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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4/19
    교육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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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4/18
    고모생각
    ou_topia
  3. 2011/04/16
    서방의 대카다피 양날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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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4/15
    학교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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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1/04/15
    마르크스21 김하영님의 "리비아 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단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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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1/04/14
    반오스만 아랍봉기의 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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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1/04/13
    리비아 나토개입과 제국의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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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1/04/12
    리비아 내전의 "도요다 전쟁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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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1/04/12
    독일 원전 가동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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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04/11
    아랍혁명과 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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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빈곤

교육의 빈곤

 

무엇이 문제인가?

 

김규항:

“세상의 오른쪽에 보수 부모들이 있고 왼쪽에 진보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아래에 가한 부모들이 있다” “보수적인 부자 부모는 막강한 자본력과 승리의 상관관계를, 진보 인텔리 부모들은 전투를 수행하기 무난한 자본과 최적의 문화자본을 활용한다. 타고난 공부 천재가 아닌 이상 돈도 문화자본도 없는 서민 부모의 아이가 그 아이들을 이길 방법은 없다.”

 

조국: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

 

김우철.이우진:

“부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본인[자녀] 역시 고학력자일 확률이 증가하였다. 예를 들어, 부모의 교육연수가5년 이하일 때 본인 학력이 전문대졸 이상일 확률은14.0%였으나 부모의 교육연수가6-9년으로 증가하게 되면 그 가능성은2배가 넘는32.5%로 커지고 부모의 교육연수가10년 이상인 경우에는 그 가능성은 다시2배 증가하여63.1%가 된다. 반면, 부모의 교육연수가10년 이상일 때3.8%에 불과한 중졸 이하의 자녀비중은 부모의 교육연수가6-9년으로 감소하게 되면, 17.1%로 커지고, 부모의 교육연수가5년 이하가 되면 동 비율은43.7%로 크게 증가하였다.”

 

빈곤의 세습이 교육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인가?

 

버너드 만데빌(Bernhard Mandeville):

“지금까지 이야기된 바, 노예가 폐지된 자유국가에서의 가장 확실한 부는 노동빈민이 바글바글하는데(multitude of laborious Poor) 있다는 것이 확연하다. (…)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도 쉽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들 대부분이 가난할 뿐만 아니라 무지해야 한다. (…) 그래서 국가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어떤 국가나 왕국이나 다 노동하는 빈곤자들(Working Poor)의 앎(Knowledge)이 그들이 하는 일(occupation)의 테두리를 내에 갇혀있고, 그들이 숙명적으로 [생각하고] 하는 일(Calling)과 연계되어 있는 것을 뛰어넘어 확장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 일[만]해야 하고(laborious), 기운을 다 앗아가고(tiresome), 그리고 쓰라림이 가득한(painful) 자리(Station)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와 같은] 무지에 하루라도 빨리 종속시켜야 그들이 덜 반발하고 지금 서술된 상황에 영원히 복종할 것이다. (…) 어떤 생명체도 그와 동등한 자에게 기꺼이 복종하지 않는다. 내가 타는 말이 나 만큼 안다면 나는 그 말을 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교육 엘리트들이 바보란 데에 있지 않는가? 자기 밥그릇에 갇혀 그 바깥을 보지 못하는 교육엘리트들이 문제가 아닌가? 교육엘리트들이 복잡한 리스크계산방법을 동원해서 원전은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사람들이 엘리트대학의 엘리트들이 아니었던가? 알아서 기는 교육엘리트들이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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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생각

요리할 땐 좋지만 설거지할 땐 너무 무거운 휘쓸러솥을 설거지하다가 문득 고모생각이 난다.

 

“고모, 왜 가방 사 드렸는데 계속 보자기에 성경 싸가지고 다니세요?”

 

“아가, 아가, 늙으면 먼지도 짐이 된단다.”

 

중국산 양철솥으로 갈아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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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대카다피 양날개 전략

리비아위기관련 서방세계가, 특히 독일의 유엔안보리 기권을 놓고 균열을 보이고 있다는 시각이 푸코의 디스포지티프 개념에 기대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스라타 등 카다피군에 의해서 포위된 도시, 튀니지-리비아, 이집트-리비아 국경의 난민 등의 구조문제와 관련 독일 주도하 유럽연합군(European Union Force/EUFOR) 체제가 작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짐은 서방세계의 위기대응 디스포지티브가 다단계적으로, 특히 기구(apparatus)면에서 잘 다듬어져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관련SWP연구원 클라우디아 마요르(Claudia Major)와의 일문일답을 요약 소개한다.

 

유엔 인도주의 조정국(UN OCHA)의 신청이 있으면 EUFOR-Libya 체제가 작동될 것임. EU의 민간위기관리기구들은 8,600만 유로에 달하는 제정지원으로 이미 튀니지, 이집트 국경에서 어떤 민간구조지원이 필요한지 탐색중임. 유럽연합군은 인도주의 조직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보호하는 작전을 수행.

 

독일은 이와 관련 리비아-유럽연합군 구성에 크게 기여하고 나아가 야전사령부를 현지 작전지휘(Führung der Operation im Felde) 맡을 수 있다고 발표한 상황. 민간구조 작전에 반카다피 공습에 적극 참여한 나토는 이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 나토와 EU의 구조 밖에서 리비아를 공습한 프랑스, 특히 영국과는 달리 독일이 중립적인 작전을 수행하기에 알맞다는 것.

 

리스본협약체결로 마련된 소위 EU의 안보방위정책의 일환으로 마련된 EUFOR의 작동체계가 리비아위기를 맞아 처음으로 검증단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 유럽연합군은 이미 항시적인 EU-Battlegroup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이 경무장 전투부대는 신속하게 이동 투입될 수 있는 장점이 있음.

 

리비아의 항구 및 공항시설보호, 운송호위, 도시의 일부 지역 통제 등의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유럽연합군의 군과 민이라는 양날개 전략 수행이 과연 전개될 지, 전개되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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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마지막 수업

작은 녀석이 오늘 마지막 수업을 받는 날이다. 몇 주 동안 스스로 졸업시험준비를 하고 시험만 보면 지긋지긋한(?) 학교생활이 끝난다.

 

밤이면 짝지와 내 사이가 지 자리인양 우리 침대를 선점했던, 주먹만했던 녀석이 이젠 짝지가 한참 쳐다 올려다봐야 하는 청년이 되어 학교를 졸업한단다. 짝지는 벌써 야단이다. 다른 도시에 가면 어떻게 해, 이직해야겠다, 등치만 컸지 아무것도 모른다 등. 사실 나도 좀 걱정이 된다. 순진하기 짝이 없다. 팥으로 매주를 쓴다 해도 아직도 해맑은 눈으로 “정말 그래요?”한다.

 

학교 마지막 수업이 기억난다.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했던 라틴어 수업이었다. 베르길리우스의 목동들의 노래(bucolica)의 첫 번째 시였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도는 멜리뵈우스가 산에서 가축치고 농사짓고 사는 티튀루스를 보고 부러워하는 내용이다. 둘이서 주고 받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단지 마지막 단락에서 티튀루스가 멜리뵈우스에게 한 이야기는 왠지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쉬자. 아삭아삭 맛있는 사과도 있고, 부드러운 밤, 우유 치즈 다 충분히 있다. 멀리 보이는 농가에서 벌써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진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시골에서 하교하고 오후엔 산에 소를 몰고가 지키다가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땅거미가 짙어지면 다시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기억 때문에 이 시의 마지막 단락이 기억에 남아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날 통학버스를 타고 바람에 너울거리는 밀밭을 보면서 이 시를 암송했던 기억이 난다.

 

평화. 라틴어 선생이 이 시를 의도적으로 골랐는지 모르겠다. 의도적이었다면 성공했다. 전쟁을 사유하면 반드시 이 시가 머리에 떠 오른다. 뭔가 절대적인 것으로. 평화 하면 내게 떠오르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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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21 김하영님의 "리비아 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단상

마르크스21 김하영님의 “리비아 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단상.

 

세세한 흐름까지 반영한 일목요연한 글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근데 마지막 문장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정한 진보 지지자라면 서방의 군사 개입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도 리비아를 포함한 아랍 전역에서 혁명이 확대·심화할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

 

우선 서방의 군사 개입은 현실이다. 그 정당성을 논할 수야 있겠지만 반대의 문제는 아니다. 지상군 투입이라면 물론 아직 찬반이 가능하겠다.

 

두 가지 생각나는 점을 그냥 나열해 보겠다.

 

1. 서방의 개입으로 새로운 역관계가 형성되었다. 여기에 대한 분석이 없다. 이런 저런 담론을 떠나서, 즉 어떤 주권자나 주체나 집단이 하는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지에서 (벵가지, 미스라타) 등에서 어떤 역관계가 형성되었는지 궁금하다.

 

2. 서방 군사개입과 생과사의 문제에 대한 사유가 부족한 것 같다. 푸고는 <성과 진실>에서 군주의 권력은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 두는데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서방군사의 개입이 이상하게 이것과 겹친다. 단지 좀 다르게. 벵가지에 서방은 “죽게 내버려 두거나 살게 만들기 위해서” 개입했다는 것이다. 거절할 수 없는 권력으로 등장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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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오스만 아랍봉기의 일면

탁월한 전술로 반오스만 아랍봉기를 승리로 이끈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비극.

 

로렌스 전술의 핵심:

 

아랍봉기군이 가능한 다치거나 죽지 않는 전술 도입

“The Arabs fought for the freedom, and that was a pleasure to be tasted only by a man alive. Posterity was a chilly thing t.o work for.”

 

그리고 우수한 정보에 기반한 “공간” 사용. [오스만]제국의 전략은 특정지역을 점령해서 지배하는 것이었다면, 아랍 봉기군은 특정지역점령을 포기하고 방대한 지역으로 오스만군을 유도.

“Perhaps one hundred and forty thousand square miles. And how would th Turks defend all that? No doubt by a trench line […]; but suppose we were (as we might be) an influence, an idea, a thing intangible, invulnerable, without front or back, drifting about like a gas?” 가스와 같이 적이 포착할 수 없게 움직였다는 것.

 

하지만 아라비아 로렌스의 등뒤에서는, 그가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랍봉기군의 승리를 예상한 프랑스와 영국이 이미 일명 “The Sykes-Picot Agreement”란 아랍분활협약을 체결했다는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라비아 로렌스, Seven Pillars of Wisdom: A Triumph에서 인용된 문구는Eva Horn, Der geheime Krieg, 2007, 201쪽 이하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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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나토개입과 제국의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

리비아내전과 나토개입의 유형이 뭔가 새롭다. 알듯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헤르프리드 뮌클러(Herfried Münkler)의<제국들/Imperien, Berlin, 2005>이 도움이 될 듯해서 한 부분 소개한다. <제국들>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제국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현상까지 두루 관통하는 분석을 다 소개해야 할 것이다. 능력부족으로 그러지 못하고 서술 그 자체가 자명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 몇 군데를 연재식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뮌클러는 제국이란 현상의 분석에서 지금까지의 분석이 중심부에 주목하였다고 지적하고 제국의 현재와 미래는 주변부에서 결정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주변부를 향한 제국의mission을 다루고 (132쪽 이하) 이어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과 제국 영역의 구성(Der Barbarendiskurs und die Konstruktion des imperialen Raumes)”제하 “야만인(der Barbar)과 “야만적인 것(das Barbarische)”이 어떻게 구성되고 이런 담론이 제국영역 구성과 어떤 상호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150쪽 이하).

 

제국이 통치영역과 주변부를 중심부엘리트주도하의 개화(Zivilisierung)의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있어서 이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은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라는 것.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의 핵심적인 기능은 “제국의 경계선(Grenze)을 비대칭적인 충돌이 야기되는 공간으로 표시하는데 있다”는 것. 제국의 경계선에선 국경에서와 달리 원칙적으로 동등한 국가들이 맞서 있지 않다는 것. 이런 담론에선 이쪽은 선하고 우수한 세계고 저쪽은 혼돈과 믿을 수 없는 세계,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 세계라는 것. 이쪽은 코스모스고 저쪽은 카오스라는 것.

 

이런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에 의해서 생성되는 비대칭은 무엇보다도 이쪽은 정치의 주체로 다른 쪽은 정치의 객체로 서술되고, 그리고 오로지 이렇게 구별되어 중심부의 정치적 상상력에서 작동하는 데에서 드러난다는 것.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에 의한 주체와 객체의 구별은 그저 사실적인 중심부와 주변부의 힘의 차이, 즉 잘 조직된 군사기구와 느슨한 부족연합간의 차이를 정당성의 차이(legitimer Unterschied)로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정당성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야만인/족이 제국의 개화노력에 응해야 한다는 것. 즉 탈야만인화할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 제국에 출입하려면 제국의 거주민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오직 포로로서, 즉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한편 야만인/족의 위협을 보란 듯이 내놓는 포로로서 제국의 영역에 끌려들어간다는 것. 이런 현상은 로마의 포로에서 미국의 포로가 된 탈레반까지 이어진다는 것.

 

이어 뮌클러는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이 민족과 민족간의 구별로(ethnographisch), 아니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혹은 인종차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었다고 그 유형을 정리하고, 하지만 비대칭적인 기본구도(Grundkonstellation)는 어떤 경우든 유효하다고 함.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이 제국의 주변부에서 제국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선을 엄연하게 긋는데, 이런 선은 사실 존재하지 않고, 주변부의 방대한 영역에선 대려 안과 밖의 구분이 유동적이고 그 드나들기의(Übergänge) 폭이 넓다는 것. 그래서 한 부족 혹은 클랜(Clan)의 반제국 아니면 친제국적인 입장은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은 불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의미론적으로(semantisch) 확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은 „가상적인 분단선(imaginäre Trennungslinie)“을 생성하여 사실 윤곽이 불투명한 제국의 경계선을 보완한다는 것. 이렇게 “공론화된 비대칭(kommunizierte Asymmetrie)”은 사실 제국의 경계지역에 찾아볼 수 없지만 중심부가 통치영역의 경계선에서도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시도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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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내전의 "도요다 전쟁화"?

소위 “새로운 전쟁들” (Herfried Münkler, Die neuen Kriege)은 전쟁을 독점했던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과 달리 그 전선이 불분명하다. 그리고 뮌클러에 따르면 „새로운 전쟁“은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전쟁이며, 유럽이 근대국가로 가는 핵심적인 전쟁이었던30년 전쟁과 유사하게 „전쟁이 전쟁을 먹여 살리는 전쟁“의 양태로 전개된다.

 

나토 전투기의 폭격을 피해 중장비는 숨겨놓고 도요다 픽업을 사용하여 진격하는 카다피의 군대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카다피군과 붕기군의 비대칭에서 나토 전투기와 카다피군의 비대칭으로 이어지는가 했더니 이젠 카다피와 봉기군이 다 도요다 픽업을 사용하는 대칭전(?)이 된 것 같다. (참조: „도요다의픽업. 힘없는자의기마병“, FAZ).

 

물론 이런 조그만 현상에서 카다피군과 봉기군간의 힘의 대칭을 이야기하고 휴전과 더불어 리비아분할, 양측에 들어설 정권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한 비약이겠다. 이런 와중에 함부르크 소재GIGA 연구소의 한스페터 마테스(Hanspeter Mattes)는 리비아 직접민주제의 기초기구인450개의 지방인민회에 희망을 걸기도 하지만 그 개진이 불투명하다(참조: „아프리카연합이중립적인중재자인가?“, SZ)

 

90년대 이후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전쟁“과 지금의 상황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전쟁의 경제적 토대에 주목하는 뮌클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새로운 전쟁“이 지속가능한 이유는 전쟁을 이끄는 Warlords들이 글로벌경제체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바로 거기에 종속되어 국제경제에 필요한 자원공급에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대려 그 수익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어 „전쟁이 전쟁을 먹여 살리는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란다.

 

리비아내전과 코티디부아르사태가 이상하게 겹친다.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세계내정(Weltinnenpolitik)“이 제자리를 확립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신식민주의가 태동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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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원전 가동 현황

 

 

 

원전 반경50km           내 거주민 가동시작 신고의무        사태                   발생건수 적녹하          가동 흑황하          가동 후쿠시마후
Biblis A 430만명 1974 419 2011 2020 가동중단
Biblis B 430만명 1976 420 2012 2020 가동중단
Neckarwestheim 1 380만명 1976 427 2011 2019 가동중단
Brunsbüttel 80만 1976 462 2012 2020 가동중단
Isar I 120만 1977 279 2011 2019 가동중단
Unterweser 140만 1978 337 2012 2020 가동중단
Phillipsburg I 340만명 1979 337 2012 2020 가동중단
Grafenheinfeld 100만명 1981 222 2014 2028 가동중단고려
Kümmel 270만명 1983 322 2019 2033 가동중단
Grundremmingen  B 170만명 1984 105 2015 2030 가동중
Grundremmingen C 170만명 1984 99 2016 2030 가동중
Phillipsburg 2 340만명 1984 181 2018 2032 가동중
Grohnde 190만명 1984 222 2018 2032 가동중
Brokdorf 160만명 1986 210 2019 2033 가동중
Emsland 100만명 1988 121 2020 2034 가동중
Isar 2 120만명 1988 72 2020 2034 가동중
Neckarwestheim 2 380만명 1988 80 2022 2036 가동중

 

출처: Die Zeit, 2011.3.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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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혁명과 나토

나토의 리비아 개입이 ‘진보진영’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 혼란의 저변에는 나토의 실체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몇 가지 문제를 스케치 해보고자 한다.

 

1. 동서냉전의 종말로 나토의 존재근거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는 버젓이 살아있고 유럽과 미국의 주요개입기구로 변신하였다. 하지만 나토는 발칸반도개입에서의 문제(유고전관련 유엔안보리의 비토, 결과 나토의 유고전 개입은 국제법상 불법),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의 개입에서의 [정당성/합법성]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했다. 나토의 이런 문제점 의식과 2005년 유엔이 “responsibility to protect”조항을 체결하게 된 배경간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재조명해야 할 것 같다.

 

2. [진보진영보다] 나토가 더 훨씬 변증법적으로 아랍혁명을 대하고 있다. 변증법의 문제는 어떻게 세상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는데 있지 않다. 세상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형이상학을 만드는 것이고, 전통 형이상학보다 더 관념적인 것이 된다. 변증법의 핵심은 변화무쌍한 세상일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에 있다(Wolfgang Haug, 실천적인 변증법을 위하여(Für praktische Dialektik). 이런 맥락에서 나토는 그간 개입을 위한 매끈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바둑에 비교하자면 다양한 포진으로(푸코의 디스포지티브) 진보진영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허우적거리게 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담론이 나토의 디스포지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진보진영이 나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토는 아랍혁명이 EU의 위기로 발전하지 않게 면밀하고 정밀하게, 개별적인 개입양태가 서로 모순되게 보이기도 하지만, 일사불란하게 개입하고 있다.

 

아랍주재 EU 가입국의 외무부, 정보부, 각종 학술단체들이 아랍에서의 상황개진을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수한 보고, 분석, 조정, 조율 등이 필경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개입시나리오를 준비하였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독일의 안보리에서의 기권관련 EU내 균열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이런 균열은 보다 방대한 EU의 개입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한다. 리비아 개입 초기에는 독일이 미, 영, 불 군사회의에서 제외되었지만, 다시 메르켈 총리를 보란 듯이 3국 군사회의에 참여시키고 있다(참조. 독일 제일경제신문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의 분석 „메르겔의전략이적중할수있는이유“)

 

3. 유엔과 나토가 마련한 „Responsibility to protect“란 선물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트로이의 목마일까? 이 목마에서 뛰쳐나오는 것은 무엇일까? 목마를 선물로 주고 간 그리스군을 믿을 수 없었던 라오콘은 „그리스사람은 그들이 선물을 들고 올지라도 두렵다 (timeo danaos et dona ferentes; 베르길리우스의 에네이스2권; 이 문장은 „바로 선물을 들고 오기 때문에 그리스사람들이 두렵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라고 했다. 요는 그 다음 라오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트로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있다. „인권“이란 성스러운 선물에 허둥대는 „진보진영“의 모습이 트로이사람들의 행동에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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