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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가 며칠후에 용택이형 아이의 돌잔치에 초대받았다고 했다.

나는 실실 웃으면서 가고싶지만 내가 가면 싫어할꺼야.

안부나 꼭 좀 전해달라고 싱겁게 농을 던졌다.

마음씨 여린 배트는 한겨울에도 반바지와 쫄티를 입고

유림도 같이 가지. 라고 어색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둘중 누구도 내가 용택이형을 만나러 갈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영진위 심사결과 리스트를 보면서

정용택_타이틀 이용석이라는 첫번째 문단의 일곱째 줄을 본 그날도

오늘만큼 무심하고 무정한 날이었는데.

 

그렇게 오다가 현관문 탁자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구속노동자후원회의 신문을 무심코 보게 되고

2003. 11. 22 대전교 1959 기결 4년 구재보 금속 세원테크

3번째로 정리되어 있는 글자들을 보았다.

 

내 기억과 심장은 모두 2003년이후로 멈춰져 버렸다.

KTX를 타고 대구 동산병원에서 종모형을 만났다.

일주일째 병원복도에서 까칠하게 새우잠을 자고 있는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가 안쓰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미웠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그에 관한 장문의 모욕적인 글을 써갈겼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나를 배웅하러 나온 그에게

담배 한갑을 사주며 말했다. 형 수고하세요.

나는 웃고 있었다.  

 

4월달. 독립문역에서 그가 나를 스쳐지나갔다.

취재수첩을 들고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로 걸어나갔다.

밤새 촬영을 하고 또다시 출근하는 나는

말도 못하고 그에게 손을 뻗쳤다. 그리고 이내 뻗었던 손을 뒤로 숨겼다.

 

배트는 나에게 짜증을 부렸다.

새로운 투쟁과 새로운 이슈와 새로운 전선들이 수없이 얽혀 

그 2003년을 뒤덮고 있는데 너는 왜 그리 멈춰서있는거냐고,

배트는 마음씨가 여리기 때문에 멈춰서있다고 발화했지만

사실, 그곳에 어울리는 말은 퇴보와 정체와 또 전선이탈자.

 

그래서 배트는 크레인, 제4도크를 보면서 너무 졸리다고 말했다.

종모형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우연히 그렇게 지나치는

명확한 순간같은건 없을테다.

내가 이런방식으로 2003년도를 기억해내는것은

부산과 대구, 그리고 그 여의도 공원을 ...

작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부산에 내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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