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기표로 소비되는 '중도'에 대해 다시 묻기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한 자리에서, 새 정부가 '중도'와 '통합'을 내세웠을 때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자리를 다시 맴돌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6월항쟁 이후 퇴행과 좌절을 거듭 맛보던 끝에 드디어 윤석열 집권이라는 재앙까지 겪은 것"을 두고 "우리 사회의 사상적 빈곤이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백 교수가 진단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다. 촛불과 응원봉이 거리를 밝혔지만, 그 빛이 어떤 사상적 기초 위에서 지속될 것인가를 묻지 않으면 역사는 또 반복된다. 민주주의는 이긴 뒤가 아니라 이긴 뒤에 무엇을 묻느냐로 결정되는 법이다.
저자는 ‘변혁적 중도’라는 개념을 통해 모호하게 소비되고 있는 ‘중도’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한국 정치에서 '중도'만큼 자주 불리고 자주 배신당한 말도 드물다. 좌도 우도 아닌 어딘가, 갈등을 봉합하는 수사,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는 온건함. '중도'는 그렇게 공허한 기표로 소비되어 왔다. 중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이 책의 첫 번째 과제다.
중도란 단지 좌우 사이의 회색지대가 아니라, 기득권 체제의 반동과 기존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전략이자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중(中)’이란 ‘가운데’가 아니다. 좌우 사이의 회색지대가 아니라, 기득권 체제의 반동과 기존 이념의 한계를 동시에 넘어서는 실천적 전략이다. '변혁적 중도'라는 언뜻 모순처럼 들리는 조합이 뜻하는 것은 이것이다. "변혁 없는 중도는 현상 유지의 알리바이가 되고, 중도 없는 변혁은 또 다른 극단의 폭력이 된다." 두 개를 동시에 붙잡는 긴장, 그것이 이 책이 요구하는 변혁적 중도를 추구하는 자세다.
저자 백낙청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굴곡진 여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해 온 이다. 9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는, 원로 중의 원로라고 불릴 만한 연배지만 그는 여전히 ‘학생’이다. 그의 공부는 끝이 없다. 함께 우리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찾아가기 위해 백낙청 TV를 통해 ‘함께 걷는 유쾌한 공부길’을 보여주고 있다.
'원로'는 어떤 이인가
그는 ‘원로(元老)’는 과연 어떤 이를 얘기하는지를 보여준다. 흔히 원로라고 불리는 많은 이들, 특히 스스로 원로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실망스런 행태를 생각할 때 진짜 원로의 한 모습은 스스로 원로라고 내세우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로(老)’, 즉 현인(賢人)이라고 하지 않을 때, 자신이 답을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는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라는 책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만에 내놓은 것인데 2015년에 나온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에서 백 교수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런 원로의 한 모범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문단과 시민사회의 ‘어른’으로서 언제나 인터뷰의 ‘대상’이었던 백낙청은 이 책에서 자신이 거꾸로 인터뷰어가 되어 지식인·활동가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이 책의 의의는 그런 점에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그 형식에 있다.
각계 전문가 일곱 명을 차례로 만나 한국사회가 처한 위기의 진상을 묻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대담집으로 이름 붙인 이 책에서 ‘원로’ 백 교수는 질문자다. 그리고 그는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보다 많게는 30년에서 적게는 10년가량 나이 어린 7명의 후배들은 백 교수의 정성과 열의, 그리고 깊이만큼의 진지함과 열성, 깊이를 보여 주려 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대담’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에서 묻는 이와 답하는 이들은 ‘적공(積功)’과 ‘전환’을 얘기했다.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큰 적공이란 무엇이고 큰 전환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찾으려 했다. ‘적공’과 ‘전환’. 이 두 단어는 예사롭지 않다. 사전적으로 ‘공력, 공덕을 쌓는다’는 뜻의 적공에는 ‘한국사회 대전환’이, 아니 그 전환을 위한 인식과 실천이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담자들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임을, 그리고 권력의 변화도 사회의 변화를 위한 준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 역설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인과의 순환고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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