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노동자의힘 기관지]

 

이상스런 나의 일자리와 모듈화

 

이인석(노동자의힘 회원)


이 공장을 다니면서 나는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든다. 대체 나 자신조차도 이 공장에서의 내 위치가 혼란스럽다. 조직의 동지들이 가끔 질문을 해오면 쉽게 ‘3차 하청’이라고 대답은 하지만, 엄밀한 개념은 아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모 완성차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최대의 모듈업체에서 인수한 ** 회사에 고용되어, 완성차 공장(원청) 안에서 납품 및 품질관리(라인 대응)를 하는 파견노동자이다. 헉헉헉! 그래서 완성차(원청), 1차 모듈회사, 2차 부품회사, 그리고 그 2차 부품회사에도 파견업체를 통해서 취업을 한, 누구 말마따나 공장 안에서 가장 미천한 ‘무수리’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도 참 어처구니가 없는데, 원래 조립라인에 사양별로 제품은 공급하는 것은 자재물류 파트 정직원들이 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비핵심 분야라는 이유로 차츰 비정규직에게 넘어가더니 급기야 부품사에 떠넘겨지고, 결국에는 나같은 비정규직의 일자리가 된 것이다. 핵심/비핵심 분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선 모두 소중한 일이건만, 자본이 정해놓은 그 졸렬한 기준에 의해서 이렇게 일자리의 질이 바뀌고 사람도 그렇게 취급된다.

이 큰 공장에서 무수리인 나는 그래도 ‘대장금’을 꿈꾸며, 열심히 서열공급도하고 라인대응도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신차가 투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불량이 너무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완성차 정규직들이 ‘라인을 세운다, 만다’하면서 으르고 있었고, 서열공급을 넘어서 불량까지 처리해야 하는 나로서는 참 난감했다. 급기야 부품업체 생산팀장을 오라고 해서 불량들을 보여주었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생산파트에서 정규직은 나 포함해서 둘밖에 없고 조장들도 비정규직이다. 그래서 불량이 많이 나온다.”

‘비정규직은 원래 책임감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비정규직인 나에게 하면서 상황을 이해시키는 웃기지도 않은 ‘시츄에이션’에 난감하기도 했지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이 원래 책임감이 없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실제로 일도 더 많이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비정규직에 대한 지독한 오해들이 구조조정-노동유연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보편적인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그 2차 부품회사도 모듈화 진행과정의 전형적인 과정을 톡톡히 겪었다. 나름대로 탄탄한 1차 부품업체였지만, 완성차 업체의 단가 후려치기와 개발비등의 비용전가, 신차에 대한 물량끊기 등으로 결국 ‘모*스’라는 모듈업체에 인수가 되었다. 그리고 모듈화의 핵심인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비정규직화와 무노조화가 단행되어, 결국 400여에서 100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있던 어용노조도 깨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게 모듈화와 비정규직화는 양날의 칼이 되어 나를 겹겹이 착취하고 있다. 에잇,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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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8 22:53 2005/07/2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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