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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안 했다" 간첩 조작 수사관, 뻔뻔함 언제까지?

재일 동포 간첩 사건 가담한 전직 보안사 수사관 고병천 씨 재판
2018.02.17 12:15:34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여든 노인의 입에서는 끝끝내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삿대질 속에서 그는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간첩 조작 사건 찍어낸 베테랑 수사관 

노인의 이름은 고병천. 1939년생. 보안사령부 수사관 출신. '방첩대' 시절부터 시작해 줄곧 한 길만 파기를 38년. 보안사에서 그는 '베테랑'으로 불렸다. 다름 아닌 간첩 조작의 베테랑. 다른 부서에 비할 데 없이 '실적'이 좋았던 학원반 내에서도 고 씨의 솜씨는 단연 으뜸이었다. 30~40년 전, 숱한 청년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간첩으로 탄생했다.

당시 '가짜 간첩' 제1 목표물은 재일 교포 청년들이었다. 북한에 대한 경계가 철저한 한국 내에서는 일반 사람이 남파 공작원을 접촉할 기회라는 게 극히 드물었다. 그에 비해 재일 교포의 경우 그가 접촉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사람을 손쉽게 대남공작원으로 꾸며낼 수 있었다. 게다가 영사증명서 조작도 비교적 용이했다.  
 

▲보안사가 이종수 씨의 친척 '조신부'에 대해 오사카 영사관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한 영사증명서. 실제 조신부의 직장은 조총련계 인물이 경영하는 나카야마(中山)가 아닌 다카야마(高山)였음에도 이 서류에는 버젓이 ‘나카야마 관광 주식회사에 근무한 바 있다’고 기록돼있다. ⓒ이종수

이런 이점을 교묘히 이용해 고 씨가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재일 교포 유학생 이종수 씨 사건이었다. 

데모로 붙잡힌 친구에 대해 물어본다던 그들은 친구가 아닌 이 씨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북한에 다녀왔느냐", "북한에 다녀온 사람과 친하게 지냈느냐"는 식의 질문이었다. 그는 "아니다", "없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번엔 그가 일본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그는 먼 친척인 '조신부' 이름을 댔다. 잘못한 게 없으니 사실대로 얘기해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대답이 조작극의 단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참 뒤 수사관들은 조 씨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사장이 있는 '나카야마(中山)' 회사에 다닌다며 "조신부가 너를 대남공작원으로 포섭한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조 씨가 다니는 회사명은 '나카야마'가 아닌 '다카야마(高山)'였다.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갖은 고문이었다.

고문받은 기억을 떠올리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뺨 맞기, 물 고문, 전기 고문, 다리 사이에 몽둥이 끼우고 밟기, 통닭구이. 영화 <변호인>에 나온 그대로다. 수사관들이 얼굴에 주전자로 물을 붓고 "북한 갔다 왔지"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면 물 붓기를 4~5차례 반복한다. 그러다 기절하면 수사관들이 허위 진술서에 지장을 찍는다. 정신이 들면 수사관이 읊는 대로 자신이 북한에 갔다 왔다는 '소설'을 달달 외웠다. 영장 한 번 본 적 없이 그렇게 39일간 불법 구금됐다. (<프레시안> "30년 걸려 벗은 간첩 누명, 유우성은 운 좋다" 인터뷰 중)

고 씨로부터 고문을 받은 뒤 '가짜 간첩'으로 복역하는 대신 간첩 포섭 작업 등을 위해 강제로 보안사에서 근무했던 이도 있다. 책 <보안사>(김병진 지음, 이매진 펴냄)를 쓴 재일 교포 김병진 씨다. 김 씨는 감금이 끝날 때까지 봤던 인물 가운데 '가장 기분 나쁜 존재'로 고 씨를 꼽으며 책에 그와 관련된 일화와 어록을 전했다. 

몇십 분 지나자 몸집이 작고 나이는 사십 대 후반 정도 되는 사람이 이덕룡을 거느린 채 들어왔다. 그 사람이 앉자 이덕룡은 다른 의자를 끌어다가 그 사람 옆에 조수처럼 앉았다. 키는 160센티미터 정도고 나이에 견줘 동안이었다. 고병천 육군 준위였다. 
 

▲<보안사>(김병진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정보기관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고병천은 마치 강의라도 하듯이 장황하게 떠들어댔다.


"이곳은 경찰서하고 다른 곳이다. 정치범을 잡는 곳이다. 다시 말해 사상범을 상대하는 곳이란 말이다. 북한을 위해 일하는 놈들을 잡는 곳이라는 말이야.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37쪽)

"이 나라의 재판은 형식적이야. 우리가 간첩이라고 하면 간첩이지."(49쪽)

대꾸하자마자 이덕룡은 틈을 주지 않고 안경을 낚아채더니 뺨을 후려갈겼다. 고병천, 김국련이 차례로 나를 구타했다.(53쪽)

'VIP실' 한쪽 구속에 있던 수동식 군용 발전기에서 코일 두 줄을 풀어 내 집게손가락에 감으려 했다. 몸부림쳤다. 처음에는 겨우 벗겼지만 손목을 더 세게 붙들어서 코일을 벗길 수 없었다. 옆에서 고병천이 드럼통에 담아놓은 물을 계속 내 몸에 끼얹었다. 물에 빠졌을 때처럼 숨이 막혔다.(57쪽) 

"설사 일본에 있어도 김일성과 김일성을 지지하는 자를 철두철미하게 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심이다."(60쪽) 

(김 씨를 풀어줄 때) "미친개에 물렸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려라"(78쪽)

사과는커녕 "고문한 적 없다" 발뺌 

고 씨의 어긋난 애국심은 평범했던 청년들의 삶을 손쓸 수 없이 망가뜨렸다. 청춘을 감옥에 다 바쳤고, 고문 후유증으로 몸 이곳저곳이 고장이 났다. 간첩 멍에로 직장생활, 가정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사이, 고 씨는 1995년까지 보안사 대공처 수사과에서 일하다 명예롭게 퇴직했다. 이후 2004년까지는 수사과 연구관으로 지냈다.

시간이 흘러 고 씨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기회가 찾아왔다. 1984년 자신에게서 고문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됐던 또 다른 피해자 윤정헌 씨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 세월이 지났어도 법정에 선 고 씨는 여전했다. 

"증인은 피고인 윤정헌에게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지요."
"예. 없습니다." 
"그리고 윤정헌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하거나 유도한 사실이 없지요."
"예. 없습니다." 
"당시 간첩사건 수사에 있어서 피의자들을 인간적으로 설득하는 데 주력하였지요."
"예. 스스로 얘기하도록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는 '고문한 적이 없다'며 기만적인 행태를 보였다. 결국 윤 씨는 고 씨를 모해위증죄로 고소했다.  

사과를 받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검찰은 무려 6년 동안이나 사건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공소시효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19일 모해위증죄가 아닌 단순 위증죄로 고 씨를 기소했다. 지난 1월 22일 간신히 첫 재판이 잡혔지만, 이번엔 고 씨 측이 기일 변경을 했다. 고 씨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현해탄을 건너온 윤 씨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드디어 첫 재판이 열렸다. 지팡이를 짚고서 나타난 고 씨의 모습은 머리가 하얗게 센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고 씨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 변호인은 고 씨와 대화할 때 입을 귀 가까이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변호인은 "지금까지는 공소사실을 부인했고 인정하지 않았던 부분이 많지만 세월도 많이 흘렀고 역사적으로 바뀐 상황에서 그 태도를 유지하지 않겠다, 예전처럼 부인해서 재판이 길어진다거나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더 커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문한 적이 없다'던 입장을 바꾸겠다는 얘기였다. 다만 정확한 입장에 대해선 "차후에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했다. 

 

 

▲12일 위증 혐의로 재판을 받은 고병천 씨(가운데)와 조작 간첩 피해자 최양준 씨(오른쪽). ⓒ프레시안(서어리)


이날 윤 씨 대신 재판을 지켜본 조작 간첩 피해자 최양준 씨는 분개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까?", "당신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불구가 되고 인생이 망가졌는데 그래도 할 말이 없습니까?" 수십 번을 따져 물었지만 고 씨는 말이 없었다. 기자들도 법원을 나서는 고 씨에게 질문했다. 기자가 계속 따라붙자 귀찮은 듯 마침내 고 씨가 대꾸했다. 

"다음에 법정에 와서 얘길 들어요." 

결국, 사과는 없었다. 

다음 기일은 다음 달 15일이다. 30년 넘게 '미안하다' 말 한마디 없던 그가 한 달 뒤엔 제대로 사과할 수 있을까. 고 씨가 지금이라도 과오를 뉘우치고 역사의 죄인으로 남지 않기를, 피해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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