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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창간호, 96.1.11

 

96년! 또 한걸음

동지 여러분! 새해 건강하십시요.

이제 4년만 있으면 벌써 2천년대입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우리 노동자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고 새로운 삶의 대안과 그 질서를 찾아 나가기 위한 우리 자신의 노력 또한 그만큼의 속도와 무게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WTO의 출범은 선진 초국적 독점자본의 전지구적 자본운동을 무제한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세계질서는 자본운동의 국제화와 지역화가 동시 모순적으로 전개되는 이른바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중소기업과 농업의 몰락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재편에 능동적으로 편입함으로써 축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벌 중심의 독점자본운동에 대한 전국가적-국민적 지원체제를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란 다름아닌 이 체제로의 범국민적 동원령입니다.

자본은 이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현장 권력을 되찾기 위한 입체적 공세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국가 역시 자본의 노동력 이용에 대한 무제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제도의 정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한편 김영삼 정권은 96년 4.11 총선과 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전면적인 정계 개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YS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개혁연합의 형성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국민적 명분을 얻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점차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자칫 하면 개혁 여당과 보수 야당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는 판이 되었습니다. 3김 청산을 내걸고 등장한 통합민주당이 YS의 개혁연합에 반대할 근거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보와 보수라는 대립구도의 형성을 자기 목표로 하여 현실 정치에 뛰어든 진보정치연합 동지들은 엉뚱하게 개혁연합에 대한 찬반을 강요당하게 되는 처지로 내몰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진보적 개혁이냐 보수적 개혁이냐를 놓고 궁색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 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김영상 정권의 정계개편과 개혁이 가져올 결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고통전담'이 노골화되는 것이고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독점자본의 배타적 지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21세기 미래 삶의 질서를 우리 손으로 창조해내기 위해서 우리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이라는 애매한 정치구도가 아닌,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보다 투명하게 반영하는 정치구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적어도 21세기 초반까지 대중적인 노동자정당을 건설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금속연맹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본격화해나가야 합니다. 이 운동은 현장 대중이 주체가 되는 평조합원운동을 활성화시키는 노력과 병행되어야 합니다.

울교협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다음과 같은 사업들을 진전시켜나가겠습니다.

첫째, 울교협은 올 상반기 안에 노동자 정치조직으로 전화하고자 합니다. 전국노동단체연합, 진보정치연합에 합류하지 않은 구민정련 동지들(새로운 노동자 정치조직 준비모임), 진보민청, 지식인연대, 민중의료연대 등 변혁운동진영은 단일한 조직적 주체 형성에 상당부분 합의하고 변혁운동진영의 단일 정치조직 건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전국노동단체연합은 95년 9월 전체 수련회에서 단일 정치조직으로의 발전을 결의했고 대표자회의 산하에 수임위를 두어 조직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조직 준비모임은 이미 자체 강령안과 규약안을 제출해놓고 96년 1월중에 본조직을 건설한다는 입장입니다. 진보민청 역시 자체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열어 정치조직에 참여한다는 방침을 확정했으며 민중의료연대 또한 정치조직 참여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입니다. 진보적 교수들이 주요 구성원인 지식인연대는 조만간 자체 토론을 거쳐 정치조직 건설 논의에 대한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이렇듯 전국적인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운동이 현실의 일정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시점에 울교협은 적극적 결합과 내부의 조직적 전화를 준비할 것입니다. 울교협은 또한 실무자 중심의 단체운동의 질을 지양하고 회원 중심의 노동자 정치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원래 울교협은 지역의 선진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주체 형성을 위한 훈련기제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그 문제의식을 변혁운동진영의 전국적 단일 정치조직 건설이라는 관점 하에 보다 구체화할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울교협은 현장 선진노동자와의 결합을 한층 더 강화하여 상반기 안에 회원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둘째, 울교협은 울산지역 현장 민주조직 연합체 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그 발전 전망을 연구-제출하겠습니다. 선진노동자대중의 풀(pool)이 곧바로 정치조직화되지는 않습니다. 이 내부에는 다양한 정치적 분열과 분화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과도 정치적으로 독자 정립한 정도 역시 지극히 미약한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선진노동자대중의 초보적 정치훈련공간으로서, 그리고 변혁적 현장활동 지도력의 재생산기제로서 선진노동자 대중조직이라는 과도적 틀이 갖는 유의미성은 지대합니다. 우리가 착목하고자 하는 지점은 기존 노민추운동으로 대별되어왔던 이 운동의 정치적 성장 가능성입니다. 현장 활동가들은 노조를 민주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민주노조를 아래로부터 강화시키기 위해서 노민추와 같은 현장조직을 만들었고 이 속에서 동지들간의 상호 검열과 조직적 의사결정의 원칙들을 몸에 익혀왔습니다. 이는 분명 노동조합운동과는 다른 정치적 질의 맹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노민추운동과 관련해서는 두개의 평가가 존재했습니다. 하나는 노민추운동을 진보적 대중정당의 현장분회로 해소될 과도 조직 정도로 치부하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노민추운동(선진노동자 대중조직운동)을 그 자체로 독자적 정치세력화까지 가능한 전투적 기간대오로 과대평가하는 입장입니다. 첫번째 입장은 진보정당과 산별노조라는 양날개론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이 구도로 환원시켜버리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고 두번째 입장은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의 선진부대 그 자체의 조직화 연장에서 정치조직까지를 발상하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첫번째 견해는 87년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독특하게 형성되고 발전해온 선진노동자층의 독자적 자기운동과 조직형태를 역사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과소 평가하는 것이고 두번째 견해는 선진노동자조직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또 다 해야 한다고 과대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자 정치조직-선진노동자 대중조직-노동조합(연맹)이라는 3중 구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선진노동자대중의 자기결정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맹아를 전면적으로 발전시키고 둘째, 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조직적 훈련과 재생산의 안정적 저수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선진노동자 대중조직이라는 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울교협은 현대중공업 전노회와 현대자동차 민투위, 현대정공의 부서동지회와 남연추가 울산지역 현장조직연합이라는 단일한 틀로 묶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장조직운동의 발전 전망을 연구-정리할 계획입니다. 이 정리는 '금속연맹 단계의 평조합원운동과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노동자 대중정치의 상'을 구체화하는 작업과 맞물려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울교협은 올해부터 체계적 노동교실을 개설할 계획입니다. 현장 활동에 있어서 이론적 능력은 점점 더 요구되고 있습니다. 물리적 탄압 이전에 이미 다양한 이념공세를 앞세우고 있는 자본의 변화된 통제양식 때문에도 그렇거니와 활동가들 사이에서나 현장 대중들에 대해서도 논리적 설득력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교협 노동교실은 현장 활동가들의 이론적 능력을 배양시키는 장이자 골방과 소모임 수준의 과거 교육경험을 뛰어넘는 체계적 훈련 코스로 자리잡아가기 위한 시도입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 전체의 적극적 참여 속에서 노동교실이 지역의 필수적 교육공간으로 자리잡아나갈 수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전국적으로 1999년까지 1,000명의 회원을 갖는 노동자 정치조직과 10,000명이 참가하는 선진노동자 대중조직, 그리고 1,000,000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민주노총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래서 2000년대의 첫 10년 안에 만명의 당원을 갖는 노동자 대중정당을 건설할 수 있을까요?

이 꿈이 헛꿈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지들 가정에 화목과 활동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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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31 2005/02/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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