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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反역사 여공 1970


 

-  드디어 다 읽었다. 솔직히 말해 800 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은 또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하하. 역시 책을 읽는 것이든, 읽고 생각하고 또 글을 쓰는 것이든 상당한 인내심과 노력을 요한다. 필자는 서강대 교수 김원이라는 사람이다. 이 책으로 첫번째 김진균상을 수상했다는 것 이외에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김원씨는 산업화 시기 여성노동자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계보학'과 '미시사'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사실 나는 계보학에 대해서 거의 접해보지 않아서, 이런 방식이 낯설고도 재미있었다. 기존의 담론과 연구들을 파헤치면서 지금까지 배제되어온 역사적 사실을 재평가하고 발견한다. 식모 담론에 대한 검토, 기숙사나 소모임을 통한 여성노동자들의 자매애 형성 과정, 등등등 그리고 지배적인 담론에 가려져있던 여성노동자 내부의 차이와 균열. 그녀들의 문화, 가치관, 정치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풍부한 자료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일일이 열거하기는 너무도 많다.

 

-  이 책은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운동에 대한 지배적 해석에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동안 여성노동운동은 '조합주의' '경제주의' 이상으로 평가되지 못했다. 나 역시도 지배적인 해석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당연한 한계 정도로 사고 해왔던 것 같다.

 당시 한국노총을 비롯한 어용노조가 남성인데 반해,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조를 세운 것에 대해, 기존의 노동사가들은 가족부양의 부담이 없던 미혼이라던가 단순함, 순수성을 이유로 보는 등의 전형적인 남성주의적 시각을 드러내왔다. 또, 작업장에서 여성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했던 남성노동자들에 대해 '사측의 사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도 그러하다. 여성사업장에서의 여성노동자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성폭행 위협과 남성중심주의 문화에 의한 통제 등 "성적 통제"는 자본의 보편적인 통제양식이었다. 그럼에도 남성노동운동가들과 노동사가들은 이를 성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사고해왔다. 

 이런 비판들은 상당히 유의미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또 사회화에 따른 성별 특성-관계지향적-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성노조가 가졌던 노동자 민주주의와, 소모임 활동 등 일상에서부터 파고든 탄탄한 현장권력의 기반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한편 이런 방법은 상당한 기본 지식과 자기 관점이 있어야 제대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정말이지 여성노동자 연구에 관련된 수많은 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 중에서도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의 저자인 구해근씨와,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의 저자 전순옥씨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여공들이 농촌을 떠나 공장으로 오는 것이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보는 것을 필자는 '희생양-수동적 주체' 담론이라고 비판하며, 오히려 여성노동자들의 정체성 내부를 들여다보면 가족에 대한 지원보다는 개인으로서의 자립과 독립성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구해근씨는 여성노동자들이 어려운 노동환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을 강고한 가족윤리로 바라보는데 비해, 이 책의 필자는 그러한 담론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고, 궁극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벌이를 통한 경제적 조건의 개선과 교육 등 자아실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순옥씨의 경우는 서구 페미니즘의 제 3세계 여성노동자에 대한 시각-희생자로 개념화-을 비판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의 자율성-헌신적 투쟁과 민주노조운영방식-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녀의 책에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간의 적대적 관계가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산업발전->계급형성->계급투쟁->계급의식고양->역사진보 라는 고정된 가부장적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1970년대 노조운영에서 남성 지배란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필자는 '민주 대 어용'의 이분법적 구도가 남성노동자의 문제라던가 교회 및 지식인과 노조와의 관계 등 다양한 균열을 은폐하고, 운동의 주체인 여성노동자들을 중성적 투사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 민주노조운동 일반을 무오류의 신화로 만들어 냈다고 비판한다. 구해근 식의 노동사 서술은 긍정적인 내러티브만을 강조하여, 노동운동의 신화 혹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동맹이라는 특정만을 특권화 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필자는 동일방직이나 청계천피복노조 등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지식인 또는 산업선교회와의 결합과정이 낳은 한계와 노조 내부의 균열을 강조한다.

 

  이런 비판 지점들에 있어서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동의하기 어려웠다. 미시사나 일상사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도 있고. 남성 대 여성의 대립구조를 중심으로 놓는 것이라던가, 내부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전체적인 틀을 보지 못한다던지, 정치성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들이나 노조의 역할에 대한 것들도. 궁극적으로는 계급과 계급투쟁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몇 가지. 이 책의 현재성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노조를 '동지' 관계이자 '무성화된 가부장적 유사가족'으로 서술한 것에 대한 비판 부분. 이런 식의 운동 주체 담론은 여성들을 '동지'라는 집단적 주체로 복속시키는 동시에 여성의 성차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 점에서 동지적 관계로서 민주노조에서 집단적 주체의 상상적 구조는 표면적인 젠더 중립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성적 차이를 무화시키고 오히려 젠더 경계를 재구축해왔다.

  그리고 현재 여성노동자를 배제하는 지배적 담론과 지식의 기원을 1970년대 여성노동자로부터 탐색할 수 있다.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 이후에도 1987년 그리고 전노협 시기에도 여성 노동자들은 운동의 중심 주체가 아니라 주변부 혹은 부차적인 주체로 간주되어 왔다. 특히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부로 합리화 되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집단해고 사건과 같이 말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남성편향적 성격과 이 속에서 국가 자본과 손을 맞잡은 남성중심적 노조 사이에는 여성노동에 대한 '암묵적 배제'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배적 담론은 이미 발전주의 시기에서부터 형성된 것으로, 그러한 노동자 주체형성의 다론, 기제, 매커니즘의 기원이 구조조정 시기에 어떻게 다시 반복되는가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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