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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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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태어난지 이.삼년된 아가들과 지내고 있다.

 

나는 내가 좋은 교사인지 늘 고민한다.

아니.교사란 어휘가 이 사회에서 가진 상징적인 의미가 싫어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에 좋은 어른인지 늘 고민한다.

 

보통 유능한 교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일과를 유연하게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거기다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좋은교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능한 교사'라거나 '좋은교사'라는 애매한 기준보다 '행복한 교사'라는 기준을 선택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나는 행복한가? 나와 지내는 아이들은 행복한가? 라고 나에게 묻는다.

 

노동자인 나의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여러가지 요인들 중에서 내 스스로 조절이 가능한 항목은 별로 없다. 그나마 내가 속한 공간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과 나의 관계이다.그래서 내 고민은 이곳에 집중한다.

아이들과 나.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으면 고양이가 물어 가고.

낮잠을 안자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가는데 그러려면 소나무에 잠자지 않는 아이를 걸어 놓아야 한다.

지하실에 내려가면 지하도깨비가 있어서 아이들은 지하실에 가면 안된다.

밥을 안먹으려고 하면 그 밥을 빼앗아가려고 창밖에서 기다리는 지빠귀가 있다.

아이들은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으며,

함께 지내는 어른들은 그 귀신들로 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다.

 

게다가 아가처럼 굴면 형아가 될 수 없어서 큰반으로 올라갈 수 없고.

반대로 아기가 되어 작은반으로 내려 갈 수도 있다.

이를 안닦으면 곰곰이 벌레가 이를 다 파먹어버린다.

손가락을 빨면 손가락이 다 달아져서 없어진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전달할 뿐이다.

'자율적인'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에 엄마와 헤어지기 힘들어서 현관앞에서 들어가기를 저항하는 아이 옆에 앉아

닥친 현실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며 위로를 하고 있는데 대문이 스스르 열린다.

아무 생각없이 "어 아무도 없는데 대문이 왜 열리지?"하고 말했다.

아이는 공포스런 얼굴로 두말도 없이 재빨리 현관으로 들어간다.

이제 태어난지 삼년이 된 그 아이의 머리속에서 재빠르게 일어난 연상은 굳이 유추해석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좀 살만한 곳이어야 하는데....

 

그래서 난 일상적으로 일과를 유연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이러한 언어들에 '공갈협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상에서 사실이 일목요연하게 들어나고, 그것의 목적과 효용을 확인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하는 행위의 의미를 명확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행위를 인식하면서 그 공간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귀신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이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마음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밥을 안먹으면 나중에 줄 수 없는데 그럼 이따가 배고파서 어떻게 놀겠니"

"지금 안에 친구들만 있어서 나는 너를 더이상 도와줄 수 없는데 빨리 들어가자"

"니가 지하실에 내려가면 위험한 것이 많은데 난 니가 다치는게 싫다."

기타등등..

 

"도깨비 온다" 한 마디면 될 상황에 긴 이야기를 늘어 놓아야 하니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더 분주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다.

목도 아프고 힘도 더 든다.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의 전후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다. 그 아이와 나 사이에 거짓은 없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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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00:35 2006/10/11 00:35

2 Comments (+add yours?)

  1. 아침 2006/10/11 01:22

    ㅎㅎ 편안한 기린이 다 되셨군요. 아이들이 겁없이 행복하게 자라는 걸 지켜보며 흐뭇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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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쭌모 2006/10/13 15:18

    아침/독립축하해요. 편안한 기린...은 아직 아닌것 같아요. 여전히 별것 아닌 일에 몇일씩 속을 태우곤 하거든요. 하지만 방법을 알고 있으니 가기는 가겠지요..보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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