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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수처 소환조사를 식당예약 하듯 할 순 없다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한동훈의 말...한동훈의 적은 한동훈?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료사진 ⓒ뉴스1
“범죄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마치 식당 예약하듯 자기를 언제 구속해달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죠. 희한한 특별 대접 요구가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8월 18일 북한인권기록보존소 현판식 행사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면 제 발로 출석해 심사받겠다”면서 굳이 국회회기에 맞춰서 영장을 청구하여 민주당의 분열과 갈등을 노리지 말라고 요구하자, 이를 “식당 예약”에 비유하며 조롱하듯 반박한 것이다.

그랬던 한 위원장이 ‘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출국 논란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신속히 소환해야 한다”는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지난 15일에 이어 17일에도 공수처에 이 전 장관을 “즉각 소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당 대표에 대해 비판할 때는 피의자가 식당 예약하듯 수사 일정을 수사기관에 요구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했다가, 이종섭 전 장관 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이 전 장관 일정에 맞춰 빨리 소환하여 조사하라고 촉구한 셈이다.

 

 

 

한 위원장의 말은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일까?


한 위원장을 비롯해 여당과 대통령실, 이종섭 전 장관 측은 당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 전 장관을 소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현장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도 김학용 경기권역 선대위원장은 “공수처에 분명히 말하고 싶다”면서 “공수처가 정치적인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신속하게 (이종섭) 호주대사를 소환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선대위원장은 “선거 초반에 좋았던 분위기가 이종섭 전 장관 등 그리고 황상무 수석 문제로 싸늘하게 변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연합뉴스 보도 등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 또한 “만약 공수처가 그렇게 급하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이종섭 전 장관을 불러) 조사하라”라고 촉구했다. 이종섭 전 장관 측도 지난 19일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촉구서’라는 것을 접수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에 외압을 행사 의혹 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귀국 이동하고 있다. 2024.03.21 ⓒ민중의소리


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지난 10일 출국한 이 전 장관은 ‘도주 논란’ 끝에 21일 다시 입국했다. 입국하며 “임시 귀국”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곧 다시 출국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 등은 그 사이에 이 전 장관을 불러 조사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 한동훈 위원장의 말처럼, 수사기관의 수사 일정은 식당 예약하듯 그렇게 피의자 편의에만 맞추기는 힘들다. 식당 예약도 손님이 많으면 힘든데 소환조사 일정은 더더욱 그렇다. 공수처 역시 이 전 장관 소환조사 시기에 대해 “수사팀이 수사 진행 상황을 감안해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 정부과천청사에서 이 전 장관의 향후 조사 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통상 수사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을 먼저 분석하고, 하급자를 불러 조사한 뒤, 진짜 핵심 피의자인 윗선을 조사하는 게 순서라고 한다. 공수처는 지난 1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을 압수수색 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이들 하급자에 대한 소환조사는 아직 이뤄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압수물 분석과 하급자 조사를 전부 건너뛰고 윗선부터 조사하라는 것은 한동훈 위원장의 과거 말처럼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순서를 뒤죽박죽 바꿔서 하면, 수사정보 노출 위험만 키워 피의자에게 정보만 제공하는 꼴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 한동훈 위원장이 이를 모를 리 없을 듯하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6월 7일에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돈봉투 의혹으로 검찰에 자진 출석을 시도한 송영길 전 대표와 관련해 “수사는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면서 “마음이 다급하더라도 절차에 따라 수사에 잘 응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인사 수사 일정에 관해 얘기할 때는 “식당 예약” 등에 비유하며 비아냥거리다가, 정권 인사 수사 일정은 피의자 일정에 맞춰 신속하게 하라면, ‘총선을 앞두고 수세를 모면하려는 정치적인 수사’ 또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과거에 했던 말과 정치인이 된 후 쏟아내는 말들을 통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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