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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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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요즈음 즐기고 있는 잠자리 의식이다.
목욕을 마치고,

적당히 하루의 일과가 끝나가는 시간이 되면

나는 아이에게 이모 방에 가서 책을 가져오라고 한다.

 

어떤 때는 어제에서 이어진 이야기가 궁금하여 기대에 차서 이모 방에 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좀 더 놀고 싶어서 가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책을 읽는 것은 이어지는 잠자리에 들기 위한 예고가 된다.

 

아이가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책을 가져오고 나면

나는 꽤 무게가 나가는 책을 내려놓고 엎드려 어제 읽었던 부분을 펼친다.

그 사이에는 아슬란님의 얼굴이 그려진 책의 설명서가 끼워져 있다.

나는 가끔 사자의 황금색 갈기와 초록색 눈을 한참 들여다 본다.
아이가 엎드려 나와 함께 책을 들여다 보면

나는 아이가 이야기에 빠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베란다로 향한 덧문을 닫겨져 있고,

거실의 불을 꺼져 있고,

방 바닥에서는 적당한 온기가 느껴진다.

아이는 푸우를 안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책의 두께.. 그리고 이것을 읽어나갈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 작은 기대를 가진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이야기가 언제쯤 다 끝날 것이며

이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엔 아이가 얼마나 자라있을지 속으로 가늠해 보기도 한다.

 

아이는 늘 한장이 끝나면 ‘한번만 더..’

내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나는 하루에 두 꼭지씩을 읽어준다.

그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긴 규칙이다.

나는 물을 한 컵 떠다 놓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피곤한 날은 속도를 좀 빠르게 읽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행간에 여유를 두고 천천히 읽기도 한다.

한참을 읽다가 아이가 듣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그때 아이는 "그래서?" 라고 물으며 빨리 읽어주기를 요구한다.

 

나는 이야기에 빠져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나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시간을 따뜻한 느낌으로 기억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행위가 오늘 나의 엄마 노릇의 마지막이라는 것도 날 느긋하게 만든다.

 

두 꼭지의 마지막 부분까지 읽고 나면,

우리는 다음 장의 제목과 삽화를 살펴본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나면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잠자리 의식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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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4 00:29 2006/04/1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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