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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계속 배우면서 나를 갖추어 나간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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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최민식>

 

나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촬영해 왔다.
나의 사진 속에 등장한 그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나는 나의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해냈으며, 그것이 순간포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나의 사진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며, 사진과 삶에 새로운 경지를 열고 차가운 비판과 따뜻한 고발성의 비판을 나타낼 수 있도록 고민 해왔다.
한 점의 사진을 말하는 것은, 그저 찍힌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깊이가 있어야 하며, 감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진작업과 인생과 예술적 포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져 나타나 있어야 한다.
사진 작업을 할 때에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회답을 얻고자 해야 한다.
그리고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임을 명심하자.

남들이 지나가는 말로「사진은 왜 하는가, 돈도 안 되는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돈을 위한 사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 오직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면, 이는 아마 내가 독학으로 사진에 미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 왔고 아직도 나를 조롱하는 모든 불행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마치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진이 곧 나의 삶이고, 삶이 곧 사진이 되어 왔다. 솔직히 사진은 나에게는 종교 이상이다. 내가 일생동안 찍어온 사진의 역사는 바로 나 자신의 삶의 느낌을 정직하게 전하려 한 것이다.

나의 눈은 항상 낮은 데로 향해 있으며, 나의 평생을 함께 해 온 카메라의 렌즈 또한 한없이 낮은 데로 치열하게 움직여 왔다. 목숨을 걸고 소외된 이웃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것이다. 나를 이처럼 만든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55년 일본에서 본「스타이켄」의 <인간가족> 사진집이다. 그 책은 나에 엄청난 감동을 주었고, 나는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당도한 것처럼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이 내게 닥쳐올 일들의 희미한 서막임을 감지했다.

짓밟힌 꽃에서 풍겨나는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힘들고 소외된 인간들에게는 가진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삶의 깊은 고뇌와 철학이 있다. 바로 그들을 주제로 10권 이상의 사진집을 발행했고, 그 속에 등장한 인간군상들에게서 가슴 저미는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의 사진 찍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 평화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힘이 미치는 한, 우리시대에 함께 호흡하고 있는 민중전체를 사진에 담으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후세에 내가 살아간 시대의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이러했다는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기록을 남기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이것은 사진가로서 가지는 나의 역사의식이라 생각한다. 나의 사진은 사회적 성격과 함께 철학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현실성과 영원성이 대립되는 양극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의 길을 가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생활을 내팽개치고 사진만 찍으러 다니는 가장을 좋아할 리 없다. 사회 고발적 측면을 강조한 사진 때문에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에는 곤욕 깨나 치렀다. 이러한 오랜 수난들은 집안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말았다.바로 그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주었다. 나의 작가정신과 인간정신 탐구를 지켜봐 온 카톨릭 쪽에서 나의 인간가족 탐구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경북 왜관소재 분도 출판사의 독일인 임 세바스틴 신부가 나의 사진집 「인간」 4,5,6,7,8집 모두 도맡아 출판해 주었다. 임 신부의 경제적 지원은 시대상황 때문에 극비로 이루어 졌으며, 정신적인 격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진은 어떤 휴머니즘적 몫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나는 늘 가난한 사람을 순간 포착한다. 그것이 내 생명력의 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가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나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과 지금 겪고 있는 일, 그리고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상처가 묻어난다. 나의 사진 속에는 활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쉬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평등한 애정으로 지극히 휴머니즘적 입장에서 우리들 가슴속 깊이 무엇인가를 새겨 주려 한다.
나의 사진은 예술적 감동보다도 사회적 문제를 지닌 인간과 그들의 삶을 앵글에 담고 있다. 서민들의 사진은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삶의 전부다. 서민들에 대한 고뇌를 가진 사진가 만이 진실한 창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이 곧 사진가의 정신이다.

진정한 리얼리즘 사진가로서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다. 사진창작은 무엇을 결과로 남기는 것인가? 사진이 사회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 나의 사진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고자 노력해왔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열중해 왔으며 후미진 곳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훌륭한 그 특성이란 대상을 보고 본질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인간이 머무는 곳은 나의 사진영역이며 인생 그 자체가 소재인 셈이다. 사진이 예술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좋다.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이 사진을 통하여 무엇인가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사진가는 그 시대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시대에 있지 않게 되면 자연히 사진 적인 작품은 존재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 가더라도 같은 인간은 없으나 어디에 가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꾸민 것, 느껴지지 않는 것, 가식적인 것을 부정한다. 삶에 보다 깊이 감동되면 될수록 사진작업은 더욱더 힘있는 것이 될 것이다.
"아아, 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나는 창작할 때 이렇게 실감한다.
내 사진의 태반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 지울 수 없는 얼굴들이다. 나의 인생을 사진에 꽉 차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나의 사진은 생명체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험난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 내가 민주화를 위해 뛰어 들 때는 사진도 투쟁적이었다. 작업을 위해 나는 미쳐야 했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날마다 투쟁을 벌이는 창작의 인간으로 정립되고자 했다.

이름 없는 서민의 표정이나 모습에서 생생한 친밀감을 느낀다. 인간을 주제로 하는 까닭은 사진이 사람과 사람을 잇게 해서 인간적인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하여 좀 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휴머니즘적인 정의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신념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나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그것이 외로운 길일지라도......

어떻게 '내 의무를 다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창작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고, 허튼 수작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하는 절대적인 빛이 있다고 자부하며, 가난한 그들과 함께 살다가 죽을 것이다.

-사진작가 최민식-

1957년 일본 동경중앙미술학원을 졸업.
이때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면서 창작에 몰두하며 인간을 소재로 사진을 찍기 시작.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서 처음으로 2점이 입선된 이후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 20여개국의 여러 사진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선,입상.
1968년 개인 사진집[인간] 제1집을 낸 이후 1999년[인간]제10집을 출간하고 [리얼리즘 사진의 사상],
[작품 사진 연구],[세계 걸작 사진 연구] 등의 많은 책을 펴냄.
1970년부터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7개국에서 15회의 개인 초청전.
부산시문화상(1967), 한국사진문화상(1974), 도선사진문화상(1980), 현대사진문화상(1985), 예술문화대상본상(1987), 봉생문화상(1994), 대한사진문화상(1995), 백조사진문화상(1996) 등을 수상.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미국사진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있으며, 인제대학 및 부산예술대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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