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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14호 96.4.19

 

YS의 '큰 정치'(?)

4월 16일 YS와 클린턴은 제주에서 공동으로 대북한 4자 회담을 제의했다. 정부는 4자 회담 성사를 위해 한국전쟁 교전 당사자중 남북한 평화헌장, 북·미 평화협정, 한·중 및 미·중 평화협정 등을 하나의 합의문에 담고 이 합의문을 유엔 안보리가 추인함으로써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다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알려진다. 클린턴은 4자 회담 성사를 냉전시대의 마지막 잔재 청산이라는 소득으로 연결시켜 11월 대선에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은 4자 회담에 참여함으로써 미국과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리한 지위를 할당받게 된다. 독일 통일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던 '2+4' 회담처럼 이번 '2+2' 회담 제의가 곧바고 한반도 통일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에서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뀔 경우 남북한 통일을 위한 사전 정비작업들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남한 독점자본의 최대 관심은 전경련이 지난 94년 김일성 사망에 대한 논평에서 밝힌 바 잇듯이 "김정일이 물려받은 부도난 회사"를 얼마만큼 헐값에 인수할 것인가에 있다. 통일 비용에 대한 계산서가 뽑히는대로 이 작업은 급속하게 가시화될 것이다.

YS는 임기 후반기에 통일 카드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남북 통일의 길을 연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발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4월 17일 발표된 미·일 신안보 공동선언과 동북아 안보질서의 일대 변화를 계기로 안보 문제에 관한 여야간의 이른바 당을 뛰어넘는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21세기 통일시대를 대비한 '정치 합리화 공정'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가겠다는 것이 YS의 기본 구상인 듯 하다. 4월 18∼20일의 여야 연쇄 영수회담의 개최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4.11 총선이 청와대에 안겨준 '여유'는 이렇듯 YS의 '큰 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총선 끝나자 곧바로 나온 얘기가 바로 공기업 민영화이다. 재벌들은 세계화를 위한 YS의 '큰 정치' 덕을 가장 많이 보는 집단이다. 이들은 이미 총선 전 5·6공 청산과정에서 YS로부터 하나도 빠짐 없이 면죄부를 받아쥐었고 총선 끝나자마자 곧바로 어마어마한 덩치의 공기업들을 먹어치울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당장 한국통신 96년분 1조6천억원과 국민은행 3천억원의 주식 매각이 있고 당초 98년까지 추진하기로 했던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 시기가 앞당겨지게 되었다. YS의 '큰 정치'라는 걸 이렇게 보면 이미 커질대로 커져버린 독점자본과 재벌구조를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더더욱 크게 살찌우는 행정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사실 이덕인을 비롯한 노점상·도시빈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노수석 이후 잇따른 대학생들의 죽음을 불러오며 중소기업 사장들의 그칠 줄 모르는 자살 행렬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모두 다 재벌 중심의 이 '큰 정치'다.

YS는 4월 24일경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시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고 노사관계 개혁사업에 본격 착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YS의 이른바 '큰 정치'가 노동개혁까지 구상하게 된 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앞두고 국제 규범에 맞게 노동관계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조건 외에도 복수노조 허용을 통한 민주노총 합법화를 근로기준법 개악, 변형근로시간제 도입 등과 맞바꿔 자본 축적을 유연·고도화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93년 확인했듯 이인제를 앞세웠던 당시의 노동행정 개혁이 공장문 앞에서 어떻게 멈춰섰는지 돌이켜 보면 이번 '신노사관계'라는 것도 결국 현장을 무력화하고 상층을 개량화하겠다는 총자본의 포섭전략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96년 임투는 민주노총 원년의 첫 임투이자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협조냐? 참여냐? 투쟁이냐"하는 기로를 결정짓게 될 중요한 한판이 될 것이다. 4.11 총선 승리로 정세 주도권을 재장악한 정부와 독점자본의 파상 공세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을 YS식 '큰 정치'에 맞선 노동자식 '큰 단결'과 '큰 투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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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50 2005/02/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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