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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

잘못된 길(Fausse Route)

                                       by 엘리자베스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

 

 

잘못된 길.

1990년대 이후의 급진적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바댕테르는 남성성의 구성성과 그 과정을 기술한 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하다.

잠깐 딴 소리지만, identity를 '본질'로 번역한 건, 바댕테르의 책을 통째로 오독한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잘못된 길>에서도 계속해서 주장하는 바이지만

바댕테르는 생물학적이고 본질주의적인 남성성/여성성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바댕테르는 미국의 급진주의 여성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기한다.

 

바댕테르에 따르면 이들이 남성지배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 원인을 찾아들어갈때에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자연스럽고 선천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남성성' 그 자체의 문제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이는, 반대편에서는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을 단일화해버리는 효과,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라는 구도로 여성들을 피해자로 희생물로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본질론적인 남성성/여성성에 기반한 페미니즘의 분리주의적 경향에 대해서

바댕테르는 본성에 호소하는 자연주의로의 복귀라고 비판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가능한가, 라고 다시 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차이에 기반한 평등'이라는 슬로건 역시

고정되고 대립되는 이원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이리가라이와 같은 이론가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바댕테르는 폭력, 강간에 관한 이론과 실천으로 유명한 드워킨, 맥키넌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들이 모든 종류의 성적 폭력을 강간과 동일시 한다던가, 이성애와 강간을 인과관계처럼 놓는다던가, 성관계에 있어서 '투명한 동의'가 가능한 것처럼 선전한다던가, 반 포르노 운동이 보수적 도덕주의와 결합하는 현상들에 대한 비판들이다.

 

바댕테르의 문제의식은 많은 고민들을 던져준다.

 

지금까지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젠더불평등의 문제로 곧바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김은실 선생님의 말대로 모든 여성들이 어느 정도는 젠더 연속선상에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각기 다른 맥락들을 젠더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각각의 계급, 국가, 인종 등의 다양한 맥락을 삭제시킨

단수로서의 여성, 여성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매매/성노동 논쟁은 강제/자발, 폭력/노동의 대립각 속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무엇이 진실이냐, 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가 정의(definition)가 되었을 때, 경합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혀져버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성에 기반한 여성성,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것의 위험성, 딜레마.

 

그러나 바댕테르는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그토록 경계하고, gender의 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연으로서의 sex,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듯하다.

gender와 마찬가지로 sex 역시,

남자, 여자, 성기를 기준으로 단 두 가지의 성이 존재한다는 것,

하늘이 내려주신 엄연한 '사실'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갖가지 정치적 담론 속에서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바댕테르는 생물학,이라는 상수를 어디까지 인정하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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