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떻게 시작했나?

어떻게 시작했나?


그냥. 허무한 대답이지만 사실이다. 영화 <메신저>를 깔깔 웃으면서 보고난 후 친구와 함께 진담반 농담반으로 사업 계획을 얘기한 것이 대략 5년 전. 그동안 관심은 있어서 이래저래 생각도 해봤지만 진척된 것은 없었고 준비한 것도 없다. 꼭 메신저 일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자전거를 더 열심히 타고 다닌 것과 돈 없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골몰한 것이 그나마 준비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고민은 많이 했다. 돈이 안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할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자전거 메신저 일을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 말고 다른 사람 한 사람이라도 설득할 수 있을까? 정말 너무 느리지 않게 배송할 수 있을까?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은 너무 넓지 않나? 요금 계산은 어떻게 하지? 하루에 몇 건이나 할 수 있을까? 몇 km나 달려야 할까? 서울 지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길은 어떻게 찾지?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나? 몇 명을 모아야 할까? 혼자서 시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어디에 어떻게 홍보를 해야할까? 일단 오토바이 퀵서비스 회사에서 일 해볼까? 사람들이 너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언젠가는 자전거가 오토바이를 대체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할 만큼 해 보고서 안 된다는 결과를 얻기 전까지 자전거는 안 된다는 말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더 하기 어려워 질 것이고, 그렇게 시도도 못해보고 묻혀진 꿈의 기억은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 모든 질문과 고민을 자전거 안장 위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답이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준비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하나씩 하나씩 페달과 바퀴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러고는 ‘나 메신저 시작하기로 했어’라고 짝과 친구들에게 얘기해 버렸다. 원래 쓰던 블로그 대신에 새 블로그를 열었다. 자전거는 늘상 타고 다니던 애들을 이용했다. 메신저백은 그냥 여행 다닐 때 쓰던 방수 패니어를 썼다. 전화는 당시에 공짜로 나눠주던 인터넷 전화를 하나 개설했다. 가격은 그냥 남들 받는 만큼 받았다. 좀 하다보니 영수증 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세무서에 가서 영수증 발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러갔다. 그냥 5분만에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 사업장은 당연히 그냥 집이다. 이게 다다.
관점에 따라서 누군가는 아직 시작도 안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나는 아직 명함도 찍지 않았고, 홍보물도 돌리지 않았다. 주문이 많지 않아서 하루 종일 달리는 경우도 별로 없다. 아직도 혼자서 돌아다닐 뿐,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수입이 아직 직업이라고 말할 수준이 못 된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서울의 자전거 메신저고 누구든 나를 부를 수 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럴 것이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고, 어지간하면 나보다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