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와 통일부, 외교부 등 정부 부처가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민관협력단'이 18일 오후 서울지방보훈부에서 발족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가보훈부와 통일부, 외교부 등 정부 부처가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민관협력단'이 18일 오후 서울지방보훈부에서 발족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동아시아 평화의 장애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116년이 지나도록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순국일을 8일 앞둔 18일 오후 서울보훈청 4층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민관협력단 발족식'이 열렸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대해 현재적 의미를 되살려 새롭고 풍부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효율적인 유해발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기록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장관은 "안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은 중국이지만 일본은 분명히 기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공적 접촉을 통해서 자료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인만큼 연구자들이나 관련 개인들의 네트워크를 심화시키다보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심을 보였다.

이후 북한과 협의하고 중국의 협조도 받아서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하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6월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남북공동 유해발굴 추진 합의 △2006년 6월 남북공동조사단의 여순 매장 추정지에 대한 조사활동 △2008년 3~4월 여순감옥 서쪽 원보산지역에 대한 한중 합동발굴 △2008년 10월 중국 단독으로 소포대산 지역 발굴 등 몇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었던데 대한 평가인 셈이다.

2010년 4월 안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민관 합동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추진단을 구성한 뒤 매장 추정지인 여순감옥 묘지 일대에 대한 조사 추진을 결정했지만, 협조가 필수적인 중국측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어려움이 조성되고 있다.

안준범 국가보훈부 전문관은 중국 정부가 북측의 사전동의 또는 남북공동조사와 발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2008년 원보산지역 발굴의 경우 북측이 판문점연락관을 통해 남측의 단독발굴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전달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현재 남북관계 상황으로는 논의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중국은 발굴을 원하는 한국에 보다 구체적인 자료 제시를 요구하고 있으나 어떤 자료를 가져가도 더 구체적이고 보다 상세한 내용을 알려달라며 번번히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내 주요 문서보관소인 '당안관'이나 도서관 등에 대한 자료조사를 추진하는데 대해서는 비협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접근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안 전문관은 현재 국가보훈부가 주요 단서로 삼고 있는 4가지 사료도 소개했다.

△1910년 3월 26일 관동도독부 작성 『사형집행보고』(안중근 금일 사형집행. 유해는 여순에 매장함) △조선통감부 1910년 작성 『사형집행보고서』(안의 사체는 감옥서에서 제작한 침관에 넣고 백포를 덮어 (중략) 오후 1시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하였다) △오사카아사히신문 1910년 3월 27일자(안의 시체는 침관에 안치되는 대우를 받고 감옥묘지에 매장되었다) △만주신보 1910년 3월 29일자(사체는 오후 감옥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등이다.

주요 단서가 모두 여순감옥 묘지(일명 동산파지역)를 매장지로 지목하고 있다.

사형집행 당시 여순감옥 소장의 딸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과 증언을 토대로 2008년 3~4월 여순감옥 서쪽의 원보산 지역에 대한 한중 합동 발굴이 처음으로 실시됐고, 그해 10월에는 중국측이 단독으로 서쪽으로 200여 미터 떨어진 소포대산 지역에 대한 발굴을 실시했으나 두곳 모두 인골이나 묘지로 추정할 수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 여순감옥박물관과 민간단체 등에서 유력한 매장지로 추정하는 곳도 여순감옥 묘지, 일명 동산파 지역이다. 

지난 2006년 남북공동조사 당시 원보산지역과 함께 동산파지역을 돌아보았고, 국가보훈부는 매년 동산파지역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대련시정부가 여순감옥에서 사형집행된 항일열사들이 안장되었다는 이유로 2001년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한 곳이고 반경 3km에 해군부대 등 군사시설이 다수 있어 발굴 추진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측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여러 난관을 뚫고 유해발굴을 시도하기 위해서라도 매장지를 특정할 수 있을만한 사료적 근거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간위원인 박경목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는 "수감자의 시신을 유족들이 찾아가지 못할 경우 99%는 감옥 묘지에 안장을 하게 돼 있다. 안 의사가 여순감옥 묘지에 안장됐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면서 "그 경우 '묘적부'를 작성하는 것이 당시 감옥 운영시스템인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대련 당안관이나 여순박물관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용달 광복회 학술원장은 "북한이 1980년대 안 의사의 조카이자 백범 김구의 비서로 활동했던 안우생을 단장으로 하는 발굴단을 여순에 파견해 대대적인 조사를 했다"며, 김 주석 생존시 특별히 중국측과 협의해서 오래 전에 조사를 한 것이니 실패했더라도 자세한 기록이나 사진같은 것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2006년 남북공동발굴 당시 북측에 요청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전달받지 못했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그런 협력도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규수 강덕상자료센터 센터장은 "최근 안 의사 서거로부터 6개월 쯤 지난 후 일본인 기자가 여순감옥을 답사한 기록을 찾았다"며, "안 의사는 일반적인 수인 사망자와 달리 2.1m로 깊이 묻었고, 그 주변에 묻힌 일본인 죄수 3명과 중국인 1명의 이름까지 나와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소개했다.

이어 "기사에 묘사된 주변 풍경이 매우 상세해서 지리에 밝은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그 길을 따라가보면 매장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말해 기대감을 갖게했다.

한편, 이날 16년만에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민관협력체계가 다시 발족하게 된 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경주 에이팩 계기 한중정상회담과 지난 1월  중국 국빈방문시 시진핑 주석과 안 의사 유해발굴에 대한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진행하고 이후 '범정부 차원의 협업체계 구축'과 '민간전문가 참여'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민관협력단에는 역사학 교수와 유해발굴 전문가 8명, 관련 단체와 안중근의사 유족 7명, 중국·일본과의 외교적 협력과 남북 간의 합의 등을 위해 외교부와 통일부도 참여하며, 단장은 국가보훈부 차관이 맡는다. 

협력단은 1년에 두 차례(상·하반기) 정기 회의를 열고 안중근 의사 의거일(10.26)이나 순국일(3.26) 등 필요한 때 수시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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