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고많은 혈관들 중에 하필 뇌와 심장의 혈관이 중요한 걸까요? 뇌·심장 말고 위장이나 콩팥, 팔·다리나 눈·코·입 같은 부위에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까요?

아닙니다. 지름이 2∼3cm이나 되는 대동맥(도로에 비유한다면 경부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겠지요)부터 지름이 5∼6㎛(마이크로미터, 즉 1mm의 천분의 일)인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혈관의 문제는 어디에서나 생길 수 있고 그로 인한 '물류 대란', 즉 피가 통하지 못하는 곳의 기능 저하가 올 수 있습니다. 눈에 피가 통하지 않으면 시력이 망가지고, 위나 장에 피가 통하지 않으면 소화기능이 망가지고, 팔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으면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 그럼 왜 하필 뇌·심장이냐는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 몸의 여러 장기들 중에서도 심장에 이러한 '물류 대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니 생명을 잃을 수도 있겠지요. 몸 속의 다른 어떤 곳에 생기는 물류 대란보다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뇌라는 녀석은 또 어떤가요. 우리가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생각을 하고 몸을 움직이는 그 모든 기능을 관장하고 있는 중앙 관제실 아닙니까. 그러니 여기에 피가 제대로 가지 못하면 심장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답니다.

뇌는 워낙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뇌로 가는 피의 양도 대단히 많고 핏줄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교통량이 많고 커브길이 많으면 교통사고가 나기 쉽듯이, 뇌혈관에도 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게다가 피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여 산소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우리 몸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뇌가 먼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30초만에 의식을 잃고, 5분이 지나면 뇌기능을 회복할 수 없게 되지요. 그러니 심장 이상으로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도 바로 뇌랍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뇌심혈관계 질환은 참말로 무서운 병입니다.

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간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무려 1,500명이 넘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하루에 4명이 쓰러지고 그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그나마 예전보다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문턱이 낮아져서 그나마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노동자의 몸 속에 '물류 대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입니다.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 때문에 화물연대 동지들이 물류를 멈추고 투쟁한 것처럼, 우리 몸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보면 언젠가는 몸 속의 물류 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도록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적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야겠지요.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2003년 11월 / 통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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