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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202430.html

 

그들이 금빛 메달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로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노점상을 한다는 자체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한겨레의 기사를 보면서 무엇보다 착찹한 것은,  운동을 업으로 삼아온 이들의 미래가 보장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이 늘 '사기'와 '강박'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메달 한 번 걸어본 사람 치고 무난하게 사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마누라 도망가고, 돈 떼이고, 여기저기 돈 빌려 갚지 못하다 다시 늙은 몸을 이끌고 거리의 링으로, 삶의 격투장으로 전전하는 이들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열광할 때는 언제이고, 길바닥에 주저앉으면 혀를 차대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 덕분에 뭔가 열광했다면, 그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제도를 보장할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마린 보이'도 평생 물 속에서 명예만 찾을 수 없고, '봉달이'도 아스팔트 바닥에만 몸을 올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과 국가가 열광했다면 그 댓가를 치루는 것이 옳다. 노동자도 산업의 역군이니 뭐니 하지만, 제도적 보장없이는 이 현실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웠다는 점, 운동선수도 자신의 노동력으로 열광이라는 산물을 생산해냈다는 것. 기억하자.

 

아래 글은 예전에 잡지사에 넘기려다 그만 둔 글인데, 생각이 나서 갈무리해 둔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먼저 살펴볼 영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2005)’.

아마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 중에 유일하게 ‘발차기’가 없는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 물론 권투는 하지만 권투영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권투경기 장면이 썩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최민식의 몸이 무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올드보이’에서 만두를 15년간 먹어서 그런가.

 

여하간 이 영화는 신인왕전이라는 계기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고 새로운 인생역전을 꿈꾸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태식(최민식)과 상환(류승범). 영화가 끝나도 그들의 인생에는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더 있을지 모른다. 영화 속 134분의 삶은 끝을 맺지만 현실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영상언어가 현실의 삶에 던져주는 메시지. 이 영화에서는 관객의 아가미를 끝까지 틀어쥐고 호흡을 곤란케 하기도 한다.   

 


강태식

43살 태식이는 북경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다. 허나 도박 좋아해서 돈 다잃고 무허가 부지에 세운 공장마저 불나서 빈털터리 신세가 된 강태식. 결국 길거리에서 자영업자로 나선다. 태식의 사업아이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만원에 ‘남자는 1분, 여자는 2분’ 동안 인간샌드백 되기. 자기 실력 믿고서 하는 건 말릴 수 없다. 그러나 말려야 한다. 실연당한 ‘최홍만’같은 이가 태식에게 만원을 건네는 순간 사업은 자동적으로 접히게 마련이다. 물론 인생도 자연스레 접힐 수 있다. 더군다나 남의 집 가게 앞에서 그런 장사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자, 여기서부터 영화 속의 인물을 현실로 끄집어 내보자. 나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영화 속의 인물을 만나보자.

 

태식은 일단 빚으로 인해 압류를 당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빚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파산신청’을 할 수도 있다. 돈 안드는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일단 상담을 좀 받을 필요가 있다. 특히 도박빚. 요거요거 문제다. 그러나 걱정말라. 도박빚이야 민법 제746조에 의해 ‘불법원인급여’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잃은 돈을 받을 수는 없지만 진 빚을 갚을 필요도 없다.

 

다음으로 태식이 고용보험에 가입을 했더라면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실업급여는 물건너 간 것 같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퇴직전 18개월 중에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실업급여는 물건너 간 것 같고.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이 세계대회 등을 출전해서 메달을 목에 걸게 되면 대회의 규모와 메달색깔에 따라서 연금액이 달라진다. 휴, 태식이는 지질이도 복이 없다. 올림픽 동메달이면 20점으로 간주해서 한 달에 약 30만 정도의 연금이 지급된다. 근데 아시안 게임의 경우 동메달이면 1점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연금혜택 없다.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만 20개는 따야 겨우 한 달에 30만원 받는다. 인생,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냐.

 

태식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 물론 신인왕전 끝나고 좀 쉬어야 된다. 쥐어 터진 얼굴하고 일터로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선 실업자 태식은 가까운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겠다. 기술이 있어야 뭐든 먹고 산다. 주변의 친구들은 태식과 같은 친구를 돕기 위해 소주 한 잔 사주는 것보다 고용지원센터에 데려가는 편이 낫다. 몸뚱아리 하나 잘 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자. 매맞고 돈버는 것, 태식이를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아넣는 것임을 명심하자.

 


유상환

소년원 화장실에서 우유와 빵을 허겁지겁 입 속에다 쑤셔넣으며 아버지(기주봉)의 편지를 든 장면. “애비 군대있을 때 생각나서 단 것 좀 보낸다”는 편지의 한 구절. 그리고 눈치보며 빵과 우유를 먹을 것을 예언이라도 한 듯이 ‘소화제’까지 보낸 아비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이런 것일까. 천방지축 날 뛰는 자식를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이 우선해야 할 사랑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소년원까지 내몬 부모의 왜곡된 사랑도 가슴을 휘젓는다. 그리고 상환의 아비는 건설현장에서 거푸집널 덩이에 압사당해 목숨을 잃는다.

 

상환이도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신인왕전이 죽은 아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권투는 하나의 돌파구이자 자기치료의 과정이지 않을까. ‘투사(projection)’의 과정일 것이다. 프로이드(Freud)의 말을 빌려보면 공격성이 강한 사람을 권투를 통해 그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완화한다던가, 관음증이 있는 사람에게 누드그림을 그리게 하여 관음증을 다른 욕구로 승화시키는 등을 ‘투사’라고 한다. 상환이의 신인왕전 등장에 대해 한 스포츠 신문에서도 ‘링 위에서 쓴 참회록’이라는 헤드라인은 굵게 뽑아낸 이유도 이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쓰러지셔서 수술비까지 마련해야하는 할머니를 생각한다면 우선 아버지의 산재처리를 고려해야 한다. 말은 선뜻 꺼내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감방에 있는 몸이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행형법 제44조에 의해 직계존속이 사망한 경우에는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 이 영화에서는 상환은 19세이므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다. 그래도 외출이 가능하다. 소년원법 제19조에서도 직계존속이 위독하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외출이 허락된다. 다만 외출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빠르게 사건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구비서류는 유족보상청구서,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 사체부검소견서(사인 미상인 경우), 주민등록등본 1통, 호적등본 1통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또 시간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상환의 아버지는 산재사망이 명확하므로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얻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 한국공인노무사회 홈페이지(www.kcplaa.or.kr)에는 당직노무사가 정해져 있으니 상담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자. 그리고 상환아, 이번 신인왕전이 끝나고 출소하면 제발 사고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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