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신문 칼럼 원고.

 

춥고 눈 많던 겨울도 이제 끝자락이다. 제주에선 벌써 유채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봄을 맞고 싶지만 가슴 속 추위까지 쉬 가실 것 같지 않다.

 

지난 겨울 구제역으로 ‘살처분’돼 땅에 묻힌 소와 돼지가 300만 마리를 훌쩍 넘었다. 돈도 3조원 넘게 썼다. 돼지들은 떼로 생매장 당했다. 날이 풀리면서 매몰된 가축의 핏물이 지하수와 흙으로 스며들고 있다. 산채로 죽은 가축들의 복수와 환경재앙을 경고하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두발굽 짐승들을 학살한 죄값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치러야 할까? 두렵고 답답하다.

 

수십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4대강 사업도 끔찍하다. 강 바닥을 파내고 보(댐)를 잇달아 세우면서 4대강은 커다란 호수처럼 변하고 있다. 4대강으로 흘러드는 367개 지천 바닥과 기슭이 빠르게 무너져내리고 있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확산되는 ‘역행침식’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 동창들이 운영하는 건설업체들이 낙동강 공구 사업을 싹쓸이하고, 대형 건설사들이 도급내역서를 속여 예산 2조원을 꿀꺽했다. 국민들의 복지에 쓸 돈을 빼서 ‘영포라인’과 재벌들 배를 채우고 4대강 죽이는 데 써대는 이 어처구니 없는 짓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이사철 전세값도, 새 학기 대학 등록금도 걱정이다. 물가는 또 얼마나 뛰었는지 장 보기가 겁난다. 한꺼번에 보증금 5000만원, 1억원을 올려달라는 ‘전세대란’에도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집값을 떨어뜨릴 생각은 않고 분양가상한제를 없애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었다.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이 357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마이너스 통장 대출과 카드 빚을 합치면 전체 가계부채는 795조4000억원에 이른다. 반값 등록금 공약은 한 적도 없다는 ‘치매’ 대통령 아래서 대학생들은 최저임금도 안되는 아르바이트로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 취업후학자금상환제는 또 다른 평생 빚을 안길 뿐이다.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졸업을 앞둔 대학생 다섯 명 가운데 두 명만 취업할 정도로 청년실업률은 심각하다.

 

막다른 벼랑 끝에서 등록금을 마련 못한 대학생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초생활수급비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노인들은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이웃집에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남긴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는 가스가 끊긴 안양의 차가운 달셋방에서 지병과 굶주림으로 요절했다. 전주에서는 실직한 가장이 아내와 두 아이를 살해한 뒤 목을 매 숨졌다.

 

희망이라곤 보일 것 같지 않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천막농성 1192일, 고공농성 64일, 단식농성 45일만에 GM 비정규직 해고자 15명이 모두 복직됐다. 49일 동안 농성을 벌였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도 현장으로 돌아갔다. 홍익대 투쟁 승리로 힘을 얻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도 공동파업에 나서고 있다. 대법원에 이어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도 현대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저 멀리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끝장났다. 이집트 독립노동조합연맹은 무바라크가 사임한 뒤에도 임금인상과 새로운 경영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민중봉기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정리해고에 맞서는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도, 안팎으로 힘겹지만 2차파업에 나서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깨 위에도, 70여일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 전주 버스 노동자들의 얼굴 위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다. 벼랑 끝에서 우리가 선택할 것은 자살이 아니라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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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15:16 2011/02/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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