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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누가 명절에 외국에 놀러가나 했는 데...

나두 그만 그 대열에 끼게 되었다.

 

설 명절을 끼고 중국의 항주-소주-상해-북경에 다녀왔다.

중국에 특히 상해에 꼭 가보고 싶었다.

 

자금성-이화원-만리장성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규모의 기념비적인 유적들과

뉴욕의 맨해튼을 능가하는 상해의 스카이라인이 장관이었다.

 

하지만 개방에 나선 사회주의권 나라에서 보게되는 

안타까운 풍경들에 가슴이 아픈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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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송이가 달려와 안기는 데

엉~ 얼떨결에 보니

송이가 또 한 놈 달려오는 게 아닌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송이의 또다른 잠옷을 입은 송이의 단짝 친구가 아닌가...

(약간 취중이긴 했지만...)놀래라~

 

단짝 친구 소혜가 2월에 미국으로 이사를 간다는 데...

송이의 슬픔을 어떻게 달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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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토요일과 일요일 1박2일로 가족모임이 있었는 데...

일요일 아침 온천욕 오가는 길에

아주 천천히만 걸을 수 있는 엄니를 업었다.

 

40Kg가 안되는 엄니는

누가 볼까 무섭다고...한사코 업히기를 거부했지만

추운 바람을 핑계로 업어드렸다.

 

30여m를 걸어가는 중에

엄니는 무겁지 않냐며 몇 번이나 어서 내려달라 하셨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 나타나기 전에 내려 아주 천천히 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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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리고 내일

희망제작소 목요희망포럼에 갔다.

2004년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3주간

미국의 싱크탱크-언론사-대선현장을 둘러 본 얘기중

싱크탱크를 탐방한 얘기와 현재 싱크탱크 설립 움직임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였다.

 

글쎄 무슨 얘기들을 제대로 알기나하면서 지껄인건지...-..-

참여하신 20여분들의 시간만 뺏은건 아닐까 걱정.

암튼 끝나서 다행.

 

내일은 아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야호 ~



 

ThinkTank 운영에 대한 고민들


김경순(코리아연구원)


Ⅰ. ThinkTank ?


1)ThinkTank(두뇌집단)은 두뇌들을 조직적으로 결집하여 조사·분석 및 연구개발을 행하고 그 연구성과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주장이나 입장(position)에 머물기 보다는 대안제시가 담긴 연구성과물로 말해야 싱크탱크.


2)학회 등 학술연구소처럼 아카데미즘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정책 및 전략 연구수행... 국내외 정책제안을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공익기관(公器). 


3)싱크탱크는 토론의 결과들을 정책문건이나 출판을 통해 관심을 집중시키거나 정책개발을 통해 정부에 정책을 권고하고 입안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적극적인 정책의 전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  또한 흔히 회전문현상이라고 얘기하듯 정책전문가로서 직접 정부에 참여하여 정책을 실행하는 것도 미국에선 자연스런 일임.



Ⅱ. 싱크탱크 백화제방시대 ?


1)안민정책포럼-평화포럼-미래전략연구원-대안정책연대-뉴라이트싱크넷-좋은정책포럼(연구성과 생산  어려움)


2)동아시아연구원-코리아연구원(사실상 구멍가게 수준, 걸음마 수준)


3)희망제작소-새사회전략연구원?


*참여연대나 경실련으로 대표되는 NGO백화제방시대 넘어...대안제시 기능 중요 때문.

**여의도연구소-열린정책연구원-진보정치연구소(당리당략과 단기전략, 경력관리)

***삼성경제연구소-LG경제연구소-하나금융경영연구소-자유기업원(기업 이익에 복무)

****KDI, 외교안보연구원, 통일연구원, 조세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중장기비전을 다루기보다는 정부부처의 부속물로 전락, 학제적 종합적 연구 미흡)



Ⅲ. 포럼-싱크넷-싱크탱크 ?


1)포럼(최소의 사무처/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 및 연구자들의 다양한 스펙트럼 공존 가능한 열린 구조)


2)싱크넷(기획・관리형 사무처/ 비교적 일정한 스펙트럼의 연구자 및 전문가 네트워크) [코리아연구원, EAI]


3)네트워크형 싱크탱크(상근 연구기획자/ 기획・관리형 사무처/ 연구자 및 전문가 네트워크) [Independent Institute, "코리아연구원의 중기모델"]


4)싱크탱크(상근 연구자 중심체계/ 기획관리형 사무처) [Brookings Institute 등]


*싱크탱크를 어떤 형식으로 설계할 것인지는 준비 및 조건에 맞게 설계할 필요.

**새사회전략연구원의 경우 십일조를 내는 법인회원이 조직의 근간인 점이 특징



Ⅳ. 희망제작소의 설계 관련 ?


1)설립 이념에 표현된 독립성-대안성-참여성-실용성-종합성-지역성은 좋은 지향점이며...이를 구현할 조직구조(이사회-연구진-연구지원 관계) 및 수익구조 설계가 중요.


2)설립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주요사업으로 창안 사업-뿌리 사업-대안 사업-미래전략 사업-지혜창고사업은 우리 사회 누군가가 해야 할 중요한 사업 영역임에 분명하나 조직의 준비정도와 조건에 따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할 수 없으므로 종합연구소를 지향하더라도 특히 미래전략사업의 경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


3)상근하는 전문연구자와 비상근 연구자( 및 넓은 의미의 전문가)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조직구조 설계가 필요해 보임.  우리 사회에 산재한 뛰어난 전문역량을 효과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유인할 방안 연구필요.



Ⅴ. 보고 싶은 연구보고서 ?


“우리 사회 전체가 지나치게 명분, 허상, 거대담론, 추상적 논리에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미시적·실증적 접근을 하는 구조와 풍토를 만드는 것이 희망제작소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한국사회의 비전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통일이후 평양을 어떻게 디자인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데 무슨 싸움이 필요하겠습니까.” [박원순 변호사님/ 문화일보 인터뷰 2006/1/5]



-실증적인 데이터 검증과 분석에 기반한 연구보고서

-정책대안 및 정책제안이 꼬리가 아닌 몸통인 연구보고서

-정책수립과 예산대책의 상호관계와 정책에 따른 효과예측이 있는 연구보고서

-case by case로 접근하되, 나무와 숲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연구보고서


[ ※참고자료 : 미국의 싱크탱크 탐방기 발췌본 ]


▣ 미국대서양협회(The Atlantic Council of The United States)


대서양협회는 ▶대서양관계 프로그램 ▶국제안보 프로그램 ▶에너지, 환경 경제 프로그램▶아시아 프로그램 ▶다음세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주요정책과제를 다루는 협회로 상근자는 2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면담자와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서양협회의 특이한 점은 100여명으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고, 이사진의 역할이 재정운영 뿐만 아니라 특정정책을 평가하고 정책제안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과 상근연구자는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협회에서 특정정책을 만들어 낼 때는 정파나 정견 등을 떠나 특정분야 최고전문가를 모두 모아내고, 최종 정책보고서를 발간할 때, 입장이 통일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모두 병기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장점은 정파나 정견을 떠나 신뢰할만한 전문가를 모두 망라하므로써 최고의 권위를 확보할 수 있고 정부정책 및 공론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형성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책형성과정에서 토론을 통해 정책과 공론의 통합을 도모한다고 한다. 

면담에 응했던 전문가는 케리가 당선되길 원했지만 부시가 재선되더라도 부시 1기때의 대북정책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대북정책과 많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연히 부시 2기의 대외정책 전반 또한 중도주의, 합의주의로 선회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네오콘들이 대외정책부서를 장악할 경우에는 일방주의와 흑백이분법적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바빠서 통역하는 동안이라도 짬을 내어 다른 일을 처리하며 세계 속의 미국의 입지를 걱정하는 그를 뒤로 하고 나왔다.  부시의 선제공격독트린으로 표현되는 대외정책에 대한 질문에서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한 전문가를 생각하며 걸어서 호텔로 왔다. 



▣ 진보정책연구소(PPI :Progressive Policy Institute)


워싱턴포스트신문사를 나오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지하철을 타고 진보정책연구소(PPI :Progressive Policy Institute)로 이동했다.  PPI는 워싱턴의 외곽 흑인거주지역에 있었다.  PPI는 명성보다 작은 규모의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었다.  16년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20~30여명의 상근연구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PPI의 소개 리플렛에서 앨 고어는 “PPI는 우리시대의 생각과 행동의 가장 중요한 센터다”라고 쓰고 있듯이 PPI는 클린턴의 집권과 더불어 제3의길로 잘 알려져 있다. 


PPI는 80년대 중반 공화당에 패배한 이후 설립되었고, 복지, 세제, 예산, 환경정책 등을 검토하며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경제번영과 사회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제3의길을 정의하고 발전시켜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PPI는 ▶새경제에서의 기회 ▶기술과 혁신 ▶신경제에서의 무역 ▶사회안전망의 현대화 ▶건강권  ▶미국과 세계  ▶혁신과환경센터  ▶21세기 학교  ▶노동과 권리 등의 제3의길의 생각과 전략을 반영한 프로젝트 등을 주로 수행하는 싱크탱크임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면담자는 클린턴행정부의 통상분야에서 일했다고 했다.  클린턴행정부의 제3의길 정책 이후에도 미국은 부익부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면담자는 클린턴 이후에는 부익부현상은 맞는 데, 빈익빈현상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제3의길 정책으로 미국은 성장을 구가하고 기회의 형평성의 문제는 대체로 해결되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설명은 비이민자는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빈곤층을 이민자, 불법체류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도 미래의 미국인으로 분류하지 않는 방식에 대해 나는 수긍하기 힘들었다. 


나는 싱크탱크와 정부 및 정당과의 관계 그리고 정책의 전파방법 등에 대해 주로 질문을 했다.  면담자는 싱크탱크들은 주로 정책보고서를 만들어서 전파하고 있고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활동유형을 소개했다.  ▶입법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슈들에 대해 대안을 만들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관련분야 의원에게 자문하는 방법  ▶특정 정책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정리하고 법안의 기조까지 제시하는 방법  ▶민주당과 밀접한 관계를 활용해서 상하원이 모이는 협회 등에서 브리핑하고 제안하는 방법  ▶정책담당자와의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직접 자문하는 방법 등 활용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싱크탱크에서 개발한 아이디어를 현실정책화한다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D기관에 브루킹스나 헤리티지의 운영에 대해 벤치마킹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브루킹스에 가게 되었다.   브루킹스는 호텔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고 거의 매일 그 앞을 걸어 다니며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브루킹스는 단독건물을 보유하고 있고 그야말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브루킹스에 9시에 도착하여 1층에서 기다리니 맘씨 좋은 누님 같은 분이 면담자로 나왔다.  이 분을 따라 면담장으로 올라가 대략적인 브리핑을 듣고 곧바로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브루킹스라는 개인의 사재를 종자돈으로 출발했고, 정부로부터는 그 어떤 기부도 받고 있지 않고 90년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기금은 주로 재단, 기업, 개인들이 내고 있으며, 브루킹스의 이사장이 50% 이상의 기금을 끌어 모은다고 했다.  270여명의 연구자 및 직원을 거느린 브루킹스의 예산운영은 재단양여금(25%), 개인기부금(25%), 기업기부금(15%), 외부재단(35%)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브루킹스라고 그냥 저절로 기부금이 들어오지는 않으며, 최근 들어 기부금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사진 및 각종 네트워크를 통해 각 기업의 어떤 부서 누구와 접촉하여야 할 지 사전에 준비하여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이런 역할을 위해 이사진들의 적절한 인맥이 매우 중요하고 성공한 기업인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기부를 유도하기도 한다.  물론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하지만 기부금이 연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항상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브루킹스가 정부로부터 받는 기부금은 아무것도 없는 데, 단 한 가지가 공공정책교육과 관련하여 정부관리들을 위탁교육하는 경우 교육등록비만 받는 등 기부금에 있어서는 정부와는 극히 제한적인 관계라고 했다.


이사장과 대표를 선임하는 절차는 이사회와 스텝 등으로 영입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인사를 물색하여 이사회에 추천하면 이사회가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했다.  사실 이런 질문들 즉, 기관의 사익추구를 막기 위해 어떤 제도적인 절차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면담자의 반응으로 봤을 때 좋은 질문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5년이면 연구소 설립 100주년이 되는 전통있고 명망있는 연구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싱크탱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의 사익추구를 막기 위한 절차적이고 제도적으로 틀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올바른 정책과 전략을 생산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이 가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한편 브루킹스에서 일하다가 정부나 정당으로 진출하고 그 직이 끝나면 되돌아오는 이른바 회전문현상이 매우 자연스런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싱크탱크는 정부나 정당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이익이라는 견지에서 정책을 만들고 제안하고 실행되도록 여러 경로로 노력한다고 한다.  인터넷홈페이지, 이메일, 세미나, 정책보고서, 컨퍼런스페이퍼, 저술활동, 미디어브리핑 등등을 통해 브루킹스의 생각을 전파한다고 한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 TV방송국과 직접 연결되어 생방송 인터뷰나 브리핑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경시켜 주었다.  면담자는 현관까지 나와 배웅하면서 필요한 자료나 의문사항은 이메일로 언제라도 물어보라며 밝게 웃는다.  우리도 민간영역에서 이런 정도의 싱크탱크들이 생겨나고 좋은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상호 경쟁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디펜던트연구소(Independent Institute)


아침 일찍 인디펜던드연구소로 향했다.  이례적으로 대표와 대표적인 연구자가 면담자로 나왔다.  3명의 상근연구자와 140여명의 비상근연구자 그리고 20여명의 상근직원이 운영하는 비교적 단촐한 연구소였다.  연구소 명칭에 굳이‘인디펜던트’를 넣은 이유를 질문했더니 싱크탱크의 독립적인 운영을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동부지역의 싱크탱크들은 사실상의 로비집단에 가깝다 평가 했다.  이 연구소는 연구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의 관계를 특히 독립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름에도 독립을 넣었고 그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액 민간영역의 기금으로 운영하며, 정부에서는 전혀 예산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주로 재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이사회 구성원 중 한 사람이 현재 연구소의 대표를 겸하고 있었고, 연구소의 대표는 10여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출한다고 했다.


참 독특한 연구소였다.  어쩌면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런 구성이 초기모델로서는 가능한 모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거액의 기부자가 없는 조건에서 연구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소수의 상근연구자와 상근직원으로 비상근 연구자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방식이었다.  상근연구자들은 연구기획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이런 기획에 따라 여러 비상근 연구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형태였다.  또한 상근직원들은 연구프로젝트와 다양한 기획프로그램을 실무적으로 지원하고, 홍보하고 출판하고 기부금을 모으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였다.  특히 지적풍토가 빈약한 한국의 현실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주로 전개하여 신뢰와 명성을 쌓는 이 연구소의 활동모델은 싱크탱크를 정착시킬 수 있는 매우 유용한 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초적인 활동에 기반하여 동부지역 싱크탱크들의 활동과 규모로까지 점차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발전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반도의 문제에 대해서도 면담에 나온 연구자는 북미 상호 불가침협정 체결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Asia Pacific Center for Security Studies)


겨울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에 갔다.  2명의 전문가가 나왔다.  이 연구소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나는 테러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는 데, 원칙적인 답변만 되돌아 왔다.  면담자는 6자회담에서 미국과 한국과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이 통일되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협상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은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선택지로 놓고서 협상하나 한국, 중국, 일본은 북한의 정치적 존재를 인정한 가운데 협상을 한다.  또 미국은 협상에서 강경책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협상테이블에 올려 놓고 협상하는 데, 한국-중국은 미리 강경책을 배제하고 시작하는 바람에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과 한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기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기여하는 방법으로는 미국과의 공조를 당연히 말했다.


면담자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것으로 보는지와 국방백서에 주적이 삭제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했다.  한국 국회의 여야 구성과 준비정도 및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았을 때, 아마도 열린우리당의 희망대로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대체입법으로 타협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도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존속하기는 여론이 부담스러울 것이고 찔끔 개정을 하더라도 뭔가 노력하는 흉내라도 내리라고 말했다.  또한 국방백서에는 주적이란 표현은 삭제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그동안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50년 이상을 살아온 나라가 쉽게 바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연구소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43개 국가의 인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각 국의 국방부, 외교부, 경찰 등 분야의 인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12주간 진행되는 중간간부프로그램, 4주간 진행되는 하급간부 프로그램, 고위간부 프로그램으로 세분화되어 진행된다고 한다.  또한 광범위한 의제로 컨퍼런스도 개최하고 있다고 했다.  컨퍼런스는 연간 10~12차례 진행하여 약 92회를 개최했고 65개국에서 5,8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내년 3월에는 북핵문제를 의제로 컨퍼런스를 진행한다고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 엘리트들을 교육하고 네트워크를 만든다고 했다.  즉, 태평양사령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미국의 정책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졸업생들은 미국의 친구가 되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확산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한국의 엘리트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가 새삼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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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싱크탱크의 붐을 넘어 싱크탱크 백화제방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의 싱크탱크운동은 연구자네트워크 수준이었다면

박원순님이 준비하는 희망제작소와

손석춘님이 준비하는 새사회전략연구원은

10여명의 상근 연구자와 10여명의 연구지원체계를 갖춘 어엿한 싱크탱크로 준비되고 있고

이와 더불어 통합논의 또한 활발해지고 있다.

 

안민정책포럼-국가경영전략연구원-평화포럼-평화네트워크-대안정책연대-미래전략연구원-동아시아연구원-뉴라이트싱크넷-코리아연구원 등이 있었지만 다들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러 온 게 사실이다.   예산을 퍼부어 온 정당연구소와 기업연구소들은 다른 존재의 근거가 있었다.  정부의 예산을 받는 연구기관들은 연구자율성에 기반하여 중장기비전을 다루기보다는 부처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생각이다.

 

싱크탱크 또한 우리 사회의 지형을 반영하는 거라지만 

거대담론을 다루던 좌우로 나뉘어 이념논쟁을 주로 하던간에.....

거대담론에 머물거나 포지셔닝에 머무는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양보하여 거대담론이나 추상화된 이념문제를 다루더라도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출발하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상호간에 너 죽고 나 살기가 아니라면

(과연 가능할것인지는 모르겠으되.....)

논거와 사실적 근거에 기반하여 토론하고 대안제시를 위해 경쟁한다면

이른바 '반동수구'에서 '빨갱이할애비'까지 모여 앉더라도

생산적인 뼈다귀 하나라도 건질 수는 있지 않을까?

 

싱크탱크운동을 지향한다면...문제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르게 인식하고

각각의 케이스별로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과 기대효과가 있을 것인지를

이를 위해 예산이 어떻게 소요되며 줄이거나 늘릴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정책이 미칠 단기적 장단점과 중장기적인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을 타산한 가운데 

실천적 정책대안과 중장기 전략을 만들어내고 제시하려는 진지한 노력에 있다.



<문화 초대석>

“사회 미래 그리는 ‘설계자’가 천직”

‘희망제작소’ 3월 창립 추진 박원순 변호사


 그는 원래 인권변호사로 불렸다. 제도개혁을 집요하게 외치는 시민운동가로도 유명하다.‘1%나눔운동’을 선도한 기부문화의 전도사로도 자리매김된다. 이쯤 열거하면 그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박원순 변호사.


그가 또한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새로운 구상 가다듬기를 끝내고 그것의 실천에 나섰다. 이른바 ‘희망제작소 운동’이 그것이다. 문화일보는 4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동일빌딩 4층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서 박변호사를 만나 새로운 구상 등을 들어봤다.


―‘희망제작소’운동이란 뭘 말하는 것입니까.


“오는 3월 창립 목표로 하나씩 하나씩 준비중입니다. 크게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리는 일이지요.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이면서도 작은 영역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에 있을 때 독립 이후의 팔레스타인을 디자인하는 내용이 뉴욕타임스에 한 페이지 넘게 나온 것을 보고 감명받았습니다. 우리도 지금 누군가는 통일 이후의 평양을 디자인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독일통일이 50년대 동방정책부터 시작됐는데도 아직까지 혼란과 불안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미래사회의 디자인운동이라 부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자기 지역을 잘 만들어보려는 시장, 군수 등 단체장들과 함께 평생교육타운, 예술타운 같은 도시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도시를 새롭고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사회적 공헌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한호림이라는 캐나다 교민이 전세계를 다니면서 간판만 찍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간판이 얼마나 엉망입니까. 외국에 다니면서 이런 아이디어들을 모아 체계화하고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좋은 정책으로 만들어내면 사회가 한층 업그레이드되지 않겠습니까. 단지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이전만으로는 지역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화, 예술, 교육이 함께 따라가야 하는 것이지요. 노무현 정부에 기대보다 실망이 많은 이유는 정부를 맡았던 사람들의 아이디어 준비가 덜 돼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고요. 정당연구소를 보면 국고보조로 30억~40억원씩 쓰는데 거기서 생산되는 게 뭐가 있습니까.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이 연간 150억원을 씁니다. 그 10분의1만 있어도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


―변호사님께서는 워낙 다양한 일을 해오셨습니다. 직업을 무엇으로 분류해야 됩니까.


“(웃음)공무원도 잠깐 했죠. 검사, 등기소장도 했고. 다양한 직업과 직위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도위원이고, 포스코 사외이사입니다. 본의는 아닌데 자꾸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외국에 많이 다니면서 ‘진짜 내가 원하는 직업이 뭘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외국의 제도나 경험을 반영해서 한국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 설계자(social designer)’가 나한테 맞는 일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에 가 보니 어린이 놀이터 하나에도 창의력을 키워주려는 고민이 들어있었습니다. ‘사회적 창안’이야말로 21세기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창안적 수요를 감당 못하고 오히려 획일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결국 진리는 현장에 있습니다. 지방의원이 외국에 나가면 시민단체에서 시비를 걸곤 하는데, 전 많이많이 나가봐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디어 하나 얻어온다면 여행경비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시민운동의 활동공간을 넓혀오면서도 새로운 영역에서마다 성공했습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80년대 ‘정의와 양심을 표현하다 감옥 간 사람들을 돕는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습니다. 87년 6·29선언이 나왔지만 하루아침에 사회가 바뀌지 않더군요. 회의가 들어 2년간 영국유학을 갔었고, 거기에서 점진적이지만 끝없는 노력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간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생각에 천착하게 됐습니다. 돌아와 시작한 것이 참여연대 활동입니다. 제도개혁에 매달렸습니다. 15대 국회 때 참여연대 사무처장 하면서 78개 법안을 청원해서 절반 정도가 발의됐습니다. 그 중에 부패방지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두 가지는 정말 중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했고, ‘비슷한 운동을 또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 의식개혁운동을 생각했습니다. 의식개혁이 제도개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생활 속에서 쉽게 참여할 방법을 고민하다 ‘아름다운 재단’의 ‘1% 나눔’ 운동이 나왔고, 그 다음이 ‘아름다운 가게’였습니다. 헌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운동이지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슈를 끄집어내 사회운동 테마로 조직하는 모습을 보면 카피라이터의 감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공익을 고민하는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선비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유구한 전통이 있습니다.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지금 사회는 그런 저항적 지식인의 역할과 더불어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대안제시가 중요합니다. 카피라이터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운동도 재미있어야하고요. 같은 유인물을 내더라도 ‘삐라’처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가 잘 되고 나면 재미가 없어져서 다시 새로운 것 찾아나서곤 합니다. 잘 안되는 것을 찾아가서 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추상적 담론과 이념적 갈등을 접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오셨지요.


“우리 사회 전체가 지나치게 명분, 허상, 거대담론, 추상적 논리에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새로 생겨난 ‘뉴라이트’가 제시하는 것에 실체가 있습니까. 첨예하게 대립되는 북한인권이나 국가보안법 문제에 과연 답이 없을까 하고 국회에서 모든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다놓고 논의한 적이 있습니까. 쓸데없이 싸우다가 어떤 날은 한 줄도 안 고치고 법안 100개씩 통과시킵니다. 한꺼번에 통과시킨 날 의원들에게 몇 개나 기억하는지 한번 물어봐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달라도 미시적으로는 의견을 공유할 부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미시적·실증적 접근을 하는 구조와 풍토를 만드는 것이 희망제작소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한국사회의 비전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통일이후 평양을 어떻게 디자인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데 무슨 싸움이 필요하겠습니까.”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할 생각은 없습니까.


“DJ 정부때부터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민정수석, 감사원장, 최근에는 과거사위원장 해달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는 다른 분이 들어가도 됩니다. 성철스님 돌아가신 직후 언뜻 생각해보니 그분은 산 속에만 계셨는데도 ‘도’의 경지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아직은 자유롭게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을 ‘나눔운동’이라는 소극적 방법으로 풀 수 있겠습니까.


“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술, 정보 격차로 인한 시대의 추세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투자를 통해 격차를 메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배냐, 성장이냐의 고전적 논쟁은 얼마나 한심합니까. 분배를 포기하고 성장으로 나갈 수도 없고, 성장동력 없이 사회의 후진성을 지켜만 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민간이 민간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요. 아름다운 가게 올해 매출액이 65억원 정도 됩니다. 재활용과 나눔에 관한 한 정부보다 우리가 훨씬 더 투자하는 셈입니다. 자발성이나 열정에 있어 공무원과 민간이 비교가 안됩니다. 민간을 잘 활용해서 공공 이익으로 환원시키면 지금 사회복지 예산의 몇십%는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가게’도 변화를 모색중지요.


“‘대안무역’이라고 해서 제 3세계 어려운 사람들이 생산하는 커피를 직접 사 옵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별도로 ‘아름다운 무역’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커피’를 지속적으로 사 주는 것만으로도 제3세계 사람이 취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익이 남으면 그쪽 지역에 학교를 짓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시 지원할 계획입니다. 잘만 하면 ‘스타벅스’에 도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티오피아 커피를 팔아 다시 현지에 한국전 참전용사 마을 지원에 사용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유병권·김성훈기자 ybk@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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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둘만 남았으니

연애하던 시절(?)로 되돌아 간 느낌이랄까?   ^^

 

그간 쌓인 마일리지는 평일에만 사용이 가능하니 

늦은 밤...친일시비로 말 많은 영화 '청연'을 봤다 .

 

영화 속 박경원과 한지혁이 살던 시절

그 위치에 놀던 이들은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한다하더라도

사실 '친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

 

아직도 마일리지로 2번은 더 볼 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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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어제 아이들이 3주간 캠프에 갔다.

아마도 태어난 이래 가장 긴 헤어짐일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래 5일 이상 다른 곳에 맡겨본 역사가 아직 없다.

 

아이들이 없는 집안은...

고요하다.

텅 빈듯 허전하다.

아니 지구 위에 둘만 남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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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

今日我行跡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를 읽을 때마다

생각과 말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필부중의 필부의 발자욱이 누가의 이정표가 되겠는가마는...

최소한 타자의 오류와 부족함으로부터 자신을 정당화하고 정립하는 근거로 삼기보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화이부동은 단순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하여 원칙없이 화합하기 보다는 

타자와 조화롭게 살되 의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을 일컫는다고 하니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006년 새해 아침에 반면교사와 화이부동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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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래의 빛깔

겨울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서릿발을 뚫고 솟아오르는 쑥의 새싹들의 씩씩한 빛깔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무렵 나뭇잎의 순한 연초록이 초록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빛깔

여름 저수지 둘러 싼 논들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밀밭의 초록들이 황금색으로 가는 빛깔

가을들녘 잔잔한 남해바다의 파도물결 일렁이듯 바람에 흔들리는 바라만봐도 배부른 빛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붉은빛을 머금고 한껏 부풀어 익은 청미래의 빛깔

을 좋아한다.

 

그리곤 아까운 빛깔이 하나 있다.

3일째 단식을 하던 명절날 아침

소지가 보안과 지하방 식구통으로 도르르 굴려 준

갗 세수한 아이의 뺨에 떠오른 빠알간 빛깔의 사과 한 알

그 한 알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부하던 날은 두고두고 선명한 빛으로 뇌리에 꽂혔다.

백두대간을 가다 만난 청미래의 빛깔은 그 사과의 빛깔을 닮아서 좋은 것일까?

아직도 심장에 치지직거리며 소스라치게 깊숙히 찍힌 불도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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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욱 커버린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 걸어나오던 채원이와 마주친

안해는 깜짝 놀라 채원이와 키를 재보자고 했다.

둘이 뒤로 돌아서고 재보니 분명 엄마보다 3cm가량 위로 채원의 머리가 넘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마음 깊은 채원은 엄마 키보다 자신의 키가 커지면 엄마가 실망(?)할까봐.

"히히 그럴리 없는 데...히히"...수줍어하며 키득거린다.

안해는 놀라워하면서 "어휴 채원이가 이제 엄마보다 더 크네"라며 등을 두드리며 안아준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겸 새해 선물로

옥색(채송)과 금색(채원) 도장과 여권을 만들어 주었는 데

도장과 여권을 쓸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이미 아이들이 각자의 통장을 가지고 열심히 용돈을 저축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각자의 고유한 ID를 가지고 길을 걸어갈 때 

스스로 주인되어 결정할 일들이 많아질 것임을 암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난 사실...싼타처럼 몰래 따뜻한 장갑을 선물하고 싶었었는 데...

올해부터 우리집에도 공식적으로 싼타의 선물이 없어지고 말았다.

싼타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안다는 것은

아이들이 커버린 탓도 있겠지만...그렇더라도...

게을러진 엄마아빠가 수고스럽게 몰래 싼타역할을 포기한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싼타가 다녀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어쩌면 슬픈 추억으로 기억될거란 생각도 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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