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뇌심혈관계 질환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뇌·심장의 혈관에 물류대란이 일어나는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로 공사를 하거나 주차된 차량이 많아서 길이 좁아지면 차가 밀리듯이, 혈관이 좁으면 피가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게 되지요. 또한, 아무리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라고 해도 교통사고가 한 번 나면 순식간에 길이 막혀버리고 맙니다. 뇌·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요. 오랜 시간을 두고 혈관이 점점 좁아지다가 마침내 막혀버리는 경우가 있고, 갑자기 어떤 사고가 생겨서 꽉 막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혈관이 천천히 좁아지는 현상을 우리는 동맥경화증이라고 합니다. 동맥경화증은 혈관 벽의 아주 작은 흠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혈관 벽에 작은 흠집이 생기면 그걸 치료하겠답시고 여러 가지 세포들이 혈관 벽 속으로 파고들거든요. 혈관 벽을 보수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갈라진 벽에 시멘트로 땜질을 하면 자국이 남듯이, 혈관 벽의 보수 작업도 아주 매끈하게 이루어질 수 없어서 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이런 자국을 따라서 핏속의 노폐물들이 쌓이고 쌓여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혈관이 좁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혈관 벽의 작은 흠집은 왜 생기냐구요? 주먹으로 벽을 꽝! 치면 벽에 흠이 잡히듯 피가 흘러가면서 혈관 벽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흠집이 나는 경우가 있고, 핏속에 녹아있는 유해물질 때문에 화학적으로 흠집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고혈압, 흡연, 고지혈증이 동맥경화증을 잘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라고 하는데요. 혈압이 높으면 그만큼 피가 세차게 흐르니까 혈관 벽에 물리적인 힘이 많이 가해지기 때문에 혈관 벽에 흠집이 잘 생기고, 담배를 피우면 핏속에 일산화탄소가 많아지는데 일산화탄소가 혈관 벽에 화학적으로 흠집을 내기 때문입니다. 또, 고지혈증은 핏속에 지방 성분이 많은 상태를 말하는데, 이러한 지방 성분이 혈관 벽의 흠집에 자꾸 들러붙게 되어서 혈관을 좁힌답니다.

자, 이번에는 혈관이 갑자기 꽉 막혀버리는 경우를 살펴봅시다.
이런 경우는 몸 속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찌꺼기 덩어리가 피를 타고 흘러오다가 혈관이 좁아지는 곳에서 그만 탁 걸려서 혈관을 틀어막아버리는 것인데요. 이런 찌꺼기 덩어리를 '혈전'이라고 하고, 혈전이 흘러와서 혈관을 막아버리는 현상을 '혈전색전증'이라고 합니다.

혈전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시냇물이 흘러가다보면 물길이 구부러지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곳에서 쓰레기나 수초 따위가 더 이상 흘러가지 않고 모이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피가 흘러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각종 찌꺼기들이 모여서 덩어리져서 혈전이 되는 것이랍니다. 심장에 부정맥이나 판막질환 등의 병이 있으면 피의 흐름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혈전이 잘 생깁니다. 또, 큰 수술을 받은 뒤에 너무 오랜 시간동안 가만히 누워만 지내면 다리의 혈관 속에 덩어리가 생겼다가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멀쩡하던 사람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혈전이 생길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장시간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여행한 뒤에 생기는 혈전증으로 '일반석 증후군(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이라고 부릅니다. 돈 많은 부자들은 널찍한 특석에서 안락하고 쾌적한 비행을 즐기는 반면, 서민들은 비행기 좌석 중에 제일 값이 싼 일반석을 이용하느라 비좁고 불편한데다가 때로는 혈전증으로 목숨을 잃어야 하다니 이거야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이제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과정은 대략 이해가 되셨나요? 이제 이런 딱딱한 이론들은 그만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뇌심혈관계 질환의 원인과 위험 요인은 무언지, 특히 노동자의 뇌심혈관계 질환은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2003년 12월 / 통권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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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21:33 2005/01/10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