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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간첩' 원정화, 조작의혹 제기 <신동아>

 

민변 "날조된 간첩 조작사건이 벗겨지는 새국면"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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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9  11: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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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간첩 혐의로 유죄를 받고 5년 동안 복역한 탈북자 원정화 씨에 대한 간첩조작의혹이 제기됐다.

월간지 <신동아>는 4월호에서 "원정화 인터뷰 내용이 보도된 후 몇몇 탈북 인사가 원씨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며 "이들은 하나같이 원씨 주장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원정화 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라고 그동안 주장했지만, 이후 "보위부의 '보'자도 모르는데"라고 말해 '원정화 간첩사건'이 사실상 원정화 씨의 거짓주장과 검찰의 조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혐의 당사자인 탈북자 유우성 씨를 둘러싼 진실공방과 맞물려 주목된다.

<신동아>는 원정화 씨의 주변 인물인 계부 김동순 씨와 탈북자 강 모 씨, 박 모 씨 등의 증언을 새로 입수, 원정화 간첩사건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원정화 씨의 생부인 원 모 씨는 1970년대 초 함경북도 부령군 고무산 시멘트공장에서 근무, 협심증을 앓고 마약에 중독돼 북한 당국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인물이었다. 또한, 부인 최 씨와 이혼한 뒤 함흥의 한 요양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정화 씨의 생모인 최 씨는 청진에서 사우나를 운영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에는 '원정화 씨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 북한공작원이던 부친 원석희는 1974년 남파 도중 국군에 사살됐다. 이후 혁명 열사가족으로 유복하게 살았다. 모친 최OO은 1976년 미술 관련 일을 하던 김동순과 재혼했다"고 적시했다.

또한 '원 씨가 학업성적이 좋아 사회주의청년동맹(사로청)에서 일하고, 금성정치대학에서 공부했다'며 '특수부대 교육 중 다쳐 감정제대 한 뒤 국가재산탐오죄로 복역한 후 1996년 중국으로 탈출했다'며 유죄 근거를 들었다.

그러나 <신동아>는 계부 김동순 씨가 원정화 씨와 나눈 대화를 공개, 원정화 씨가 "(보위부에 있던 적이) 없어요. 나는 보위부의 '보'자도 모르는데"라고 답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심지어 김동순 씨는 "우리 집안은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보위부 요원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 집안에 노동당원은 나 한 사람뿐이다. 보위부가 파견한 간첩이라는 원정화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정화의 두 동생도 보위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원정화 씨가 1998년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된 뒤 100명이 넘는 탈북자와 한국인을 북송시켰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동순 씨는 "원정화는 북한 보위부가 남파한 간첩이 아니다. 한국에 들어와 중국을 통해 대북무역을 하면서 일부 오해를 살 만한 일을 했지만, 절대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탈북 당시 중국에 함께 있었다는 박 모 씨는 "당시 정화는 몸이 많이 안 좋아 거의 집에만 머물고 있었다. 탈북자를 체포해 북송시키는 일을 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탈북자인 나부터 북송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면서 100명 북송이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원정화 씨는 간첩혐의로 조사받을 당시, 군 장교들과 관계를 맺고 자료를 빼내, 북한에 넘겼다고 진술했지만, 이마저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남한으로 입국한 원정화 씨는 정착을 위해, '남남북녀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했으며, 탈북자 박 씨는 "한국에서 빨리 정착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며 공무원, 군인 등을 소개해줬다는 것.

또한 북한 보위부 요원인 단동무역대표부 부대표 김교학은 원정화 씨를 만날 당시 원 씨가 탈북자인 줄도 몰랐으며, 황장엽이나 국가정보원 요원 살해 지시 등을 받은 적도 없다고 원 씨가 직접 말했다.

게다가 판결문에 원 씨가 김교학을 2002년 10월부터 지령을 내렸다고 했지만, 실제 원 씨와 김교학이 만난 시기는 2004~2005년이라는 것이다.

이에 <신동아>는 "원정화 사건에서 혐의가 인정된 2003년 1월부터 2005년 3월경까지 최대 5회에 걸친 간첩활동의 성립조건이 사라진다"며 "김교학이 원씨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김교학과 원씨가 보위부의 지령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다는 사건의 대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신동아>는 검찰이 조사 당시, 원정화 씨에게 술을 먹였다는 원 씨의 녹취 내용을 공개하고, 주변 인물들과 인터뷰를 종합해 "원씨의 간첩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는 찾기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정화 간첩사건'은 검찰의 조작과 함께, 원 씨 스스로 '제2의 김현희'가 되고 싶은 생각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결론 내렸다.

<신동아> 보도가 나오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8일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소위 보위부 파견 탈북 여간첩 1호 원정화 간첩 사건은 날조된 간첩 조작사건이라는 것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벗겨지는 새로운 국면"이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민변은 "원정화 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과 함께 자칭 보위부 소속 탈북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진상을 명백히 규명하고, 간첩 조작에 가담한 수사기관 종사자 등 범죄자 전원에 대하여 전원 사법처리를 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여태까지와 같이 더 이상은 분단 상황을 악용하여 단순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은 안된다"며 "탈북자들이 반북선전의 도구나 대북정보수집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탈북자를 위장한 간첩으로 조작 간첩사건의 대상으로 악용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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