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간 역학관계로 결정되는 분배의 몫
80년대까지 집단 간 경쟁이 기본이었던 한국 사회는 90년대를 거치면서 개인 간 경쟁이 기본인 신자유주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개인 간 경쟁 사회에서는 집단 간에 어떤 기준으로 분배를 해야 하는가는 관심 밖의 일이고 개인 간에 어떤 기준으로 분배를 해야 하는지가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사실 여러 분배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 간 분배이든, 집단 간 분배이든 간에 현실에서 그것은 집단이 나 개인 간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즉 힘이 센 집단이나 개인이 분배 몫을 더 많이 차지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개인 간 경쟁사회인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집단 간 역학관계가 아닌 개인 간 역학관계에 따라 분배된다. 이때 개인 간 역학관계를 평가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능력이다.
그래도 문명사회를 자처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먹이 센 사람이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분배원칙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로부터 개인 간 경쟁사회에서 그나마 대중적 설득력이 있는 분배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능력이다. 신분, 재산, 체격, 학벌 등을 기준으로 분배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반대할 것이지만 능력(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분배한다면 동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능력주의 정의론은 집단 간 경쟁사회였던 신자유주의 이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등장하기도 어려웠고 절대로 주류 정의론이 될 수가 없었던, 신자유주의 시대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정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는 신자유주의 떠받치는 지배층의 정의론일 뿐
신자유주의 사회의 지배층에게 능력주의, 즉 능력에 따른 분배원칙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능력에 따른 분배의 결과인 불평등이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능력주의 정의론은 가난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을 억제시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정의한 짓이고 결과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은 매사에 자기 탓을 하게 되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반면에 능력주의는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부나 성공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어 우쭐거리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의 불우한 삶은 무능력의 당연한 결과였다고 믿게 만든다. 그 결과 부유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 실패한 이웃에 대해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그들을 도우면 더 많은 무능력자들이 발생하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우려하게 된다. 이것은 능력주의가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지배층의 정의론 혹은 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정의론임을 잘 보여준다. 능력주의 정의론은 극소수 지배층에게는 축복이지만 절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에게는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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