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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 맞는 박근혜의 ‘여성대통령론(論)’

 

역풍 맞는 박근혜의 ‘여성대통령론(論)’
 
[보도비평] 황상민 교수 ‘생식기 발언’은 돌출... 발언 본질 짚어야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3 21:39:12 | 최종:2012-11-03 22:25: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는 생식기만 여성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최근 한 종편에서 쏟아낸 이 한 마디가 정치권 안팎을 뒤흔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를, 그것도 여성인 박근혜 후보를 두고 “생식기만 여성”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박근혜 후보는 겉모양만 여성이고 실지로는 여성이 아니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한 친박 단체는 황 교수가 사과하지 않을 경우 ‘3단계’에 따라 압박을 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최근 '생식기 발언'으로 논란이 된 황상익 교수가 <채널A>에 출연한 모습

 

우선 황 교수 발언의 경위를 간단히 살펴보면, 지난달 31일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생식기가 남자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박 후보는 그런 상황이냐?”고 반문하는 말끝에 문제의 발언이 튀어 나왔다. 황 교수의 발언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박종진: 어머니, 누나.
황상민: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봤다는 거죠. 누나는 조금 틀려요. 누나는 6살짜리 누나도 누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생식기가 남자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할. 그 역할 대표적인 게 언제 나타나죠?

박종진: 결혼하고.
황상민: 결혼하고 나타나죠. 애를 낳고 애 키우고. 그러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죠. 그걸 보고 여성이라고 이야기하지 생식기가 다르다고 해서 여성이라고 안해요. 그런데 박근혜 후보 그 상황입니까? 그 여성과 일치하는 범주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박근혜 후보 결혼했나요? 애 낳았나요? 애 키웠나요?

박종진: 그래도 여성성을 갖고 있죠.
황상민: 그거는 생식기의 문제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거(는 없다).

박종진: 그래도 모성애가 여성으로서 본능적으로 있지 않습니까. 애를 낳지 않았지만.
황상민: 그래서 박근혜 후보를 공주라고 이야기 하고 여왕으로서 대통령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지, 왜 뜬금없이 여성이 나옵니까. 남성이라도 여성적 입장에서. 대한민국 여성이 남성에 비해 능력이 뛰어나요.

황상민 교수 “‘여성’의 본질은 생식기적 차이가 아닌 ‘역할’”

문맥의 흐름을 놓고 보면 문제의 발언은 황 교수가 박 후보에 대해 욕설을 하기 위해 내뱉은 말은 아니다. 여성 고유의 역할, 혹은 여성성 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식기’를 거론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일자 황 교수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방송에서 섹스라는 표현을 쓰면 거부감을 일으킬 것같아 ‘생식기’라는 표현을 택했다”고 해명했다. 즉, 황 교수는 ‘생식기’는 저급하거나 성차별적이거나 성적 표현이 아니라 ‘여성’의 본질은 생식기적 차이가 아닌 ‘역할’의 차이임을 전달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은 황 교수 발언의 전후사정은 제쳐둔 채 총공세를 폈다. 여성CEO 출신의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2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의 발언은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인격 말살이고 여성 전체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며 “그런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 교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당장 다음 주에 (연세대)총장께 공개적으로 황 교수의 퇴직을 요구하러 가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2일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분의 발언 내용을 도저히 제가 입으로 옮기지를 못하겠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어떤 것이냐면 2006년도 지방선거 당시에 박근혜 후보가 신촌에서 테러를 당했을 때, 딱 그 테러 때 느낀 충격을 받았다”며 “박근혜 후보 얼굴에 70바늘을 꿰맸던, 거의 그때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목격했을 때 받은 테러 충격 이상의 충격을 느꼈다”고 강력 반발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모임인 '근혜동산'의 창립1주년 기념식 장면(2009.11)

 

또 박근혜 후보 팬클럽 박근혜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 ‘근혜동산(회장 김주복)’은 2일 황상민 교수 규탄 성명서를 통해 “생식기는 무슨 말이며,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결혼한 여성은 여성이고, 미혼인 여성들은 중성이란 말인가?”라고 묻고는 “11월 6일까지 박근혜 후보와 여성계에 사죄하지 않을 경우, 3단계에 걸쳐서 행동으로 보여줄 것임을 천명한다.”며 황 교수를 규탄하고는 황 교수의 사과를 촉구했다.

신호탄은 이재오의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

그러면 ‘여성대통령론’ 논란의 뿌리는 어디일까? 처음 시작은 새누리당에서 시작됐다. 구체적으로는 친박-비박 간의 당내 갈등에서부터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친이계’의 좌장격이자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불참한 이재오 의원은 지난 6월 1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여성대통령론을 묻는 일본 <산케이신문>의 질문에 대해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을 폈다. 이는 사실상 박 후보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이 잇따랐고 결국 박 후보도 이에 가세했다. 그 다음날(19일) 박 후보(당시는 비대위원장)는 이재오 의원의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에 대해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며 한 마디로 깔아뭉갰다. 일격을 당한 이 의원이 그냥 지나갈 리 없다. 이 의원은 다시 그 다음날 “21세기에 (한국 말고) 분단국가 있느냐?”며 한국의 분단 현실을 앞세워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새누리당 여성의원 몇 명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는 세 명의 여왕이 있었다”며 이 의원 공박에 가세하기도 했다.

이 정도에서 끝나는가 싶더니 ‘여성대통령론’이 다시 불거진 것은 박-문-안 ‘3자 구도’가 굳어진 10월 중순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은 10월 14일 선대본부회의에서 “스스로 폐족이라고 칭한 친노 정권이나, 경험없는 아마추어 정권이 나서면 대한민국은 더 큰 위기와 불안을 빠져 국민을 고생시킬 것”이라며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싸잡아 비난하고는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위기를 극복할 유일 후보가 박근혜 후보”라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성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 정치에서 최고의 쇄신”이라며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후보의 최초 여성대통령 선출은 그 자체가 통합과 쇄신의 출발이고 행복한 국민, 글로벌 한국의 상징”이라며 “한류와 지적재산 강국의 비전은 섬세함과 감성을 갖춘 여성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양극화와 지역-세대간 갈등, 남북번영을 위해서는 여성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거듭 ‘여성대통령론’을 폈다.

김무성 10년 전 ‘여성총리 불가론’으로 역풍 맞아

 

김무성 본부장
그런데 김 본부장의 발언은 한 순간에 김이 빠지는 동시에 역풍을 맞았다. 그의 10년 전 발언이 화근이 된 것. 김 본부장은 국민의정부 시절인 지난 2002년 7월 12일 장상 신임 총리서리에 대해 “대통령 유고시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로는 직무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파문이 일자 그는 다음날 “국방을 걱정해 한 말이지 여성을 비하할 생각은 없었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태였다. 이를 놓고 SNS에서는 10년 전 ‘김무성 설화’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는 ‘여성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대선 전략으로 밀어부쳤다. 10월 28일 중앙선대위 여성본부 출범식에서 “모두가 변화를 얘기하고 쇄신을 주장하지만 여성 대통령만큼 큰 변화와 쇄신은 없다”며 이틀 연속으로 여성대통령 탄생이 쇄신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1일 한국외국어대학 국제관에서 가진 ‘전국 대학언론인과의 토론회’에서 대처 영국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을 거론하며 거듭 ‘여성대통령론’을 폈다. 여성대통령의 특장점은 ‘강하면서 부드럽고 권력싸움, 밀실정치, 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언론인 김종철 씨(전 한겨레 논설위원, 연합뉴스 사장)가 2일자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과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반응을 소개한다. 우선 김 씨는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불가론이나 시기상조론을 펴기보다는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 ‘자질론’을 문제 삼았다. 또 문 후보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의 ‘자격’을 거론했는데 전체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 가운데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 씨는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가 남성이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 박정희는 새누리당의 ‘원조’인 민주공화당을 만든 사람이고,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그 정당의 인적 기반을 고스라니 이어받은 집단들”이라며 “새누리당은 ‘남성대통령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국정 운영을 잘못해서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현 집권 여당의 국정파탄 책임을 먼저 짚은 것이다.

언론인 김종철 “남성후보 차별론이자 흑백논리”
문재인 후보 “새누리가 그런 주장할 자격 있나
?”
 

박근혜 후보
이어 김 씨는 “새누리당의 박근혜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도 진보정의당의 심상정도 유권자 다수가 인정하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는 “박근혜라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노르웨이, 핀란드, 아일랜드처럼 ‘탄탄한 복지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새누리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주장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노르웨이와 핀란드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정책임자와 정당, 그리고 국민들이 힘을 모아 ‘선진적 복지체제’를 이룬 것이지 ‘걸출한 여성’ 혼자서 그런 업적을 낳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투표시간 연장 문제에 대해 박 후보가 반대 입장인 것을 두고 김 씨는 “박근혜가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투표 시간 연장에 기꺼이 동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급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 가운데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은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장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황당한 논리이자 경쟁자인 남성 후보들을 얕잡아보고 비하하는 차별론인 동시에 흑백논리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야권의 두 후보 가운데 문재인 후보도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한 마디 했다. 그는 2일 ‘여성대통령론’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본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성이나 모성, 이런 정치를 주장하는 건 좋은 일”이라면서도 “다만, 그런 주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하고 싶은 건 그동안 새누리당의 여성정책이 없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특히 문 후보는 “새누리당은 여성부도 폐지하려고 했고 지금까지 여성정책에 대해 제대로 신경 써오지 않았다는 비판의 말은 할 수 있다”며 새누리당이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대통령 후보를 두고 여성, 남성 성별로 가르는 것은 어느 누구의 주장이냐를 떠나 온당치 못하다. 대통령선거의 초점이 정책이나 인물됨이 아니라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놓고 따지기 시작한다면 그건 조잡하고 저급한 논쟁밖에 나올 게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여성대통령의 등장이 마치 ‘구세주’나 되는 듯이 선전하는 것은 그리 우수한 선거전략이 아닌 듯싶다. 황상민 교수의 ‘생식기 발언’도 새누리당이 여성대통령을 지나치게 강조한 가운데 돌출적으로 나온 것으로, 박 후보에겐 순풍이 아니라 역풍이 될 공산이 크다. 박 후보는 자신이 존경하는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남성'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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