 번씩 절 밖으로 나서는 때를 제외하곤 그저 하루종일 뒹굴거린 셈이다. 결국 마지막날 아침까지 꼬박 챙겨먹고-사실 아침 6시 공양이라면 차라리 잠을 잘 것 같은데 내가 아는 한 아침을 굶은 한국인은 하나도 없었다^^- 국경으로 떠난다. 가능하다면 오늘 중으로 아니 늦은 밤중이라도 바라나시에 도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조금 서둘러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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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아무 것도 안했다

 

트레킹 이후 포카라에선 그 유명한 페와 호수에서 단 한차례 배를 탄 것이 우리가 취한 액션의 전부이다. 그저 밥때가 되면 부지런히 걸어 한국인 식당에 가서 오늘은 뭘 먹나 행복한 고민 끝에 된장찌개며 비빔밥, 제육볶음 등을 시켜먹었으며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은 하루 한차례씩 어김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숙소 베란다에서 맥주를 마셨다.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포카라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문득 깨달았다. 블로그 업데이트가 걱정이 되어 혹시 사진 찍어둔 거 있냐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기 홈피에 삼년 전에 찍어 둔 사진이 있으니 퍼다 쓰란다. 이 친구 어째 갈수록 뻔뻔해지는 경향이 있다^^ 여튼 포카라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도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가게 될 룸비니에서도 바라나시에서도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계획인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뭐 할 수 없지..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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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2>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트레킹 4일(따또빠니-가사)


이날은 대충 7시간 정도 걸으면 되는 여정이긴 하지만 중간에 상당히 가파른 길을 한시간 이상 올라야 하는 난코스가 도사리고 있다. 아니게 아니라 첫날과는 달리 제법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첫날은 시간이 좀 많이 걸려서 그렇지 경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날은 긴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계속된다. 그냥 이삼일 기다리더라도 그냥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뭐 후회해본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다 안가겠다는 일행을 꼬셔서 올라온 죄로 싫은 내색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걷는다. 중간 마을인 룩세에서 점심을 먹는다. 산을 조금씩 오를수록 음식값이 조금씩 비싸진다. 볶음밥이며 국수 따위의 가장 간단한 음식도 이천원 돈이고 맥주는 한병에 거의 삼천원 돈이다. 물값도 만만치 않아서 한병에 거의 천원정도 하는데 그것도 하루에 두세병 정도 마시면 꽤 부담스런 금액이 된다. 그나마 가사부터는 안나푸르나 보존계획이라는 곳에서 정수한 물을 세이프티 워터라는 이름으로 약 500원 정도에 팔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여튼 비싸도 먹을 건 먹어야 하는 법이니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점심 이후로 슬슬 오르막의 난이도가 높아지더니 결국 마의 오르막이 나타난다. 어느 마을부터인가 끝없이 계단이 이어지더니 계곡 옆으로 난 길이 어느덧 사라지고 높디높은 언덕이 버티고 있다. 별 수 없이 그저 꾸준히 걷는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숨소리가 핵핵거리다 못해 쌕쌕거리는 지경이 되어서야 오르막은 끝이 난다. 그래도 한국의 산처럼 끊임없이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라서 생각보다는 조금 수월한 것 같다. 다시 평지를 두어 시간 걸으니 이날 숙소로 점찍어 둔 가사가 나타난다. 전날보다 조금 이른 5시 경에 숙소에 도착한다. 그나마 좀솜-묵디나뜨 구간은 전기도 들어오고 숙소도 제법 번듯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트레킹하기에는 환경이 괜찮은 편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가사 가는 길, 저 멀리 가야할 길이 보인다.


차가 다니지 않는 갈은 사람이 음식물을 지고 나른다.


  

트레킹 5일(가사-투쿠체)


오늘도 변함없는 9시간의 여정이다-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천천히 가도 6시간에 간다는데 우리에겐 가능한 일이 아니지 싶다- 중간 마을인 레떼까지는 변함없는 오르막길인데다 어느 여름에 무너져 내린 길인지 길은 온통 공사 중이다. 뭐 공사라야 포크레인 이런 게 동원되는 게 아니라 쇠꼬챙이 하나., 새끼줄 단 삽 하나가 고작이라 어느 천년에 공사를 마칠지 알 수 없으나 여튼 남녀를 막론하고 십수명씩 모여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가사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멀리 설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후도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해 어제까지 입던 반팔 대신 긴팔을 입고 걸어도 그다지 덥지 않다. 고도도 2500 정도가 된다. 아직 숨이 찰 정도로 높은 건 아니지만 슬슬 풍광이 달라지니 트레킹에도 새로운 재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레떼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 평지만 남았다 싶은 게 한숨이 돌려진다. 중간에 들린 마을에서 결혼식이라도 올리는지 춤과 음악이 한창이다. 한참을 구경하다 공짜로 짜이도 한잔 얻어 마시고 나서 길을 재촉한다. 계곡은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량이 적어져 마을을 향해 나 있는 굽이길보다 강바닥으로 가는 게 시간이 단축되는데 결국 조금 빨리 가려다 한시간 이상을 헤매는 삽질을 한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다리는 저 언덕위에 있고 우리는 강바닥을 걷고 있다가 그냥 강을 넘어보기로 한다. 그리 깊지 않은 강을 신발까지 벗고 건너가 보니 건너편 가에 다시 강이 흐르는 게 보인다. 이번엔 물살이 장난이 아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방법이 없다. 결국 다시 신발을 벗고 물길을 건너 제자리로 되돌아와 언덕 위로 올라가 다리를 건넌다. 이 삽질을 하느라 한 시간 헤매느라 다리를 건너고 나니 벌써 4시가 훌쩍 지나 있다. 다리를 건너니 또 풍광이 확 달라진다. 아래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던 계곡은 이제 거의 시내물이 되어 흐르고 메말라 버린 강바닥 옆으로는 나무 하나 없는 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멀리 목적지인 투쿠체 마을이 보이긴 하는데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바람도 만만치 않다. 결국 황량한 강바닥을 걸어 걸어 6시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인 투쿠체에 도착한다.  


중간 마을인 레떼, 마을 너머로 설산이 보인다.


저 다리가 문제의 다리다. 


트레킹 6일(투쿠체-좀솜)


투쿠체에서 좀솜까지 대략 4시간..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묵디나트까지 가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오후에는 내려가는 비행기편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일찍 도착해 그냥 좀솜에서 쉬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선다. 좀솜까지는 거의 평지로 산사이로 난 길을 따라 그냥 걷기만 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현지인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서 강바닥으로 걷는다. 현지인들이 안 간다면 안가는 게 좋다. 그 경우 거의 100% 건널 수 없는 강이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길은 편안한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다행히 뒤에서 앞으로 불기에 망정이지 반대로 불었다면 한 발자국 걷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간단할 거라 생각했던 길에서 사진작가 친구의 발이 말썽을 부린다. 이삼일 전부터 물집이 잡혀 조금씩 절기는 했지만 오늘은 특히 심한지 거의 걸음 걷는 것이 고역인 듯 보인다. 나야 이미 두어 번 물집이 잡히고 터져서 이젠 어지간한 길에서는 견딜 만 한데 이 친구 원래 많이 걸으면 발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좀솜에서 비행장 근처에서 숙소를 잡자는 걸 비행장 근처가 아닌 좀솜 마을이 아주 예뻤다는 소풍의 여행기가 생각나 발 아픈 친구를 끌고 좀솜 마을에서 숙소를 잡자며 끌고 올라간다. 하지만 좀솜 마을의 숙소 상태는 보던 중 최악이어서 다시 비행장 근처로 돌아온다. 거의 절다시피 숙소에 도착하는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맘뿐이다. 그나마 좀솜은 비행장이 있는 동네의 숙소 상태가 훨씬 좋다. 점심을 먹고 사흘 뒤에 내려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난 뒤 푹 쉬어준다. 이번에는 양심상 도저히 같이 올라가자고 꼬실 수가 없어 혼자 묵디나뜨까지 다녀올테니 여기서 기다리던지 아니면 결국 포카라로 먼저 내려가라고 말한다. 근데 이 친구 묵디나뜨까지 같이 가겠단다. 왜 맘이 바뀌었냐고 물어보니 이때까지 경치다운 경치를 하나도 못봐서 억울해서라도 가볼 참이란다. 여튼 묵디나뜨까지 같이 동행하기로는 헀는데 저 발 상태로 제대로 걸을 수나 있는 지 걱정이다.


그래도 마을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이제 풍광이 완연히 달라진다.



트레킹 7일(좀솜-묵디나트)


상류로 올라올수록 높아진 고도 탓인지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황량한 풍경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여전히 계곡을 끼고 나 있지만 건기라 그런지 이제 계곡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지인들을 따라 강바닥을 그냥 걸어간다. 눈앞에는 나무 하나 없는 거대하나 산들만 첩첩히 버티고 있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거리를 가는데도 이삼십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강바닥을 따라 한시간 반을 걷다가 다시 산길을 타고 한시간 쯤을 걸으니 묵디나트 가는 오르막의 시작점인 에클로버티가 나타난다. 묵디나트로 가는 길은 에클로버티에서 바로 가는 길과 그림 같은 마을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커크베니로 돌아가는 길 두가지가 있는데 이 돌아가는 길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소문에 커크베니는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바로 묵디나뜨 가는 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분명히 윗길로 올라왔음에도 가다보니 자꾸 커크베니가 가까워진다. 지나가는 현지인도 하나 없어 지도를 살펴보고, 시계에 있는 나침판도 살펴보던 친구가 한숨을 쉰다. 더 윗길로 올라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우리가 가던 길 위로 길이 하나 더 나 있으면서 그 길을 따라 전신주가 연결되어 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윗길을 타기엔 너무 많이 와 버린 우리는 아랫길에서 윗길로 난 벼랑을 그냥 오르기로 한다. 어차피 길도 없으니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경사로를 택해 한발씩 올라간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약간의 오르막에도 숨이 거칠어지는데 경사가 거의 70도에 가까우니 100m 정도의 높이를 오르는데도 턱이 숨에까지 찬다. 결국 윗길까지 올라가선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그러나 묵디나뜨까지의 오르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시 계속된 오르막을 두시간 남짓 걸으니 멀리 묵디나뜨 가는 마지막 마을인 자르코트와 묵디나뜨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이긴 눈앞에 보이는데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아직 두시간은 더 걸어가야 한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제부터의 경사지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정도일 것이다. 결국 묵디니뜨에 도착해 숙소를 잡으니 그제서야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설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산 아래에서 구름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이 장관인 풍경을 연출한다. 그래 올라오길 잘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해가 지는 마을 한 바퀴 돌고 별이 뜰 때까지 숙소 난간에 앉아 멀리 설산을 바라본다. 설산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제 빛을 발하고 있다.


묵디나뜨 가는 길


묵다나뜨의 아침


트레킹 8일(묵디나트-좀솜)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겨두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게다가 좀솜가는 길은 어제 올라온 길이니 길도 알겠다, 대략 내리막이겠다 걱정할 일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묵디나뜨 사원을 둘러보고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그리 먼길은 아니지만 빨리 내려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이 5월이라 그런지 황량한 산들에 비해 근처 마을은 사과나무를 비롯해 각종 밭작물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바쁠 것도 없으니 등산로를 벗어나 근처 마을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가 본다. 눈 쌓인 설산을 배경으로 자라난 푸른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같다. 사진작가 친구도 연방 셔터를 눌러대며 떠날 줄을 모른다. 한참을 마을에서 놀다가 다시 산을 내려온다. 커크베니에서 점심을 먹는데 창밖으로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어제와 방향이 같다면 이는 분명 맞바람일터 다시 두시간 가까이 강바닥을 걸어야 하는 우리로써는 대략 낭패인 상황이다. 옆에 있는 현지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커크베니-좀솜 구간은 일년내내 이렇게 발람이 부는데다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는 거의 멈추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바람이 잦아지길 기다릴 수도 없어 그냥 길을 나선다. 식당 입구를 나서자마자 만난 바람은 거의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의 강풍이다. 게다가 바람이 일으키는 흙먼지 때문에 숨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걷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시간 쯤을 걸으니 거의 죽을 것 같다. 바람이 너무 세니 어디 앉아서 쉬기도 마땅찮아 그냥 걷기만 했더니 평지인데도 어깨며 다리가 안 아픈 데가 없다. 결국 만만한 길이란 건 하나도 없구나 깨달을 즈음에야 간신히 좀솜에 도착한다. 그래도 다행히 묵디나뜨 올라갈 때에는 숙소에 노트북이며 옷가지를 빼놓고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중간 어디쯤에선가 나 못가 하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튼 다시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나니 드디어 트레킹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뭐 내일 비행기가 떠야 완전히 끝나는 것이긴 하지만 설마 두 번씩이나 비행기가 안뜨겠어 하는 마음은 들지만 바람은 저역 늦게까지 그 기세가 잦아들 줄을 모른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을


점심을 먹은 커크베니


트레킹 9일(좀솜-포카라)


좀솜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는 바람이 그나마 덜 부는 이른 아침에 뜨는 것이 보통이다. 3분 거리에 비행장이 있건만 그래도 7시에 뜨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 30분부터 서두른다. 표 파는 아저씨도 6시 10분까지는 나오라고 했는데 막상 공항이라고 가보니 시골 버스대합실만도 못한 크기다. 그래도 할 건 다 하는 데 일단 짐검사 -일일이 가방을 열어 보여야 한다-를 하고 항공권을 좌석표로 바꾸고, 짐도 무게를 재어 따로 부치고-짐 재는 저울이 옛날 목욕탕에서 보던 눈금 저울인데 아저씨에게 허락을 얻고 슬쩍 몸무게도 재어 본다- 마지막으로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몸수색까지 마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난다. 비행기는 좌석이 달랑 두 줄로 되어 있고 한 20명 쯤 탑승 가능한 경비행기다. 그래도 스튜어디스까지 있어 사탕이며 솜뭉치 등을 나눠준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오른쩍으로 안나푸르나의 설산들이 펼쳐진다. 경비행기라 고도를 많이 높이지는 않는지 설산이 아래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략 옆에서 보인다. 아래로는 며칠에 걸쳐서 땀나게 걸은 것이 분명한 길들이 희미한 점선처럼 보인다. 이륙한 지 15분 만에 비행기는 포카라 공항에 도착한다. 고작 15분 걸릴 길을 몇날며칠을 걸어올라 갔나 싶은 게 조금 허무한 생각이 든다. 포카라에는 추척추적 비가 내린다. 더울 줄 알았던 날씨도 비 탓인지 제법 선선하다. 숙소도 잡아야하고, 맡겨 놓은 짐도 찾아야 하고, 렌트했던 장비도 반납해야 하는데 만사를 제치고 한국 식당으로 달려간다. 쇠고기 국밥을 시켜 허겁지겁 먹고 나니 이제야 트레킹이 끝났다는 실감이 든다. 이제 당분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탱자탱자 놀아야겠다^^

 


우리가 탄 비행기다.


묵디나뜨의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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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1> 비행기가 안떠도 간다

 

그린 라인이라는 외국인 전용버스를 타고-차비도 달러로만 받는 나름 고급버스인데 어찌된 일인지 여행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편한 것만 찾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다섯 시간 만에 포카라에 도착하니 날은 한참 더 더워진다. 이제 제법 아열대 기후로 접어든 것 같은데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온다는 포카라가 이 정도니 40도가 종종 넘는다는 인도는 얼마나 더울지 벌써부터 슬며시 걱정이 된다. 먼저 간 일행이 묵고 있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 보니 일행들이 이미 비행기표를 끊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 이제 트레킹용품 몇 가지를 빌리고 시장만 보면 내일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일행은 티벳 랜드크루저팀 네 명과 먼저 떠난 짠돌이 대학생까지 모두 다섯 명이다. 산에 올라가면 물가가 한참 비싸진다는 말을 들은 짠돌이 대학생의 제안으로 감자 5kg와 계란 두 판을 사서 숙소에다 삶아달라고 부탁한 뒤 우비며 스틱 등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빌리니 어느새 한밤중이다.


자세히 쓴다고 해도 도무지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것이 뻔한 트레킹 루트를 설명하는 일은 대략 난감이다. 지도를 올리면 좀더 쉬울 순 있겠으나 내 경우 여행 준비하면서 지도까지 상세히 나와 있는 하우아시아의 사이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이래가지고 트레킹이나 제대로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지도를 올린다고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정 궁금하면 하우아시아에 가서 네팔 트레킹편을 참고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다^^ 여튼 아주 간단히 언급하자면 네팔에서 할 수 있는 트레킹은 대략 3가지 정도의 코스가 있다고 한다. 즉 세 종류의 다른 산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랑탕트레킹, 에베레스트 트레킹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개의 트레킹 코스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고 내가 갈 예정인 안나푸르나 트레킹만 간단히 설명하도록 한다.


첫째,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약 15일이 걸린다는 라운eld 코스-뭐 높은 산을 가운데 두고 산주변을 한바퀴 돈다고 보시면 되겠다-, 둘째, 약 10일이 걸린다는 히프 라운딩코스-산을 반만 도는 건데 이 경우 갔던 길을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 또는 올라가는 길 중 한번은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삼사일 정도 걸린다는 푼힐코스-전망이 아주 훌륭하다는 푼힐에서 일출만 보고 내려오는 코스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시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까지 갔다오는 코스인데 거의 북한산을 방불케 하리 만큼 한국 사람들이 많단다-의 네 가지 정도로 구분되는데 뭐 이 네 코스를 이래저래 섞어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일단 내가 가려고 하는 코스는 하프라운딩 코스인데 일단 비행기를 타고 좀솜이라는  지역까지 올라가서 신들의 성지라는 묵디나뜨로 올라갔다가 포카라까지 가는 버스가 다니는 베니까지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로 일단 내려오는 길이라 길이 힘들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이 이 코스를 결정하는데 큰 작용을 하게 된다. 다른 일행들도 이 코스에 큰 이견이 없어 일단 좀솜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하고 배낭을 꾸린다. 좀 지저분한 데로 그냥 살기로 마음먹고 배낭은 따로 빌리지 않고 중국에서 산 보조가방을 그냥 들고 가기로 한다. 일행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트북까지 챙겨 넣고 나니 침낭이 들어가질 않는다. 다른 일행들은 침낭을 두고 간다는데 추우면 만사가 싫어지는 내 성향을 고려해 배낭위에 다시 침낭을 달아맨다. 대략 오륙킬로쯤 되는 것 같다. 뭐 카메라 세 개들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대략 이런 차림으로 길을 나섰더랬다


트레킹 1일차(포카라-베니)


다음날 일찍 공항으로 나간다. 아침에 비오면 비행기 안 뜰 확률이 90%라는데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오늘은 날이 안 좋아서 비행기가 뜰지 안뜰지 확실치 않단다. 이렇게 화창한 날도 안뜨면 대체 비행기가 언제 뜬다는 거냐 해가며 기다려 보았지만 결국 좀솜 쪽에 바람이 많이 불어 비행기는 캔슬되고 만다. 제일 싼 국영 항공기인 로얄 네팔 표를 샀더니만 이놈의 비행기는 일주일에 세 번만 운행하는 스케줄이라 다음 비행기가 뜨는 토요일까지 무려 사흘이나 하릴없이 기다려야 할 판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잡혀 있는 작가 아저씨가 먼저 결단을 내린다. 버스타고 베니까지 가서 걸어 올라가겠단다. 짠돌이 대학생과 대구 청년이 동의한다. 원래 트레킹에 큰 뜻이 없었다가 내 꼬임에 넘어가 길을 나선 사진작가 친구는 전 안갈래요, 다녀오세요, 저는 포카라에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하며 천하태평이고 정작 나는 걸어서 올라가는 건 영 자신이 없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가 이왕 짐도 싸서 나왔지, 장비도 빌렸지, 심지어 2000루피나 주고 퍼밋도 받아놨는데 예서 말수는 없다는 생각에 간단히 푼힐이나 다녀오자고 맘을 바꿔먹는다. 포카라에서 쉬겠다는 사진작가 친구를 다시 꼬셔-내내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일단 꼬시면 잘 넘어오긴 한다^^- 푼힐이나 다녀오기로 한다. 단 푼힐가는 길을 조금 에둘러 일행과 같이 베니까지 간 뒤 온천이 잇는 마을인 따또빠니까지 갔다가 일행들은 계속 올라가고 우리는 푼힐을 들러 내려오는 코스이다.


비행기표를 환불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본다. 비행기표를 환불한 여행사에서는 이미 버스는 끊겼으니 택시나 지프를 대절해 베니까지 가라고 꼬셨지만 시간이 이fms 편이라 그냥 터미널로 나가 본다. 다행히 베니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는 푼힐 등산로 입구인 나야풀을 지나 두시간 남짓 비포장도로를 달리고서야 우리를 베니에 내려 준다. 우리가 베니에 sols 시각은 다섯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이다. 그러나 내려오는 비행기도 안뜰지 모르니 걸어서 내려오겠다는 세명이 마음이 바쁜지 일단 다음 마을까지 그냥 걸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우리야 어차피 온천이 있는 따또빠니 까지만 가면 그만이니 굳이 서둘러 움직일 생각이 없다. 결국 일행들과 헤어지고 베니에 숙소를 잡는다. 다섯명이 함께 가기로 한 트레킹은 결국 3대 2로 찢어진다.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또 한편 여러 명이 같이 다니니 의견 조율하기도 쉽지 않아 차라리 잘 됐다 싶은 생각도 든다. 여튼 일행과 헤어지고 첫날을 베니에서 묵는다. 


트레킹 루트의 초입이자 마지막 마을이기도 한 베니는 상당히 큰 마을이다. 베니까지는 멀쩡하게 차가 다님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트레킹 지역에 준하는 요금 체계로 되어 있다. 즉 방값은 비교적 저렴한데 비해 저녁은 그 숙소에서 먹어야 하는 시스템으로 음식값은 물론 상당한 가격이다. 물론 상당한 가격이라는 일반적인 네팔 물가에 비해서인데 대략 방값이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인데 비해 음식은 간단히 먹어도 일인당 2000원은 줘야 하니 대략 하루 비용으로 만원은 잡아야 하며 맥주라도 한잔 먹으려면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하는 셈이다. 베니에서는 숙소에서 간단하게 저녁만 먹고 아침으로는 수도 없이 남았으나 안 먹으면 상할 게 분명한 계란양과 감자군을 꾸역꾸역 우겨 넣고 길을 떠난다.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1, 큰놈이 먼저 자세를 잡으니 작은 놈이 어느새 따라서 자세를 잡는다.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2, 찍은 사진을 보고 좋아라 하더니 그뒤에도 한참을 뭐라고 재잘거리며 쫓아온다.  


트레킹 2일차(베니-따또빠니)


이날 여정은 대략 9시간을 걸어야 하는 일정인데 맘먹고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만에 이 길이 버스-트럭을 개조한 썽태우 비스름한 것이긴 하지만-가 다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당근 트레킹에는 전혀 뜻이 없는 사진작가 친구가 버스를 타고 가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버스 타면 편한 거야 알지만 그래도 트레킹인데.. 조금 망설여진다. 좀 걷다가 나중에 힘들면 타자고 다시 꼬드긴다. 물론 넘어온다^^ 하긴 타자고 합의를 했어도 버스가 만원이라 다음 버스까지 한참은 기다려야 했을 것 같긴 하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보지만 버스가 다니는 길이라는 데서 짐작이 가듯 그만그만한 풍경이 이어진다. 점심도 남아있는 감자군과 계란양으로 때운다. 비닐봉지가 모자라 둘을 동침시킨 탓인지 감자에서도 온통 계란 냄새다. 이제 당분간 삶은 계란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다. 갈섶에 앉아 점삼을 먹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결국 여섯 시간 쯤 걸어 목적지 이전에 있는 마지막 마을에 도착한다. 슬슬 비도 내리기 시작하니 걷는 것이 조금씩 고역이 된다. 이제 버스를 타기로 하고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허걱 이제부터는 버스가 못 다니는 길이란다. 버스 타자고 할때 탔어야 한다는 친구의 지청구를 들으며 다시 빗 속을 걷는다. 마지막 한시간 정도는 거의 폭우기 쏟아진다. 우비를 입으면 사우나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더운데 중국에서 산 보조가방은 방수가 전혀 안되는 배낭이니 별수 없이 계속 우비를 입고 걸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세시간을 더 걸어 어둑어둑해진 뒤에야 목적지인 따또빠니에 도착한다.


따또빠니 가는 길, 아직은 풍경이 그만그만하다.


갈길도 바쁜데 양떼가 길을 막는다


트레킹 3일(따또빠니에서 온천)


올라오기 전부터 아니 티벳에서부터 온천, 온천 노래를 부르던 사진작가 친구 덕분에 꼭두새벽부터 계곡 어귀에 있는 노천 온천을 찾아 간다. 옆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유황 온천에는 이른 시간에도 현지인들이 제법 모여 있다. 아마 날씨가 더운 탓에 아침저녁에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입장료 20루피(약 300원)을 내고 들어가 보니 입고 들어갈 옷이 마땅치 않다. 트레킹이라 생각하고 반바지 하나 챙기지 않은 탓인데 결국 어찌어찌 반바지를 하나 빌린다. 물 온도는 적당히 따뜻하다.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시간여를 보내다가 탕옆에 앉아 때도 말고 빨래도 하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다. 에구 이걸 트레킹 마치고 하면 얼마나 맘이 개운할까 싶은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담날 푼힐로 갈까 생각해보니 푼힐 가는 길도 어차피 이틀은 더 자야 하는 길이니 그냥 좀솜으로 갔다 비행기 타고 내려가는 게 어떨가 의사를 타진해 본다. 오는 길에 푼힐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엄청난 오르막을 목격한 친구도 슬며시 맘을 바꾼다. 일단 좀솜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묵디나트는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한다. 여튼 맘을 바꿔준 친구가 고마워 저녁엔 소원대로 다시 한 번 온천에 다녀 온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도 괜찮은 기분이다.     


온천이 있는 따또빠니 마을  


따또빠니 온천, 이런 탕이 두 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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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비자 받느라 아무것도 못했다

 

카트만두의 유명한 여행자 거리인 타멜 거리는 카오산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없는 게 없는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한동안 추운 곳을 다녀서 그런지 적당히 덥고 적당히 여행자들로 붐비는 이곳에 오니 고향에라도 온 듯 편안한 기분이 든다. 여행자 거리의 분위기는 태국이나 별다를 바가 없는데 현지인들의 생김새나 복장-남자들도 그렇지만 여자들은 거의 전통의상인 사리나 펀잡을 입는다- 등에서 아.. 내가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 왔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또 하나 강렬하게 다른 문화권임을 증명해 주는 건 거리 곳곳에 보이는 낡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배기가스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쓰레기인데 뭐 지저분하기가 중국 저리 가라다. 사람들에 말에 의하면 이 정도는 인도에 비해 아주 양호한 정도라니 이미 수차례 들어오긴 했어도 새삼 인도가기가 두려워진다.


주로 아침을 해결한 여행자 거리에 있는 빵집, 이 정도만 되면 좋으련만..


일단 카트만두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비자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다음 나라인 인도 비자는 물론 인도에서 받기 어렵다는 파키스탄 비자까지 두 종류의 비자를 모두 이곳에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일단 여권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인도 대사관부터 가본다. 인도 대사관은 타멜 거리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인도 비자는 먼저 접수만 해 두고 사흘 뒤 오전에 찾아가 여권을 맡기면 오후에 찾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데 미리 여권을 맡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로 그 사이 파키스탄 비자를 받을 수 있으니 아주 감동적인 시스템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인도비자를 접수해 둔 뒤 바로 파키스탄 대사관으로 가려는데 먼저 와 있던 한국 사람이 파키스탄 비자 신청을 하려면 힌국 대사관에 가서 레터를 먼저 받아야 한단다. 결국 택시를 타고 한국 대사관에 가서 레터를 받고 나니 비자 발급시간이 지나 있다-대부분의 비자업무는 오전에만 본다-


다음날은 다시 파키스탄 대사관을 찾아간다. 내리는 위치도 정확히 모르면서 사람들의 말대로 일단 5번 버스를 탄다. 얼마쯤 가니 안내군이 파키스탄 대사관이라며 내리라는데 같이 탄 일본 친구 하나가 여기가 아니니 내리지 말란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비자 찾으러 간다는 일본 친구를 따라 간다. 가보니 파키스탄 대사관이 맞다. 에구 안내군 믿었다간 그날도 비자 신청 못 할 뻔 했다. 파키스탄 비자는 별문제 없는 한 1박 2일 만에 나온다. 이때까지 내가 받아본 비자 중에 국경 비자를 제외하곤 가장 빨리 나오는 비자가 아닌가 싶다. 다음날 파키스탄 비자를 찾고 나니 어느새 카트만두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나 있다. 그래도 그나마 인도비자는 여권을 안 맡겨도 되고, 파키스탄 비자는 1박 2일 만에 나오니 망정이지 보통의 경우였으면 거의 두주 가까이를 비자 기다리느라 카트만두에 묶여 있을 수도 있을 뻔 했다.


파키스탄 비자를 찾은 날은 금요일, 인도비자는 사흘 만에 나오긴 하지만 토, 일요일은 기간에서 제외되어 월요일에 다시 찾아가면 되니 그래도 어영부영 일주일 가까이 걸리는 셈이다. 그 사이 티벳에서 같이 넘어온 일행은 비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작가아저씨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귀국이고, 대구 청년은 한국에서 인도 비자를 받아왔다- 트레킹 준비나 하고 있겠다면서 먼저 포카라로 떠난다. 이들과는 이미 같이 트레킹을 하기로 약속을 해 둔 터다. 월요일 인도 비자를 받으면 다음날 바로 포카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카트만두를 둘러 볼 시간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이 고작이다. 나랑 비자 받으러 같이 다니던 사진작가 친구는 카트만두는 이미 세 번째라 더 이상 가보고 싶은 곳이 없다며 그냥 숙소에서 잠이나 자겠다는데 뭐 같이 다니자 할 수도 없어 한국 식당에서 공짜로 받은 지도 한 장 들고 거리로 나서본다.


일명 몽키템플 가는 길, 계단의 압박이 상당하다.


몽키템플 안의 탑, 저 눈이 네팔의 상징인 듯 여러 가지 관광상품에 사용되기도 한다.  


사진작가 친구도, 포카라로 먼저 떠난 일행도 아무도 네팔 가이드북이 없다.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복사판 론리 <이스탄불 투 카트만두>를 하나 사긴 했는데 그간 비자내느라 바빠서(?) 채 들춰보지도 못했고 사람들에게 어디가 좋아요? 물어봐도 카트만두에는 볼 거 없어요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할 수없이 영어로 된 가이드북을 뒤져 토요일 오전 중에는 옛 왕궁터이자 네팔의 여신인 쿠마리가 살고 있다는 쿠마리 바할이 있는 두바르 광장과 일명 몽키템플이라는 슈와얌부나뜨, 오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투파가 있다는 부다나뜨와 한두사원이자 화장터로 유명한 파수파흐나뜨, 그리고 일요일엔 카트만두 근교에 있는 고도 박다푸르 이렇게 다녀오면 되겠다. 계획은 야무지게 세워 놨는데.. 오전에 두바르 광장과 몽키 템플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게다가 혼자서 심심해진 사진작가 친구는 다른데 가봐도 볼 거 없으니 맥주나 마시자고 살살 꼬드긴다. 이번에는 내가 넘어가 준다.


두바르 광장, 광장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받는데 그냥 빙 돌아 아무 골목으로나 들어가면 대충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광장으로 연결된다.


두바르 광장의 여인네들, 노래도 부르고 음식도 먹으며 앉아있는데 그냥 소풍이라도 나온 건지 아님 뭘 기다리는 건지는 모를 일이다.

    

뭐 나도 이제 굳이 가이드북에 나오는데 다 찾아가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상태도 아니니 그저 타멜 거리나 둘러보며 한국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 음식이나 먹고 맥주나 마시며 주말과 일요일을 보낸다. 월요일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인도대사관에 들르는 것으로 하루가 간다. 화요일에 포카라로 떠나면 수요일에 바로 트레킹을 하기로 약속을 한 터라 안나푸르나 퍼밋도 카트만두에서 미리 받아둔다. 결국 두 개의 비자를 받아 들자마자 포카라로 향하는 셈이다. 혼자였다면 조금 더 늘어졌을 텐데 역시 일행이 생기니 일정이 조금씩 타이트해진다. 이때까지 많이 늘어졌으니 이도 나쁘지는 않다 싶지만 그 사이 늘어지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인지 이렇게 빨리 카트만두를 떠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조금은 아쉬운 맘이 들지만 글쎄 더 남아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 같지도 않아 조금은 어정쩡한 마음으로 카트만두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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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가는길> 간체-시가체-사카-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장무

 

결국 라싸에서 열흘 정도를 머물고 나니 이제 떠나야 할 날짜가 다가온다. 라싸에 있는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네팔로 넘어가는 일정인데 그간 네팔 상황이 좋지 않아 시간을 두고 관망하고 있던 사람들이 네팔 정국이 조금씩 안정되어 간다는 소식에 슬슬 떠날 준비들을 시작하는 것이다. 네팔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 측 국경인 장무에서 네팔측 국경인 코다리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티벳은 라싸와 시가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이 공식적으로 여행허가가 필요한 곳이라 대부분은 랜드크루저를 빌려-이 경우 허가증은 여행사가 대행해준다- 가고 싶은 도시를 들러 국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냥 허가증 없이 개인적으로 가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고 그냥 육로로 이동하는 여행자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마지막까지 그냥 이동할 생각을 해본다.


돈 아낄려고 점심도 굶는다는 짠돌이 남학생과 인도에 봉사하러 가기 위해 빨리 네팔에 들어가야 한다는 여학생 하나가 다른 도시를 들리지 않고 국경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명도 의견이 분분해진다. 나랑 사진작가 친구는 처음부터 육로, 육로 했기 때문에 랜드크루저 승차 인원에서 제외되어 있었는데 나머지 다섯명 중 세명이 남쵸를 다녀 온 밤에 전격적으로 서티벳 행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나머지 두명이 애매한 처지에 놓인다. 그즈음 우리 역시 육로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과 결국 비용도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랜드크루저로 떠날 생각을 한다. 랜드크루저를 탄다면 어차피 들리고 싶은 도시도 다 들르는데다 육로로는 갈 수 없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며칠 뒤 떠나는 서티벳팀을 뒤로 하고 네 명이 랜드크루저를 타기로 한다.


티벳을 가기 위해 다시 들어온 중국에서 정작 티벳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두주일 남짓이고 나머지 두달은 운남과 사천에서 빈둥거린 셈이니 어쩐지 좀 이상한 일이다 싶긴 하지만 라싸에 별다른 미련도 없다. 그저 여느 도시처럼 생각하면 되는 것을 괜한 의미를 애써 부여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여행이란 그저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 정도로 생각해 두기로 한다. 여튼 사진작가 친구와 나, 그리고 부실한 대구 청년과 글 써서 먹고 산다는 황작가 이렇게 네 명이 한팀이 되어 라싸를 떠난다. 라싸를 출발해 간체에서 하루자고 다시 시가체를 거쳐 사카에서 다시 하루밤 그리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하루밤을 더 지낸 뒤 국경까지 가는 총 3박 4일의 여정이다. 장무까지 가는 길은 고산지대답게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산들이 이어진다. 이 풍경은 4일 내내 거의 바뀌지 않는데 이렇게 척박한 땅에 삶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에게 새삼스런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첫날은 암드록쵸 호수를 거쳐 간체로 향하는 일정이다. 암드록쵸는 남쵸보다 규모는 작지만 물빛이 유난히 예쁘다는 호수로 차로 산을 굽이굽이 올라가 거의 정상에 이를 무렵 그 모습을 드러내 감탄을 자아낸다. 얌드록쵸를 지나자 끝없는 산들과 황량한 벌판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간체가는 길에 보여주는 티벳의 황량한 아름다움은 마치 이 곳이 지구가 아니라 다른 별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는 오후가 훌쩍 지나서야 간체에 들어선다. 서둘러 짐을 풀고 간체 시내에 나가본다. 1904년과 5년 영국군이 침공해 왔을 때 영국군을 상대로 두달 이상 버티었다는 간체성을 지나 펠코르 체데라는 사원까지 걸어가 본다. 이곳도 역시 입장료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이제 돈 내고는 입장하지 않는 습성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지 모두들 입구에서 그냥 돌아선다. 티베탄 마을 사이에 서 있는 작은 언덕에 올라 사원도, 마을도 내려다보며 여기서도 다 보이는데 뭐 하며 시시덕거리다 내려온다. 확실히 라싸를 벗어나니 전형적인 티벳탄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얌드록쵸 호수


간체 가는 길


간체 마을에 있는 간체성, 물론 올라가지는 않았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 랜드크루저를 타고 시가체로 출발한다. 시가체는 라싸 다음으로 큰 티벳 제2의 도시인데 달라이라마에 이은 제2의 실권자인 판첸 라마가 사는 타쉬룬포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시가체에 있는 판첸라마는 중국이 세운 허수아비로 티벳인들은 그를 판첸라마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판첸라마는 북경에 억류되어 있는데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둘째날은 가는 길이 멀어 시가체에서는 그저 삼사십분 타쉬룬포사만 둘러보기로 한다. 그러나 습관이 어디 가랴..이번에도 매표소 앞에서 이제 티벳 사원은 지겹다.. 진짜 판첸라마도 아니라는데 하며 일제히 돌아선다. 정말 이젠 아쉽지도 않은 것이 고만고만한 티벳 사원들이 더 이상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가체에서 떠나 라체에서 점심을 먹고 사카로 향한다. 라체에서 사카까지의 길은 장난이 아니다. 일단 비포장인데다 길 전체가 공사 중이라 도무지 창문조차 열 수 없는 상황이다. 두어 시간을 차 속에서 흔들리다 사카에 도착하니 기진맥진이다. 이젠 사카에 있다는 사카사원 입구에 가보자는 소리조차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그저 숙소 식당에서 맥주나 마시며 노닥거린다.


 시가체에 있는 타쉬룬포사

 


사카 가는 길

 


티벳의 아이들


셋째날은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난이도가 높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구간이다.  이 구간의 난이도가 높은 이유는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길도 만마치 않지만 밤에 몹시 춥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다녀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이 추워서 죽을 뻔 했다이니 아무래도 만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결국 라싸를 떠나면 버리려고 했던 겨울옷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바리바리 싸오긴 햇지만 남쵸애서의 악몽이 슬며시 되살아난다. 사카에서 베이스캠프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 공원 입구에서 타고 온 랜드크루즈는 세워둔 채 다시 돈을 내고 공원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남짓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 또한 베이스캠프는 아니고 베이스캠프 아래에 있는 롱복 사원까지만 데려다 준다. 이는 좋게 해석하면 자연 보호를 위한 행위라 생각되지만 개인당 65원의 입장료를 받는데다 그것도 모자라 차 한대당 405원의 입장료를 또 징수하고도 다시 차비로 80원을 더 받는 행위로 미루어 보건데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가 일말의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여튼 베이스캠프는 다시 여기서 걸어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데 걸어갈 수도 있고 얼마간의 돈을 내고 마차를 타고 갈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에베레스트베이스 캠프 가는 길


 에베레스트베이스 캠프에서, 뒤에 보이는 것이 에베레스트이다


오갈 때는 마차를 탄다. 대략 일행들과 마차를 탔다는 건 살짝 숨기기로 약속했건만..    다들 비밀입니다^^


숙소 역시 롱복 사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거나 아예 베이스캠프까지 가서 그곳에 있는 천막에서 잘 수도 있다는데 남쵸에서 질린 우리 일행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게스트하우스 방을 먼저 잡아둔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사실 에베레스트를 말타고 갔다는게 좀 그렇잖아 해가며 이 부분은 깨끗이 편집해 버리기로 약속을 했는데 쩝-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네팔 쪽에 하나, 티벳 쪽에 하나가 있다는데 네팔 쪽 사정이야 어떤지 모르겠으나 티벳 쪽은 거의 관광지가 다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차에서 내리면 주욱 늘어선 천막들이 찻집 겸 숙소인데 그 호객 행위가 어느 관광지 저리 가라이다. 춥기도 추운데다 멀리 에베레스트 봉우리가 보이기는 하나 더 걸어가 봐야 그 풍경이 그 풍경이라 한시간 뒤에 돌아간다는 마차가 왜 이리 늦게 오나 싶은 지경이다. 다시 마차를 타고 돌아와 추위에 떨며 하루밤을 보낸다. 이 추위가 당분간은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꾹 참는다. 하루만 지나면 고도는 낮고 온도는 높은 곳에 있을 거란 생각이 그 마지막 밤을 견디게 해 준다. 결국 담날 일출이고 뭐고 공원입구로 내려가는 제일 빠른 버스를 수소문해 타고 내려온다.


 장무 가는 길1, 설산을 하나 넘고서야


 장무 가는 길2, 드디어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3박 4일을 함께 달린 일행들-왼쪽부터 사진작가, 글쓰는 작가, 부실한 대구청년 나, 티벳탄 드라이버- 그리고 일제도요타 랜드크루저 4500


마지막날은 국경도시 장무로 가는 길이다. 기사야 저녁까지 장무에 데려다 주면 되지만 우리는 당일로 카투만두까지 갈 생각이라 맘이 바쁘다. 다행히 네팔은 중국보디 2시간 15분이나 늦어 하루가 26시간 15분인 셈이니 당일로 넘어가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오전 내내 길이라 할 수 없는 갈을 달리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설산을 넘어 나니 고도가 조금 낮아지는지 푸른빛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국경도시 장무에 도착한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어있다. 중국측 국경이 6시에 닫힌다니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게 웬일.. 국경도시답게 오가던 화물차들 덕분에 도로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결국 배낭을 메고 이미그레이션까지 걸어기서 간신히 수속을 마친다. 여기서 네팔 국경까진 다시 8km나 되는 산길이다. 그냥 봉고차 하나를 잡아타고 산을 넘어 네팔 국경을 통과한다. 당연히 카트만두를 가는 버스는 없을테니 호객하는 택시를 잡아 보자며 넘은 국경엔 이게 웬일 그 흔한 삐끼 하나가 안 붙는다. 이런 결국 물어물어 만만치 않은 가격에 택시하나를 빌려 카트만두로 향한다.


국경도시에서 카트만두까지는 버스로 5시간이 걸린다는데 이 택시 총알택시도 아닌 것이 굽이굽이 산길을 거의 80km로 내달린다. 보다못한 일행 하나가 천천히 가자고 하니 산아래에 6시까지 도착을 못하면 산을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 아건 또 언제 생긴 법이란 말이냐.. 그저 손잡이만 꼭 붙들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검문소를 정확히 6시에 빠져 나간다. 그후로 좀 천천히 가나 했더니 이번엔 폭우가 쏟아진다. 결국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헤드라이트에 의지한 채 가다가 급기야 타이어도 한 번 갈아주고도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3시간 만에 카트만두에 들어온다. 일행 중 두명이 네팔에 수차례^^ 다녀간 경험이 있어 손쉽게 숙소를 잡는다. 늦었지만 씻고 저녁을 먹으니 비로소 네팔에 온 기분이 든다. 드디어 중국을 벗어난 것이다. 네팔, 어딘지 모르게 동남아 분위기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온다는 건 여러모로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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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남쵸에서의 0.5박

 

라싸에서 약 195km 떨어진 남쵸 호수는 한국에서는 하늘 호수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 덕분에 엄청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뭐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인도로 갔다는 가슴 아픈 후일담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라싸에 온 한국인은 대부분 이 호수를 다녀오는 것이 기본 일정에 속한다. 가는 길이 험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이곳은 대략 여행사를 통해 랜드크루저를 빌려 다녀오게 되는데-뭐 가끔 대중교통수단이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트럭 등을 히치해가는 씩씩한 여행자도 있기는 하다- 이 경우 차 한대당으로 가격이 정해지니 대략 4-5명의 동행을 모아야 하는데 보통 게스트하우스 게시판에는 남쵸 뿐 아니라 동티벳이나 서티벳 또는 네팔로 가는 일행을 구하는 메모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숙소에 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희망자만 모아도 무려 8명이나 된다.


첨엔 일인당 150원에 미니버스를 한 대 빌렸다가 떠나기로 한 날 내린 폭설로 하루가 연기되면서 눈 때문에 미니버스는 못 갈 수도 있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따라 일인당 200원씩 내고 랜드크루저 2대를 빌려 남쵸 호수를 향해 길을 떠난다. 해발 4600m에 이르는 호수는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해발이 높아 고산증의 위험도 심각한데다 숙소도 천막에 침상이 전부라 추위 또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라 침낭이며 겨울옷을 바리바리 챙겨 떠난다. 일부는 휴대용 산소통도 두어 개 준비해 나선다. 라싸에서도 며칠 보냈으니 이제 고산증은 괜찮겠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맘을 놓을 일은 아니다 싶다. 라싸를 떠난 랜드크루저는 꼬박 5시간을 달려 해발 5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 남쵸에 우리를 내려준다. 오면서 쨍하게 맑던 하늘은 어느새 눈발이 날린다. 미리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천막을 보니 오늘 밤을 보낼 일이 막막하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뭐 이것도 천막이긴 하다-에서 삼삼오오 눈발이 그치기를 기다리니 잠시 후 거짓말처럼 다시 해가 뜬다. 날씨 한 번 변덕스럽다.


남쵸 가는길


호수 앞에 있는 천막 숙소, 그래도 입구에는 호텔이라고 써 있다.


반쯤 얼어있는 호수를 따라 걸어본다. 길이가 30km에 이르는 이 호수를 한 바퀴 돌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두 시간쯤 호수를 따라 걷다가 다시 걸어간 길을 되짚어 돌아오니 천막 안에는 조금 허탈한 분위기가 감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먹으려고 사간 사과며 바나나 등의 과일을 어떤 짐승이 천막에 들어와서 죄 먹어버렸다는 데 그 범인 찾기가 한창이다. 개다, 말이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산양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그래 문 안 잠근 우리가 잘못이지 니가 뭘 알겠냐 하면서도 모두들 한번씩 산양을 째려 봐 준다^^ 부실한 저녁을 먹고 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천막 식당은 가격은 비싸고 맛은 전혀 없는 관광지 식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쵸호수, 염수호라는데도 아직 얼어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이 호수는 얼핏보면 바다같기도 하다.


그놈의 북경 표준시 때문에-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중국은 전국이 단일 시간이라 티벳 정도면 두시간 정도 시차가 나야 정상인데도 그냥 북경과 동일한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도무지 9시가 가까워져도 해가 지지 않는다-  해지기를 기다리는 일도 고역이다. 더구나 오늘은 날도 흐려 일몰이 보일 것 같지도 않다. 그나마 야크똥으로 피워주는 난로라도 있는 식당에서 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역시.. 해는 어디로 넘어갔는지 알 수도 없는데 어느새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는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맑았던 날씨는 오간데 없고 거짓말 조금 보태 화장실-사실 화장실이라야 그냥 허허벌판이지만- 가다가 날려갈 지경이다. 이 고산지대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자살 행위라 그냥 자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겠다 싶어 천막 숙소로 돌아간다. 그간 각종 트레킹들마다 밤이 심하게 추웠던 기억은 있지만 이곳이 제일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막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두 명의 환자가 발생해 있다. 하나는 라싸에서도 고산증으로 이삼일 고생했다는 대구 청년인데 고산증이 재발했는지 침낭에 이불을 두어 개 덮고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내 일행인 사진작가 친구인데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본인은 체한 것 같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고산증의 일종인 듯 하다. 고산증도 고산증이지만 해가 지고 나니 추위도 장난이 아니다. 내 여분의 옷에다 침낭까지 둘러쓰고도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천막 펄럭이는 소리에다 그나마 발전기로 돌리던 전기까지 나가고나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두 명의 환자와 방안에 있는데 밖에서 오늘 그냥 내려가자는 말이 들린다. 아마 나머지 사람들끼리 의논이 된 모양이다. 일출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내려가는 길에 온천도 들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지만 앞에 있는 환자들을 보니 내려가는 것이 최선일 듯도 싶다. 무엇보다 나 역시 여기서 하루밤을 지낼 일이 막막하다.


남쵸에서의 0.5박 동지들


결국 밤 열시에 다시 차를 몰고 라싸로 돌아온다. 모두들 천막에서 하루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내려오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어 보인다. 사진작가 친구는 결국 차를 세워 오바이트를 하고서야 조금 진정이 된다. 차에서 히터가 나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둠을 헤치고 차가 라싸에 도착한 새벽 두시, 그나마 돌아와서 방이 없을까봐 그날 방값을 미리 지불하고 간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춥게 느껴지던 라싸의 밤이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결국 남쵸에서의 1박은 0.5박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다행히 두 명의 환자는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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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공짜로 사원 들어가는 법

 

비행기가 새벽의 여명을 뚫고 날아오르자 저 멀리 구름 아래로 설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 척박한 설산들 어디쯤에 티벳이 숨어있는 것인지 라싸로 가는 두 시간 내내 산들의 행렬은 계속된다. 육로로 간다면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린다는 길을 비행기를 타니 그저 두시간만에 도착한다. 고도가 4천을 넘나드는 도시인 리탕이며 캉딩을 넘어오긴 했지만 성도에서 두주 이상을 빈둥거렸으니 새롭게 고산 증세가 나타나는 건 아닌가 잠시 걱정이 된다. 다행히 아래배가 조금 빵빵해지는 느낌을 제외하곤 별다른 증세는 없다. 북경에서 성도로 바로 넘어온 사진작가 친구도 다행히 별다른 증세는 없는 모양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라싸에서 내려 야크호텔을 찾아간다. 야크호텔은 성수기에는 거의 방을 구할 수 없다는 라싸에서는 가장 유명한 여행자 숙소인데 아직은 비수기인 탓인지 도미토리에 자리가 있다.


비행기에서 본 산들, 두시간 내내 눈덮인 설산이 이어진다


포탈라궁 앞의 도로, 그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이삼일 먼저 온 루미라는 일본인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사진작가 친구가 일본말이 가능한 관계로 수다가 가능하다는^^- 셋이서 함께 한국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 열심히 밥 잘 먹던 사진작가 친구가 갑자기 일어나길래 그저 화장실에 가나 했더니 느닷없이 이층 난간을 잡고 푹 주저앉는 게 아닌가.. 으으.. 말로만 듣던 고산증세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보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히 그날 하루를 잘 쉬고 나니 다시 생생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첫날은 그저 조심조심 하루를 보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크호텔에 묵고 있는 한국인이 거의 10여 명이 넘는다. 우리 옆방은 침대 6개중 5명이 한국인이니 아주 한국인 방이다. 거기에 묵고 있던 스페인애 하나는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못 견디고 방을 옮겼으며 마지막까지 중국애 하나를 제외하고는 하루 이상 머문 외국인이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라싸는 더 이상 티벳이 아니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은 탓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어서 인지 나에게는 오히려 기대보다는 더 많이 티벳 분위기가 난다. 물론 들은 대로 조캉 주변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이미 한족의 상권이 자리 잡고 있어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항에서 라싸로 오는 길에 펼쳐진 황량한 산들이며 조캉 사원 주변으로 여전히 보이는 티벳식 건물이며 거리를 오가는 티베탄들이 여기가 티벳임을 말해 주고 있다. 다만 너무 오래 돌아와서인지 여기를 오자고 그렇게 시간을 들였던가 조금 허탈해지는 맘도 숨길 수는 없다. 여튼 다시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추스르며 고산 적응에 -뭐 다른 건 아니고 담배 덜 피고, 술 안마시고 정도 되겠다- 하루 이틀을 보내다가 한두 군데 사원들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라싸에서의 최대 화제는 단연 <나는 어떻게 공짜로 사원에 들어갔는가>이다. 라싸의 최대이자 유일한 볼거리는 티벳 사원들인데 이 사원들의 입장료가 누가 중국 아니랄까봐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게다가 그 입장료가 티베탄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중국 정부로 들어간다는 소문이고 보면 그저 입장료를 안내는 것 뿐 아니라 약간의 정의감까지 더해져 공짜로 사원 들어가기가 거의 죄책감 없이 성행한다. 라싸의 사원은 티베탄 최대 성지인 조캉 사원과 그 주변의 바코르 길을 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이미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가 살던 포탈라궁, 그리고 그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노블링카, 티벳 3대 사원으로 알려진 드레풍사, 간덴사, 세라사 마지막으로 라싸 외곽에 있는 사뮈에사 정도가 있다. 물론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조그마한 사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여튼 앞에 나열한 사원들만 돈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해도 거의 500원(6만원 정도) 돈이 된다. 어지간한 입장료는 내고 다니자는 나로써도 우선은 금액에서 질리는 동시에 내고 들어가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공짜로 들어가기를 시도하게 된다.


최대 성지인 조캉사원,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탄들을 언제나 볼 있는 곳이다


포탈라궁, 밖에서 볼 땐 화려한 데 정작 입장료를 내면 뒤로 돌아들어가 건물의 일부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조캉사원부터 시도해 본다. 팁은 아.침.일.찍.이다. 아직 매표소 직원들이 자리 잡기도 전에 무료로 들어가는 티베탄 참배객들에게 묻혀 슬쩍 들어가는 건데 거의 100% 성공률을 자랑한단다.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닌고로 무료로 입장에 성공한다. 하지만 티벳 불교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뭐 사원은 그저 그만그만하고 주변에 있는 순례길인 바코르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탄 순례객을 보는 일이 더 흥미진진하다. 다음엔 포탈라궁인데 가끔 무료입장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두 번의 통과 의례를 거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대부분 울며겨자먹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곳이다. 더구나 100원이라는 거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볼 거 하나도 없어요>이고 보면 들어갈까 말까 무척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포탈라궁인데.. 하는 맘에 그냥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뭐 볼 게 하나도 없지는 않지만 개방하는 곳이 워낙 일부인데다 정해진 곳 이외에는 한발자국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본전 생각이 조금 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거대한 궁이자 사원의 일부나마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조금 위로가 될 듯도 하다. 그 다음 아무도 공짜로 들어간 적이 없다는 노블링카는 과감히^^ 포기한다.


간덴사 순례길에서 기도 종이를 날리는 티베탄 아저씨. 이때 후어이! 하는 괴성을 질러줘야 한다^^


드레풍사에서 바라본 라싸 시내, 마침 눈이 내려 시내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세라사의 유명한 교리문답장면, 손바닥을 내리쳐 가며 일대일의 교리문답을 진행하는데 처음에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관광객용으로 변질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다음은 라싸 외곽에 있는 간덴 사원의 경우로 입장료를 징수하는 라마승과의 협상이 필요한 곳이다. 누구는 산을 빙 돌아 들어가기도 했다지만 해발 4200m가 넘는 곳에서 산을 한바퀴 도는 일은 건강과도 직결된 바 권장 사항은 아니라 사료된다. 우리의 경우 이십여분의 걸친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이 한 사람 표만 내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으니 -물론 탁월한 협상가가 따로 있긴 했지만-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스님들 거처에서 티베탄의 주식인 짬파에 차까지 얻어먹었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또한 여행 7개월여 만에 입장료 깍기는 처음이니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도 괜찮을 듯 하다^^. 눈이 내리는 날 찾아간 드레풍사는 사원에 이르는 길이 너무 예뻐 내처 걷다가 정작 사원 앞에서는 그냥 넣어줘도 못 들어가겠다며 돌아섰으며 스님들의 교리문답으로 유명한 세라사원은 담치기 할 각오로 나섰다가 열려 있는 뒷문을 통해 정정당당히 입장했으니 대략 입장료를 제대로 낸 곳은 포탈라궁 하나 정도인 듯 하다.


우리가 날마다 들렀던 짜이집, 그래도 티벳에는 여전히 티베탄들이 존재한다.


쓰고 나서 보니 티벳의 역사라든가 현실 혹은 종교적 경건함에 관한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순 공짜 입장이야기가 다인 듯 하여 이렇게 장난처럼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라싸에 있는 동안 나는 그저 여행자였으며 상당히 많은 한국 사람들과 수다나 떨고 싸구려 만두나 죽 따위를 먹으러 다닌 게 생활의 전부였으니 여기서 티벳의 현실 운운 한다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북경의 천안문-본인은 정작 자금성의 관문이라고 우기기는 하지만-에 이어 포탈라궁을 찍으러 라싸에 온 사진작가 친구의 말에 따르면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한족들-티베탄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 정도만 전할까 한다. 그들에게 포탈라궁은 천안문과는 달리 그저 관광지에 다름 아니라는 건데 뭐 그게 현재 티벳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티벳의 현실에 분개하는 한국인 여행자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글쎄 나에게 티벳은 그 황량한 자연 환경을 제외하곤 그저 다른 여행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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