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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녹색당 역사

사진1: 루디 두치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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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지지데모에서 연설하는 68운동의 상징 및 독일사회주의대학생연맹 대표이자 학생운동지도자였던 루디 두치케(Rudi Dutschke). 독일 보수매체, 특히 “빌드짜이퉁”으로 선동된 피격사건의 후유증으로 1979년에 사망. 사망직적 녹생당에 입당. 녹색당은 70년대 후반에 반핵운동을 주축으로 하여 환경보호운동, 평화운동, 인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두리반과 같은 거주공간을 사수하는 농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다양한 신사회운동의 결합체로 결성됨. 당시 독일의 상황은 “독일의 가을”로 역사에 기록되는데, 반제투쟁을 주요이념으로 하여 정.경의 핵심인물을 납치.저격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전투를 전개한다는 적군파의 도시게릴라전으로 어지러운 상황. 당시 헬무트 슈미트 사민/자민 연정은 적군파를 색출하고 고립한다는 목적아래  “그믈망 수사(Rasterfandung)”, 적군파 수감자를 완전 고립시키는 조치(“Kontaktsperre”) 등 인권을 침해하는 조치를 도입.

 

사진2: 녹색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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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색깔이 강한 신사회운동은 1980년 1월 칼스루헤에 모여 창당대회를 갖고 전국정당으로 결성됨.

위 사진의 초대 녹색당 지도부. 로테이션제도로 지금은 공론장의 기억에서 사라진 인사들(August Haussleitner, Norbert Mann, Herbert Gruhl, Gisela Schüttler, Dietrich Wilhelm Plagemann, Karl Kerschgens, Alfred Vordermeier). 제도권 밖의 투쟁을 바탕으로 하여 결성된 녹색당은 루디 두치케가 요구한 제도권내에서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점진적으로 장악한다는 전술채택.

 

사진3: 본(Bonn) <호프가르텐/Hofgarten>에서 반전시위하는 군인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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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총선에서 연방하원에 진출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사민/자민 연정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소위 “나토이중결정”에 의한 중거리핵미사일의 독일배치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 확산. 1981.10.10 약30만 명이 당시 서독의 수도였던 본 대학의 캠퍼스 <호프가르텐>에서 반전반핵시위. 이런 반전반핵시위는 군인들에게까지도 확산.

 

사진4: <바커스도르프/Wackersdorf>핵원료 재처리공장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서 경찰과 몸싸움하는 반핵시위대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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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의 주축을 이루는 반핵운동은 “벤드란트 자유공화국”(Republik Freies Wendland)을 선포하고 자체 라디오방송을 운영하고 원전건립지역에 촌을 만들어 거주하는 등 강력한 투쟁전개.

 

사진5: 1983년 조기총선에서5.6%를 득표하여 연방하원에 진출한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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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반전평화운동의 상징 페트라 켈리. 그 옆은 마리루이제 벡  

 

사진6: 1987년 전당대회에서 뜨개질 하는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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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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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헷쎈주 사민/녹색연정의 환경부장관으로 선서하는 요쉬카 피셔. 신고 있는 운동화가 겉차림을 중시하는 수구꼴통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는지 물의를 일으킴. 저 운동화는 지금 오펜바흐(Offenbach) 가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사진8: 1990년 통독후 실시된 총선에서 연방하원에 진출한<동맹 90>. <동맹 90>의 게르드 포페(Gerd Poppe)와 동독사회통일당 최후 총리 한스 모드로우(Hans Mod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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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통일독일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서독 녹색당은5%이하 득표로 연방하원에서 탈락. 대신 동독의 <동맹 90>는 동서독지역에 상이한 선거법을 적용하여 연방하원에 진출. 1993년 서독의 녹색당과<동맹90>이 동맹90/녹색당으로 합당.

 

사진9: “너는 나 외 신을 둘 수 없다.” 로테이션제도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의 당권을 장악한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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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 1998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정권에 참여하면 소위 “생태계세금”으로 자동차 휘발유 값이 5마르크(2.5 유로)까지 올라갈 거라고 공략하는 기민당 사무총장 페터 힌쩨(Peter Hi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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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 6.7%을 득표하여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게 된 녹생당 피셔, 당시 사민당 당수 오스카 라폰테인, 사민당 총리후부 니더작센주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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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라폰테인은 독일 재무부를 통해서 국제금융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사민당에서 탈당하고, 종업원평의회에 기반한 독일노조의 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된 <취업안정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Wahlalternative Arbeit und soziale Gerechtigkeit>에 참여. WASG는 이후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예인 민주사회주의당(PDS)가 좌파당(Die Linke)으로 합당.

 

사진12: 피셔의 변신과 함께 유고전을 놓고 녹색당내부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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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소보전 개입을 앞두고1999년 5월 소집된 임신전당대회에서 „유럽에서 아우슈비츠를 허용할 수 없다“라면서 독일연방군 유고전 개입지지를 당원에게 호소하는 피셔가 „피세례“를 받았다.

 

사진13: 녹색당 노선을 놓고 피셔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근본주의자/Fundis“ 대표 유타 디트푸르트(Jutta Ditfurt). 당권을 피셔가 이끄는 소위 „현실주의자/Realos“에게 내주고 탈당. 이후 <생태계민주당/Ökologisch-Demokratische Partei>를 창당하고, 프랑크푸르트 시의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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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의 유고전개입 논거를 „아우스슈비츠를 빙자한 거짓말“이라고 비판.  

 

사진14: 적.녹연정이 원전을 가동하는 전력회사와 합의하여 달성한 <핵하차/Atomaustieg> 정책에 반발하는 녹색당 당원. “엄청나게 좋다는 정부의 핵하차는 임금님이 입은 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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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하차는 더욱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판.

 

그림15: 70년대부터 무정부주의자와 거주공간사수 농성의 본거지인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에서 2002년 총선에서 녹색당후보로 처음으로 직선된 하원의원 크리스티안 스트뢰벨레(Christian Ströbele). (오토 쉴리와 함께) 적군파 멤버들을 변호했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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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드 자이프리드(Gerhard Seyfried)의 그림. 녹색당이 대도시에선 대중정당으로 부상한 것을 보여주고 있음. 프라이부르크, 튀빙엔 등의 대학도시의 시장은 이미 녹색당이 차지하게 되었고, 2011.3.27일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 주총선과 함께 실시된 헷쎈주 기초단체선거에서 시장을 사민당이 예약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인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녹색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

 

사진16: <슈트트가르트21> 중앙역 신축사업에 반대하는 주민을 무력 진압한 주정부와 경찰. (2010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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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선에서 기민당/자민당이 참패하게 된 첫째 원인. 녹색당은 어정쩡한 사민당과 달리 처음부터 주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주민요구의 대변자가 됨.

 

사진17: 왼쪽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선 녹색당 후부 빈프리드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과 터키인 2세 녹색당 공동당수 쳄 외즈데미르 (Cem Özdem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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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sueddeutsche.de/politik/erfolgsgeschichte-einer-partei-gruen-ist-die-zukunft-1.1077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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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집권보수연정 기민당과 자민당 본거지 주총선에서 참패

“원전가동기간을 연장하는 자는 자기 정치생명을 단축할 것이다.”

 

이걸 단지 수사학적인 표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떵떵거리며 원전가동을 연장하였던 기민당/자민당 보수진영의 정치생명이 단축되었다.

 

오늘 주총선결과로 근 60년 동안 줄곧 집권하여온 기민당/자민당이 녹색당주도하 녹.적연정에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관련 몇 가지 메모

 

1. 민주주의 문제

 

– 녹색당 후부 빈프리드 크레치만(Winfried Kretschmann) 인터뷰: 이번 선거결과로 “시민사회(Buergergeschaft)가 강화되었다.” “슈트트가르트21” 사업을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한 전 주정권. 소위 “절차민주주의”에 대한 반발. “Wutbuerger”(화난 시민)– 직접민주주의 문제

 

2. 생태계/환경보호운동

 

 – 약30년 동안 반핵을 변함없이 주장하여온 녹색당의 대대적인 승리

 

3. 사민당의 “주변화”(?)

 

4. 좌파당의 저조한 득표(약2.5%).

 

5. 생활환경(“땅”)에 애착을 갖는 “참신한 보수”의 정치세력화

 

6. 독일 기독교 경건주의(Quietismus)의 본거지. 생태계보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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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의 명단이라도 확보해야겠다

사회주의법규라면 어떻게 처리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일본원전사태수습에 죄 없는 노동자를 투입하여 죽게 만드는 일을 그냥 두고 봐야만 하는가? 왜, 그런 원전을 가동하기로 결정한 역대 사장 및 이사진, 주주, 그리고 그렇게 하게 내버려둔 정부인사들을 잡아다가 투입하지 않는가?

 

저들이 멀쩡하게 뒤편에서 떠들게 내버려두는 법규체제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일본인민을 죽게 만든 저놈들을 왜 가만 놔두지. 내 머리론 이해가 안 된다. 자동차 사고와 같은 과실? 지랄... 인민을 죽이겠다고 위협한 카다피와 저들이 결과적으로 뭐가 다른가? 물론, 다를 것이다. 그래서 카다피는 폭탄세례를 받고 있는 것이고, 멀쩡한 정신으로 원전사고를 계산에 집어 넣은 저놈들을 잡아다가 전기선 달고 물 붓게 하라는 것이다.

 

놈들의 명단이라도 작성해서 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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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은 껑충 뛴다

„Es gibt keinen Sprung in der Natur, wird gesagt; und die gewöhnliche Vorstellung, wenn sie ein Entstehen oder Vergehen begreifen soll, meint, wie erinnert, es damit begriffen zu haben, daß sie es als einallmähliches Hervorgehen oder Verschwinden vorstellt. Es hat sich aber gezeigt, daß die Veränderungen des Seins überhaupt nicht nur das Übergehen einer Größe in eine andere Größe, sondern Übergang vom Qualitativen in das Quantitative und umgekehrt sind, ein Anderswerden, das ein Abbrechen des Allmählichen und ein qualitativ Anderes gegen das vorhergehende Dasein ist.“

 

„자연에서는 껑충 뛰는 일이(Sprung) 없다고들 하는데, 이런 통상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발생과 생멸이 뭔가 말해봐 하면, 점진적으로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을 연상하고 다 이해했다고들 한다. 그런데 지금 보여준 결과로는 ... 존재의 변화는 단지 한 크기에서 다른 크기로 넘어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런 변화는 어디까지나 질적인 것이 양적인 것으로, 그리고 역으로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으로 변하는 변화로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것이 되는(Anderswerden) 것이다. 점진적인 것이 단절되고 앞서 간 현존에 맞서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헤겔, 대논리학, 1권 객관적 논리, 1편 존재학, 3장 절(節/Mass), 2절 현실세계의 절/Das reale Mass), B. 현실세계 절의 교차점(Knotenlinie von Massverhaeltnissen), 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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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독립선언, 추진, 그리고 성취 - 펠트하임

생명 있는 것은 끝없이 커지거나 끝없이 작아질 수 없다. 모두다 나름대로의 크기를 가지고 거기에 알맞은 활동공간을 갖는다.

 

어쩌다 한 표 던지는 민주주의란 체제아래 살고, 소켓에 플러그를 꽂으면 전기가 흐르고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한없이 커질 수 있다고, 끝이 없다고 착각하고 산다.

 

그리고, 뭔가 거대한 것에 붙어있어야만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전기공급.

 

근데 독일의 한 조그만 마을이 전력회사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지금 자력으로 필요한 에너지 공급을 100% 충당하고 있다.

 

펠트하임은 주민 145명의 조그만 마을이다.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약 60여 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근데 이 마을은 온수와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100% 자력공급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이장, 면장뿐만 아니라 세계방방곡곡에서 배우려 오고있다.

 

가격도 가장 저렴한 에너지공급자보다 10-20% 밑도는 상황.

 

1996년 풍력발전기 몇 대로 시작해 지금은 태양열전기, 바이오 가스, 자체 변압기, 충전기 등 자력공급을 위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비한 상태다.

 

<Energiequlle>란 회사로 시작하여 지금은 주민이 모두 주주이며, 실업 또한 없다. 자력전력생산으로 창출된 일자리가 무려 70개다.

 

에너지 독립 불가능? 거짓말이다.

 

링크:

http://www.rbb-online.de/theodor/archiv/theodor_vom_25_04/feldheim ___das_1_.html

http://www.energiequelle-gmbh.de/downloads/eindorfsteigtaus.pdf

http://www.unendlich-viel-energie.de/de/der-deutsche-erneuerbare-energie-preis/leitstern-2008/laenderprofile/brandenburg/feldheim-in-brandenburg-ein-dorf-macht-sich-unabhaengig.html

http://www.brandenburg.de/sixcms/media.php/4055/feldheim.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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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미국 아스펜 연구소 독일 지부에서 만나기로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주장해온 이북의 입장을 미국이 일정 수렴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관련 <베를린너 짜이퉁/Berliner Zeitung>지는 2011.3.23 온라인판에

 

이번 만남의 장소가 동.서냉전시 중재자 역할을 했던 아스펜 연구소 독일지부란 점에 주목하고,

아스펜 연구소는 동서 냉전시 양블럭의 지도자들이 부드러운(neutral) 분위기에서 만나 문제해결의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 연구소라고 부각.

 

이번 만남을 통해서, 미국정부인사는 참여하지 않는 비공식만남이지만, 지금까지 김정일 정권의 양자협상요구거절로 일관해온 미국의 입장에 약간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추가보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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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스트(Schlast)

슐라스트(Schlast)

 

어제 새로운 낱말 하나를 배웠다. <Schlast>.

 

“Reality Kills”란 전시회를 보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시내구경을 하다가 배운 낱말이다.

 

계단엔 화창한 봄날 따스한 오후를 맞아 대학생들이 파충류처럼 햇빛을 쬐고 있었다. 그래, 파충류지, 이성의 빛을 받아야 하니까. 이성의 피가 흐르고 있는 우리완 좀 다르지. 암튼, 그 사이를 뚫고 막스 고르키 극장에 들어가 물어보니 오후 5시에 문을 연단다. 네원, 좀 빨리 열면 안돼나. 오후가 텅 비게 되었다. 짝지와 약속한 시간도 당 멀었고.

 

<노이에 바허/Neue Wache>에 들려 케테 콜비츠의<피에타>를 둘러보고 어슬렁 어슬렁 박물관 섬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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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신박물관>의 단장은 이미 다 끝나고 주변정리공사가 한참이다. 합각머리를 쳐다보고 기분이 잡쳤다. 폐허상태일 때에는 보지 못했던 글귀가 거기 박혀있다. <멍청한 사람이 아닌 이상 예술을 증오하지 않는다>. 우아한 지성에 있는 우쭐이랄까, 뭐 이런 것이 스친다. 즈그들끼리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라틴어로 박아 놓았다. 예술이 왜 증오의 대상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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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 앞도 공사중이다. 일하는 노동자들이 저쪽 한 구석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다. 다가가서 인물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목구멍에서 러시아/동유럽의 소리가 나온다. 니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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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주의를빙두르면서돌로된몸들이꿈틀거렸다군데군데무리로밀집되어엎치락뒤치락서로얽혀있거나아니면산산조각이되어파편만남아있는몸들이었다몸통몸을받치려고뻗어내린팔일부가깨져나간엉덩이울퉁불퉁한덩어리등으로만남아있는파편에서몸의온전한형태를엿볼수있었다몸들은어떤형태든지항상정면대결의동작을취하고있었다몸을피하는순간적으로뒤로물러서는공격하는몸을쭉뻗거나혹은구부려방어하는동작이었다곳곳에는그런동작을알아볼수없는형태까지몸이지워진상태였다그러나아직홀연히남아있는한발짝전진하여버티고있는발홱돌려진등장딴지의윤곽등에의해서몸들은모두를하나로뒤덮는운동의일부를이루고있었다그것은거대한투쟁이었다거무칙칙한벽에서솟아오르는이투쟁은까마득한기억속으로완성된자기모습을더듬어나가다가다시무형의상태로침강하고있었다황량한땅바닥에서뭔가를움켜쥐려고쭉뻗어올린어깨와단절되어허허한공간에붕떠있는손깊이패인상처투성이에딱벌린입꽹한눈곱슬곱슬한수염이나붓거리는학대와혹사로일그러진얼굴폭풍에훌렁거리는망토의주름이모든것들이비바람에희석되어사라지기직전이었고본래의모습으로 돌아가기직전이었다금방부스러질것같은깨진조각들이었지만사사로운것들하나하나가모두자신의표현을간직하고있었고거기서전체를읽고알아낼수가있었다.“

 

페르가몬 신전에 배치된 하늘의 신과 땅의 신들과의 싸움에서 착취자와 직접생산자간의 투쟁을 읽어낸 페터 바이스의<저항의 미학>을 생각하다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고 산보를 계속하기로 했다.

 

 

뻥 뚫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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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저렇게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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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 공화국 궁궐)

 

이런 식으로 복구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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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근데 땅이 기억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슐라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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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Schloss>와<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릭/Palast der Republik>이 어울린 <슐라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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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에게 찬찬히 설명해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슐라스트>가 뭔지 알게 되었다. 저 아이의 마음에 <슐라스트>의 꽃이 피기를 바라면서 짝지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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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만화

REALITY KILLS – 만화와 무대에 올라온 전쟁이미지“이란 제목아래 베를린 막심 고르키 극장에서 지금 (3월20-26일까지) 전시회 및 연극이 진행 중이다

 

이 전시회를 개최하는 막심 고르키 극장측의 취지를 보면

 

21세기에 사는 우리는TV앞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서 전쟁을 스펙타클로 소비하고 주견 없이 한 표 던지는 인간들이지만 희생은 실지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어떻게 하면 이런 인식하에 전쟁과 폭력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을까, 매체를 통해보는 전쟁이미지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함.

 

몽타주와 포토샵이 영상자료와 사진이 한 순간의 증거물이란 것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와서 손으로 그린 Comic이 - 한 사실관계가 이렇다고 매일 밤 무대에서 재현하여 직접 보여주는 극장과 함께 – 현실 미달이라는 자기결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여유 있게 다룸으로써 공론의 광장에서 새로운 의미로 지각되고 있다고 - [어, 이곳 부처님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네]  - 분석하고

 

Comic과 극장은  우리가 흔히 역사 혹은 현실이라고 일컫는 것이 항상 조작된 것에 불과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이런 매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낯설게하기(Verfremdung)가 TV 방송이나 글이 할 수 없는 주관적인 현실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고 함.

 

이어 이런 예술형식이 정말 차별화된 대안적인 전쟁담론을 가능케하는 포럼을 제공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사람과 사람간의 싸움을 동반하는 잔인성과 고통이 글과 이미지로 번역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테마를 구체화하고

 

전쟁이미지가 점점 불어나는 오늘날에 Comic과 극장을 동시에 사유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함.

 

 

 

이 프로젝트관련 (70년대 말 독일정부가 적군파를 외부의 적으로 설정하고 여론까지 통제하던 시기, 좌파의 새로운 매체가 필요하다는 의식아래 1978년 몇몇 사람이 시작하여 지금 신사회운동의 유력매체가 된) taz지는 2011.3.22 이 프로젝트에 전시되는 3명을 소개하는데

 

말타 출신 조 사코의 만화 <보스니아>관련

 

조 사코는 대상화하여 최종결단을내리는역사서술에 빠지는 위험을 <팔레스티나>란 만화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르포만화수단으로 피한다고 함.

 

<보스니아>는 사코가 1995년 보스니아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일 때 5개월 동안 거기서 (그 중 한 달은 고라즈데에서) 생활하고 만든 작품인데

 

사코의alter ego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지 않고 오로지 받은 인상, 목소리, 그리고 정보를 고정하여 시각화하는 “관찰하는 매체”로만 작용하고

 

소재를 사람과 그들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하여 늘어놓고, 티토, 빌 클린턴 등의 연설 인용문과 혼합시키고 역사적인 설명을 여기저기에 흘려놓고, 인터뷰대상을 그들의 기억하는 장소로 옮겨놓음으로써  단순한 영상이미지 다큐로부터 탈피한다고 함.

 

전쟁으로 인한 결핍, 상상 불가능한 잔인성 등이 이렇게 하여 견디기 힘든 윤곽을 드러내는데, 사코가 제공하는 컨텍스트는 단지 이런 것을 해석해보려는 시도이며 임의적인 조명이지, 조급한 이해나 전쟁신화화는 여기서 불가능하다는 것.

 

 

쟈크 타르디 관련

 

이는 신화화는 거리가 멀고 독특한 계몽을 지향하는 만화가로서 일찍이 1차 대전을 군인의 신체에 대한 무제한적인 명령권으로 현상화된 전도된 권력구조의 표현으로 그렸고

 

이 만화에서 전선에서 겪었던 일을 냉소적인 목적합리성으로 콤멘트하는 1인칭 화자의 형식으로 밑으로부터의 역사서술을 시도했다고 함.

 

거기서 잘린 몸, 갈기갈기 찢어진 신체, 내장, 피, 흙탕물 등을 주로 페이지 당 3개의 패널로 구성된 엄격한 형식에 배치하고 그 위에 냉소적인 글로 전쟁소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기계와 마찬가지인 한 부속품으로 떨어지는가 보여준다고 함.

 

주말에 이 전시회에 가볼까 한다. 부처님 약 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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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춰 방크> 스왑게래로 손해본 기업 손해배상해야 - 연방대법원 판결

독일 연방대법원이 은행의 금리놀음 관련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춰 방크/Deutsche Bank>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중소기업에게540.000 유로를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관련 독일 중도좌파 유력 일간지 <쉬드도이춰 짜이퉁>은 (http://www.sueddeutsche.de/geld/2.220/bgh-prozess-um-zinswetten-deutsche-bank-muss-zahlen-1.1075423, 2011.3.22) 연방대법원 판결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기초단체 공기업이 <도이춰 방크>와 장기적인 금리와 단기적인 금리차이를 가지고 놀음하는 소위 „Spread Ladder Swap“거래를 하고 나서 많은 손해를 보았는데, 이번 판결로 <도이춰 방크>를 상대로 하여 손해배상청구를 관철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함.

 

<도이춰 방크>와 SL-Swap거래를 한 중소기업과 기초단체 공기업 수는 약200개 정도이며 액수는 약 10억 유로에 달한다는 것.

 

연방대법원은 <도이춰 방크>가 거래시 고객에게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하는 의무(Aufklaerungspflicht)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 특히 이런 스왑거래엔 „막중한 이해관계대립“이, 즉 고객의 손해가 바로 은행의 이익이라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은폐했다는 점에 주목.

 

주심판사 울리히 비허스(Ulrich Wiehers)는 „(이런 거래를) 내기놀음과 비교하는 것은 리스크를 별로 문제없는 것으로 만드는 비교“라고 하고 스왑의 리스크는 „제한되어 있지 않고 고객을 재정적인 파탄“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그런 놀음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 이어 „<도이춰 방크>는 의도적으로 투자자가 손해“를 보게 스왑을 조작했다고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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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은 새로운 이성이다

FAZ를 자주 보게 되네… (조선일보가 이 정도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 조선일보, 독일 = FAZ 란 공식을 자랑스럽게 내놓는 기자를 지나가다 보긴 했지만 ...)

 

자연환경의식의 역사를 다룬 빌레펠트대 요하힘 라드카우 역사학교수와의 인터뷰 일부를 소개한다.(www.faz.net/s/RubB08CD9E6B08746679EDCF370F87A4512/Doc~E0C5D44D762214964A29F1C72C163EC83~ATpl~Ecommon~Scontent.html, 2011.3.22)

 

(중략)

 

FAZ: 환경보호의식이 오늘날 독일 문화의 한 부분인가?

라드카우: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독일 정체성의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원자력 비판에서 독일이 선두주자이며, 여기서 녹색운동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부분에서 독일이 선두주자가 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된 독일의 원전에 대한 반응을 ‚German Angst‘라고 폄하하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FAZ: 이런 의식이 각계각층에 존재하는가?

라드카우: 아주 많은 사회영역에 이미 존재한다. (…)

FAZ: 환경활동가들이 지구 전체에 대한 책임을 걸머지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운동하는 타입인가? 아니면 그들도 역시 자신들의 사생활영역만을 염두하는 사람들인가?

라드카우: 다수의 학자들이 "Not in my backyard"-인티시어티브는 참다운 환경운동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특히 활기찬(vital) 반대운동에서 흔히 개인적인, 아니면 집단적인 이기주의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건강 혹은 살아온 환경보존 등 말이다. 나아가 환경보호가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인간의 되먹음(Natur)과 조율되어야 한다는 테제를 세우고 싶다. 이기주의가 한술 떠 있어야 한다.

FAZ: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고 체르노빌을 상기하는 사람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생각할 수 있겠다. 역사학자로서의 생각은?

라드카우: 다수의 자연환경보호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가 반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오일페스트문제는 이미1920년대에 국제연맹의 자연환경보호 이니시어티브에서 테마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오래 전에 뿌리 채 해소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해상 오일 채취가 확대되면 될수록 이 문제는 항상 새롭게 대두한다. 다이옥신도 마찬가지다. 80년대에 속한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지금의 문제로 우리 앞에 와 있다. 자연환경보호문제에 최종적인 대응(Antwort)이 없었기 때문에 매번 다시 데자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

FAZ: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학 시대“를 계몽의 시대라고 높이 평가하시는데.

라드카우: 생태학은 세상을 총체적으로,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생태학은 정치, 경제, 그리고 일상생활에 새로운 이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포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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