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박순미씨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싼 채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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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박 대통령 면담 그후…‘수빈 엄마’ 박순미씨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16일 세월호 유족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언제든 유가족들을 다시 볼 것”이라고 약속했다.(사진)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유족들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 <한겨레>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영문도 모른 채 숨져간 자식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던 유가족 박순미씨를 인터뷰했다. 박씨가 아들 이수빈군에게 쓴 편지는 <한겨레> 11월27일치 세월호 참사 기획 연재 ‘잊지 않겠습니다’(▶ 뭐든지 최고였던 우리집의 영원한 기둥…오늘밤 함께 여행하자)에 실렸다.
유가족 외면·이상한 특별법…
또다시 가슴을 치며 울어
아들에 저승으로 떠나지 말고
널 잊으려는 대통령·정치권
끝까지 지켜보라 기도합니다
“하필 왜 저를 붙들고 그렇게 천연덕스레 연기를 하셨나요? 당신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내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때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훔치던 박순미(40·얼굴 사진)씨는 “그럴 일 없겠지만, 만일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이렇게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 가운데 한 명인 2학년 7반 고 이수빈(17)군의 엄마다. 박씨는 지난 5월16일 세월호 유족의 청와대 방문 이후 국민들의 뇌리에 가장 깊숙이 남아 있는 유족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한 달 만인 5월16일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난 박 대통령은 당시 처연하게 청와대를 나서는 유가족들을 문밖까지 배웅하며 ‘참 따뜻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심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배웅 도중 슬픔에 잠긴 한 여성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고 청와대는 이 장면이 담긴 사진을 언론에 뿌렸다. 이 여성이 바로 수빈군의 엄마 박씨다.
그는 당시 ‘언제든 유가족들을 다시 볼 것이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할 것이다’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200여일이 훌쩍 지난 지금, 박씨는 그날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던 것인지를 되뇌며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다.
박순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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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만난 박씨에게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 좌절만 남아 있는 듯했다.
박씨는 박 대통령을 만난 당시 상황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면담을 마치고 앞에 먼저 나가시던 대통령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제 손을 꼭 잡았어요. 그리고 어깨에 손을 얹고 도닥이며 위로했어요. 너무 고마워서 제가 ‘우리 아이들 죽음이 헛되지 않게 부탁드린다’고 하니 (대통령께서)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어요.” 박씨는 “대통령께서는 그때 유족들의 하소연을 하나하나 메모하면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을) 다시 한 번 만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박씨는 “그처럼 따뜻하고 자상한 모습을 보였던 대통령이 그날 이후 우리 아이들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본 적 없고, 우리를 만나준 적도 없다. 모든 게 연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또다시 가슴을 치며 울고 말았다”며 가늘게 떨었다.
반장이었던 아들을 대신해 2학년 7반 유가족 반 대표를 맡았던 박씨는 “대통령에게 ‘저를 기억하십니까? 아이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약속이 고작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사고의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이상한 특별법을 만들도록 하는 겁니까? 대답 좀 해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며 서러운 듯 눈물을 떨궜다.
박씨는 지난 22일 아들 수빈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평택 서호공원에 다녀왔다. 그는 “아들의 납골함을 어루만지며 ‘절대로 저승으로 떠나지 말고 너희를 잊으려는 대통령과 정치권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기도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시간만 흘러가길 바라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이젠 대인기피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박씨는 최근 반 대표 자리를 내놨다. 그는 “아이들의 한을 조금도 풀어 주지 못한 탓에 수빈이 아빠는 요즘도 새벽마다 집 창문을 열고 비명이나 다름없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며 흐느꼈다.
안산/글·사진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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