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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2/01/21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 - 토니오 스키아보(2)
    ou_topia
  2. 2012/01/21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와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ou_topia
  3. 2012/01/20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 <저급한 아이들하고 놀면 안돼>(1)
    ou_topia
  4. 2012/01/18
    이북과 이디오진크라지
    ou_topia
  5. 2011/11/11
    2011/11/11
    ou_topia
  6. 2011/10/21
    2011/10/21(5)
    ou_topia
  7. 2011/08/25
    [중한]번역관련 중요자료
    ou_topia
  8. 2011/08/23
    예수와 무상급식(5)
    ou_topia
  9. 2011/08/22
    느헤미야와 우리말 가르치기
    ou_topia
  10. 2011/08/22
    오래 살고 볼 일이다.(3)
    ou_topia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 - 토니오 스키아보

 

 
이 노래는 이태리 이주노동자(Gastarbeiter) 토니오 스키아보(Tonio Schiavo)에게 받치는 노래다. 그는 잠깐 서독 도시 헤르네[루르 지역 광산촌]에서 살았다.  ㅣ 

이 노래는 토니오 스키아보에 대한 이야기다.
[못 사는]  메쪼조르노[남부 이태리지역] 에서 태어나  [못 먹어서]  제대로 크지 못하고
아내에다 아이 여덟, 그 중 세명은 죽어가는 상태, 
거기다 이복동생을 합한 여동생 세명과 함께 한 방에서 살다가
먼 길을 떠난 토니오 스키아보 

그는 먼 곳, 페러다이스로 가버렸다.
헤르네 근처 어딘가에 있는 페러다이스로.

메쪼조르노에서 온 12명의 동료와 함께 지내는
지붕 밑 창고 합숙다락방,
100마르크 월세에 저녁 9시에 소등,
저녁이 되면 쪼그려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어쩌다가 다락방 창문을 통해 

진짜 별들이 페러다이스를 비춰주기도 했다.
헤르네 근처 어딘가에 있는 페러다이스를.

토니오는 알찬 돈을 집에 보내고
메쪼조르노에서는 돈을 새어보고 입이 찢어지고.
그는 일하고 또 일했다. 시급 10마르크 공사장에서.
그리고 어느날 상량식이 다가왔고 모두 만취했다.
작업반장이 그를 이태리돼지새끼라고 불렀다. 

토니오의 귀에 거슬렸다 – 더구나 페러다이스에서 
헤르네 근처 어딘가에 있는 페러다이스에서 

토니오 스키아보는 칼을 뽑았다. 
메쪼조르노에서 가지고 온 잭나이프였다.
툭 튀어나온 작업반장 배에 찔러 박았다.
배에서 피가 철철 쏟아지고 맥주도 푹 쏟아져 나왔다. 
네명이 곧바로 토니오 스키아보를 붙들어 잡았다. 

토니오는 발 밑으로 헤르네가 펼쳐졌다. 페러다이스가  
헤르네 근처 어딘가에 있는 페러다이스가 더 이상 멀지 않았다. 

이렇게 토니오 스키아보의 생이 끝났다.  
메쪼조르노에서 태어나 제대로 크지 못한 토니오 스키아보의 생이.
그들은 그를 70미터 밑으로 던져버렸다. 
보도블럭에 철썩 떨어졌다. 삐적 마른 남자 10명 바로 앞에 ,
피곤하고 축 쳐진체  

먼곳 메쪼조르노에서 페러다이스에 방금 도착한
헤르네 근처 어딘가에 있는 페러다이스에 방금 도착한 사람들 앞에. 


Dies Lied ist gewidmet dem italienischen Gastarbeiter Tonio Schiavo. Er lebte nur kurze Zeit in der westdeutschen Stadt Herne.

Das ist die Geschichte von Tonio Schiavo,
geboren, verwachsen im Mezzo-giorno.
Frau und acht Kinder, un drei leben kaum,
und zweieinhalb Schwestern in einem Raum.
Tonio Schiavo ist abgehaun.

Zog in die Ferne,
ins Paradies,
und das liegt irgendwo bei Herne.

Im Kumpelhäuschen oben auf dem Speicher
mit zwölf Kameraden vom Mezzo-giorno
für hundert Mark Miete und Licht aus um neun,
da hockte er abends und trank seinen Wein,
manchmal schienen zum Dachfenster rein

richtige Sterne
ins Paradies,
und das liegt irgendwo bei Herne.

Richtiges Geld schickte Tonio nach Hause.
Sie zählten´s und lachten im Mezzo-giorno.
Er schaffte und schaffte für zehn auf dem Bau.
Und dann kam das Richtfest und alle waren blau.
Der Polier, der nannte ihn "Itaker-Sau".

Das hört er nicht gerne
im Paradies,
und das liegt irgendwo bei Herne.

Tonio Schiavo, der zog sein Messer,
das Schnappmesser war´s aus dem Mezzo-giorno.
Er hieb´s in den fetten Bauch vom Polier,
und daraus floss sehr viel Blut und viel Bier.
Tonio Schiavo, den schnappten gleich vier.

Er sah unter sich Herne,
das Paradies,
und das war gar nicht mehr so ferne.

Und das ist das Ende von Tonio Schiavo,
geboren, verwachsen im Mezzo-giorno:
Sie warfen ihn siebzig Meter hinab.
Er schlug auf das Pflaster und zwar nur ganz knapp
vor zehn dünne Männer, die waren müde und schlapp,

die kamen grad aus der Ferne - aus dem Mezzo-giorno -
ins Paradies,
und das liegt irgendwo bei Herne.
 
(1966년에 발표된 음반 <Väterchen Franz>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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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와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ou_topia님의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 <저급한 아이들하고 놀면 안돼>] 에 관련된 글.

 

작년 11월, 그니까 11월 14일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우연히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가 79세로 별세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Spiel nicht mit den Schmuddelkindern>을 불렀다. 고등학교 다닐 때 알게 된 이후 종종 불러보는 노래다. 이 노래는 1965년 같은 제목으로 발표된 음반에 선보인 발라드로서 독일 68세대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와 함께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를 한번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세상이 참 아니러니하다. 독일 학생운동의 상징이자 대표였던 루디 두치케를 사냥 몰이했던 빌드지를 발간하는 스프링어하우스가 있는 길이 최근에 코흐슈트라쎄에서 루디-두치케슈트라쎄로 개명되는가하면, 독일의 소위 교양부르주아지를 신랄하게 비판한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를 바로 독일의 교양부르주아지를 대변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짜이퉁이 가장 충실하고 성실하게 소개하고 추모한다. (이것은 물론 내 느낌이다.) 그래서 이 추모문을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와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를 소개하는 글로 번역해 본다.



부르주아지의 모든 길들이기 행위에 대항하여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는 60-70년대에 정치적인 노래로 한 세대 전체를 대변하는 작가가 된다. 그가 오늘 79세로 별세했다.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는 한결같이 자기 확신에 충실했다.


그는 동부권 붕괴 후 공산주의의 미래를 믿느냐는 질문에 손자와 증손자에게 희망을 건다고 대답했다. „이 전투에서는 패배했다. 그러나 [투쟁은]은 계속 된다.“ 그가 갖는 희망의 근거를 제시하는 이 대답에는 또한 변호사, 작가 그리고 가수인 데겐하르트의 성품이 잘 드러난다. 한번도, 어떤 경우에도 자기신념을 한줌이라도 포기한 적이 없고, 회의하지 않고, 장기간 용기를 상실한 적이 없다.


저급한 아이들과 놀기


그는 급진적으로 정치적인 노래작가로서 독일 힛트페레이드에 오른 몇 안되는 작가이며 거기다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는 에버그린으로 불려지는 노래다. 1965년에 창작된 이 노래는 오늘 들어도 닭살이 돋는다. 독일 전후 세대의 삶을 반영하는 이 노래는 사실  한 사람의 생을 그린 쓰라린 소설이다.


사회적 존망의 대상이 되는 착실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부모에 반항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살고 있는 상류층 지역(Oberstadt)에서 „66카트놀이 하고, 여자아이들 치마 밑을 들여다보고, 솨솨 비오는 날에는 머리빗을 입에 물고 쥐잡는 노래를 부르는 바보 엥엘베르트에게 귀를 기우리는 곳“으로 빠져나온다. 유아시절의 이런 색다른(schwarz) 페러다이스가 불운을 불러 일으킨다. 상류층 사회(Oberstadt)는 소년에게 „허리와 함께 말 구부리는 법, 삐적 마른 얼굴을 빠알같게 화장한 문화인들 앞에서 달달외운 어린의 정경을 띵똥거리“는 것을 가르친다.  „보란듯이 부자“가 된 후 데겐하르트의 끔찍한 영웅은 교통사고로 육체적/정신적으로 장애자가 되고 저급한 아이 한 명을 겁탈하다가 그 동료들에 의해 익사당한다.  


이렇게 철저하게(radikal) 부르주아지의 길들이기 행위를 폭로하고 아웃사이더를 찬찬히 조명한 사례로는 데겐하르트 이전에 단지 조르주 브라상스를 들 수 있고 쟉 브렐이 종종 그랬다고 할 수 있겠다. 1960년 즈음 변호사로 일하는 것과 병행해서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할 때에 그는 앞 작가들 외에 브레히트, 투홀스키, 베데킨드 등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뭐가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말하기 어렵다. 1968년 „68세대의 가수“란 타이틀을 안겨준 그의 노래 때문인지 아니면 동년에 APO 원외야당 멤버를 변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1970년 독일 음반상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1972년 [독일 적군파 모태인] 바더/마인호프 그룹을 법률적으로 지원해서 그런지 말하기 어렵다.


데겐하르트의 단호함이 아쉬울 것이다


바더/마인호프 그룹을 변호한 것과 더불어 사민당에 공산당으로 당적을 옮긴 것에 관해서는 찬반논쟁이 근거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데겐하르트 노래 가사가 갖는 말의 사로잡는 힘과 구상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 않을 것이다.  (…) 또 그가 출판한 음반 제목은 독일연방공화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그린 단편소설과 같이 들린다. „Im Jahr der Schweine/돼지들의 해에“ (1969), „Mit aufrechtem Gang/허리를 굽히지 않고“ (1975), „Da müssen wir durch/상황를 뚫고 나아가야 할 때다“ (1987) 그리고 „Weiter im Text/글로 계속“ (1996) 등 몇몇 제목만 소개해도 그렇다.


1986년 브라상스의 노래를 독어로 번역하여 모음집을 발표할 때 사용한 제목 „벤치에 앉은 젊은 커플들/Junge Paare auf Bänken“과 같은 부드러운 음성은 예외다. [음반 제목은 보통 투쟁적이거나 비판적이다.] 그러나 무대에 서면 전적으로 부드럽고 미소를 자아내면서 삶의 기쁨에 도취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2월 19일 베를린너 앙상블이 팔순 기념을 위해 계획한 연주회에서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오는 12월 3일이 팔순잔치였다. 그러나 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는 이번 월요일 함부르크 근교Quickborn에서 별세했다. 그의 단호함이 [독일연방]공화국에 [사는 우리에게] 아쉬울 것이다. 단지 음악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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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 <저급한 아이들하고 놀면 안돼>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그런 아이들 노래를 불러서도 안돼고!
뭐가 대려고 그러니? 형들처럼
상류층 아이들하고 놀아라!>

이렇게 엄마가 말하고 아빠가 말하고 목사가 설교했다.
그러나 그는 매일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가
토끼장 창고에 숨어서 담배와 쥐를 잡아 벗긴 가죽을 걸고
66 카드놀이를 하고
여자 애들 치마 밑을 들여다보고
따사로운 날에서 고양이들과
낡은 나무상자위에서 졸고
비가 솨솨 오는 날에는
머리빗을 입에 물고
쥐잡는 가락을 부는  
바보 엥엘베르트에 귀를 기우리고.
저녁밥상에서 식사기도가 끝나면  
늘 반복되는 말. <너 또 토기장에 갖지. 냄새 난다.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그런 아이들 노래를 불러서도 안돼고!
뭐가 대려고 그러니? 형들처럼
상류층 아이들하고 놀아라.>

엄마아빠목사는 그를 고상한 동네의 학교에  집어넣어
머리와 함께 거침없는 말을 빗어 빤듯하게 하고
허리와 함께 말 구부리는 법을 배우고
쥐잡는 가락대신  
[헨델의] <라르고>를 깨갱거리고   
삐적마른 얼굴을
빠알같게 화장한 쥐새끼 눈썹 문화인들 앞에서
무슨 길들인 말들 경주처럼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차례로 띵똥거리고
네줄로 나란히 움추려 서서
뼈따기가 문들어지게 구호하고  
기발사이에 서서
의리는 지켜야한다고 핏대를 올리고.
그러나 그는 종종 저녁시간에 토끼장으로 살짝 빠져나가
저급한 아이들과 함께 야유가 가득찬 목소리로 노래하기를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나중에 그는 보란듯이 부자가 되어 고상한 동네에  
집을 짖고 매일 목욕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를 풍기고  
다른 쥐새끼들이 그 냄새를 맡아 겁먹어 하수구로 물러나면
느끼하게 웃고
토끼장은 다 헐어버리고
대신  어린이 공원을 만들고
하이힐을 신은 금발 여자를
쌩쌩 잘 달리는 차를
달짝지근한 음악을 좋아하고
손톱깨무는 아들이 늦게 집에 들어오면
이리저리 냄새를 맡아보고 때리고 호통치기를. <토기장 냄새 난다.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어느날 커브길에서 쭉 미끄러지고
찌그러진 차안에서 겨우 끄집어내어 [구출되었지만 병신/바보가 되고]  
그후  절둑거리면서 길을 걸을 때
낮에 머리빗을 입에 물고
쥐가죽을 목에 두르고
노래하고   
어린이들 뒤를 절둑절둑 따라가면서
등교하는 것을 방해하고
토끼장 주변을 살곰히 맴돌는 것을 사람들은 보았다.  
그러다 어느날 대낮에
한 아이를 창고로 끌고가
겁탈하다가 [지저분한 아이들한테 맞아 죽고]
  시체는 쥐새기 연못에 붕 떠있는 체로 발견되고
그 주변에 지저분한 아이들이 머리빗을 입에 물고 노래하기를
<저급한 아이들과 놀면 안돼...>



Spiel nicht mit den Schmuddelkindern,
sing’ nicht ihre Lieder
»Geh doch in die Oberstadt,
mach’s wie deine Brüder«,
1
so sprach die Mutter, sprach der Vater, lehrte der Pastor
Er schlich aber immer wieder durch das Gartentor
und in die Kaninchenställe, wo sie Sechsundsechzig spielten
um Tabak und Rattenfelle -
Mädchen unter Röcke schielten -
wo auf alten Bretterkisten
Katzen in der Sonne dösten -
wo man, wenn der Regen rauschte,
Engelbert, dem Blöden, lauschte,
der auf einen Haarkamm biß,
Rattenfängerlieder blies
Abends am Familientisch, nach dem Gebet zum Mahl,
hieß es dann: »Du riechst schon wieder nach Kaninchenstall
Spiel nicht mit den Schmuddelkindern,
sing nicht ihre Lieder
Geh doch in die Oberstadt,
mach’s wie deine Brüder! »
2
Sie trieben ihn in eine Schule in der Oberstadt,
kämmten ihm die Haare und die krause Sprache glatt
Lernte Rumpf und Wörter beugen
Und statt Rattenfängerweisen
mußte er das Largo geigen
und vor dürren Tantengreisen
unter roten Rattenwimpern
par cur Kinderszenen klimpern -
und, verklemmt in Viererreihen,
Knochen morsch und morscher schreien -
zwischen Fahnen aufgestellt
brüllen, daß man Freundschaft hält
Schlich er manchmal abends zum Kaninchenstall davon,
hockten da die Schmuddelkinder, sangen voller Hohn
»Spiel nicht mit den Schmuddelkindern «
3
Aus Rache ist er reich geworden In der Oberstadt
hat er sich ein Haus gebaut Nahm jeden Tag ein Bad
Roch, wie beßre Leuten riechen
Lachte fett, wenn alle Ratten
ängstlich in die Gullys wichen,
weil sie ihn gerochen hatten
Und Kaninchenställe riß er
ab An ihre Stelle ließ er
Gärten für die Kinder bauen
Liebte hochgestellte Frauen,
schnelle Wagen und Musik,
blond und laut und honigdick
Kam sein Sohn, der Nägelbeißer, abends spät zum Mahl,
roch er an ihm, schlug ihn, schrie: »Stinkst nach Kaninchenstall
Spiel nicht mit den Schmuddelkindern «
4
Und eines Tages hat er eine Kurve glatt verfehlt
Man hat ihn aus einem Ei von Schrott herausgepellt
Als er später durch die Straßen
hinkte, sah man ihn an Tagen
auf ‘nem Haarkamm Lieder blasen,
Rattenfell am Kragen tragen
Hinkte hüpfend hinter Kindern,
wollte sie am Schulgang hindern
und schlich um Kaninchenställe
Eines Tags in aller Helle
hat er dann ein Kind betört
und in einen Stall gezerrt
Seine Leiche fand man, die im Rattenteich rumschwamm
Drumherum die Schmuddelkinder bliesen auf dem Kamm:
»Spiel nicht mit den Schmuddelkinder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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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과 이디오진크라지

이북체제가 3대세습으로 이어졌는데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독재체제는 권력이양시 필연 위기에 빠진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여기에 이북의 경제적 곤경과 사회적 불만을 더해서 이북붕괴론을 주축으로 하는 여러 시나리오가 어제까지 그려졌는데 권력이양이 진행중인 오늘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러지?  

분명 많은 뇌줄음이 투자되었을텐데 … 

이디오진크라지가 문제인가?

이디오진크라지가 이북에 대한 알레르기이면 체질을 고치고, 이북이 역사적으로  독특한 혼합의 결과라는 의미로서의 이디오진크라지라면 개념과 사태에 더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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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놓고 가면 어차피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라고 갖고 가란다. 치근 위쪽 일부에 아직 살점이 말라 붙어있다. 들고 오기는 했지만 전혀 섭섭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반복되는 염증에도 불구하고 일년이상 버티다가 결국 뽑아 버릴 수밖에 없게 된 어금니다. 머뭇거린 이유는 아마 속썩이는 이빨이지만 내 몸의 일부라 그냥 뽑아버릴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뽑아버리니까 말 그대로 속이 시원하다. 괜히 들고 왔다는 생각조차 든다. 그런데 혀는 안 그런다. 사라진 어금니를 내내 못 잊어 한다. 뽑힌 어금니가 남긴 허전한 공간을 더듬고 또 더듬는다.

 

같은 일을 놓고 이렇게 엇갈리는 태도를 보이는 나와 혀는 과연 같은 무리일까? 속 시원하게 떠나기로 좋아하는 나와 떼놓고 온 사람과 사물을 내내 못 잊어 하고 예전의 감촉과 윤곽을 찾아 헤매는 손은 같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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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1

책상과 마음이 어지럽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죽은 사람의 몸을 보지 못해서 찾아가면 죽었다는 사람이 그대로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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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번역관련 중요자료

藝術人生님의 [중한번역] 에 관련된 글.

 

스크랩

 

"이는 한자가 문자언어로서 갖는 일정한 초국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한글전용론과 중국어 원음표기 주장 속에서 이러한 한자의 초국가성이 민족주의/국민주의와 갈등적 관계에 있음을 본다. "

 

"한글전용(한자의 외국어화)과 중국어원음표기주의(중국어의 타자화/국어의 동일화)가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세계체계의 작동 논리로서 '국민적인 것들의 강화'라는 맥락에 놓이는 반면, 한자의 초국가성(transnational)의 승인 및 한자음표기주의는 이질적인 것들의 존재를 승인함으로서 국민적인 것들 내부에 일정한 균열을 낳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일부 복고주의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이를 국민화의 강화의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탈국민화 및 초국민화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이전의 국제주의적 사회운동에 대한 현재적 계승이 복고주의적이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

 

"원음 표기는 원음에 '가까운' 표기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 전제 자체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문자와 구어의 관계, 개념과 실체, 이론과 실제(실천/운동)의 관계의 대비. 경험주의의 문제. 그 배후의 인식론적 문제."

 

"민족주의적 언어운동이 오히려 반민중적이게 될 가능성. 사카이 나오키의 논의를 재검토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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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무상급식

행인님의 [가카의 최대 치적은...] 에 관련된 글.

 

 

예수님이 좋다. 마음이 훈훈해서 그렇다. 마음이 깨진 사람들의 마음을 절대 더 깨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란 말씀에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자력으로 먹거리 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완전 거지다. 그래서 중세에 거지가 되어 예수를 따른 사람들이 있다. 예수를 따르는 것과 가난/거지 문제는 카톨릭에서 아직도 가장 첨예한 대립을 빗는 이슈가 아닌가 한다.

 

그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마음에 도사리는 온 갓 욕심을 비운 도사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아니다. ‘마음’은 pneuma, 즉 영을 번역한 것이고, 원문에 pneuma는 맥락을 가리키는 3격으로 사용되고있다. ‘영적 차원에서 가난한 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영은 야훼에 속하고 야훼를 향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을 수 없다. 대려 가장 불행한 자가 된다. 그럼 여기서 pneuma는 뭐하고 관계하고 있는가? 인간의 내면을 가리킨다고 해야겠다. 그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다시 앞에서 말한 마음을 비운 도사 정도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해석이 진퇴양난에 빠진다. 이 아포리아를 인간존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구약성서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보자. 시편 34편을 보면 친자식 압살롬에게 쫓기다 자신의 신분을 숨겨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는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18절에 보면 ‘주님은 항상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란 표현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여기 ‘마음이 상한 자’와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가난이란 외부의 실질적인 압박과 결핍으로 마음이 상한자다. 마음을 비운 도사처럼 넉넉한 웃음을 자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뒤러의 ‘어머니의 초상’과 같이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이다. 외부/물질적인 결핍으로 내면세계가, 즉 영이 깨지고 상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먹이실 때 그들 마음이 더 상하지 않게 그들에게만 주지 않고 모두에게 준다. 옛날 밥 먹을 때 찾아와 마루에 걸터앉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밥상을 내놓았던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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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와 우리말 가르치기

독일 한인 2세들의 우리말 능력은 다양하다. 크게 한국말로 대화가 가능한 2세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2세가 있다. 한글을 가르친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독일 대학에서 한국어 교수로 지냈던 분들 등 소위 두개의 언어를 문제없이 배울 수 있다는 걸 알만한 분들의 자녀들이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해가 안 간다. 그런가 하면 자녀들이 집에서 독일말을 하면 ‘니 아버지는 무식해서 독일말 못해”라고 때리기까지 하면서 한국말을 가르친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 중 보수적인 차원을 넘어서 국수적인 분들도 있다. 근데 이제 이런 분들이 존경스럽다.

 

성경에 느헤미야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읽기 힘든 부분이 있다. 유대인 남성이 이방인 여성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이 히브리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모국어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를 뽑아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흔드니까 머리가 한줌 뽑혔을 거다.

 

전반적인 내용상 느헤미야가 국수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느헤미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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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볼 일이다.

90년대 서점에서 사라졌던 맑스를 얼마 전부터 다시 볼 수 있다. MEW도 보인다. 자유[시장]주의자들도  좌파가 현실을 옳게 보지 않았냐고 묻는 상황에 자본론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불어나나 보다.

 

영국 보수 일간지 The Telegraph의 컬럼리스트 찰스 모어(Charles Moore)의 2011.7.22 컬럼의 시작부분이 흥미롭다.

 

“I'm starting to think that the Left might actually be right. It has taken me more than 30 years as a journalist to ask myself this question, but this week I find that I must: is the Left right after all? You see, one of the great arguments of the Left is that what the Right calls “the free market” is actually a set-up.”

 

그리고 토니 블레어의New Labour를 우파로 치고, 우파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를 구별하지 못해서 [보수의 지지를 받고 보수를 지지했던 루퍼트 머독이 반사회적인 세력이 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 부분이 재밌다. (The Left was right that the power of Rupert Murdoch had become an anti-social force. The Right (in which, for these purposes, one must include the New Labour of Tony Blair and Gordon Brown) was too slow to see this, partly because it confused populism and democracy.)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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