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혹시 당신, 가족을 죽이고 싶어 괴로워하나요?

[존속살인을 부추기는 사회] ①가족이 원수가 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24 오전 8:07:48

 

 

최근 인천 모자 살인사건이 어머니와 형을 동생이 무참히 살해한 '존속살해'로 드러나 '존속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존속살인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가 부각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매년 40~50건 일어나던 존속살인이 2012년 195건으로 약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또한 지난 5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나는 등 외국과 비교해 한국의 존속살인의 증가세가 유난히 두드러진다는 통계도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존속살인은 2008년~2009년 전체 살인사건의 4.15%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5%를 넘어섰다. 미국과 영국에 비해 두 배가 넘는 높은 비율이다. 이런 통계는 존속살인의 원인을 '개인적 요인'에서만 찾기 어렵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신분열증에 걸려서'라거나, '못되어 먹은 자식'이어서 부모를 살해한 것이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버리면 더 이상 골치아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대가는 존속살인이 급증하는 추세를 방치하는 것이고, '사실상의 존속살인'이 만연하는 현상을 외면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중에는 존속살인과 비슷한 동기로 일어나는 '사실상의 존속살인'이 유난히 많다고 지적한다.

즉 부모형제를 차마 못죽이고, 친구나 자기자신을 살인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자살까지는 아니어도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아가는 유형도 넓게 보면 '존속살인'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성장 과정에서 또는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형제 중 누군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품고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족에 대한 증오의 감정은 그 자체가 엄청난 자기 소모성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게다가 가족에 대한 증오의 감정에 죄책감까지 갖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가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더욱 힘들다. 이번 기획은 그 고통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만 찾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첫 회는 신분 노출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이번 기획을 위해 상담 의뢰인으로 나서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인물'의 상담기다. '사실상의 존속살인'의 근원은 바로 우리 가정 도처에 있으며, 우리 모두가 이것을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편집자>
 

▲ 실제 상담 장면. 오른쪽은 김미영 소장.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제공


"가족이 없어졌으면"… "'차남'의 마음, 조금은 이해해요"

"'인천 존속 살인 사건'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차남, 나쁜 놈'이더군요. 저도 차남의 무도함에 함께 분개했어요. 겉으론 그랬지만, 사실 전 차남의 마음을 아주 조금쯤은 알 것 같았어요. 적어도 '가족 중 누군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그 기사를 볼 때마다 괴로웠습니다. 가족을 살해한 범죄자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들었어요."

긴 고민 끝에, 결국 A씨는 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느꼈지만,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상담을 받으러 온 것 자체가 가족에게 미안한 일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뒤, A씨는 상담실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A씨에게는 4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A씨 남매는 대학 진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집을 얻어 10년째 같이 살고 있다. '가장'을 대신한 오빠는 A씨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공부 방법, 생활 습관 등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빠의 방식은 A씨에게 맞지 않았다. 혼자 책을 읽고, 정리정돈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밴 오빠와 달리, A씨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걸 즐겼고, 털털했다. 오빠는 A씨를 무척 한심하게 바라봤다. 습관처럼 '개념 없다', '네가 늘 그렇지'라는 말을 내뱉었다. 매일 그런 얘길 들자 A씨는 예민해졌다. 언제부턴가 집에선 말문을 닫게 됐다. 어쩌다 오빠와 말을 섞으면, 사소한 의견 차이가 인신공격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사춘기 때도 안 한 가출을 떠올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어느 날 지금까지 쓴 일기들을 보니 대부분이 오빠에 대한 원망이더군요. 유서를 쓴 적도 있어요. 오빠 말대로라면 전 하찮은 존재였고, 그래서 내가 왜 살아야 하나 싶었거든요."

그는 오빠와의 관계를 '함께 있으면 상처가 되는, 남보다 못한 관계'라고 했다. 떨어져 사는 것 말곤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 집값을 무시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형제간 우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모님 생각에 선뜻 그럴 수 없다. 그저 하루빨리 오빠가 결혼해서 분가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남들 눈에는 아주 사소한 일일 거란 걸 알아요. 하지만 자그마치 10년입니다. 이젠 너무 지쳤어요."
 

▲ '서울가정문제상담소' 홈페이지 온라인 상담 게시판. 40대 니트족 사연부터 우울증을 겪는 아내에 대한 사연까지 다양한 가족 관련 상담 글이 올라와있다. 온라인 상담은 무료로 진행된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홈페이지 갈무리

 

"사소한 갈등이 '가족 범죄'라는 암을 키운다"

이야기를 경청한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정말 힘드셨겠다"며 먼저 A씨를 위로했다.


"별것 아니더라도 상처받은 일들은 은행에 적금을 넣듯 차곡차곡 쌓입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관계에서는 축적량이 더 많습니다. 억압된 분노가 90 정도 쌓이면, 10만큼의 작은 자극이 들어와도 다이너마이트처럼 '뻥' 하고 터집니다. 분노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이성이 작동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특히 가족을 죽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분노가 쌓이면 이성이 작동을 못 하게 막는 거죠."

A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오빠가 아주 사소한 지적을 해도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됐다고 했다.

김 소장은 김씨의 상황을 '좌절공격가설'로 설명했다. 좌절이 공격 행동을 증가시키고, 공격 행동은 좌절에 기인한다는 이론이다. 그는 존속 살해 사건의 원인 또한 이 이론으로 분석했다.


"사람이 계속 좌절하고 도태되면 병리적으로 바뀝니다. 자신이 죽고 싶으면 세상에 보이는 게 없죠. 그러면 불특정다수를 공격하거나, 자신에게 가장 상처 준 사람을 공격합니다. 자신이 사회에 부적응하게 된 이유를 어려서부터 받은 가족의 무관심 등으로 돌리는 거죠. '인천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건강하게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자녀라면, 부모를 재산 취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재산에 욕심을 냅니다. 하지만 부모를 죽이면서까지 돈을 탐내는 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인정을 못 받았거나, 차별을 받았던 내재된 분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사랑은 안 줘도 돈은 줄 수 있으니까요."

김 소장은 유교적 전통이 깊은 한국 사회가 김씨 남매의 불화를 더 키웠다고 말했다.

"가족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 아닙니까. 성격이 안 맞을 수 있고, 이미 서로 각자 가치관이 뚜렷하게 정립된 상태에서 서로를 바꾸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안 맞는 사람들에게 우애를 강요하니 역효과가 납니다. 이미 불화는 진행됐는데 사회는 여전히 가족 간 화합과 유대를 강조하니 불화를 극복할 수도 없이 은폐해버리고,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죠. A씨의 가족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가정이 이런 모순을 갖고 있어요. 외국에 비해 가족 중심적 사고관이 뿌리 깊으니까요. 부모님 세대에서는 많은 분들이 온정주의, 가족 중심주의가 워낙 강하다 보니 자녀들의 불화를 알면서도 인정을 못 합니다."

"정 맞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을 하고 갈라서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가족인데 따로 살아'와 같은 감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가족 관계에서도 감정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안 맞는다고 해서 끝까지 사이가 나쁠 건 아니거든요. 적당한 선이 도리어 상대에게 이익이 됩니다. 가족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김 소장은 "A씨가 직접 상담을 청한 것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인다"고 격려했다. 그는 가족 간 문제를 터부시하거나,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가족 간 문제는 다 사소한 문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생활에서 부딪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사소한 문제들을 묵히면 그게 병이 됩니다. 암 판정을 받는 경우, 이미 손을 쓸 수조차 없이 늦는 게 대부분입니다. 상담을 받으시러 오는 분들도 거의 작은 종양이 아니라, 암 3기 수준에 이르러서 옵니다. 이미 가족이 아닌 원수가 돼서 오는 거죠. 어떤 비용을 들여도 해결되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끝까지 문제를 모르고, 또 해결 의지가 없을 때 바로 인천 사건과 같은 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가족 관계에 대해 되돌아보고, 솔직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족을 해칠 수 있다"

상담을 마친 A씨는 진이 빠진 채였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기 힘든 일이었다. 가족을 미워하는 자신을 탓했던 A씨에게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던 김 소장의 말은 큰 위로가 됐다.

"솔직히 인천 사건 가정에 비하면, 우리 집은 정말 정상적인 가정 같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인가 싶었어요. 우리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나 혼자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괜히 죄책감이 들고, 혼자 괴로웠어요. 쉽지 않겠지만 오빠,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하고 다 같이 이 상황을 풀어야 할 것 같아요."

A씨는 평소 주변 지인들과 가족에 대해 나눴던 대화들도 곱씹어봤다.

"제 주변에 보면,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근데 가정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느끼지도 않고, 저처럼 누구 한 명 참으면 다 해결되는 문제로 여기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냥 꾹꾹 참으면 정말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하겠죠. 가족을 해칠 거라는 끔찍한 상상을 하진 않지만, 누구나 그럴 위험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길, 상담소 복도 탁자 위 펼쳐진 팸플릿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드러내는 용기, 해결의 지름길입니다."

※ 위 기사는 서울가정문제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