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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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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재밌는 점은 최하위 계급에서 짓눌렸던 이들이 자동으로 최상위 계급이 된다는 점이다. 비극은, 그러함에도 전체적인 폭력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고.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비극에 대해서도 온전히 이해하기보다는 이기적으로 해석한다. 하물며 타인의 비극에 대해서는 더 심하겠지. 아니 더 심하다. 이해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해하려 했나 아니었나'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네.
딱히 '이해'라는 단어가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태도'라고 해도 좋고. 난 네가 말하는 그런 '태도'에 큰 기대가 가지 않는다. 결국에는 그 이해라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나뉘어진 '편'에의해 결정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에. '이해'나 '태도'는 편을 가르기 위한 하나의 선이 아닌가.
문제는 그 한계를 껴안은채 어디까지 해나아갈 수 있느냐일터인데 언제나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저 농활에 관한 글을 농촌 성폭력 희생자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나. 중요한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위해 얼마나 자신을 열어두고 매번 최선을 다할 수 있냐가 아닐까. 네가 나에게 말하고자 했던 부분이 이 '최선을 다해라'라는 쪽인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알아 들은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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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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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대로. 나의 투덜거림은 아무 필요없음과 비겁함만 남길지도 모른다.하지만 딱히 이번 주제가 아니더라도 너에게 묻고 싶은게 있는데
너무 편을 가르는거 아냐?
내가 누군가를 타자화시켜 비난하고 있다고 네가 말했을 때, 그건 나에게 그들을 이해하는데 우선하라는 소리인 것 같다. 네 말이 맞지만, 그 상대가 내가 아닌 도남국이라는 분이나 한노총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서지 말라는, 결국 같은 편이 아니면 비난하지 말라가 되버리지 않을까. 나는 좀 더 반FTA집회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하지만 도남국씨와 이용득 위원장은? 그들의 비판은 완전 무효한걸까.
입대전에도 너와 그리 많은 대화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어찌보면 둘다 대화꺼리가 없을 만큼 얇았는지도 모르지. 기껏해야 프로메에 관한, 운동권에 관한, 맑스에관한. '무엇'에 관해서만 이야기 할 수 있었을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하나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없었으니까.
넌 더 두꺼워진 것 같다. 하지만 더 냉소적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더 애정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 냉소와 애정이 어느 한쪽으로만 쏠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딱히 이번에 받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외박이나 휴가나가서 종종 마주치며 느꼈던건데...
*
네가 보여준 여성주의적 농활에 관한 글도 나를 조금은 당혹스럽게하네. 좋은 글이다. 네가 말한 '이해'는 저런 부분이었나.
반성폭력적 내규로 절때 농촌의 계급성, 여성 농민의 사회적 차별을 해소시켜주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그게 기만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저 글의 지은이가 계속해서 충돌할 수 없는 두개의 관점에 편을 가르고 대결시키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결국 그렇게 하면 생존의 문제가 승자가 되겠지. 하지만...
물론 서울대 농활에서 저 두 입장이 충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간의 충돌점을 빗겨가게하고 해소시켜야 할 부분아닌가. 방법론적인 접근을 통해 고쳐나아가야 하는 부분일것 같은데. 내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는걸까.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굳이 저처럼 편을 갈라 승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난 글에서 흐르는 적군에 대한 적개심이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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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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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방법적으로 좀 더 심하게 말을 하려 했다면, 그 원인은 내게 있겠지. 그점에 관해서는 나보다 널 믿는다. 이곳에서 너무 편하게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집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네 표현대로 너무 지겹다. 너와 더 나눌만한 것이 남아있을까? 그래서 그저 케이스 바이 케이스만이 남아있는지도. 그 안에 속해있지 않은 나로서는 뒷풀이의 술자리에 참가한 기분으로 감상을 늘어놓는 사치를 범할 수도 없고.
보는 책도 눈에 띄고하니 중대 사람들이 뉴스에서 집회 장면을 보며 내게 종종 이것 저것 묻곤 한다. 겁이 많이 집회는 거의 안나가봤다고 대화를 피하긴 하지만 그 사람들의 의문점 중 분명 대답하기가 너무 궁색한 경우가 있다.
너에게는 이미 과거의 문제제기 일지 모르겠다만, 내 시계는 대학교 2학년 때 멈추어버렸고 이 곳에서 다른 대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폭력적인 집회는 여전히 대답하기 궁색한 문제다.
정말 궁금하다. 그동안 얼만큼이나 나아가버린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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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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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대로 수천명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폭력적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시위가 폭력으로 흐른 이유냐?혹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온갖 악영향을 감수하면서도 선택했어야 하는 거냐? 그 폭력들이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 폭력이라고 믿지는 않겠지. 국민과 여론이 어정쩡한 실체라고? 그렇다고 무시해버리는 것이 (네 표현대로라면)푸코니 담론이니 공부한 사람의 답이냐
문제는 무엇을 지향하는가가 아닌가.
뭔가가 잘못됐다. 네이버와 '작용'을 이야기하는 것도 잘못됐고(아니 '작용'을 이야기 했을 때 폭력 시위의 '작용'은 어디간거냐) 한노총의 이야기에 빈정거릴 수 있는 것도 잘못됐고. 폭력 시위에 대한 비판이 알량한 비폭력주의가 되어버리는 것도 잘못됐고.
내가 비폭력 시위를 이야기 하는것. 한노총에서 이야기하는 것. 네이버 뉴스에 달리는 댓글들. 전부 같은 거였냐? 폭력 시위에 대한 비판을 그렇게 묶는 것 부터가 황당하다.
비판할려거든 편들지 말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무섭다.
아니 이런걸 다 떠나서,
나보다 더 절박함을 그곳에서 체험하고 있을테니 내 글에 반대하고 비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가 나보다 더 정확하겠지. 빈말이라고 느낄지 모르겠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뭔가 잘못생각하고 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네가 반대하니까.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넌 정말 아니다.
조용히 "제발, FTA막아주세요"라고 기도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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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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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촐한 감상을 쓴거 뿐이지만... 현실이 그대로니까 시선이 변할 틈이 없지.잘 지내냐? 블로그는 암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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