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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에 재건축 손 놓은 삼성물산, 이재용 승계 위해 인력 감축도 불사했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하던 2015년 입찰 참여 ‘1’건…건설 직원 900명 이상 감축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20-10-06 20:03:51
수정 2020-10-06 20: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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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8일 오전 9시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경찰이 18일 오전 9시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추진되던 시기, ‘래미안’을 짓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 직원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삼성물산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4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삼성물산 건설부문 직원 660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직원의 8.32%가 승계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구조조정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물산은 2010년대 들어 직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1년 6,100명이던 직원은 3년 뒤인 2014년 1분기 7,930명으로 30%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다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이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진 2014년 들어 갑작스럽게 인원이 줄어든다. 2014년 매 분기 평균 100명 가까이 회사를 떠났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직전인 2015년 1분기에는 373명의 직원이 정든 회사를 떠났다. 당시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하급 직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비슷한 시기 경쟁사인 대우건설은 직원이 오히려 늘었고, 규모가 비등한 현대건설과 GS건설은 100명 안팎의 변동이 있을 뿐이었다.

경쟁사 수주전 치열한데 삼성물산 뒷짐…수익성 위주 사업 선별 주장도 근거 미약

 

삼성물산 직원들이 줄어든 이유는 삼성물산의 재건축·재개발 수주 상황과 상당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직원들이 줄어든 2014년과 2015년 서울 강남 등지의 노른자 땅에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에서 사실상 모습을 감췄다.

삼성물산은 2014년 강남구 상아3차, 서초구 방배3구역, 양천구 목제1구역 등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 시공사 선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래미안 브랜드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삼성물산이 빠지면서 강남구는 현대산업개발이, 서초구는 GS건설이, 목동은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있었던 2015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2015년 사업비 각각 2천억원(행당6구역), 3천800억원(고덕주공6단지) 재건축 사업에 삼성물산은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GS건설이 두 사업 모두를 싹쓸이했다. 같은해 최대규모 재개발 사업인 동대문구 재개발 사업에도 삼성물산은 참전하지 않았다. 당시 재개발 사업은 1조2천억원·4043세대 규모였는데 결국 GS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컨소시엄을 꾸려 사업을 수주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신규 물량을 받지 않고, 기존 현장이 완공되면 담당자들을 내보내면서 직원이 줄어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9월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지난 2018년 9월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김슬찬 기자

재건축 규제 완화로 호황기 맞았는데 입찰 참여 1건

2015년 삼성물산의 수주 기피는 비정상적인 경영 전략으로 비쳤다. 무엇보다 시장 여건이 긍정적이었다. 정부가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푼 것이다. 2014년 9월 재건축 연한을 기존 준공 후 4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한 데 이어 이듬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적용을 유예했다.

삼성물산도 2015년을 주택 시장 호황기로 평가했다. 해당연도 사업보고서에서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저금리 정책에 따른 주택·부동산 시장 호조로 국내 건설 시장이 사상 최대인 158조원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래미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삼성물산이 2000년 론칭한 래미안은 국내 1세대 아파트 브랜드로 줄곧 업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삼성물산은 래미안이 국가고객만족도(NCSI) 한국산업브랜드파워(K-BPI)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 등에서 10년 이상 연속 1위를 기록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건설 업계에서 주택 사업을 중심으로 한 국내 시장을 세계 건설 시장 침체 국면에서 실적을 만회할 돌파구로 여겨졌다. 2015년 세계 건설 시장은 중국 경제성장 둔화, 유럽 경기침체, 저유가 영향으로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삼성물산은 해외 사업 부실 수주로 실적 악화도 겪고 있었다. 2015년 건설 부문에서 약 774억원의 적자를 냈다. 호주 로이힐 광산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탓이다. 채굴한 철광석을 처리하기 위한 항만·철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었는데, 기상이변으로 공기를 맞추지 못해 매달 수 백억원의 보상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삼성물산은 향후 발생할 잠재손실을 미리 회계에 반영했다. 게다가 해당 사업은 2013년 수주 당시부터 일각에서 저가 수주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국내 주택 시장 호황·해외 시장 악화·사업성 악화 등 입찰에 적극 나서야 할 유인이 여럿 상존했으나 삼성물산은 재건축·재개발 수주를 구태여 외면했다.

래미안 아트리치
래미안 아트리치ⓒ기타

삼성물산 주가 낮춰야 했던 이재용…시너지 효과는 공염불이었다

삼성물산이 수주를 기피한 건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함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평가돼야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은 23.2%였고, 삼성물산 주식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합병이 성사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에 대해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26일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주식 3주와 제일모직 주식 1주를 맞바꾸는 0.35:1로 결정됐다. 합병 비율은 이사회 직전 1개월 주가를 기준으로 한다. 이 부회장은 2015년 5월까지 주가를 낮춰야 할 유인이 있었던 셈이다. 삼성물산 매출액은 제일모직보다 5.5배, 총자산은 3배 많았으나, 현저히 저평가된 채로 합병이 이뤄졌다.

실제 삼성물산 주가는 2015년 상반기 건설 경기가 호황인 가운데 유독 하락세를 보였다. 2015년 1월 2일 6만700원이던 삼성물산 주가는 같은해 5월 22일 5만5,300원으로 8.9%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건설업 주가지수는 28.7% 상승했다. 주요 경쟁사인 GS건설(33.0%)·대우건설(31.5%)·대림산업(29.6%)·현대건설(17%) 모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업계는 상승장을 누리는데 삼성물산만 곤두박질쳤다. 이 부회장 등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내리눌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시공사 입찰은 건설사에게 봄철 모내기와 같다. 시공사로 선정이 되면 이후 조합과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해 분양·공사에 들어간다. 시공사 선정은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어, 기업 가치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증권가에서도 건설사 주가 상승을 시공사 선정 영향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가도 삼성물산 주가 부진 원인으로 주택 정비 사업 수주 기피를 꼽았다. 현대차증권은 2015년 4월 보고서에서 “삼성물산 주가는 대형 타 건설사에 비해 주가 상승률이 높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주택공급 계획과 매출액 감소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KDB대우증권은 “부동산 업황 개선에도 분양물량 증가 폭이 경쟁사 대비 크지 않아 주택 매출 증가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KTB투자증권도 5월 삼성물산 주가 부진 원인으로 소극적인 주택사업 전개를 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이 시너지를 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렇다 할 합병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너지로 기업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합병 전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이후에도 합병법인 건설 부문 직원은 매년 감축을 거듭해 올해 상반기 기준 5,5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업 실적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주주에게 합병 찬성을 호소하면서, ‘2020년 매출 60조원’을 목표로 제시했다. 지난해 합병법인 매출액은 31조원에서 못 미쳤다.

고용은 줄고 사업 시너지도 없다. 합병이 사업적 판단보다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1일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 11명을 자본시장법(부정거래·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오는 22일에는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0.06.08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0.06.08ⓒ김철수 기자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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