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2005.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인물과 사상사.] 발제문  2006. 5.

 

 * 오늘날의 되고 싶은 ‘나’ : 남성-어른-이성애자-본토박이-건강한자-지성인-표준어를 쓰는 사람⇒이성에 입각하여 설정된 표준적인 근대적 인간상

- ‘힘’의 상징으로서의 ‘남성다움’: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

- 정기적 훈련으로 단련된, 잘 복종하는 몸을 늘 ‘국가와 민족’에 바칠 각오로 사는 ‘애국적 신심’의 군사주의적 남성이 우리시대의 모델임. 이것은 일제말기의 총동원체제와 식민지 이후의 남북한 군사문화로 인해 명령과 복종의 파시스트적․남성적 미학이 본격적으로 파급된 것임

- 오늘날의 남성다움: 양복복장, 수염이 없는 ‘깨끗한’ 얼굴 모양=(획일적 복장과 면도 습관을 강요하는 군대문화)+(단정한 모습을 중시하는 유교문화)+(단발, 양복등을 물신화시켰던 개화기나 일제시대 개화파 풍조의 계승)+(학교에서 키워지는 습성)


- 오늘날의 대장부=(조직에 충성하고 돈을 잘 벌고 그 경제적 능력으로 가족들의 존경을 받아 가족들을 잘 ‘관리’하고 ‘조직생활’과 돈벌이에 필요한 인간관계(인맥)들을 ‘둥글게 둥글게’ 잘 유지․발전시키는 사람)+(독서인으로서 남성다움)+(힘의 숭배자(서울대 동창회 수첩, 삼성의 명함, 공무원증을 내심 받드는 자)로서 남성다움)


- 우리사회의 궁극적 목적 ‘이윤추구’≠인간심신의 태생적인 특징과 항상 충돌, 그래서 우리는 일상적인 동료와의 경쟁, ‘보스’나 상급자에게의 종속과 고용의 불안 등은 각종의 스트레스를 강력하게 안겨주어 상당시간을 술이나 포르노, 돈 주고 사는 ‘윤락’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듬→반인간적 체제를 강요한 결과, 사실 국가나 재벌 같은 집단들은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 운영됨(국가의 핵심)


⇒ 연대와 평등한 대인관계를 위주로 하는 체제가 필요함: 현 체제가 인간의 심신을 파괴하고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빼앗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함


* 힘의 숭배: 미군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

한반도의 미군 주둔의 역사는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분군 사령부가 들어섰던 용산기지를 모태로 한 미군의 한국 주둔 역사가 일본군 주둔 역사보다 훨씬 더 길다.

‘남한 전역에 주둔하는 대규모 미군 병력은 1953년 정전이후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병사들은 낮에는 탱크에서 꾸벅꾸벅 졸고, 밤에는 매춘부 품에 안겨서 보낸다. 61년부터 93년까지 미국은 한국에서 역대 군부 독재자들을 지원하거나 권좌에 앉혔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군사대표단 및 제8군 사령관과 참모 장교들이 남아 있어서,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시도하는 평화적인 대화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은 냉전의 절정기에 미국이 중앙정보국 고위관리 출신을 두 번이나 대사로 보낸 유일한 국가다’

찰머스 존슨은 한국이나 일본은 군사제국주의 나라 미국의 전형적인 식민지다. 미국은 과거 로마나 중국제국과는 달리 식민지가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국외 군사기지들만으로 작동되는 신형제국이다. 미국은 국외주둔 미군기지들을 통해 세계를 통제하고 석유 등 전략자원과 경제 잉여를 무제한 빨아올린다. 평택미군기지가 그렇다.


* 폭력의 변형

- 강압적 지시와 통제→보편주의 이데올로기 작동

- 달라진 지배 이념 : 덕치(德治)를 들먹이는 사대부들의 권력기반은 궁극적으로 물리력

폭력수단과 행정구조가 근대에 비해 훨씬 취약했던 전통 시대로서 적어도 지배이데올로기만큼은 포섭적이며 다원적이며 관용적이었음


* 힘의 숭배-상무(尙武) 정신의 일상화

어떤 지배담론도 단순한 이야기만으로 존재하지 않음

담론: 시각화, 의례화→이미지 소비, 참여의무화, 보편화 시켜야 함

⇒‘힘의 숭배’라는 근대 거시담론의 미시적 침투과정(ex. 군대(징병제), 스포츠)

but, 경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군대에 대한 양면적 인식-폭력의 이데올로기적 정당화가 완전하지 않음을 증명


* 개신교는 왜 막강한가?

- 토착적인 것들에 대한 배척의 바탕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적 체제에서 한국의 대리 세력이라는, 한국 교회의 세속적인 위치에 대한 강력한 자긍의식이 깔려 있음


- 19세기 개신교의 종교 제국주의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된 중세 기독교적 배타주의가, 제국주의적 담론을 내면화한 상당수의 한국 개신교 신도들에게 전염된 것임


- 한국에서의 종교적 다원주의


* 교육: 학교는 졸업해야 한다?

-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지식’이라는 상품이 거래된다(지식기반정보산업), 그러나 사실은 지식 그 자체가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가 거래되는 것이다.


- 선생님과 선배가 때릴 수 있는 ‘권리’, 온갖 규칙과 제한으로 가득 찬 학창생활,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인간으로 대접받는 풍토


- 의무교육 : 교육 권력이 의료․경찰 권력과 함께 일체 국민들을 훈육하면서 국가, 자본의 질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자강과 국민 만들기를 위한 문명 교육론


- 지배층들은 그들을 특권층으로 대접해줄 어떤 국가에라도 충성하는 자세를 취해, 인민들에게 ‘국가에의 복종과 충성의 덕목’을 계속 가르칠 준비가 돼 있었던 것.


- 교육을 국가와 자본에 적합한 인간을 만드는 기제로 인식하고 교육 체제의 상부(핵심적 고등교육 기관)를 있는 자들에게 훨씬 들어가기 쉬운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만든 것


* 영웅: 우리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

- 미국의 영웅 링컨은 ‘미국의 중앙 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도발하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흑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위치 개선의 노력도 없이 정략적으로 노예해방의 쇼를 벌인 무자비하고 타산적인 냉혈아’이다. ‘형식뿐인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고 나서 거의 한 세기 동안 모든 남부 주들의 대다수의 흑인들은 계속 무서운 차별을 당했으며 투표권도 박탈‘당해 왔다.


- ‘영웅’을 이용하는 국가: 영웅이란 ‘초인적인 이미지를 갖고 피지배민을 쉽게 압도하여 동원할 수 있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강력한 지도자’를 말하는 것으로, 국가는 ‘영웅’을 이용하여 피지배민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국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목적⇒국민만들기, 국민통합이 목적이었던 근대국가의 계몽주의자들


- 세계 위인전을 아이들에게 읽히는 풍속은 식민지 시기 내내 조선의 식자층 세계를 풍미하다, 1945년 이후에는 교육의 기회가 넓어지며 거의 전사회적으로 남한에 확산되었음, 결국 아이들에게 냉혈한 정객 링컨과 대량학살자 나폴레옹과 노예주 워싱턴은 지금도 따라야 할 영웅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 경찰: 경찰은 국민을 보호해주고 지켜준다?

- 경찰국가: ‘경찰의 억압 장치화’와 ‘경찰들에 의한 개인들의 신체 존엄권 박탈’


- 하위직 경찰 공무원: 대다수 중산층의 하위계층이나 서민층 출신인 일발경찰을, 지배층이 언제나 대체 가능한 기계쯤으로 보고 있다.


- 경찰에 대한 불신: 국가기구에 대한 서민들의 전반적인 불신과 불만이 존재, 부패한 조직이라는 불명예, 한국에서 근대적 경찰조직은 공포감을 안겨줬을망정 결코 ‘사회안전’의 이미지화는 존재하지 않음⇒멸시적이고 적대적인 ‘전통적 포졸관’이 존재함


- 한국에서의 전통적 포졸관: 법치(法治)가 아닌 예치(禮治)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조선왕조. 따라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불법이나 비도덕적 비행은 그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음→마을의 질서가 주민들에 의해 유지되고, 반면 부패가 국가 권력의 간섭은 주로 뇌물 갈취를 의미했던 19세기 조선사회에서 포절은 대개 귀찮고 위험한 존재로 간주됨.⇒서구사회의 ‘공익의 권신으로서의 경찰’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像을) 당시 조선인들이 지니고 있었음


- 양심에 따른 처벌: “어리석은 백성이 굶어서 도적질로 그 생존을 구하는데 그 정상은 용서할 만한 점이 있다”(이익의 ‘도적론)→도적떼를 진압해야 할 주체인 정부가 도적떼의 출현과 민란의 이유가 국가 기강 해이와 관료 부패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함(1862년 진주민란에 따른 철종의 대응-민란의 원인을 제공한 탐관오리를 처벌)


- 경찰의 필요성: 자본주의 지향적 관료와 지주들의 이해타산에 의한 것임, 다시 말해 재산가들은 국가로부터 자신의 재산에 대한 확실한 보호를 원했음, 따라서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재산을 무조건 지켜줄 경찰국가 체제가 필요했으며, 이에 따라 경찰에 의한 국내적 폭력의 독점화를 ‘문명사회’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지배적인 생각이었음


- 현대의 처벌은 법에 의한 처벌: 다른 사람의 ‘신성한 사유재산’에 손을 뻗친 가난뱅이는, 국가가 무자비하게 처벌하고 철저하게 격리시키고 수시로 감시→처벌과 감시를 통해 ‘정상적인 국민’으로 만들어야 할 대상물로 전락. 이에 따라 ‘범법자’를 적군의 병사보다 훨씬 더 적대적인 ‘타자’, 위험한 ‘비국민’으로 여기는 것이 현재의 담론임.→‘우리 모두의 공적’인 ‘범죄’와 ‘범인’은 근대적 제도와 논리에 의해서 수배, 징벌해야 할 대상이 되고, 근대적 이성의 권신인 경찰은 ‘우리의 현대적 영웅’이 됨


- 한국의 경찰: 글을 모르고(1945년 조선 문맹률 75%) 살인적인 가난에 시달린 일제 말기 조선인에게, 뇌물 갈취와 폭력을 일삼는 6만명의 일제 경찰은 조선시대 포절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로 등장→미군정하에서도 일제시대 조선인 경찰 고용→극우반공 체제는 경찰을 엄청나게 두려운 존재로 만듬(경찰에 대한 외경의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음)→후발 자본주의 남한 사회는 지배자들의 사적인 폭력이 언제나 가능하고 국가기구의 사유화 정도가 높았음, 이에 따라 남한은 물리적 폭력위주의 ‘외삽된’ 경찰국가임. 이는 극소수 재산가들을 위한 폭력적인 우리로부터의 ‘근대화’와 이승만, 박정희에 의한 식민지 시대 국가 모델의 재현이 가져다 온 당연한 결과.


* 징병제: 군대는 가야한다?

- 우리들의 군대: 학교와 직장에서 장기간의 격리 생활, ‘윗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습득하여 자신의 존엄성(신체와 정신을 포함하여)을 지킬 방법이 거의 전무함, 무조건 반말을 하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고참 앞에서 헌법이나 군법, 유엔인권선언문 따위는 무의미함.→따라서 한국에서 군대를 간다는 것은-20대 다수는 소극적인 불안과 공포감, 부담감부터 적극적인 원망까지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정적 감정을 두루 갖추게 됨


- 한국 수구언론의 횡포에 의한 군대 이미지 조작: 내무반에서 ‘칼잠’자는 모습보다 해병대와 특전사의 ‘진짜 사나이 만들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임. TV의 군대 관련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와 여자친구는 ‘남성이 여성을 지켜주고 여성이 남성을 챙겨준다’는 가부장적 전통논리에 직접 호소하여 군대에서 열심히 훈련받는 ‘자랑스러운 남성’들의 상을 만듬.


- 직장생활의 군사문화적 요소: 취업에서 예비역을 선호하고 기업들이 연수 프로그램에 ‘극기훈련’을 포함시킴→‘위로부터’ 세뇌와 같은 각종의 채찍과 당근으로 강요되는 군사주의적 세계관이 징병제에 대한 심적 의존을 유도하고 있다.


- 한국에서 초기 군사력의 열등감: 서구 근대국가들은 무소불위의 폭력에 의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 형성, 이들과의 접촉을 시도한 조선은 ‘그들’의 우월한 군사력에 대한 압도감과 ‘우리들’의 비극적인 열세에 대한 열등감을 가져다 줌(1876년 불평등강화조약, 1885년 한성조약, 1904년 한일의정서 등)→조선의 ‘개화’는 위로부터의 보수적 개혁 프로그램 속에서 외국 군사력에 대한 정보수집과 병력 증강이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게 됨


- 고종의 징병제 프로젝트는 실패: 러-일간의 대립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느낀 고종은 1903년 징병제 실시 조칙을 실시. 그러나 무산됨, 그 원인은 만성적인 정부 재정부족, 병역자원을 파악할 만한 행정력을 갖지 못한 정부의 통치력의 한계, ‘백성’들에게 무기를 맡기기 꺼려했던 지배층으 ‘근대’의식의 한계→지배자의 수탈에 찌든 백성들은 ‘애국 국민’으로 교육, 훈련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 고총 측근 세력들도 ‘백성’을 ‘국민’으로 인식할 만한 근대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


- 절망이 국가 형성의 열망으로: 징병제 실시계획의 무산에 따른 국가 지배자들의 좌절감이 강한 만큼 ‘부강의 비결은 바로 징병제’라는 생각이 굳어짐→근대적인 국민만들기 프로젝트로 ‘군인’을 새로운 ‘국민’을 위한 하나의 준거틀로 만듬


- 계보상으로 100여 년 전 개화파의 징병제 실시의 좌절된 꿈, 일제 시대 민족주의자들의 ‘징병제 구국론’으로 거술러 올라가는 이 의식은, 박정희․전두환의 병영국가 시대에 더욱 강화돼 오늘날의 징병제에 대한 보편적인 ‘집념’으로 이어졌다.


- 남한의 징병제 군대는 ①반공규율 사회의 이념적 세뇌기구 ②군사주의적 훈육기구 ③ 초기 문맹퇴치와 기술지식 보급자 역할 ④ 각 지역의 한계를 초월한 ‘전국’ 의식 보급에 기여한(?) 강요된 합숙 생활과 공식․비공식의 수직적인 훈육체제이다.


- 민족/국가적 생존과 국난 극복 그리고 그 수단으로 ‘전사(戰士)로서의 남성키우기’가 중심이 된 개화기 이후 한반도의 내셔리즘 담론임(국가주의 담론)→전쟁장면의 ‘낭만’을 즐겁게 소비(국가주의적 주체)


- 지도자에 대한 복종의 미풍→권력에 대한 복종의 미풍→‘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국가에 의한 상명하달적인 생활양식으 훈련을 받을 권위주의 사회 남성 구성원의 ‘사회화 의무’를 의미함.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대

- 우리는 아직도 나폴레옹의 침략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근대’라는 살육의 대량화․낭만화․물신화시대를 그대로 살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 국가형성시기의 전투성․폭력성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성찰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가장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것들이, 보이지 않게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현 체제는 인간의 심신을 파괴하고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빼앗는다: 개인차원의 적극적인 저항은 가능하다

- 자본과 국가가 강요하는 생활방식을 생각과 몸으로 동시에 부정하는 것이 필요

- 서울대 갈 수 있어도 학벌타파의 의미에서 안가고,

- 병역을 거부하고,

- 재벌기업 대신에 시민사회단체에 취직하는 것

위에 것들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 재벌이 만드는 물건을 쓰더라도 노동탄압과 극우 보수 정당 기부로 악명을 얻은 악질 재벌들의 물품을 보이콧하기

- 학벌타파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을 지원하고 후원하기

- 합법적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위한 친화적 여론을 인터넷등을 통해 조성하기등 개인이 온 몸을 내던지지 않아도 할 수 있다.


한번 더 생각해 보자: 오늘날의 한국 ‘시민사회’

- 한국 중심주의 강한 나라(중국이나 북한, 3세계는 멸시의 대상으로 인식-아시아의 자랑, 축구, 과학, 한류 따위의 것들이 작동함)

- 제도적 민주화와 시민사회가 성장해도 노동계급의 정치가 아직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적 현실

- ‘시민사회’의 학연중시, 정치적 커넥션들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

- ‘명망가’ 또는 ‘전문가 집단’과 일반 활동가들의 차별대우등의 구조적 문제점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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