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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사정광풍’ 이어 ‘예산 반토막’ 낸 윤 정부

지원금·융자 사업 내년도 예산 대폭 감액…태양광 업계 “줄도산 우려”

전라남도 보성 녹차 연구소에 설치된 차밭 영농형 태양광. 녹차는 상부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도 생산수확량 감소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 제공
윤석열 정부가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대해, 에너지전환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그간 태양광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을 가한 터라 산업 생태계는 이미 위기에 몰려있다. 업계에서는 줄도산 우려가 나온다.

13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내년도 예산안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때 지원금을 지급하는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사업 예산이 올해 2,470억원에서 1,595억원으로 삭감됐다.

해당 사업은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 비용의 일부를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형식이다.

주민,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각 단위에서 진행되는 태양광 설비 구축이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관련 예산을 깎으면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가 크게 둔화될 수 있다. 지원금 사업의 예산 집행률은 2022년과 2021년 각각 95.4%, 99.9%에 달했다. 저리 융자 사업의 2022년 예산 집행률도 90%가 넘는다. 이들 사업은 연초에 공고를 내 신청을 접수한다. 신청이 몰려 예산이 부족하게 되면 선착순으로 지원이 이뤄진다. 도중에 진행을 포기하는 프로젝트가 발생해 예산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공고를 낸다. 100%에 근접한 예산 집행률은 지원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예산안대로 지원 대상이 축소되면 연초 신청 경쟁 속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게 된다. 총 사업비용에서 정부 지원금과 융자로 충당하는 비중이 커, 지원이 막히면 사실상 프로젝트 진행이 불가능하다. 내년도 단독주택 태양광 지원금 예산을 보면, 건당 비용을 510만원으로 잡고, 그중 44%인 224만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산출했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마을 단위 프로젝트는 건당 비용 15억 8천만원에 지원금 7억 4,260만원(47%)이다. 추가 공고를 노려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규모가 작아 하늘의 별 따기다. 내년 초 공고까지 미루는 것 외에는 마땅한 수가 없게 된다.
정부는 건당 지원금을 최대한 유지하는 가운데, 지원 대상을 대폭 줄였다. 가령 단독주택 소유자가 옥상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때, 올해는 한 가구당 평균 240만원을 지원했는데, 내년에는 224만원으로 16만원이 줄어든다. 반면 지원 대상은 1만 3천건에서 5,794건으로 절반가량을 잘라낸다. 상가나 공장 등 건물에 대한 건당 지원금은 3,581만원에서 3,766만원으로 소폭 증가하지만, 지원 대상은 791건에서 230건으로 줄어든다. 마을 단위 프로젝트 지원도 동일한 방식으로 예산이 감액됐다.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사업 예산은 올해 3,952억원에서 내년 2,389억원으로 축소된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에는 융자를 지원한다. 협동조합과 중견기업에는 각각 총사업비의 최대 90%, 70%를 저리로 대출해 준다. RE100 추진 대기업이나, 해당 기업에 전력을 공급하려는 발전사업자는 50%이내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분기별 변동금리가 적용되는데, 올해 4분기에는 2.50%가 적용된다. 정부는 1MW당 설치 단가를 올해 14억 7천만원에서 내년 13억 6천만원으로 낮추고, 평균 융자율을 81%에서 72%로 내려 잡았다. 목표량은 330MW에서 244MW로 하향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기반 무너진다

정부의 과도한 예산 삭감이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태양광 산업은 아직 정부 지원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다. 지금 당장 전기차 보조금을 절반으로 줄이면,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산업 전반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기존에는 250만원으로 설치할 수 있던 걸, 지원 축소로 500만원에 세워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면 지원을 줄여도 버틸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대규모 예산 삭감이 큰 타격으로 작용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 사업은 주민들이 태양광 설치에 좀 더 용이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며 “정부 지원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 국산 태양광 제품을 많이 사용했는데, 주민 참여 기회가 봉쇄되면서 국산 제품이 사용될 통로도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태양광 설치 단가가 낮아지는 추세라, 건당 지원금을 줄여도 큰 영향이 없다고 설명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원 수요가 많다는 건 지원을 줄여도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태양광 설치 비용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정부 지원을 충당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정 상근부회장 설명이다. 그는 “아직은 단가 하락 폭이 효능감을 느낄 정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태양광 모듈 가격이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가격 하락 등으로 2021년 대비 10% 정도 떨어졌다”면서도 “총 설치 단가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단독주택 태양광 설치 비용이 500만원일 때 모듈 비중은 약 30%, 150만원 정도다. 총 설치 비용에서 15만원(3%)이 빠지는 셈이다. 태양광 설치에는 모듈뿐 아니라 한국전력에 지불하는 계통연계비, 대출 원리금 상환비, 인허가를 위한 간접비 등이 들어간다.

 

 

 

한화큐셀 태양광 모듈 자료사진. ⓒ한화큐셀

사정광풍에 대기업도 공장 멈춘다

태양광 산업은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된 재생에너지 축소 정책으로 이미 위기 상황에 몰려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치를 낮췄을 뿐 아니라, 발전사업자의 재생에너지 발전 의무도 완화했다. 500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에는 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RPS)가 적용된다. 당초 2026년까지 RPS 의무비율을 25%까지 높일 계획이었으나, 2030년으로 늦췄다. 올해 의무비율도 14.5%에서 13%로 하향했다. 한전 자회사를 비롯한 발전사업자가 태양광 설비를 구축해야 할 유인이 약해진 것이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에 대한 지원 정책도 없앴다. 100kW 이하 소형 태양광 전기를 한전 자회사가 경쟁 입찰 평균가 중 가장 높은 가격에 사주는 한국형 FIT(발전차액지원제도)를 지난 7월 폐지했다. 지원받기 위해 태양광 발전 설비를 100kW 단위로 나누어 설치하는 ‘쪼개기’ 등 부정 사례가 드러났다는 게 이유였다. 정 상근부회장은 “소규모 발전사업자 대부분이 농민들인데, 정부의 의무 구매 지원을 받기 위해 200kW 설비를 두 개로 쪼갠 걸 두고 범죄자로 몰아가고 제도를 폐지하는 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탈태양광’은 ‘사정광풍’으로 시작됐다. 신호탄은 지난해 9월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의 태양광 비리 적발 발표였다.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사업을 둘러싼 위법·부적정 대출 등 총 2,267건(2,616억원)을 적발했다는 것이었다. 이틀 뒤 윤 대통령은 태양광 비리를 겨냥해 “혈세가 이권 카르텔 비리에 사용돼 개탄스럽다”며 “사법 시스템에 의해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문재인 지우기’라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됐다. 당시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정책을 불법으로 못 박아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려는 것”이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2월까지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감사를 펴고, 일부 사안은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는 돈줄도 조여들어 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 태양광 부실 대출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조사 결과에서 태양광 관련 대출 연체율이 높지 않다고 발표하면서도, “보다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금융권 대출이 막히기 시작했다. 태양광을 설치하려면 정부 지원 외 자금 일부는 은행에서 빌려 사업을 진행하기 마련이다. 정 상근부회장은 “금감원이 문제 제기하면서 들여다보는데, 어느 금융권이 태양광에 대출을 해주겠느냐”며 “주요 기관 사정광풍으로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전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한화의 공장 가동 중단은 태양광 산업의 현재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는 한화큐셀은 오는 17일부로 음성 공장을 멈춘다. 또한, 음성·진천 공장 생산직 노동자 1,8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음성 공장 생산 능력은 3.5GW로, 한화큐셀의 국내 총 생산 능력 6.2GW 중 60%를 맡고 있다. 한화큐셀은 “국내 모듈 수요 감소”에 따른 생산량 감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생산 설비를 늘린다. 미국 조지아주에 3조 2천억원을 투입해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현재 1.7GW인 현지 모듈 생산 능력을 총 8.4GW로 확대한다. 미국은 3,690억 달러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설비 투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등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원한다.

비단 미국뿐 아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시장이 줄어드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한화큐셀의 공장 가동 중단도 정부 정책에 따른 재생에너지 산업 위축의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 들어 태양광 사업에 대한 감사를 1년 내내 하고 금융권에서는 대출 중단 조치를 동시에 취하면서 업계 전반에 충격이 누적돼 왔다”고 말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태양광 설치량은 2020년과 2021년 4GW를 웃돌았으나, 지난해 3GW로 떨어졌다. 수출입은행은 연초 올해 예측치를 3GW로 봤으나, 2.5GW로 낮춰 잡았다.

정 상근부회장은 “대기업이 공장을 멈추고 희망퇴직까지 들어갔으면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며 “태양광 설비 제조 기업 전체로 보면 30~40%가 도산·파산·폐업·매각·법정관리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 예산안대로 신규 공급 물량은 더 줄어들고 위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에서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12.29 ⓒ뉴스1

국제무대서 재생에너지 3배 약속한 정부의 모순

원전을 늘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올해 1조 1,092억원에서 내년 6,330억원으로 43%가량 쪼그라든 반면, 원전 관련 예산은 총 1,332억원으로 올해 대비 15배 증액됐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가 낮아져, 관련 예산을 줄였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지난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기존 30.6%에서 21.6%로 하향 조정했다.

원전에 힘을 주는 정부이지만, 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국제적인 추세를 전적으로 거부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날 막을 내린 제28차 국제연합(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현재의 3배인 1만 1천GW로 확대하는 협약에 서명했다. 선연문에는 “다양한 출발점과 국가적 상황을 고려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최소 3배 늘리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일본, 인도 등 123개국이 참여했다. 협약을 이행하려면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높이고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에 따라 예산을 줄었다는 명분은 사라지게 됐다”고 짚었다.

각국에 의무가 부여되는 협약은 아니지만, 국제적인 약속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있다. 국가 신뢰 문제 차원을 넘어, 제대로 된 후속 대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불이익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석 전문위원은 “강제 조항이 아니라 하더라도, 불이행 시 어떤 방식으로든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공동의 이행 메커니즘에 따라 서명국 간 협력·지원하는 데 한국만 빠지게 되면 조치가 따를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낮춘 한국 정부는 협약과 모순되는 입장임에도 국제 공조에서 배제되는 데 따른 부담이 있으니 참여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재생에너지 예산을 놓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사업을 정부안 159,5억원에서 3,214억으로,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사업을 3,389억원에서 5,691억원으로 증액했다. 다만, 민주당 수정안대로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는 오는 20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양당 원내대표와 예산결산위위원회 간사가 참여하는 이른바 ‘2+2 협의체’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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