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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34호 96.9.12

공안세력의 '생존권 투쟁'과 명예퇴직제

  웬 검문?

  한달쯤 된 것 같다. 서울서 볼 일을 마치고 울산으로 들어서는데 그 놈의 닭살 돋는 닭장차가 서 있고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며 '전투'경찰 두명이 고속버스 안을 휘젓는 통에 잠깐 어리둥절했던 일이 있었다. 울산서야 한 해도 안빠지고 이 '꼴'을 당해온 터지만 그땐 좀 느닷없다 싶었다. 그 놈의 '공'권력이 쳐들어올만큼 울산 상황이 그렇게 '시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느닷없는 '불검'이 '연세대첩'과 '한총련 죽이기' 때문이란 건 금방 깨달을 수 있었지만 잠시 80년대 중반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나쁜 '착각'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씁쓸하고 찝찝했다.

  그런데 이 '착각'이 점점 '착각'이 아닌 '현실'로 닥치는 듯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경찰청장 박일용이 지난 8월 19일 "폭력 시위에 총기 사용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8월 22일 고무충격탄 1만발을 비롯한 시위 진압 장비를 새로 들여오겠다며 재정경제원에 1백90억원의 예비비를 신청했다. 내친 김에 한 술 더 떠 9월 4일 '특수진압 경찰대'라는 것까지 만들어 띄웠다. 경찰에 질새라 검찰도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9월 3일 대검찰청, 경찰청, 안기부, 기무사까지 아우른 '한총련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라는 게 떴다. 전두환이 사형을 선고받는 마당에 80년 '합수부'가 부활한 것이다. 신한국당은 아예 9월 12일 안기부의 대공 수사권을 되살리는 안기부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의원 입법으로 발의한다는 방침을 당론으로 확정지었다. 이쯤 되면 바야흐로 '공안세력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할만 하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공안파의 이러한 '복권(復權)'과 '세몰이' 뒤에는 뭐가 있는가?

  첫째, 정부가 기업 경영합리화에 맞닿아 있는 정치행정의 합리화 공정(쓸 데 없는 통치비용의 절감과 효율화,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포기하거나 5,6공으로 거꾸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건 지나친 단정일 수 있다. 오히려 이른바 '의사개혁(개량)'의 과정 안에 '마녀 사냥'이라는 '시대착오'가 계산되어 낑겨 있다고 보는 게 옳을 듯 하다. 우리 사회 변혁운동세력을 소수파로 내몰고 개량주의세력을 다수파로 포섭해가는 여러 '공작'들 가운데 계산된 하나의 '공격'으로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사실 '합수부'가 떴다고 해서 학생운동이 뿌리 뽑힐 리도 없고 오히려 학생운동과 '변혁적 노동운동' 전반의 변혁성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건 공안파 스스로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다.

  둘째, 그동안 수사권 축소와 인력 충원 동결, 예산 축소 등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던 공안세력이 '암암리'에 '생존권 투쟁'을 벌여오다가 한총련을 희생양으로 해서 안기부 수사권 회복까지 한 판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대검찰청 공안부와 안기부의 '공조'는 공안파의 '고용 불안'을 '단결 투쟁'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잘 보여준다. 80년대 권력의 핵심으로 '영화(榮華)'를 누렸던 검찰 공안부는 특수부에 눌려 점점 '변방'으로 밀리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안기부가 수사권을 가져가 공안 사건을 물어오겠다는 걸 공안부가 굳이 반대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검찰은 안기부에 수사권을 넘겨주더라도 수사지휘권은 자기가 쥐게 된다.

  셋째, 신한국당의 대선 전략이 깔려 있다. 점점 더 노골화되는 DJ의 '보수층 끌어안기'와 요즘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JP와의 '공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가장 민감한 사안이 바로 안기부 수사권 문제다. 문제를 반공 이념의 극단으로 몰고가 양자택일의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것, 이른바 보수층의 '빨간색 무서움증'을 3류 음란영화 식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듯 단순 극대화시키는 것, 오래된 수법이지만 보수층 확보 경쟁에서는 효과가 가장 큰 방법이다. 결국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안기부법 개정에는 반대하지만 검찰과 경찰의 대공 수사력은 강화되어야 한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이른바 '당론'으로 확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한국당을 앞세워 벌인 공안파의 '생존권 투쟁'이 승리를 거둬가고 있는 것이다.

  60개월치 월급을 한 몫에 주겠으니 이래저래 눈치뵈는 사람들은 알아서 제 발로 나가달라는 '명예퇴직제'가 대기업 사무 관리직을 중심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경기가 불황이라고 기업들이 아우성이고 이른바 '살빼기'가 한창이다. 생산직이라고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인천의 영창악기와 창원의 통일중공업이 대규모 감원을 코 앞에 두고 있고 대구의 남선물산 같은 경우는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경총은 여기다 내년부터 임금총액을 동결해야 한다는 헛소리까지 서슴지 않는다.

  고무총탄 사는 데 1백90억원의 국고를 '아낌없이' 쓰겠다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불황이니 허리띠를 더 졸라메자고 얘기하는 건 기만이다. 불황으로 입게 될 손해를 감원으로 피해 가겠다는 자본의 술수를 적극 옹호하는 정부가 안기부 수사권을 부활시켜 막대한 수사비를 국고에서 지원해야 하는 안기부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 명예퇴직제나 정리해고제가 필요한 곳은 다름아닌 공안기관 바로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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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8:08 2005/02/1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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