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주간울교협통신] 준비20호, 95.11.17

 

민주노총 시대 울산지역 선진노동자의 임무

민주노총이 출범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업별 단위노조를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투쟁이 전개되던 단계를 넘어서서, 산업별로 조직을 운영하고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 첫째요, 둘째는 노동조합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집단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력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 삶의 방향을 책임있게 제시할 수 있는 위력적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우리 울산지역 선진노동자들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민주노총 시대를 맞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잠시, 과거 8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자.

87년 7∼8월 대투쟁,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과 현대자동차 4.28 연대투쟁, 91년 5월투쟁, 91∼92년 현대자동차 년말 상여금투쟁, 92∼93년 민주노조 재건투쟁, 93년 현총련 공동임투, 94년 현대중공업 파업투쟁, 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동지 분신투쟁…

우리는 128일 파업투쟁의 영웅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기억하고 있다. 또한 조합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민주' 집행부가 치욕의 직권조인을 어떻게 재현했는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속에서 우리는 '민주노조'가 무엇인지, '천만의 단결이 2만 현대중공업의 단결과 3만 현대자동차의 단결을 완성시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왔다.

우리는 활동가들 내부의 세대간 갈등도 겪었고 조직적 분열도 경험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생활'상의 이유로 전선에서 떨어져 나간 가장 가까웠던 동료들을 볼 때였다. 이 속에서 우리는 노동운동을 통해 체험한 '새로운 삶의 질서'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성숙된 조직력과 지도력을 요구하는지도 깨달아 왔다.

배신과 좌절, 약진과 침체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참으로 힘들게 '전진'해 왔다. 우리의 전진은 결코 상처투성이의 영광이 아니었다. 보라! 지난 8년간 우리가 얼마나 자랐는가? 여덟살짜리 치고는 꽤 야물게 커 왔지 않은가? '정치적 사춘기'에 변성기의 목소리로 동지들과 찢겨졌던 아픈 기억들도 이젠 보다 높은 정치적 단결 속에 녹혀들어 갈 웬만한 채비들은 갖추고 있지 않은가? 어느날 문득 바로 옆의 동지가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보이지 않던가? 우리의 전진은 이렇듯 시련을 돌파한 야문 여덟의 성숙이다.

이제, 우리의 '일'들을 얘기해 보자.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앞장서서 실천해 내는 것이 그 첫째다. 한마디로 '천만노동자총단결의 정신'을 가지고 현장을 조직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여기서 현대자동차 동지들에게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 현대자동차가 '소우주'로 인식되고 그로부터 한치라도 벗어날라치면 '머리 작은 거인' 꼴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오늘, 솔직한 현대자동차 동지들의 모습 아닌가? 90년 4.28 연대투쟁의 정신이 92년 1.21 퇴각으로 돌파되지 못한 채 '업(業)'이 되어 남아 있다 하더라도 현대자동차 동지들은 하루빨리 이 지점을 극복해 내야 한다. 그래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금속산별노조 건설의 선봉에 서서 자신의 '덩치'에 걸맞는 임무를 수행해 내야 한다.

'천만노동자총단결의 정신'으로 현장을 재조직하는 것은 본청-하청, 생산직-사무직, 남성-여성, 정규직-임시직, 피고용자-해고·실업자 등 자본의 조직원리인 경쟁과 분열을 넘어서서 산업별 단결의 원리에 근거하여 대중적 실천을 조직하는 것이다. 현장 내에 존재하는 근속년수별, 직급별 이해관계는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는 노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현장조직들로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 내부의 이러저러한 개별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자 내부의 그 어떤 분열도 결국은 자본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전체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고 내부의 부분적 이해관계를 종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운동과 구별되는 현장조직운동을 본격적인 노동자 대중정치운동으로 발전시켜 내야 한다. '노동의 정치'는 계급이해를 흥정하는 의회적 거래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동자의 정치는 '소수의 대변'이 아니라 '다수의 행동'으로 조직되고 표현된다. 우리 선진노동자들이 해야 할 일은 다수 대중의 창조적 진격을 촉진하고 그 선두에 서서 투쟁하는 것이다. 현장조직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계급적 사안들에 대한 노동자의 정치적 태도를 조직된 행동으로 표현하는 활동양식을 새로이 개척하고 이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운동과 구별되는 자신의 임무를 보다 명확하게 정식화시켜 내야 한다. 이 속에서 우리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조직운영원리를 체화·발전시키고 새로운 활동가층을 발굴·단련시킴으로써 이른바 '정치적 사춘기'를 넘어서는 정치적 단결의 구심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민주노총 시대에 비대해질 노동조합의 관료화 경향을 아래로부터 억지·분쇄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동지들! 현장을 새롭게 세워내자! 이는 무엇보다 우리들 내부의 고민들을 객관화하고 '동지애'를 새롭게 획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바로 옆의 동료를 '챙기는' 것부터 시작하자! 미래는 우리들 손으로, 우리들 자신의 투쟁으로 만들어 내는 것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14 07:27 2005/02/14 07:27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plus/trackback/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