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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어제는 지도 학생들과 저녁을 먹고 술도 마셨다. 눈만 깜빡깜빡 하며 말이라곤 도통 없는 막내한테 물어보니 한참 뜸들이다가 하는 말이 '중 3 때 이후로 부모와 이야기 해 본 적이 없다' 한다. 작년에 휴학했다가 본과 4학년을 다시 다니는 학생은 더 말이 없다. 



 그래도 말을 좀 한다. 이 아이는 가족들하고 떨어져 지내면서 더 친해졌다고 하는데 얼굴이 전보다 더 편해보인다. 작년에 시험기간에 도서관에 책가방 놓고 주말에 나타나지 않자 '자살설'이 돌아서 곤혹스러웠다고 하며 씨익 웃었다. 작년엔 수업도 잘 안 듣고 그랬는데 올해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한번도 결석을 안 했고 동아리 회장을 맡아서 적극적인 생활을 해보려고 한다고 하니 좋아보인다. 

 

 뭐하고 노느냐는 질문에 '비디오 게임, 그냥 혼자 있기, 놀 시간이 없다' 이런 대답들을 한다. 산에 한 번 가본 적도 없고 나이트 클럽도 한 두번 가본 적은 있지만 춤도 출 줄 모르고 노래도 안 하고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본단다. 일주일 내내 하루에 8시간 꼬박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좀 보충하고 또 공부를 한다고 한다.

 

 이 아이들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얘네들 부모들은 자식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까? 언젠가 우리 누리와 붕어도 이런 모습이 되려나?

 

  의대생들은 공부만 하다보니 작은 일에도 민감하고 조금 독특한 아이들은 견디기 힘든 점이 있다. 비싼 술 시켜놓고 아깝기도 하고 아이들이 입 꼭 다물고 나만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워 홀짝 홀짝 마시다보니 과음을 했다. 헤어질 때 목욕용품을 선물받았다. 화장품, 목욕용품, 발관리용품 등 아이들이 주는 선물은 다 비슷비슷하다. 덕분에 집에 와서 난생 처음 거품 목욕을 해 보았다. 그게 그런 용도로 쓰이는 건 진 분명치 않지만 거품이 나긴 나더라.

 

 학생들과의 만남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아주 다른 낯선 세계일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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