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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물

모뚜님의 [세계이주민의날 한국대회 기념 이주민발언대 - 난민] 에 관련된 글.

모뚜님의 글 <세계이주민의 날 한국대회 기념 이주민발언대 난민>에 트랙백을 달아본다. 이 글에 달려있는 ppp님의 덧글 때문이다. 뭐라고 말하기 참 힘든 덧글이다. ppp님의 글이 논리적이어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힘든 것이 아니다. 인성 자체가 참으로 힘들다. 그런 느낌이 물씬 다가온다.

 

<우주의 신비>를 알기 이전부터 이주민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로서는 ppp님의 덧글을 읽으면서 이상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한국에 돌아가도 ppp님과 같은 사람들과 상대하고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여기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다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저렇게 결정지을 수가 있구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알 수야 없겠지만. 개구리 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레토와 리키아 농부들의 이야기다.

 

제우스의 쌍둥이를 임신한 이유로 헤라의 미움을 받아 이리 저리 쫓기다가 레토는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고 아르테미스와 아폴로를 낳는다. 그러나 헤라의 질투는 끝나지 않고 계속하여 레토는 쌍둥이를 안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어느 날 탈진된 상태로 한 연못에 도착한다. 고루하고 옹졸한 리키아 농부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속한 연못이었다. 레토가 엎드려 목을 축이려 한다. 그때 농부들이 와서 물을 못 마시게 한다. 레토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뭐라고요? 물 마시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요? 물은 만인이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해와 공기를 자연이 특정인의 소유물로 만들었단 말인가요.
그리고 흐르는 물을? 나는 만인의 소유물을 취하려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빕니다. 나에게 물을 허락해 주십시오.

지친 몸과 축 늘어진 팔과 다리를 씻자는 것도 아니고,
오직 타는 목을 축이자는 것입니다. 목이 타서

말도 제도로 안 나옵니다.” (오비드, 변신, 6, 349-354)

 

레토가 이렇게 애원하고 품에 안긴 갓난아기들까지 손짓으로 간구하는 데도 불구하고 리키아 농부들은 물을 못 마시게 할뿐만 아니라, 아예 연못에 뛰어 들어가 흙탕물을 만들어 물을 마실 수 없게 만든다. 이에 분노한 레토는 그들이 영원히 그런 짓을 하게 만든다. 개구리가 되게 한 것이다. 오비드는 리키아 농부들의 본성이 원래 개구리 본성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욕지거리를 일삼는 혓바닥을

그만두지 못하고 물속에서도 연습하고 얼굴 붉힐 줄 모르는 뻔뻔스러움으로 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악꾸악 욕지거리를 일삼는다.“ (같은 책 374-376)
(Quamvis sind sub aqua, sub aqua maledicere temptant.)

 

법은 만인이 공유하고 만인이 사용하는 물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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