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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스프레이 도장작업> - 손에 스프레이 건을 들고 제품에 뿌리는 모습. 하루종일 여기 서서 이 작업만 열두시간이상 한다.



  작년 가을, 내가 오른쪽에 있는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갓 스무살이 넘었던 그는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주성분은 톨루엔이라는 유기용제.  이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는 노출기준이내였다. 특수건강진단에서 소변으로 배출되는 마뇨산(톨루엔의 대사산물)농도는 약간 높았지만 국소배기시설에 대한 점검결과는 양호한 편이었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톨루엔 노출과 관련있는 증상이라고 판단되어 작업수칙과 건강관리방안을 설명하는데, 이 친구가 아주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는 말이,

" 전 그래도 후드가 잘 되는 곳에서 일하고 마스크도 쓰고 하는데, 제 친구는 후드가 고장났는데도 그냥 맨 얼굴로 일한 지 오래되었어요. 선생님이 좀 말려주세요"

 둘은 시골에서 같이 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하자마자 그 마을의 공장에 병역특례로 입사하여 3년째 스프레이 도장작업을 같이 해온 친구 사이였다.

  이 작업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과 소변중 마뇨산 측정을 다시 했고, 중추신경의 손상여부를 알기 위해 신경행동검사도 실시했다. 뇌손상의 초기 소견을 의심할 만 하나 유기용제와의 관련성이 높다고 할 근거는 부족했다. 

  결국 고장난 국소배기시설은 수리를 했고, 다시 점검한 결과 두 개의 배기시설 모두가 양호한 상태로 평가되어, 유기용제용 마스크(방독마스크)를 철처하게 착용하도록 하고 추적관찰을 하기로 했다. 유기용제 중독의 초기 소견이라면 노출의 중단이나 획기적인 감소로 호전될 가능성도 있으니.

  일년동안 관찰결과 호소증상은 없어졌으나 신경행동검사상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소견은 좋아지지 않았다. 올해의 작업환경측정결과와 특수건강진단결과도 양호하다. 

 

  이 친구들을 생각할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 작년에 이 사례에 대해서 토론을 할 때 유기용제 중독을 의심할 뚜렷한 증거는 없으니 관찰하자는 의견과  작업전환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이 되었었다. 내 의견은 전자였는데 그 때 우리 과의 전공의사는 벌컥 화를 내며 물었다.

" 선생님은 컴퓨터 게임 한번 변변히 해본적도 없이 지난 3년간 매일 12시간이상 유기용제 작업만 한 그 애들이 기억력과 집중력이 낮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내 지식과 양심을 걸고 판단해보건대, 잘 모르겠다.  근거들이 불충분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기억력과 집중력이 평균이하로 낮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노출에 의해 감소했는가, 혹은 노출감소에 의해 회복되는가' 이기 때문이다.

 

  오늘 가서 그 애들이 컴컴한 작업장에서 스프레이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몇장 찍었다.  한달이내에 모든 검사를 다시 한 번 해보고 보다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여 사후조치에 대한 의견을 다시 내기로 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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