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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8/11
    참, 닮은 꼴(6)
    은수
  2. 2009/07/17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에 다녀와서(13)
    은수

참, 닮은 꼴

은수님의 [하우스 키퍼 제도] 에 관련된 글.

여기, 참 닮은 꼴이 있다.

 

더럽고 나쁜 습관은 고치기도 어렵다더니

조직도 운동도 썩어빠진 것들은 참 변하지 않는다.

 

일전에도 썼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제일 처음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은

남성 위원장이 여성 조합원 집에 왜 은닉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건 단지 우연의 일치인가?

 

이번 사건에서 전국적으로 위원장 은닉에 동원되었던 이들은

하나같이 혼자사는 여교사들이었다고 한다.

 

왜? 왜?

 

이유는 뻔하다.

잡히면

조직적으로 은닉한거 아니고 위에서 동원해서 그런거 아니고

우리는 청춘 '남''녀'이니 사귀는 사이라고 불면 되니까.

그게 아니면? 뭐?

여성조합원이 더 수발을 잘해줄거라고 생각했나?

 

썩어빠진 대가리들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하나도 안변했다.

일제 시대 때 사회주의 운동에서 하우스키퍼 제도를 했던 거 하고 뭐가 다른데?

때때로 소름이 돋는다.

 

가진자와 권력에 저항이니 변혁이니 운운하는 인간들이

위원장-조합원, 남성-여성, 조직-개인 이런 권력관계들은 잘도 써먹지.

그래놓고 나가서 여성 '동지'들 어쩌고 하지마라. 토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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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에 다녀와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에 다녀왔다. 진보넷 어느 블로그에선가 광고 포스터를 보고 갈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어떤 조직도 단체도 걸치지 않은 그냥 개인인 내가 꼭 가야될 당위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으나 '피해자 지지'라는 특정 글귀가 마음에 남아 결국 가게 된 것이다.

 

어젯밤 집에 돌아와 지지모임에 대해 오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내 글로 인해 이 모임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이 생기거나 하면 어떡하나...글 쓰기도 전에 고민병이 도져 결국 노트북을 덮었지만,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던 내 의견을 블로그에서 말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면서.

 

단적으로 내가 느꼈던 점을 말하자면, 피해자 지지모임은 성폭력 사건 대책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론 피해자를 지지하는 (운동)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고, 기자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조직하고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피해자의 고립을 방지하고 연대를 표명하는 방법의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런 방식의 운동을 하는 것을 피해자 지지모임에서 기대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재심위에 제출한 피해자의 글을 보면서 나의, 그리고 누군가의 경험을 떠올리며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그로부터 고립된 그녀가 싸우고 있는 거대한 조직의 '반복적인' 논리들에 어떻게 함께 대응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집단적인 경험으로 나누고 피해자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서로가 치유하고 치유받는 과정이 피해자 지지모임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폭력상담소의 한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잘 해결하라, 똑바라고 하라고 촉구해서) 조직에 다시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의 운동이 아니기를, 나 또한 바랬던 것이다. 비록 노동조합의 일정을 따라가고 중집회의에 가고 피켓팅을 하는 운동의 방법은 성폭력 사건을 빠르게 해결하는 매뉴얼이라할지라도, 그런 방식의 운동만로는 크게 바뀌지 않을거라는 마음과 그것이 피해자를 지지하는 유일한 방법인가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도 갖고 있다. 

 

그러면 어쩌자는거냐 물을 사람들에게 나는 내가 할수 있는 글쓰기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제 모임에 왔던 한 사람은 이런 얘기를 했다. 전교조가 어려운 시기에 한 개인이 조직을 해치고 있다는 논리에 맞서기 위해, 현시국, 정권의 전교조 탄압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한다는 연대입장을 밝혀두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런식의 대응이 오히려 연대를 해치는 행동이며 우리가 더 잘싸우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일들을 잘 해결해야 한다는 설득의 논리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나는 화가 났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이 사람의 이야기는 조직 우선의 사고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이든 다른 사건이든 그로 인해 조직이 망하면 어떤가? 연대를 해치면 안되는가? 썩어문드러진 조직 속에서 개인이 당장 숨도 못쉬겠다는데..죽겠다는데. 조직이 망해도 아무리 탄압상태라고 해도 문제제기 하는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조직이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 일로 망할 조직이라면 진작에 망해없어지는게 낫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조직을 위하는 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연대를 위한 것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정말로 듣고 싶지 않다.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손잡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분리획책에 놀아나지 않고 노동자가 하나되어야 우리는 자본이란 거대 괴물에 더욱 잘 싸울 수 있다. 등등등) 이런 식의 사고에서는 여전히 개인은 조직을 위한 존재이고, 개인들의 문제제기는  '건강한', '더 잘 싸울 수 있는' 조직을 위한 수단이자 방법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최종목적은 우리가 '진정한 동지'가 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들이 조직보위논리를 온몸으로 체화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설득논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이번 문제를 촉발시킨 핵심중의 하나인 '조직우선주의'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조직보호 논리로 내부 개인의 희생이 뒤따랐다. 조직 속에서 개인의 위치를 고민해야 한다" 고 충고한 검찰의 이야기를 제발 우습게 알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들은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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