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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노조신문 칼럼 원고]

 

 

세상을 바꾸는 또 하나의 힘, 노동자 ‘미디어’

 

 

‘미디어’ 하면 떠오르는 게 TV, 라디오, 신문 따위다. 지금껏 미디어는 가진 자와 힘센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파업 때가 되면 이 사실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현대차 파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연봉 7천만원, 귀족노조”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파업 때문에 생산차질이 얼마 났다”는 내용은 웬만한 언론들이 앵무새처럼 맨트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보도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된 노조의 파업으로 이날까지 총 4만2,707대의 생산차질을 빚어 5,910억원의 매출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파업에 따른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의 누계 피해액은 각각 3,014억원, 1,808억원으로 현대차와 합쳐 총 1조732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생산차질을 이런 식으로 계산하는 게 얼마나 황당무계한 짓인지 이들 미디어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또 이번 현대차 임단협 합의에 대해 이들 언론에서 가장 크게 다룬 내용은 ‘전환배치 유연화(?)’였다. “노사는 생산공장의 효율적인 인력운영에 커다란 걸림돌이 됐던 배치전환의 제한을 완화하는 좀더 유연한 배치전환 기준을 새로 마련키로 했다.” 다른 내용은 쑥 들어가고 마치 노사가 ‘유연한 배치전환’에 합의한 것처럼, 게다가 이 내용이 이번 현대차 임단협의 가장 큰 핵심이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보도한다. 이건 ‘아전인수’라기보다 이들 미디어가 취하고 있는 소름끼칠 정도의 ‘계급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노동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면 ‘상대’의 힘에 맞서 우리의 힘을 키우고 집중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이 키워온 가장 큰 힘은 바로 투쟁의 힘이다. 대공장 공장점거파업, 공공노동자들의 산개파업, 운수노동자들의 유통파업, 정치총파업…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저항이 새로운 투쟁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직력도 몸집이 많이 불었다. 그러나 여전히 1,400만 노동자의 10% 남짓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다. 2007년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조직지형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획기적인 조직화 전략이 시급하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노동자의 정치적 힘을 키우는 전략도 세밀하게 구체화돼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이제 우리 노동자들도 우리 자신의 ‘미디어 전략’을 가져야 한다. 대구 성서공단에서는 우리 노동자가 만든 방송을 매일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지역의 노동단체와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소출력FM 성서공동체라디오를 만들고 전파를 내보내고 있다. 비록 출력이 약해 가청거리가 반경 5㎞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 정도면 공단 구석구석 전파가 다 들어간다. 우리 울산에서도 작년에 민주노총울산본부와 북구청이 공동 콘소시움을 구성해 정부에 신청했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떨어졌다. 그러나 정부가 시범방송 기간이 지나 소출력라디오를 전국적으로 더 확대한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라디오 방송국을 갖게 될 것이다. 지역 케이블TV와 공중파 방송에 우리가 만든 영상물을 틀 수도 있다. ‘열린 채널’ 같은, 법으로 보장된 ‘퍼블릭 엑세스’를 활용하면 방송국에서 영상물을 한번 제작하는 데 100만원을 지원한다. 이밖에도 노동자들에게 미디어 장비를 지원하고 교육하는 ‘미디어센터’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다.

 

인터넷신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라디오, 미디어센터, 종이일간지, 독립방송국까지 우리 자신의 미디어를 만들어가자. 미디어, 더 이상 ‘너무 먼 당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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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4 09:37 2005/09/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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