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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삼성 '흑역사' 무너뜨린 노동자들, 그리고 두 명의 죽음

[류하경의 불온한 사건첩] 노동 편 ③ 삼성을 바꿔 세상을 바꾼 노동자들

.류하경 변호사  |  기사입력 2024.02.25. 04:50:44

 

2013년 봄 신세계이마트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얼추 마무리 되던 즈음이었다. 두 명의 노동자가 '해우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신세계이마트 사건 뉴스에서 권영국 변호사와 내 이름이 자주 등장해서 우리 사무실로 상담을 하러 온 것이라 한다. 그들은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이라고 했다. 삼성의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노동자다.

 

그런데 근로계약서 상으로는 삼성이 아니고 하청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원청 수리직원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업무지시·감독, 교육·평가 모두 원청으로부터 받는데 여하간 하청 소속이란다. 위장도급, 불법파견이었다. 삼성이 헐값에 노동자를 쓰다가 마음대로 자르고, 또 필요하면 뽑고, 그러다가 다치면 책임도 안지고 그리고 또 자르고 그렇게 하려고 위장도급 즉 가짜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수리 업무를 하청업체에 위탁한다는 도급계약은 가짜고 실제로는 하청 수리기사들과 직접 사용·종속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상의 근로계약관계다. 

 

이런 경우 법원은 '형식'보다 '실질'로 판단하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의 직원이라고 인정해준다. 그러니까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하기 위해, '진짜 사용자'가 누군지 찾기 위해 우리 사무소를 찾았다. 이후 법원에서 8년이나 걸렸으나 결론만 말하자면 진짜 사용자는 삼성이었음이 인정됐다. 그 길에 있었던 더 크고 많은 투쟁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삼성과의 싸움이 갖는 무게, 그리고 슬픈 에감 

 

두어 달 법률검토 기간을 거친 후 2013년 여름부터 위 두 사람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마중물이 되어 소송 원고 모집과 동시에 노조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회의원(장하나, 은수미, 심상정),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강력하게 지원하고 연대했다. 권 변호사와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자료들을 검토하여 소송 제기 전 최초 법률검토 작업으로서 위장도급 및 노동환경에 대한 법률의견서를 작성해 언론에 배포했다. 선전포고였다. 어두운 망망대해에 부유하는 노동자들을 향한 등대 신호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이라는 성 바깥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정규직화는 이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그들이 성 밖에서 일단 뭉쳐서 노동조합이 되었다. 이제 정규직화로 성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자동으로 삼성에는 법적·실질적 최초의 민주 노조가 이식되는 셈이다. '트로이의 목마' 같은 형태라고 할까. 그래서 시민사회와 노동계, 하청 수리기사 당사자들은 동시에, 직감적으로 이 투쟁의 의미를 인지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현장에 국한되는 투쟁이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 그리고 삼성 무노조신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후진적 반노동경영에 강한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싸움임을 깨달았다. 한편 슬프고 무섭게도, 그래서 이 투쟁이 얼마나 어렵고 우리의 희생이 클지에 대해서도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범·염호석, 두 노동자의 죽음 

 

2013년 10월경까지 전국에서 원고 수백 명이 빠르게 모였다. 그 이상의 숫자가 노동조합원이 되었다. 그렇게 조직화 운동은 들불처럼 이어져서 2014년까지 한 해 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의 무노조 76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삼성의 직원인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전에 '삼성일반노조'가 있었고 에버랜드 노동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삼성지회'도 있었지만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삼성과 단체협약을 최초로 체결했다는 점에서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은 특히 의미가 있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년 7월 14일 386명의 조합원이 모인 자리에서 노동조합 출범식을 가졌다. 그리고 열흘 후인 24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전자서비스 원청과 각 협력업체에 교섭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원청과 협력업체는 이때까지는 모두 무시로 일관했다. 오히려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은 노조활동이 활발한 센터에 본사 인력을 투입하여 조합원들의 일감을 빼앗는 방식으로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려 하였다. '표적감사'라 하여 조합원들을 상대로 전면 감사를 실시하면서 무리하게 징계하기도 하였다. 이런 노조탄압 과정에서 2013년 10월의 마지막 날, 천안 최종범 조합원이 "그 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삼성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 해석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열사투쟁' 국면을 맞이하여 삼성의 노조탄압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결의하고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투쟁을 이어갔다. 조합원들의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었다. "노동조합 인정하라", "건당수수료체계 폐지하고 기본급을 지급하라" 

 

노동조합 결성권은 대한민국 최상위법인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고, 대기시간과 업무준비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성수기와 비수기에 임금격차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는 살인적인 건당수수료체계를 월급제로 바꿔달라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요구였다. 그런데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은 노동자들이 서초동 본관 앞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호소해도 들은 채 만 채였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듬해인 2014년 5월 17일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故) 염호석 조합원이었다. 그는 부모님에게 남긴 유서에서 자신의 시신을 안치한 후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승리하는 날 그 때 정동진에 화장해달라고 했다. 

 

경찰은 전투병력을 동원해서 신성한 장례식장까지 밀고 들어와 조합원들을 물리력으로 진압하고 시신을 강제로 탈취해가는 충격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또 한 번의 열사투쟁과 그에 따른 대기업 삼성의 위기를 국가공권력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투사가 목숨을 잃으면 '열사투쟁' 국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정보부, 안기부, 공안경찰들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시신 탈취'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태가 수십 년 만에, 21세기 세상에서 재현된 것이다. 이제는 군부독재정권이 아닌 삼성을 위해서. 

 

경찰과 삼성, 두 골리앗에 맞선 다윗들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을 통해 국가와 대기업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사조사위')는 5년 뒤인 2019년 5월 14일 경찰 지휘부에 "고 염호석 씨 모친의 장례주재권 행사와 화장장 진입을 방해한 사실에 대해 사과할 것", "현행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에 대한 시행령, 시행 규칙 내 경찰 정보활동의 범위를 경찰관직무집행법 상 직무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 '노조가 승리하는 날 장례를 치러달라'는 염호석 조합원의 유서가 발견됐음에도, 경찰은 유족을 설득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을 발굴해 사측에 소개하고 합의 금액까지 제시하는 등 사측 대리인처럼 사건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같이 사건에 개입한 경찰 인력은 사건 관할 경찰서의 정보관들뿐만 아니라, 본청 및 지방청 소속 정보국 경찰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즉 정보경찰이 사측 대리인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유남영 진상조사위 위원장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의 행위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로 경찰은 사측이 바라는 대로 노조장을 가족장으로 변경하기 위해, 친모를 배제한 채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과 유족과의 만남을 4차례 주선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정보관들은 고인의 유족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인 이 모 씨(염호석 친부의 지인)를 경찰 정보망을 이용해 찾아내고, 해당 인사를 회사에 소개하고 합의 금액까지 제시했다. 두 번째로 경찰 정보관들은 유족과 노조의 동향을 파악한 뒤, 이를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들에게 상세히 공유하는 행위를 했다. 그리고 고인의 친모를 장례식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장례 마지막 날 화장장에선 고인의 유골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경찰 정보관들은 장례식에 적극 개입해 노조가 장례식을 방해할 염려가 있다는 보고를 했다. 이는 경찰 정보라인을 통해 빠르게 전파됐고, 이 정보를 접수한 경비 경찰은 경력을 동원해 가족장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했다.' 

 

유 위원장은 경찰의 행위를 열거하면서 "저희가 보기에 경찰 정보관은 삼성전자서비스 대리인이었다"라는 이례적인 표현으로 비판했다. 이어 "이런 경찰의 개입행위는 경찰직무집행법 제2조(직무의 범위)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와 경찰법 제4조(권한남용의 금지)에서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공정성·중립성'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가공권력과 삼성이 합심한 공격에 맞서 비정규직 하청 수리기사들은 싸웠다. 비정규직들이 다윗인 건 맞는데, 골리앗이 둘이었다. 

 

첫 승리, 80년 무노조 '신화'의 종식 

 

염호석 조합원 장례투쟁 과정에 쏟아진 경찰과 삼성의 탄압에도 조합원들은 굴하지 않고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총파업투쟁을 선언했다. 신규 조합원 가입률도 이 시기 급격히 상승하였다. 노동자의 권리는 국가와 기업이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모두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분수령이었다. 

 

결국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2014년 6월 28일 삼성과 단체협상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협력업체들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와 맺은 것이지만 그 실질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원청과 교섭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로써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무노조 동토(凍土)인 삼성에서 처음으로 단체교섭을 체결한 노동조합이 되었다. 기본급 쟁취와 노조인정 및 열사들에 대한 삼성의 사과라는 성과를 얻으면서 말이다. 

 

분명히 한계는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형식적인 교섭 상대방이 협력업체들을 대리하는 경총이었다.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쟁점으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법원 판결 전에 원청 사용자로서 교섭에 공개적으로 나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국 모든 센터가 일괄적으로 단체협상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차후 센터별 단체협상의 기준이 되는 기본협약안을 작성하는데 그쳤다는 한계도 있다.

 

기본급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높이는 것, 원청 사용자성의 공식적인 인정 등은 앞으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쟁취해야 할 과제였다. 이후 노조는 이마저 이루어 냈다. 말로 다 못할 5년의 전투 끝에 2018년 5월경 삼성에서 직접고용 선언을 이끌어 냈다. 결국에는 삼성의 성을 무너뜨리고 조직이 통째로 걸어 들어가서 80년 무노조 신화마저 종식시킨 것이다.

 

연이은 삼성 내 노동조합 설립 

 

삼성이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을 매각한다고 발표한 이후 두 사업장 모두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노조가 이렇게 신속히 설립된 것은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의 여파였다. 실제로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위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도왔다.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처지가 불안해지자 이제야 노조를 만든다'며 백안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비판이다. 노동조합은 본래 그래서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가 열악한 자신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스스로 권리를 지키려고 결성하는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 스스로가 내 이익을 지켜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낄 때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노동조합이야말로 노동조합 본연의 목적과 의의에 정확히 맞다. 노동권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의 필요성, 기본권 수호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노동조합이라는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렇게 볼 때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노동조합은 주체적으로 해답을 찾아나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을 통하여 이제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이 경영철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반노조 정책은 헌법 제33조에 명시된 노동3권을 무시하는 것이고 국민 행복을 최고 가치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여 결국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함으로써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이러한 점들을 기업과 노동자가 공히 인식하고 모든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설립된다면 그 때부터 우리 사회의 노동권과 국민 복지는 급격히 향상될 것이다. 

 

5년 만에 뒤집힌 검찰 수사결과 

 

 

 

 

 

 

 

 

2018년에 검찰이 발표하는 내용과 언론 단독보도들은 사실 노동자들이 5년 동안 목이 터져라 폭로하던 것들이었다. 서운함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변화한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만 우리사회가 노동자의 이야기를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들었는지, 삼성의 벽 앞에서 진실을 덮는 일에 공범이었던 적은 없는지 함께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2013년 10월에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심상정 국회의원을 통해 폭로됐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작성해 실행한 노조파괴 시나리오 문건이었다. 당시 노동부와 검찰은 해당 문건을 삼성그룹 차원에서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하며 실제 부당노동행위 실행이 확인된 실무자 4명을 제외한 그룹 임직원 모두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 2018년 공개된 2013년 당시 노동부의 내부 수사보고서를 보면 문건 작성자는 삼성경제연구소, 작성 지시자는 삼성인력개발원, 그리고 총괄 수습 단위는 삼성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었다는 것이 그대로 서술돼 있다. 2013년 당시 노동부와 검찰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문건을 작성했다는 점과 작성자·실행자들의 실명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결론을 낼 때는 정반대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얘기다. 어떤 정무적인 이유로 삼성을 봐준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 노동자의 부당해고 관련 사건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문건은 삼성이 작성했으며 이는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불법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이러한 법원 판결까지 무시한 채 말이다. 

 

2018년 수사결과가 바로 잡힐 때까지 그 5년 동안,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 계획된 내용들은 삼성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에게 차례차례 그대로 실행됐다. 수사기관이 2013년, 2014년 최초의 수사결과를 양심적으로 냈다면 대부분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다.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합원은 해고를 당해 5년 동안 밥벌이도 없이 법정과 거리를 헤매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표적감사와 일감 빼앗기, 노골적인 왕따와 협박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2013년 겨울 최종범, 2014년 여름 염호석 조합원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둘 다 유서에 삼성 노조파괴를 규탄하고 조합원들의 투쟁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을 남겼다. 

 

삼성은 염호석 열사가 떠난 직후 "노조원 1명 탈퇴"라며 노조파괴 성과의 보고사항으로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6억원을 직접 건네며 고인이 원했던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바꾼 후 시신을 빼앗아 피울음 쏟는 동료 조합원들과 어머니 눈앞에서 화장해 버렸다. 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삼성은 천륜을 어겼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단지 사적인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 삼성의 80년 노동탄압 역사 속에서 말없이 착취당하고 이유도 모른 채 경제적·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었을 노동자들은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끝내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무노조 '흑역사' 무너뜨린 노동자들, 법원에서도 승리하다 

 

삼성은 70년 넘게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을 '신화'로 불렀다. 그러나 이는 신화가 아니라 '흑역사'다. 이 흑역사의 주인공인 삼성그룹 임직원들에 대한 실형 판결이 드디어 2022년 2월과 3월에 연이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22년 3월 17일 대법원은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 차원에서 움직였다고 판단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징역 1년4개월 등 노조파괴 주범인 임직원 12명에 대해 징역형 및 벌금의 유죄 선고를 내렸다. 강 전부사장은 경찰 출신이었다. 삼성은 경찰 출신을 지속적으로 특채로 고용해왔다. 헌법을 농락하는 삼성 무노조경영은 국가 공권력과 삼성의 합작품이었다. 강 전 부사장은 2011년 6월부터 2018년 3월까지 7년 동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하면서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에버랜드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방해해 왔다.

 

2022년 2월 4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임직원 30여 명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마찬가지로 법원은 삼성그룹의 조직적 범죄로 봤다. 이로써 삼성 노조파괴에 대한 형사재판은 모두 끝났다. 고소·고발부터 판결 확정까지 10년의 시간이다. 

 

한편 2022년 4월 14일에는 삼성에버랜드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삼성지회도 사용자인 삼성물산과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011년 설립된 삼성지회가 11년 만에 얻은 성과다. 참고로 지금까지 에버랜드에는 삼성그룹이 '방탄용'으로 설립한 어용노조가 계속 '엉터리' 단협을 체결해 왔는데 법원은 이 어용노조가 삼성과 공범이라며 어용노조 위원장 2명에게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을 했다. 어용노조가 회사와 함께 노조파괴 범죄로 처벌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끝내 '진짜 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교섭대표노조가 됐고 '진짜 단협'을 정식으로 맺었다. 삼성지회 임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전원이 징계받거나 해고됐다. 그 징계와 해고는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의 일환이므로 무효고 삼성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까지 진다는 판결은 애초에 나왔다. 네댓 명의 노동자가 삼성그룹 전체와 맞서는 그 싸움이 어땠을까. 가시덤불을 뚫고 가는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대중의 지지와 시민사회의 연대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투쟁 끝에 2019년 1월 사측과 합의로 정규직 전환을 최종적으로 쟁취했고 소송의 경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에서는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으나 2022년 1월 26일 항소심 선고에서 1심이 뒤집혀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9년 만의 일이다. 기적적이지만 법리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 폐기 선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5월 무노조 경영에 대해 사과하고 무노조 정책 폐기선언을 했다. 이러한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투쟁 승리의 기세로 이후에 삼성웰스토리·에스원·삼성디스플레이·삼성화재, 그리고 삼성전자에까지 노조가 만들어졌다. 삼성그룹 노조는 현재 13개로서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삼성 무노조 역사가 무너졌다. 실로 노골적인 삼성의 반헌법·불법·인권유린 정책이 87년 민주화 이후 40여 년이나 지나서 바로 잡혔다. 21세기에 홀로 전근대에 머물 수 있었던 삼성의 힘은 대체 얼마나 대단했던가. 삼성에 노조 세우기, 최초 단체협약 체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경영진 형사처벌과 같은 성과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상대가 삼성이거나 최초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 결과여서 그렇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삼성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은 늘 노동자의 성취보다 늦다. 노동자가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즉시 행사해버리는 게 소송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의미다. 그렇다. 우리 국민은 법률에 의한 판결 이전에, 법률보다 더 높은 헌법에다가 '노동 3권'이라는 것을 명시하여 일상에서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이 보장되도록 해놓았다. 소송은 늦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의는 당장 실현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법원이 아니라, 헌법이 공인한 기구인 노동조합을 통해 즉시 정의와 기본권을 지킬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헌법 제33조 '노동 3권'의 의의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간략히 소개한 이 삼성 사건을 교훈 삼아 다른 현장의 노동자들도 용기를 내기 바란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아직 14% 정도에 불과하다. 권리 앞에 잠자는 자를 누구도 대신 지켜 주지 않는다. 떠들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 삼성 노동자의 투쟁에는 시민사회와 각계 전문가, 언론이 적극 연대한 힘도 컸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또한 희망한다. 

 

ⓒ연합뉴스

 

번외 : 불량노동조합 

- 삼성에버랜드 '어용노조 설립무효' 소송 사건 

 

학교에는 불량학생·보통학생·모범학생이 섞여 있다. 제 이익과 편의를 위해 동료학생을 괴롭히는 학생은 불량학생이다. 선생님은 불량학생의 불량한 행동을 발견한 경우 꾸짖고 교화할 의무가 있다. 통상의 선생님들은 그렇게 한다. 학교의 규칙과 사회의 도덕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는 노동조합을 이렇게 정의한다.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 

 

이에 우리 법원은 노동조합이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면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판결한다. 이를테면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해 사용자의 수족 또는 회사의 하부기관에 불과한 노동조합이 여기에 해당한다. 법원은 구체적으로 '노동조합설립 무효 확인의 청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해당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자격을 박탈해도 될 정도로 '불량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학생으로 치면 퇴학이다. 

 

삼성 노동자들을 돕던 변호사들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대리하여 에버랜드 어용노조를 상대로 '노동조합설립 무효 확인의 청구'를 제기했다. 이론상 가능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실험적 소송이었다. 

 

2021년 8월 26일 법원은 삼성에버랜드에 설립된 한국노총 소속 '에버랜드노동조합'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어용노조가 상소했으나 원심은 그대로 최종 확정되었다. 그 근거로 ① 노조가 삼성의 비노조 경영 방침을 유지하고 향후 자생적 노조가 설립될 경우 그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용자의 전적인 계획과 주도 하에 설립된 점 ② 회사가 자체 검증을 거쳐 노조 위원장 등 노조원을 선정한 점 ③ 노조설립 직후 회사와 2011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 진성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던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 노조는 그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서 헌법 및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그 설립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에버랜드노동조합은 2011년 7월 옛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인사지원파트와 에버랜드 인사지원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어용노조다. 당시 삼성은 진성(眞性)노조 즉 '진짜'인 민주노조가 설립될 경우를 대비해 '진성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어용노조를 만든다'는 내용이 포함된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작성했다. 삼성은 2011년 노동자들이 민주적인 노조설립을 추진하자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7월 직전에 미전실 주도 하에 에버랜드 인사·노무 담당자들을 중심으로 비상상황실을 설립해 조직적인 노조파괴 공작 차원에서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그 후 진성노조인 금속노조 삼성지회 대신 어용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회사의 의도대로 어용노조가 형식적인 노동자 대표 역할을 해왔다. 어용노조는 진성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삼성은 진성노조 간부들을 부당하게 징계하고 해고했다. 이 징계 및 해고는 모두 법원에서 부당함을 인정해 이미 무효화한 바 있다. 

 

진성노조 파괴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삼성그룹 간부들은 이후 구속기소 됐고 1·2심 모두 삼성전자 부사장 등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범죄에 있어서 이례적이게도 실형을 선고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20년 5월 삼성의 노조파괴 역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어용노조의 1·2기 위원장도 삼성과 공동정범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노동자면서 동료 노동자를 괴롭히고 민주노조를 깨기 위해 사측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다가 감옥에 갇히다니, 일제 부역자와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한국노총의 입장표명은 없었다. 어용노조에 대한 한국노총의 조사나 징계도 전혀 없었다. 한국노총은 역사가 오래된 훌륭한 조직이다. 노동법과 제도개선, 노동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조직이다. 소속 노동조합은 대부분 건강하고 자주적이다. 그러나 일부 '불량노동조합' 사건에 대해 의견표명을 하지 않는 점이 당시 무척 아쉬웠다. 

 

불량학생의 불량행위를 발견하고도 묵인하는 선생과 학교의 태도는 불량학생에게 힘을 준다. 불량학생 지망생이 자라난다. 보통의 학생들은 학교를 냉소하고 교과서를 집어던지며 절망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이제 학교가 아니게 된다. 

 

"피고 노동조합 설립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2021년 8월26일 삼성 노동자들이 방청석에 자리했던, 수원지법 법정에 울려 퍼진 판결 내용을 모두가 매섭게 기억하기를 바란다.

 

류하경

자전거와 수영과 강아지를 좋아하는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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