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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뜻함

* 이 글은 뻐꾸기님의 [어떻게 일상을 이길 수 있을까?]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오늘 아침은 50명 조금 넘는 규모의 공장에 가서 작업관련 뇌심혈관 질환 예방교육을 했다.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가 심혈관질환 발생을 높힌다고 설명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영세 소기업에서 '장시간 노동'은 수정가능한 위험요인이 아니므로 작업자들의 반응이 냉소나 자기비하로 흐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하는 시간외에는 쓰러져 자기 바쁜 노동자들을 앞에 두고 주당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심혈관 질환의 발생을 2배정도 높힌다는 말을 하는 것이 많이 미안했는데 요즘에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게 되었다. 장시간 노동, 교대근무, 직무 스트레스와 같은 뇌심혈관 질환의 작업관련 요인에 대한 중재(intervention)는 하기 어렵지만 계속해서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다보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이 교육을 한다. 최소한 흡연, 운동부족, 식이습관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작업장 순회점검>

 

검사작업.

그전 작업자가 숨가쁨과 두통을 심하게 호소했으나 뚜렷한 임상적 진단과 원인규명이 안되어 관찰중인 방청유 작업자는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허걱, 덤프트럭이 쌔앵 하고 달리는 국도는 정말 위험하다.

어깨에 핫팩을 걸치고 일하던 아주머니의 증상은 그만그만,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검사작업에서 제품을 고르느라 손가락이 아팠던 아주머니는 지난 번 방문때 사용법을 알려준 파라핀치료를 하루에 한 번 정도 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요즘은 물량이 많아서 한달에 한 번만 쉬고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한다고 한다. 다행히 담당부장은 인력충원 계획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건강해야지, 아프면서 일하게 하면 안되죠" 

 

CNC 작업. 절삭유 미스트가 휘날리던 작업장이 깨끗해졌다. 집진기를 설치했다. 개당 75만원인 이 집진기를 필터로 거른 절삭유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작업장이 개선되어서 기뻐하다가 한편으로 돈 천만원이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을 몇년동안 안 바꾸었다니 쯧쯧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염화메틸렌(동물실험 발암물질)을 손으로 만지면서 일하는 것이다. 이 작업자에게 보호장갑을 안 쓰는 이유를 묻자 지급된 것은 고무장갑은 녹고 목장갑은 스며들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또 하나 장갑이 손에 꼭 맞지 않아서 안전사고의 우려때문에 못 쓰겠다고 한다. 이게 발암성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했더니 퉁명스럽게 답한다." 알죠" ,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보고 적절한 재질의 손에 꼭 맞는 보호장갑을 사주라고 몇번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해결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보니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구체적인 재질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우리 산업위생사에게 보호장갑의 구체적인 모델까지 찾아주라고 메모를 남겼다.

 

  다음으로 외주업체를 방문. 약 15명정도가 유사한 공정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늘 교육에 이 사람들은 오지 못했다. 그동안 보건관리에서도 제외되어 왔고. 그래서 생산을 총괄하는 이를 만나서 기왕에 우리 팀이 여기에 오니까 건강상담이나 보건교육같은 예방활동에 참여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건강상담 - 최근 1년동안 혈압이 지속적으로 160/100을 넘는 사람이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 회사의 고위직 간부였는데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치료목적으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자주 만나기로 약속하고 보냈다. 그 동안 과로하지 말것을 당부했다. 얼마전 사무직 노동자의 경우 업무자율성이 높은 경우에는 노동시간이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덜하다는 일본논문을 읽었는데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에서도 그럴지는 좀 의문스럽다. 옆에서 담당부장이 그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 회사를 위해서라도 치료를 좀 해"

 

마무리 미팅을 하는데 우리 간호사가 담당부장한테 보건정보 게시물을 건넨다. 담당부장은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에 빨간 줄을 긋는다. 기왕 게시하는 거 하나라도 더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그의 바램이 고마뭐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분은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다. 검사작업 아주머니들 어깨 통증에 대해 오빠같은 마음으로(?) 걱정하고 물리치료기구도 사주고 한시간에 오분씩 예방체조를 할 수 있게 했고 인력충원계획도 세우고 심지어 어깨도 주물러 주기도 한다. 오늘 교육도 이분이 아니었으면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집진기와 같은 돈이 들어가는 작업장 개선도 이 분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사실 이 회사 경영진은 노동자들이 건강상담하는 시간이 아까와서 벌벌 떠는 스타일인데 이 부장님이 중간에서 조정을 잘 해주고 있어 고맙다. 사업장을 다니면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힘도 얻고 이렇게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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