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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야매 번역본] 아이리스 영 - 공동체 이상향과 차이의 정치학 ①

  • 등록일
    2013/07/10 04:39
  • 수정일
    2013/07/10 04:54

[생야매 번역본]은 아직 번역이 되어있지 않지만 공룡이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고 싶어서 일단 생야매로 번역해 올리는 글입니다. 원문도 파일로 첨부하니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꼭 달아주세요 :) 그때그때 수정해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누군가 짜잔~하고 이어서 번역해 주신다면 너무 좋구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제안해 주셔도 좋습니다.

 

첫번째 생야매 번역본은 지난달 한국에서 발간된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의 저자, 아이리스 영의 논문 중 일부입니다.

 

 

 

공동체 이상향과 차이의 정치학 ① -  아이리스 영

 

급진적인 이론가와 활동가들은 종종 공동체의 이상향을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의 압제와 착취에 대한 대안으로 어필한다. 이러한 어필은 공동체의 개념을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그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공동체 이상향을 언급하는 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전제하고 암시하는지, 혹은 공동체를 구현하는 사회를 제안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묻지 않는다.

나는 공동체 이상향의 의미와 전제, 그것이 미치는 영향과 현실적인 중요성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모든 개념적인 설명으로서, 이 경우에 전 세계적으로 공유된 공동체의 개념은 없다. 오직 서로 겹치거나 보완적인 것, 혹은 좁은 각도에서 그러한 특정 표현들만이 있을 뿐이다. 공동체를 정치적인 이상향으로 개념화하는 필자들의 정의와 설명을 근거로 삼아보겠다. 이런 필자들은 자유로운 개인의 사회적 존재론에 대한 비평을 공유하고, 민주 사회주의(?)가 사회 조직에 가장 적합한 원리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나는 나의 분석이 이러한 정치적 담론의 일반 분야에서 받아들여질 것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내가 공동체 이상향의 적용으로 보는 수많은 개념적인 구조들이 더 보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필자들에 의해 어필되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 또한 보아주기를 바란다.

나는 공동체의 개념을 철학적인 측면과 현실적 측면 모두에서 비판한다. 나는 공동체 이상향이 데리다가 존재의 형이상학이라 부르고 혹은 아도르노가 정체성의 논리라 부르는, 차이를 부정하는 형이상학에 동참하고 있다고 본다. 공동체 이상향은 주체는 그들 스스로를 이해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추정한다. 그것은 따라서 주체들 사이의 차이를 부정한다. 공동체를 향한 욕구는 한편으로 전체적인 사회 social wholness에 대한 욕구와 인종주의의 기저를 이루는 신분 증명, 그리고 민족적 쇼비니즘에 기대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파벌주의에 기반한다.

공동체 이상향이 면대면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모델의 증진을 수반하는 한, 그것은 시공간적인 거리두기의 방식으로 차이를 부정하고 평가절하한다. 집중이 배제된 면대면 공동체로 형성된 사회라는 이상향은 몇가지 측면에서 탐탁치않게 유토피아적이다. 그것은 소외와 폭력이 사회적인 관계들의 사색meditation으로부터의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면대면 관계에서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한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타당해보이지 않게 도시 없는 사회를 제안한다. 또한 면대면 공동체들 간의 관계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한다.

공동체 이상향은 결국 진정한 사회 관계와 진짜가 아닌 사회 관계 사이의 대립을 설정함으로써 사회 생활에 대한 구상을 전체화하고 영속화한다. 또 그것은 현재의 사회에 대해 가능한 최대의 부정으로 희망하는 사회를 상정함으로써 사회변화에 대한 이해를 영속화한다. 따라서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의 가능성과 모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이곳에서의 저곳으로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나는 정치적인 해방을 위한 규범적인 이상향으로 공동체 대신, 급진주의자들이 차이의 정치학을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다. 비억압적인 도시의 모델은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낯선 이들과 사색meditation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지배가 없는 사회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1. 존재의 형이상학

 

철학적인 글이건 다른 이론적인 글이건, 혹은 일상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것들에서건, 서구의 개념화는 데리다가 존재의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아도르노가 정체성의 논리라고 부르는 것의 특질을 드러낸다. 이 형이상학은 개체들things을 통일체로 생각하려고 하는 욕구에 반대하고, 전체를 대표하는 방식의 기술에 반대한다. 그것은 주체를 생각하는 것과 객체라고 생각된 것 사이의 통일체를 찾고, 실제로 파악될 수 있는 객체를 찾는다.

이렇게 통일체를 향한 강한 욕구는 모든 것을 전체로서 생각하려 하고, 존재론적 영역에서, 예컨대 사회 생활 같은 것을 전체 혹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이러한 전체주의화는totalization 더 이상 공식적인 분야의 개념화로 제한될 필요가 없다. 기술적인 과정에서의 개념화 또한, 결론이 개념적으로 과정을 통일체로 조직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체성의 논리를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개체들을 통일체로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계층형 갈등의 논리를 만들어냈다. 폐쇄된 전체로서 정체성을 규정하고자 하는 어떤 움직임이라도, 항상 어떤 요소들을 제외하고 순수한 것과 순수하지 않은 것을 가르는 것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것을 세계적인 본질 아래 속하게 하는 것은, 특별한 어떤 성질들을 우연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본질의 바깥에 두는 것에 의존한다. 안과 밖을 대조하는 어떤 정의 혹은 카테고리, 혹은 어떤 정체성의 논리라도 그렇게 견고한 경계선을 찾는다. 서구 사상의 역사에서 존재의 형이상학은 모든 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수많은 상호 간에 배타적인 대립을 만들어냈다.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 문화와 자연, 남성과 여성. 형이상학적 전통에서 이들 중 전자의 것들은 후자의 것들로부터 승격되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것들이 통일성의 밖에서 존재하고, 혼란스러움과 비정형적인 것, 변화하는 것으로 존재할 때 전자의 것들은 통일성과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적 사고는 한쪽이 순수와 진짜의 것, 긍정적인 것을 표현하고 다른 한쪽이 비순수와 가짜, 부정적인 것을 표현하는 대립에 근거해서 대조를 만들어내고 해석을 만들어낸다.

 

(헉헉.... 오늘은 여기까지!! 서문과 1장의 절반 정도 분량이네요... ㅎ 아마 앞으로도 엄청 조금씩 올라올 거예요...)

 

 

[공동체 이상향과 차이의 정치학 - 아이리스 매리언 영.pdf (382.44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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